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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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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허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을 말해보라 하면 나는 한 서너가지 정도만 떠올릴 수 있었다. 래번클로, 짙은 흑갈색머리, 단정한 교복차림, 그리고 책. 입학식 때 딱 한번 들어봤을 걔의 성이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명확한 아이는 아니었다. 퀴디치 선수도 아니지만 내가 허니를 기억하는 이유는 걔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걸 종종 들키기 때문이었다. 아, 성이 고작 한글자라서 그랬을지도.


그렇다고 해서 허니가 날 좋아한다고 확신을 가지거나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애는 제 단짝친구와 함께 호수 근처에서 책을 읽거나, 단 걸 좋아하지만 참으려고 애쓰는 편이었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훅 나타난 금발을 한 누군가의 뒷모습에 침착하게 리디큘러스 주문을 뱉는 모습이라던지... 그냥 내 주변을 맴돌기보다는 제 일상을 살아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다가도 가끔은 그 어두운 눈동자가 나만 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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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점이 도무지 없어서일까, 허니가 나를 좋아하는 거 같아 확인하고 싶긴 한데도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상황이 조금 답답하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움직이는 계단에서 지나치다가 눈이 마주친 허니에게 충동적으로 윙크를 했다. 허니는 주변을 잠깐 두리번거리다가, 제게 한 걸 그제야 알아챘는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다음부터였을까, 나는 허니와 눈이 마주치면 괜히 웃었고, 허니는 처음에는 눈을 내리깔다가 이내 익숙해졌는지 눈을 둥글게 휘어가며 웃어보였다.


사귀게 된 것도 아주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렇게나 접점이 없던 게 무색하리만큼 반장이 되고 나서 매번 순찰을 같이 하게 되다보니, 겁이 많아 무슨 소리가 나면 내 소맷자락을 잡다가도 뭔가 튀어나오면 자연스레 자신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끌리기 시작했고, 달빛에 비춰진 예쁜 옆모습을 보니 입맞추지 않을 수 없었고, 도서관에서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과제를 하는 그 애의 이마를 보면 자연스레 손을 뻗어 주름을 펴줄 따름이었다. 


그렇게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파란색이라는 것과 함께 내 눈동자가 파란색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카페인이 취약한 그 애를 위해 푸디풋 부인의 찻집에서 연한 밀크티를 주문하는 게, 유독 그 애를 편애하는 반스 교수를 불편해함과 동시에 교수가 학생을 예뻐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그 검은 눈동자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게 당연해질 때쯤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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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잖아."



그 애가 무슨 용기를 내서 지하에 있는 슬리데린 기숙사까지 와서, 내게 왜 보바통 여자애가 네 파트너가 됐는지 물어봐도 되냐고 물어본 줄을 알았다면. 또 네가 진작 반스 교수의 동생인 걸 알았다면 그 날 그렇게 싸우지는 않았을텐데.


눈물이 가득 고여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는 이내 돌아서서 나가는 걸 붙잡고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라도 봤을텐데. 당연히 나는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보바통 여자애가 돌아가면 자연스레 네 화도 풀리고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줄 알았다. 나보다는 현명한 네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글쎄. 당연히, 나 자연스레, 같은 건 없었다. 6학년이 되고 나서 순찰 조는 바뀌었고, 너는 N.E.W.T를 준비하느라 바쁜지- 그리고 나를 피하는 건지 수업시간 외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네 곁을 맴돌자 너는 잔뜩 화가 난 참새마냥 눈을 치켜뜨고 나를 밀어냈다. 그건 꽤나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너를 더 좋아하고 있으니까. 지고 들어가는 수밖에는... 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네 마음을 쟁취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반스 교수가 너를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췄을 때는 눈이 돌아 아브라케다브라라도 쏘고 싶을만큼 화가 났다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네 오빠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내가 정말로 사귀는 동안 안일했다는걸 느꼈다. 나도 너와 친밀해보이는 모두를 질투한다는걸 티낼걸. 그랬다면 네가 좀 더 안심했을까.



넌 내가 만만하지. 그러니까 맨날 내 주변 알짱거리면서 사람 열받게 하고 신경쓰이게 하고 그러는 거지.


연애하는 내내 내가 너 더 좋아한 거 알았으니까. 헤어진 것도 내가 질투해서 싸운 거니까, 당연히 좀 옆에서 살랑거리면 너 좋아한다고 헤벌레할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 아니야? 근데 어떡하냐. 나 너같은 거 다신 안 만나. 니가 나 좋아죽겠다고, 안 만나주면 죽어버린다 해도 안 만날 거야. 그러니까 눈에 띄지 마.


그건 별 일 아니야. 그냥, 수많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게 덜하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들 중에서 지극히 일부였어. 나는 이제 나를 더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야.



반스 교수가 적대시하며 내게 하는 말들보다 네가 말하는 한마디한마디가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내 곁이 아니라 파이스트의 옆에서 그의 팔을 베고 편하게 웃는 것도 아팠고. 그럼에도 잠깐잠깐 네 눈에 비치는, 전보다 현저히 적은 양의 애정이라도 좋아서 나는 네 곁에 붙어있었다. 그럼에도 욕심은 그득했다. 파이스트에게 부탁해서 억지로 순번까지 바꿔가며 같이 걷는 동안도 네 동정심마저 받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한학기를 네 곁을 더 맴돌았다. 그동안 끌어안고 싶은 것도, 가벼운 입맞춤도 참았지만, 가끔 네가 다시 전처럼 웃어주는 것만으로 참으려고 애썼다. 종종 전처럼 늘어가는 애정을 내비출 때면 행복에 겨워 방방 뛰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그럼에도 너무 힘든 날은 부러 네가 상처주려고 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나는 자격이 없잖아. 뱉어놓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체했다. 네 마음이 흔들릴만한 요소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건 그렇게라도 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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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착한 네 성격에 네가 나 상처 주고 싶은데 또 매달리고 그러니까 불쌍은 해서 신경쓰이는 것도 알아. 그전으로 돌아가긴 힘들고 동정에 가깝다는 것도 아는데... 그런데 나는 그런 거라도 받고 싶어. 너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헤어지기 전에도, 지금도 너 아직 많이 좋아해. ... 지금은 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거 같아."



달빛이 어슴푸레 이미 한참이나 쌓인 눈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칠 생각도 없이 여전히 흐드러지게 오고 있었다. 네가 기숙사를 나오면서부터 휑하니 드러나있던 목에 내 목도리를 둘러주고선, 그 초록빛 목도리를 가끔 훔쳐보다가 순찰을 마치기 전 눈이 온다는 핑계로 너를 붙잡아 천문탑에서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손을 잡을까,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를 내 손을 뻗어 네 손을 잡았다. 네가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놓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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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좀 이제 봐주라. 그래도 계속 기다리라고 하면 계속 기다릴게."



머뭇거리는 네 손을 끌어다가 내 뺨에 얹었다. 내 것보다 작고 따뜻한 손이 반가워 네가 떼어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남은 네 한손이 내 뺨을 감싸더니 이내 따뜻한 입술이 와서 닿았다. 나는 이내 내 목을 끌어안은 너를 꼭 끌어안고 그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주머니의 텅 빈 펠릭스 펠리시스 병이 떨어져 어느샌가 떨어져 눈밭에 파묻힌지도 모를만큼, 딱 그만큼 행복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이 버거우리만큼, 딱 그만큼.













유첼너붕붕




오랜만에 찾아와서 노잼으로 마무리해서 미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