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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22:08

나는 개와 함께 공원으로 간다

정다연

"이 개의 견종이 뭐지요?"

역시 개를 데려온 여자가 묻는다

"......믹스견입니다"

"그래도 뭐랑 뭐랑 섞였는지는 알 거 아니에요.

보더 콜리, 파피용, 스피츠?"

"......잘 모릅니다"

"우리 개는 자연임신되지 않고 유전자 변형으로만

임신 가능한 개예요. 아주 값이 비싸고 귀해요."

"......그렇군요"

*

개와 나는 그저 함께 걷는다

"이리 와 이리 와"

모르는 남자들이 손짓하고

뒤따라와 휘파람을 분다

만져보고 싶어 말한다

나와 개는 그냥 계속 갈 뿐인데

"개새끼네"

노란 승합차에서 내린 아이가 말한다

*

개와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아까부터 14층 남자는 세균에 감염될 것처럼 울상이고

"애나 낳지 왜 개를 키워?"

옆집 아주머니는 내게 묻는다

나와 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뿐이다

*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개의 발을 닦아주고, 물과 사료를 따라준다

"개 키우는 거 보니까 애도 잘 키우겠네"

할머니는 말하고

"개를 키우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은 관련이 없어요"

내가 말한다

나는 개와 함께 공원으로 간다

공장을 지나 오염된 강가를 지나

때로는 들판으로 때로는 낯선 동네로

개는 내가 혼자서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날 데려가고

나도 가끔 개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간다

산책은 늘 엇비슷하지만

개와 나는 같이 걷고 자란다

누군가는 혀를 굴리며 날 불러 세우고

누군가는 정말 개를 애처럼 생각하냐고 물을 것이지만

이 모든 말에 관심 없는 개는

땅의 냄새를 맡으며

그저 걸을 뿐이다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니까>라는 시집에 실린 시인데 이 시집 시 다 너무 좋음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