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3828682
view 3152
2024.09.07 05:17


bgsd 어나더 3나더 4나더 



노부는 손가락 끝까지 저릿하게 하는 짜릿함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온몸이 저릿저릿하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바짝 독이 오른 저 아깽이, 노부의 아깽이를 진정시키는 게 먼저라서 아마미야의 똥차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켜놨던 걸 꺼냈다. 주머니에서 꺼낸 펜을 놈의 눈 앞에서 눌러주자 펜 녹음기에서 놈이 노부를 협박하던 내용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놈은 케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제 뺨을 긁어내릴까 봐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제가 했던 협박이 고스란히 재생되는 걸 들으며 뺨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케이의 발톱이 제 살을 긁어버릴까 봐 무서운 건지, 이 더러운 협박이 아마미야 료이치로의 귀에 들어갈까 봐 무서운 건지. 

"수인임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면 몇년형인지 아십니까? 아, 물론 형사상으로만 그렇다는 얘기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로 가장 최근 재판에서 보상금이 얼마가 나왔더라... 얼마 나왔었죠, 마치다 팀장님?"

아깽이를 진정시켜야 해서 일부러 케이에게 말을 걸자 여전히 무시무시한 발톱과 이빨을 드러낸 채로 한 손으로 놈의 목을 누르고 한 손은 놈의 뺨에 대고 있던 케이가 움찔했다. 그 탓에 발톱이 뺨의 피부를 슬쩍 긁어서 피가 조르륵 흐른 탓에 쓰러진 놈에게선 땀뿐만 아니라 눈물까지 주르륵 흘렀지만 놈은 케이를 놀라게 해서 더 심한 상처를 입을까 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케이는 우는 놈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곤 평소보다 낮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만인가."

슬슬 이성이 돌아오나. 노부는 케이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일으키고 품에 안은 채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다 괜찮아.

그리고 케이가 잡아누르고 있어서 숨이 막혔었는지 쿨럭거리는 놈을 내려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쪽이 말한대로 나도 한번은 아버지에게 효도를 해야 할 테니까, 이 녹음기는 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맞아요. 우리 아버지는 당신 자식이 수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정말 끔찍하게 여기고 무슨 수를 써서든 감추고 싶어하지. 그런 아버지가 그쪽 같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면 어떻게 나올지 나도 궁금하네."

기세좋게 협박할 생각은 했으면서 자기보다 힘이 강한 자를 협박했을 때, 그 협박이 실패로 돌아가면 어떤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 자식의 예비장인이 이 자식을 정말 마음에 안 들어한다던 그 소문이 사실이라서 어떻게든 이번 계약을 따내 회장의 환심을 사려고 눈이 돌아가서 뒷일은 아예 생각을 안 한 건지 모르겠지만. 놈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아버지와는 말을 섞는 것도 싫기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이 자식을 직접 손봐주고 싶었고, 이런 자식이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이 끔찍해질 정도로 짓밟아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테지만. 노부는 여전히 발톱과 이빨을 집어넣지 않은 채 새파란 얼굴로 쓰레기를 노려보고 있는 케이를 흘긋 바라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무래도 케이가 지난 7년간 줄기차게 노부의 마음을 거절해 온 게 케이가 그때의 그 아깽이이기 때문인 듯하니. 

7년간 굳건하게 지켜온 비밀이 이렇게 예기치못하게 드러나서 마음이 흐트러졌을 아깽이가 마음을 더 굳게 닫아걸지 않게 하려면 더 열심히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으니까 이딴 자식한테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노부는 거래처에서 노부의 팀에게 내어준 사무실의 문을 걸어잠그고 큰형에게 전화를 했다. 

"영감에게 전해줄 선물이 두 개 있어. 하나는 사람, 하나는 녹음기."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자 큰형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XX사 오너 사위 자리를 노리는 놈이 영감이 숨기고 싶어하는 내 비밀을 알았거든. 그걸로 협박을 하려고 해서. 나야 상관없지만 영감은 싫어할 것 같은데."
"지금 사람을 보내지."

큰형은 다급하게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노부는 말을 이었다. 

"아, 형. 비밀을 숨겨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어. 나 말고 한 사람 더."
"... 오늘 너랑 같이 간 사람이 너와 마케팅2팀 부팀장, 기획1팀의 팀장과 부팀장인가."
"그래, 잘 아네."
"... 마치다 케이타가 수인이야?"
"이 사실이 새어나가면 형이 책임져야 될 거야. 내 비밀은 퍼져도 케이 비밀은 절대 새어나가면 안 돼."
"네 비밀도 안 돼, 노부유키."
"형."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방의 CCTV도 처리 좀."
"... 변했어?"
"나 말고."
"알았다. 처리해 두지."

이 거래처 쪽에서도 스즈키 그룹의 노부가 수인이란 증거를 확실히 갖고 있으면 어떻게든 최대한 이용해 먹으려고 하겠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갖고 비열하게 굴지는 않긴 할 터였다. 케이의 약점을 잡아봤자 이 그룹에 딱히 도움이 될 것도 없는데 일단 그걸 갖고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기업 이미지에도 좋지 않아서 득보다 실이 더 클 테니. 게다가 앞으로 스즈키 그룹과 거래를 안 할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도 케이가 수인이란 증거 영상 따위가 세상에 존재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큰형이 보낸 사람들은 아마도 오는 길에 속도위반 딱지를 구간마다 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빨리 도착했고 노부는 큰형의 비서실장 얼굴을 확인한 후에 비서에게 사람과 녹음기를 모두 홀가분하게 넘겨줬다. 형한테 전화하자마자 노부 팀의 부팀장에게도 연락해서 우린 따로 갈 테니까 먼저 회사로 돌아가라고 했기 때문에 노부는 케이만 데리고 주차장으로 갔다. 형이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케이는 발톱과 이빨을 모두 수습해서 다시 넣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새파랗게 굳어 있엇다. 노부는 조수석에 앉아서도 여전히 얼굴을 펴지 못하는 케이의 손을 잡았다. 

"가는 동안 좀 자요. 신체의 반만 수인화해서 꼬리나 발톱 같은 것만 드러내면 체력이 훅 떨어지잖아요. 괜찮으니까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
"..."
"집에 가서 씻고 맛있는 거 시켜먹자. 맥주도 마시고. 와인 마실까요?"
"..."
"저 자식이 저 난리를 쳐서 어차피 상대쪽에서는 입찰 포기할 것 같은데, 저놈이 저렇게 독올라서 난리 친 거 보면 어차피 우리가 붙었나 봐요. 우리 둘이 미리 축하파티하자고요. 뭐 시킬까요? 피자? 초밥?"
"... 초밥."

그렇지, 고양이는 역시 생선이지. 귀엽고 웃겼지만 케이는 여전히 아주 딱딱한 얼굴로 화를 참고 있었기 때문에 노부도 웃음을 꾹 참고 담담하게 물었다. 

"어떤 거요?"
"참치랑 연어, 고등어."
"참치랑 연어, 고등어, 알았어요. 이제 좀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
"안 잘 거야."
"체력 떨어졌잖아요. 자요."

수인들이 흔히 이빨이나 발톱 등만 내놓고 반만 수인화하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케이는 분명 노부가 꿈이라고 생각했을 때 봤던 그 아깽이일 텐데 조금 전 튀어나온 발톱이나 이빨은 절대로 아깽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자기 깜냥보다 더 큰 힘을 끌어내야 했으니 당연히 죽고 싶을 만큼 피곤할 게 틀림없었다. 얼굴도 창백하게 질린 상태인데 왜 고집이야. 

노부는 몸을 돌려서 케이의 안전벨트를 매 주고 의자를 뒤로 눕혀준 뒤 케이의 이마에 손을 올린 채 눈을 마주쳤다. 

"미열 있어요, 케이. 좀 자요. 안 덜컹거리게 안전운전할게요."
"... 초밥"
"알았어요. 알았어. 초밥. 집에 가서 먹어요. 일단 자요."

케이가 초밥을 좋아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정말로 초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닐 터였다. 아깽이나 수인이라는 주제가 화두로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노부는 일단 케이가 묻어두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묻어두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고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다행히 케이는 정말로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곧 고른 숨을 내쉬며 깊게 잠들어서 노부는 교통체증에 걸려 차가 멈춘 틈에 재빨리 무선이어폰을 착용하고 조용히 단축번호 2번을 눌렀다. 곧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 왜.
"네 똥차. 그... 이번에 몇 번째더라. 네 번째냐 다섯 번째냐."
- ... 다섯 번째, 그놈이 왜?
"내가 수인인 걸 밝히겠다고 협박하던데."

아마미야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 ... 어디야? 가지러 갈게.
"큰형한테 보냈어."
-...
"내가 수인인 게 밝혀져도 난 괜찮은데 영감은 안 괜찮거든. 영감이 뒷목 잡고 쓰러져도 뭐 갈 때 됐으면 가는 건데, 그 영감 쓰러져서 회사 휘청하면 몇 만명 생계가 흔들려요. 어쩔 수 없었다."
-... 알았어. 형님한테 가 볼게.
"큰형이 널 아끼니까 널 힘들게 하지는 않을 거야."
- 알았다. 미안하다. 다음에 밥 살게.
"똥차 그만 만나고 그놈한테 좀 돌아가라. 그놈이 덜 빌었어? 내가 가서 더 빌라고 해 줄까? 언제까지 이럴래?"
- ...
"그놈이 뭔짓을 했길래 이렇게 오래 벌주냐? 말해 봐. 내가 패 줄게."
- 끊는다. 

노부의 단축번호 2번과 3번을 차지하고 있는 악우들 사이의 복잡한 사연은 노부에게도 골칫거리였지만 지금은 단축번호 1번(당연히 케이)의 상황이 더 급했기 때문에 노부는 전화를 아예 꺼버리고 조용히 차를 몰았다. 





케이의 집에서 따끈한 물로 씻고 케이가 요구한 참치랑 연어, 고등어랑 이것저것 초밥도 먹었다. 원래는 맥주도 마시자고 했지만 케이는 여전히 미열이 조금 있었기 때문에 축하파티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뜨거운 물로 씻어서 따끈따끈한 케이를 안고 토닥이고 있었다. 

"케이가 날 지켜주려고 날아왔을 때 완전 멋있었어요. 또 반했어. 휙 날라차기 하니까 쓰레기가 슝~ 퍽~"
"노부."

케이는 한숨과 함께 노부의 이름을 불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한동안 입술만 달싹거리던 케이는 결심이 서지 앟는지 그대로 또 입을 다물었다. 

"나 케이한테 거짓말한 거 아니거든요. 정말로 한 번 잠들면 알람 울릴 때까지 안 일어나요. 못 일어나지. 원래도 매일 알람이 한 다섯 번은 울려야 일어나는데."
"..."
"이상하게 케이 집에서 잘 때는 새벽에 꼭 깨더라고요..."
"... 봤구나."
"봤죠, 보긴 봤는데..."
"..."
"그때는 꿈인 줄 알았어요. 케이가 예전에 고양이랑 같이 살았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 꿈을 꿨나 했거든."
"..."
"내가 태어나서 본 고양이 중에 제일 귀엽고 예쁜 고양이던데."

케이는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들어서 노부와 눈을 마주쳤다.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늘 차갑고 냉정하지만 노부를 볼 때는 장난스럽거나 따뜻하거나 아니면 뜨겁게 타오르기만 하던 눈이었는데 지금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수인이라도-"
"늑대예요."
"어울려."

케이도 잘 어울린다고 말하려던 노부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케이는 자신의 수인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고마워요."
"넌 아기늑대는 아닐 거 아냐."

케이가 바란다면 아기늑대가 돼 주고 싶지만 노부는 아버지가 노부를 그렇게 혐오하면서도 건드릴 생각도 못할 정도로 강하고 큰 늑대라 아기늑대인 척할 수도 없어서 그냥 웃기만 하자, 케이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기늑대면 좋았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았다. 노부가 아기늑대라면 귀여운 아기고양이 케이와 잘 어울릴 수 있겠지만 노부는 케이와 잘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케이를 지켜줄 수 있는 게 더 좋아서. 

"나 아기늑대 아니라도 잘 생겼어요. 진짜 멋있어. 보면 반할걸."

케이가 한숨쉬듯 짧게 웃기만 해서 노부는 목욕을 해서 포슬포슬해진 아깽이의 털...아니,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다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 노부는 케이에게 계속 대시를 해 왔지만 사실 마음 속에 캥기는 게 없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노부는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수인이니까. 케이와 수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은 없었고 노부가 케이와 함께 있을 때 수인이 화제로 떠오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케이가 수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타고난 정체성만으로 이유없이 누군가를 멸시하고 경멸할 사람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노부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노부를 목졸라 죽이려 했던 일은 당연히 충격적이었기에 노부는 마음놓고 케이가 수인인 자신과 평생을 함께해 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었음에도 놓칠 수 없는 사람이라 뻔뻔하게 계속 사귀어달라 청했었던 거지만...

"혹시 늑대는 별로예요?"

케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망설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슬며시 다시 물었다. 

"내가 늑대수인이라서 싫어요?"

심장이 1분에 180번쯤 뛰는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심장이 아예 멈춰버린 것 같기도 했다.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케이가 고개를 휙 돌려서 노부를 바라보더니 노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잖아."

그제야 심장이 다시 정상적으로 뛰는 듯해서 노부가 활짝 웃자 케이는 다시 한 번 노부의 이마를 통 튀겼다. 

"무슨 바보같은 생각이야."
"그럼 나 좋아요?"

기세를 받아 신나게 물어봤지만. 

케이는 고개를 다시 스르륵 돌렸다. 노부가 수인인 것도 전혀 문제가 아닌데, 아직까지 이렇게 나온다는 건... '아기'고양이라서인가... 내일 단축번호 3번에게 단축번호 2번이 다섯 번째 똥차를 찰 것 같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알려주는 김에 다 자라서 성인이 된 수인의 동물형이 여전히 '아기'인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네 문제가 아니야. 지금까지 한 번도 네가 문제였던 적은 없었어."
"케이."
"내가 문제야. 내가."

노부는 우울해진 아깽이를 품에 안고 다시 포슬포슬한 아깽이의 ㅌ...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뭐... 7년도 기다렸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요. 천천히 해요. 천천히."
"..."
"다 잘 될 거예요. 내가 다 잘 되게 할게요."

그치만 진짜로 조금만 더 기다릴 거예요. 많이는 안 돼.






놉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