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89
매번 나는 우울했다. 아무도 시어머니의 종알대는 소리, 가정의 활기참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들들과 며느리들 모두, 자식들의 교육과 남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시어머니를 존경했다. 누구도 시어머니가 다른 식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 191
나는 이 소식을 내 어머니에게 알리게 되어 창피했고, 어머니가 눈치잴지 모를 나의 경솔함이 창피했다. 곧 어머니는 기저귀를 갈고 애를 애지중지하는 나를 상상할 것이고, 그런 내 모습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미래의 출생에 대한 소식을 나에 대한 불명예의 소식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거의 그런 듯이 반응했고, 아버지는 뜻밖의 재난이 우리에게 닥쳤다고 몹시 슬퍼했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 세 번째 손자가 되겠구나, 시아버지는 손자 수부터 세어본다. 나는 시아버지의 긍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가족의 자궁이 되어버린, 내 자궁에도 혐오감을 느낀다.

p. 199
어떤 남자가 청소하고 젖병을 물리기 위해 수업과 노트를 버리겠는가. 나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p. 201
나는 여전히 엄청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 대신 가끔 아이의 이유식을 챙겨 먹이는 일이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아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준 일을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일이, 돈이 없고, 학생이라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롯된, 다소 색다른 일화로 여겨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p. 206
점잖은 사람들은 비웃는다. 결혼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 아예 결혼하지 마, 남자도 결혼하면 손해다, 주위를 둘러봐, 최저임금만 받는 사람들, 공부할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 종일 볼트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니야, 세상의 불행을 모두 다 긁어모아 한 여자의 말문을 막아버리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내가 입을 다물 수밖에.

p. 222
그러나 여러 번, 공원에서, 유아차를 밀면서, 나는 나의 아이가 아닌 '그의 아이'를 산책시킨다는 이상한 느낌을, 남편이자 아빠인,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를 안심시키는, 위생적이고 조화로운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말 잘 듣는 하나의 부품이라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p. 223
우리 집, 우리 아파트는, 분명 그의 마음속에 피난처의 이미지로 간직돼 있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마자, 정리해야 할 상자, 준비해야 할 아이의 식사, 목욕 시키기, 이런 것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늘 정리 정돈해야 하는 그런 공간의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 않았던 셈이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부드럽게 비치는 램프와 가구들의 반사광을 둘러보고, 반짝이는 변기에 오줌 싸러 가고, 매일 깨끗하게 청소된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복도의 깨끗한 타일을 가로질러, 거실에서 <르 몽드>를 읽었다. 그는 따스함이 곳곳에 스며 있는 집안을 느낄 수 있었고, 거기서 편안하게 긴장을 풀 수 있었고, 그러니 자기 집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p. 248
놀라운 일은, 그가 항상 나를 설득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일주일에 4일하고도 반나절 동안 집에서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특권을 누리는 여자라고. 그렇다면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부인을 일주일 내내 도우미로 부리는데, 대체 어떤 남자가 특권을 누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 읽어라
짧게 요약하자면 남미새 기질 못 버리고 '이 남자는 다를 거야'하고 결혼했다가 인생 꼬인 기혼 페미니스트.. 같은 내용인데
에르노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현실적이고 생생한, 자전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 실제로 읽으면 진짜 숨막히고 환멸이 남
읽으면서 펄럭은 40년 전 프랑스보다도 뒤쳐져 있구나 실감하게 된다는 게 제일 충격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