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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8:01
탑이랑 텀은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였음
둘은 같은 예술분야 전공으로 진학을 위한 동아리 활동에서 만나게 되는데
둘이 다니는 학교는 돈많은 집안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부자학교로 유명한 곳음 텀은 그런 학교에 기부금 빵빵하게 주고 입학한 소위 잘사는집의 귀염둥이 막내 아들이었고 탑은 이 부자학교에서 진학률 관리를 위해 장학금을 주고 데려온 예체능 특기생이었음

텀은 부모 빽으로 돈내고 겨우 입학한 주제에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분야를(그림이던 음악이던)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때문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 그 마음이 크면 클 수록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매사에 불평불만도 많은 개지랄맞은 후배였음
그리고 탑은 자기기준에서 납득이안가면 부둥부둥해주는거 1도 없이 대놓고 팩폭날리고 욕도 서스럼없이하는 개꼰대같은 선배였음

그야말로 배경부터 정반대이자 최악의 상성인 둘이 만나 함께 뭔가의 결과물을 만들어야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그게 잘될리가 있나
처음 텀이 결과물을 생성해가는 과정에서 자기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않자 엄청나게 방황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는 꼬라지가 자기기준 존나 철없어 보이고 이해가지 않았던 탑은 텀이 그냥 끈기없고, 깃털같이 가벼운놈이고, 날라리 양아치새끼고, 자기 입시에 중요한 동아리활동망치고 자기 앞길 막는 새끼라고 존나 악담을 해댐
텀은 여태껏 예민한 자신을 배려해주는 부모님과 선생님들만 만나왔지 자기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봄
그래서 선배가 되가지고 방황하는 후배 이끌어주진 못할망정 질타하기만 하는 탑에게 진심으로 욱해서 너는 시발 얼마나 잘하나 보자 쒸익쒸익거리며 탑이 작업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게 되는데
하필이면 탑이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천재라서
하필이면 텀이 그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탑이 만들어가는 결과물에 매료되어 지독한 짝사랑을 시작하게되는 텀이 보고싶다.

그 뒤로 부터 텀은 방황을 멈추고 탑만 졸졸쫒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이미 텀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콕콕 박혀있던 탑은 이 새끼가 갑자기 왜이러나 싶고 자기 기준 수준떨어지는 텀이랑 별로 엮이고 싶지가 않았음 그래서 난 너 안믿으니까 내 앞길 방해하지말고 꺼지라고 하기도하고 어쩌다 내가 이런 수준낮은 새끼도 다니는 학교를 들어와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작 장학금때문에 이딴 학교 들어온게 후회된다고 하기도함

그래도 텀은 아랑곳하지 않았음 사실 탑이 욕할때마다 같이
지랄같이 욕하긴 했는데 말만 그래하고 베알도 없는지 계속 탑의 뒷꽁무니만 쫄래쫄래 따라다녔음 그래도 탑을 동경했으니까
탑의 옆에서 탑이하는걸 지켜보고 어깨너머로 배우고 따라해면서 자기가 어느면에서 부족한지 어떤점을 채워야 할지 분석도 해보고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하는 탑을 보면서 방황하던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면서 텀도 점점 성장해 나감

그리고 텀이 탑의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만큼 당연히 탑도 자연스럽게 텀의 성장을 지켜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탑이 텀에게 가졌던 편견같은 것도 점차 옅어져가게됨
텀이 자기가생각했던 그런 ‘집안에서 시켜서, 걍 있어보이려고, 나중에 결혼잘할려고, 예대 학위취득만을 목적으로 입학한 깃털같이 가벼운 철부지 양아치’가 아니라고 생각하게되고 그런 인식이 사라지게 되니
말로는 틱틱거리지만 그누구보다 자기의 예술을 잘이해하고 자길 인정해주는 텀이 고맙기도 했고, 자길 동경해서 졸졸 쫒아다니고 어리숙하게 따라하는 모습이 점점 귀여워보이고 했고,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이니 대견스럽기도 했음.

그렇게 탑도 텀에대한 마음이 말랑말랑하게 변하게 됐는데 그런 변화를 텀은 죽어도 눈치못챘으면 좋겠다.
왜냐면 과거의 탑은 텀에게 온갖막말을 했던 사람이었고
현재의 탑은 자기 마음을 잘표현하는 사람이 아니고
미래의 탑은 곧 졸업해 텀은 감히 비벼도 못볼 대학으로 진학이 확정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텀은 탑이 여전히 자기를 안좋게 생각하고있고 탑은 자기랑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지금 둘이 함께하는건 자기가 일방적으로 탑을 쫒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탑의 졸업이 가까워졌을때
이대로 영영 남이 될까, 다신 못보게 되어버릴까 두려워진 텀이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던져 버리고 육체적으로 달려들며 제발 파트너라도 되게해달라고 애원하게됨 탑은 그런 텀의 모습에 실망함 하지만 몸은 착실히 호감있는 상대의 나체에 반응 하였고 그렇게 둘은 적절하지못한 관계를 맺게 됨.


둘은 그 이후로도 몇번 관계를 맺었음. 거의 매번 텀이 조른 관계였음 하지만 탑도 단한번도 텀을 거절하지않았음 둘다 이 부족한 관계에 공허함을 느낌 하지만 둘중 누구도 관계 진전을 시도하지않았음 텀은 탑이 자길 좋아해 줄거란 기대를 하지 못했고 탑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

그렇게 이상한 둘의 인연은 실처럼 얇게 깃털처럼 가볍게 간헐적으로 이어지다 탑이 미국으로가게되면서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음

그러고 한 10년의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잘나가던 탑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남들보다 이르게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됨
그리고 탑은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는데 그런 그의 사무실에
어느날 텀이 사전에 얘기도 없이 찾아와 대뜸

“나 죽는데, 그래서 부탁할게 있어서 찾아왔어.”

라고 하는거 보고싶다.



****



“뭐야 당신 뭡니까? 누구신데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는거에요?“

애석하게도 탑은 텀을 한눈에 알아보진 못했어 변명해보자면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났고, 텀은 그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는지 몰라볼 정도로 변해있었거든. 늘 부잣님 도련님아니랄까봐 깔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었었고 키도 남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크고 어깨도 떡 벌어져서 항상 건강해보이던 텀이었는데 지금은 옷도 다림질도 안한건지 잔뜩 구겨져있고 너무 마른데 크기만 해서 위로 쭉늘려놓은 비리비리한 콩나물같은 인상이었어

텀은 자길 못알아볼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곤 난처해했어 그러고 한숨을 푹 한번 쉬더니 이야기했어.

“설마 못알아볼거라곤 생각못했는데…. oo고 **동아리 기억안나? 나 그렇게 얌전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제서야 탑은 텀을 기억해내겠지 그러고 너무 변한 텀의 모습에 놀랄거야 하지만 굳이 반갑다느니 왜이리 변했냐느니 그런 시덥지 않은 말들을 굳이 하진 않았어.
왜냐면 텀이 처음보자마자 한말이 심상치가 않았거든 통성명도 없이 대뜸 죽는다느니 부탁이니 하는 얘기들 말이야 탑은 ‘부탁’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걸렸어. 애석하게도 그놈의 ‘부탁’이 자신이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알려질때부터 제친구에서 부터 사돈의 팔촌까지 끊임없이 들어왔었거든 그래서 안그래도 귀국 후 잔뜩 예민해져있던 탑은 텀에게 트리거가 당겨진 무기처럼 위협적이게 반응했어

”그래 기억이 날듯 말듯 하네 근데 사실 너가 누군지
내가 널 알아보는지못알아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않아? 너나 나나 지금 중요한건 날 찾아온 용건이겠지.
그래서 부탁이 뭔데? 너도 뭐 돈필요해? 어떡하지 그렇게 죽느니 마니 거창하게 말해도 난 돈없어“

생각지도 못한 날선 반응에 텀은 아까보다도 더 당황한듯 보였어 그러곤 곤혹스럽다는듯이 오른손으로 턱을 괴곤 검지로 입술을 문질거렸어

“그래? 돈없으면 안되는데…그래도 대학교수면 앞으로 계속 벌면 애한명은 안굶기고 키울수 있지않아?”

그말에 탑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텀을 바라봤어
텀은 그런 탑의 반응은 보이지도 않는듯 정말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탑을 빤히 바라보았어
탑은 그런 텀에게 조금은 말려드는거 같다고 생각하며 대답했어.

”뭐 앞으로 계속 일하면 애한명은 키울 수 있겠지.“


그러자 텀은 다행이라는듯 힘없이 웃어보였어 그 기운빠지게 웃는 얼굴에서 어쩐지 그옛날 자신을 졸졸쫒아오던 어린 텀이 겹쳐보여 탑은 순간 당황했겠지 그래서 잠깐 주춤하는
사이 텀이 폰을 들고 뭔갈 찾더니 이내 탑앞으로 더 다가와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어 거기엔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져있었지 탑이 영문을 모른체 멀뚱히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 텀이 베시시웃으며 사진 속 아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

“얘 잘봐둬. 처음보면 놀라서 어떤반응이 나올지 모르니까 오늘은 나혼자 왔는데 다음에 올땐 데리고 올게. 이름은 ㅇㅇㅇ이고 올해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야. 당연히 필수예방접종은 맞을수 있는건 다 맞췄는데 아마 5학년쯤에 하나 더 맞아야할거야 그건 학교에서 안내해주니까 하라는데로 해주면 될거니까 잊지말고 꼭 챙겨줘 알았지? 나도 내가 당연히 해줄 수 있을줄 알았는데 말했다시피 나 이제 곧 죽거든? 그래서 이제 너가 해줘야해….“


“잠깐만 잠깐만!! 뭐라고? 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 얘를 키워야한다고? 뭘 알아듣게 설명을 해야할거 아니야. 갑자기 내가 얘를 왜만나고 얘를 내가 왜키워“

너무 어이가 없어 머리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던 탑이 자신이 애를 키워야한다는 말을 인지하자 갑자기 물벼락에 맞은듯 튀어오르며 텀에게 소리쳤어
그러자 텀은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아 미안해 약을 먹은 이후론 말을 두서없이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 내가 또 그랬나 보네 미안해”

”그러니까 들어봐 얘가 네 아들이야 탑. 이제야 말하게 되서 미안해. 네가 이 아이 아빠야“

그러고 어떻게 되었더라 사실 탑은 잘 기억하지 못했어 망치로 뒷통수를 맞았다 깨어난거 처럼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텀은 이미 없었고 탑혼자서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사무실 소파에앉아있었지.

그의 폰엔 언제 번호교환을 한건지 메세지가 여러통 와있었어 텀의 이름 정자 세글자가 찍혀있고 그아래 대화창엔 어린아이의 사진이 무분별하게 몇십장씩 와있었어.

탑은 홀린듯 사진을 한장한장 넘겨보았어

그리고 귓가엔 환청인지 기억이 뒤늦게 따라오는건지 뭔지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텀의 목소리가 띠라 들려오는 듯 했어

못믿겠으면 검사해봐도 좋아

근데 딱봐도 알지 않아?

내눈엔 너 판박이인거 같은데

내 배아파 낳은 내자식인데도

클수록 너밖에 안보이더라

네 아들이라 어쩔 수 없나봐.

ㅇㅇ이 네 아들이야.

너가 ㅇㅇ이 아빠야.

너가 아빠야.






XXX.




너가 나 임신 시켰잖아.

그러고 나혼자 남겨뒀잖아

날 버리고 어디에 갔었어?

대체 어디있다 이제와?

내 마음을 알고있었잖아

왜 날 버렸어

왜 내가 죽도록 내버려뒀어

탑…

탑…!!




무언가 확 세상이뒤집히는 듯한 느낌에 탑이 놀라 벌떡 상체를 세우고 눈을 떴어 아까까진 분명히 사무실이었던거 같은데 정신을차리고 보니 지금은 또 자신의 침실 위었어
텀이 나타나고 나서 자신의 인생의 아주 큰 무언가가 뒤틀린 기분이야 속이 메스꺼워졌어.
탑은 가볍게 헛구역질을 하며 한손으론 입을 막고 다른 한손으론 더듬더듬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찾았어. 현재 시간을 알기위해 찾은거였는데 핸드폰을 들여다 보자 마자 보이는건 한줄의 메세지였어

[이번 주말에 ㅇㅇ이랑 만나러 갈게. 참고로 ㅇㅇ이는 아직도 공룡을 좋아해 그럼 그때 다시 보자. 오늘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어 탑]

탑은 결국 빈 쓰레기통을 급하게 붙잡고 속을 비워낼수 밖에 없었어.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3시였어 앞으로 3시간은 더 잘 수있었지만 탑은 그날 결코 잠에들 수 없었어
탑이 이렇게 정신을 못차려도 째깍째깍시간은 계속 흘러갔어
자신이 존재 조차 알지못했던 아이를 만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있었어
그리고 텀이 죽는 날도 다가 오고있었지
시간은 계속 흘러가 지금도 앞으로도




시발 새벽3시에 깨서 심심해서 몇줄 쓴다는게 아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