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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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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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컴퓨터로 메모장을 켜서 뭔가를 적어내렸음. 두 살 연하. 연봉... 모르긴 몰라도 최근에 과장으로 승진했다고 했으니 나보단 훨씬 많이 벌겠지. 잘생겼고... 나보다 키도 크고... 대학 때 인기도 많았지. 말도 엄청 잘해. 생일 때면 늘 바빴고, 나는 진작 연락이 끊긴 대학 동기들이랑도 노부는 여태 연락하고 지내고. 어쩌면 내 동기들이랑 나보다 더 친할지도 몰라. 친화력 하나는 일등이니까. 그리고 수영, 스키, 사이클... 엄청 활동적이야. 나는 뭐든 구경하는 게 제일 좋은, 시시한 인간이고. 노부가 이런저런 데이트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내가 응해줄 수 있는 게 몇개나 될까. 정말 재미없을 거야... 나랑 사귀는 거. 일단 여기까지만 쓰고 메모장을 껐음. 저장은 바탕화면에. 나중에 또 쓸 내용이 생각나면 추가하려고.
사귀자고 고백하고 상대가 응해서 연인이 되는 이 과정이 정말 오랜만이었음. 대학 시절부터는 줄곧 고백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그마저도 스펙 쌓으랴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랴 바빠 연애는 뒷전이었음. 그날 마치다에게 달려가 기회를 달라고 했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 이미 3주의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마저 확실히 거절을 당한다면 앞으로의 일이 난감했을 거임. 둘 사이에 10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뭐 엄청난 우정은 아니었어도 인생에서 잃기 아쉬운 존재이긴 했으니까. 마치다는 노부에게 언제나 빛나고 편안한 사람이었음. 자기처럼 나서서 설치지 않아도 단단해 보였겠지.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분명했고 모두에게 상냥해서 미움 받을 일이 없었음. 버릇 없는 신입생을 제대로 혼낼 수 있었던 사람도,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과대가 아니라 친절하게 팩트를 콕 찍어 조언하는 마치다였지. 그 상냥하면서도 똑부러지는 태도는 노부가 늘 존경하던 부분이었음. 먹기만 하면 살이 붙는 자신과 달리 마치다는 언제나 여리여리 했고 자세도 곧았음. 여럿이 어울려 다니기 보다 혼자 벤치에 앉아 음악 듣기를 좋아하던 선배. 경영학과 졸업생이 쌩뚱 맞게 선생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참 선배 답다고 생각했음. 조용히 자기 갈 길 가는 사람. 노부는 사실 다른 일이 하고 싶었지만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니 남들처럼, 다른 동기들처럼 그럴싸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음. 그러니 마치다가 참 용감해 보였겠지. 마치다에 비하면 스스로가 너무 철 없게 느껴질 정도였음.
첫 데이트라고 해야할까. 토요일 아침부터 만난 둘은 브런치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근처 거리를 구경했음. 두 사람 다 가끔 차 타고 지나기만 해서 골목 구석구석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음. 옛날 스타일의 음식점들과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가 곳곳에 자리히고 있었고 편집숍도 몇 군데 있었음. 마치다는 모자를 하나 샀고 노부는 노트북 가방을 하나 샀음. 서로 이런 거 귀엽지 않느냐며 몇 개씩 들고와서 보여주긴 했는데 정작 구매는 딱 필요한 것만 했겠지. 골목끝에 다다랐을 때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두리번 거리는 마치다를 보고 노부가 말했음. "안경 벗은 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아, 응. 하고 짧게 대답했지만 나름 멋부린 걸 들킨 것 같아 민망했음. "오늘은 그럼 렌즈 꼈어요?" 렌즈 감별사도 아니고, 노부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마치다의 눈을 들여다 봤지.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마치다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발짝 물러났음. 씨익 웃으며 똑바로 서는 노부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정말 이 환한 대낮에 누가 볼까봐 조마조마 했겠지. 재수 없게 학원생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농담도 한마디 못하는, 학원에서 제일 지루한 선생님이 골목에서 남자 애인과 히히덕 거리는 모습 따위 보이고 싶지 않았음. "영화 볼래요? 요즘 상영하는 것 중에 관심 있는 거 있어요?" 마치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음. 사실 좋아하는 해외 가수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중이긴 한데 노부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았음. 그래도 제법 인기 있는 영화가 있길래 그걸로 예매를 함. 낮 시간이라 상영관 안은 한산했겠지. 정적 속에 앉아 있으려니 조금 어색했는데 그 순간 노부가 의자에 푹 기대 앉으면서 약간 마치다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음. 기대는 것도 아니고 똑바로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그래서 저리 가라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었음. 그래도 확실히 고개가 기울긴 해서 마치다는 더 어색한 기분이 돼버렸지. 자기는 정면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노부 머리통이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았음. 영화가 시작 되고 초반엔 두 사람 다 집중해서 보는가 싶더니 이내 번갈아가며 졸기 시작함. 첫데이트라 알게 모르게 긴장을 했던 거지.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사이좋게 헤드뱅잉 하며 졸았으니 영화 내용을 몰라 나눌 얘기가 없었음. 영화관 건물 1층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 각자 필요한 책을 고르고, 마치다는 아무래도 필기구를 많이 사용하니 문구 코너도 들렀음. 평소에 자주 쓰던 것들과 노부가 추천한 펜 몇 자루까지 사니 바구니가 가득 찾겠지. 노부가 계산하려고 하니까 마치다가 말렸음. "학원에 비용 처리하면 돼. 강사들 문구류는 다 지원해주거든." 그럼 자기가 추천한 펜만 계산해 주겠다며 노부가 바구니에서 펜 몇 자루를 꺼내 따로 계산대로 감. 학원에 비용 처리 할 영수증을 챙긴 후 노부가 사 준 펜도 건네 받음. "잘 쓸게. 고마워." 저녁엔 보충 수업이 있어 마치다가 학원으로 가야 했음. 이젠 헤어져야지. 둘 다 쉬는 날엔 운전을 안 하는 편이라 각자 택시를 잡기로 했음. 택시에 오르는 마치다에게 노부가 말했음. "아까 그 펜으로 나한테 편지 써줄 수 있어요? 쓰고 싶은 말 생겼을 때요. 당장은 아니어도 되고." 편지라는 단어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마치다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음. "편지...? 어... 그럴게. 근데 나 글씨 못 쓰는데." 노부는 진지한 얼굴로 또 말했지. "원래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악필이래요. 써 줘요." 택시 기사가 이 대화를 듣고 있단 사실에 마치다의 얼굴이 빨개졌음. 택시 문이 닫혔고 노부는 택시가 길게 뻗은 도로를 달려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음. 수업 잘 해요. 언제든 전화해도 좋아요 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자기가 탈 택시를 향해 손을 뻗었음.
노부마치
학원 컴퓨터로 메모장을 켜서 뭔가를 적어내렸음. 두 살 연하. 연봉... 모르긴 몰라도 최근에 과장으로 승진했다고 했으니 나보단 훨씬 많이 벌겠지. 잘생겼고... 나보다 키도 크고... 대학 때 인기도 많았지. 말도 엄청 잘해. 생일 때면 늘 바빴고, 나는 진작 연락이 끊긴 대학 동기들이랑도 노부는 여태 연락하고 지내고. 어쩌면 내 동기들이랑 나보다 더 친할지도 몰라. 친화력 하나는 일등이니까. 그리고 수영, 스키, 사이클... 엄청 활동적이야. 나는 뭐든 구경하는 게 제일 좋은, 시시한 인간이고. 노부가 이런저런 데이트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내가 응해줄 수 있는 게 몇개나 될까. 정말 재미없을 거야... 나랑 사귀는 거. 일단 여기까지만 쓰고 메모장을 껐음. 저장은 바탕화면에. 나중에 또 쓸 내용이 생각나면 추가하려고.
사귀자고 고백하고 상대가 응해서 연인이 되는 이 과정이 정말 오랜만이었음. 대학 시절부터는 줄곧 고백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그마저도 스펙 쌓으랴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랴 바빠 연애는 뒷전이었음. 그날 마치다에게 달려가 기회를 달라고 했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 이미 3주의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마저 확실히 거절을 당한다면 앞으로의 일이 난감했을 거임. 둘 사이에 10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뭐 엄청난 우정은 아니었어도 인생에서 잃기 아쉬운 존재이긴 했으니까. 마치다는 노부에게 언제나 빛나고 편안한 사람이었음. 자기처럼 나서서 설치지 않아도 단단해 보였겠지.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분명했고 모두에게 상냥해서 미움 받을 일이 없었음. 버릇 없는 신입생을 제대로 혼낼 수 있었던 사람도,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과대가 아니라 친절하게 팩트를 콕 찍어 조언하는 마치다였지. 그 상냥하면서도 똑부러지는 태도는 노부가 늘 존경하던 부분이었음. 먹기만 하면 살이 붙는 자신과 달리 마치다는 언제나 여리여리 했고 자세도 곧았음. 여럿이 어울려 다니기 보다 혼자 벤치에 앉아 음악 듣기를 좋아하던 선배. 경영학과 졸업생이 쌩뚱 맞게 선생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참 선배 답다고 생각했음. 조용히 자기 갈 길 가는 사람. 노부는 사실 다른 일이 하고 싶었지만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니 남들처럼, 다른 동기들처럼 그럴싸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음. 그러니 마치다가 참 용감해 보였겠지. 마치다에 비하면 스스로가 너무 철 없게 느껴질 정도였음.
첫 데이트라고 해야할까. 토요일 아침부터 만난 둘은 브런치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근처 거리를 구경했음. 두 사람 다 가끔 차 타고 지나기만 해서 골목 구석구석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음. 옛날 스타일의 음식점들과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가 곳곳에 자리히고 있었고 편집숍도 몇 군데 있었음. 마치다는 모자를 하나 샀고 노부는 노트북 가방을 하나 샀음. 서로 이런 거 귀엽지 않느냐며 몇 개씩 들고와서 보여주긴 했는데 정작 구매는 딱 필요한 것만 했겠지. 골목끝에 다다랐을 때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두리번 거리는 마치다를 보고 노부가 말했음. "안경 벗은 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아, 응. 하고 짧게 대답했지만 나름 멋부린 걸 들킨 것 같아 민망했음. "오늘은 그럼 렌즈 꼈어요?" 렌즈 감별사도 아니고, 노부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마치다의 눈을 들여다 봤지.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마치다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발짝 물러났음. 씨익 웃으며 똑바로 서는 노부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정말 이 환한 대낮에 누가 볼까봐 조마조마 했겠지. 재수 없게 학원생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농담도 한마디 못하는, 학원에서 제일 지루한 선생님이 골목에서 남자 애인과 히히덕 거리는 모습 따위 보이고 싶지 않았음. "영화 볼래요? 요즘 상영하는 것 중에 관심 있는 거 있어요?" 마치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음. 사실 좋아하는 해외 가수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중이긴 한데 노부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았음. 그래도 제법 인기 있는 영화가 있길래 그걸로 예매를 함. 낮 시간이라 상영관 안은 한산했겠지. 정적 속에 앉아 있으려니 조금 어색했는데 그 순간 노부가 의자에 푹 기대 앉으면서 약간 마치다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음. 기대는 것도 아니고 똑바로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그래서 저리 가라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었음. 그래도 확실히 고개가 기울긴 해서 마치다는 더 어색한 기분이 돼버렸지. 자기는 정면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노부 머리통이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았음. 영화가 시작 되고 초반엔 두 사람 다 집중해서 보는가 싶더니 이내 번갈아가며 졸기 시작함. 첫데이트라 알게 모르게 긴장을 했던 거지.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사이좋게 헤드뱅잉 하며 졸았으니 영화 내용을 몰라 나눌 얘기가 없었음. 영화관 건물 1층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 각자 필요한 책을 고르고, 마치다는 아무래도 필기구를 많이 사용하니 문구 코너도 들렀음. 평소에 자주 쓰던 것들과 노부가 추천한 펜 몇 자루까지 사니 바구니가 가득 찾겠지. 노부가 계산하려고 하니까 마치다가 말렸음. "학원에 비용 처리하면 돼. 강사들 문구류는 다 지원해주거든." 그럼 자기가 추천한 펜만 계산해 주겠다며 노부가 바구니에서 펜 몇 자루를 꺼내 따로 계산대로 감. 학원에 비용 처리 할 영수증을 챙긴 후 노부가 사 준 펜도 건네 받음. "잘 쓸게. 고마워." 저녁엔 보충 수업이 있어 마치다가 학원으로 가야 했음. 이젠 헤어져야지. 둘 다 쉬는 날엔 운전을 안 하는 편이라 각자 택시를 잡기로 했음. 택시에 오르는 마치다에게 노부가 말했음. "아까 그 펜으로 나한테 편지 써줄 수 있어요? 쓰고 싶은 말 생겼을 때요. 당장은 아니어도 되고." 편지라는 단어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마치다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음. "편지...? 어... 그럴게. 근데 나 글씨 못 쓰는데." 노부는 진지한 얼굴로 또 말했지. "원래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악필이래요. 써 줘요." 택시 기사가 이 대화를 듣고 있단 사실에 마치다의 얼굴이 빨개졌음. 택시 문이 닫혔고 노부는 택시가 길게 뻗은 도로를 달려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음. 수업 잘 해요. 언제든 전화해도 좋아요 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자기가 탈 택시를 향해 손을 뻗었음.
노부마치
[Code: a2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