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7676746
view 105
2024.10.10 20:44

그렇게 많은 인간 중에 타락하 천사 하나 없을까?


창조주의 피조물이지만 훨씬 우월한 존재인 탑은 자신이 열등한 피조물인 인간을 수호해야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어. 위에서 까라니까 까는 시늉이라도 해야한다지만, 이토록 고귀한 제게 이따위의 따분한 일이라니. 

탑은 앞으로 그 인간이 뒤질 때까지 뒤치닥거리를 할 생각에 벌써부터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어. 평화롭고 모든 것이 아름다운 천상과 달리, 인간계는 구역질나고 더럽고 추잡하며 소란스럽기까지 했지. 죄인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한 지옥과 다를 것이라고는 악마 놈들은 최소한 지들이 뭔짓을 하는지는 알았지만, 인간들은 지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저지르기까지 했어. 그들의 무지함에 탑은 진절머리가 났지.

당장이라도 제가 맡은 아이를 다시 천상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 탑이었지만, 제 손으로 죽이는 것은 그를 보호하라는 창조주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탑은 할 수 없었어. 한숨을 푹푹 쉬며, 부디 나약한 어린 인간아이에게 제가 닿기 전에 질병과 욕망의 손길이 먼저 뻗기를 바랐지.

그렇게 탑이 인간계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캄캄하게 어두운 밤이었어. 다른 집들이 모두 빛이 꺼져 있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한 집만이 촛등이 켜져 있었지. 그리고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탑은 본능적으로 저 아이가 자신이 담당할 아이임을 깨달았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 그 아이의 집 창가에 자리했을 때, 탑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충격적인 광경에 숨이 멎는 듯했어. 
"세상에.."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을 문자로 설명한다고 한들 이해할 수 있을까? 

탑은 당혹스럽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그가 지금껏 알아온 모든 진리가 부정당하고 세상이 새롭게 재구성되는 듯 했어. 하늘과 땅이 뒤집힌 세계에서 탑은 그 아이와 자신. 오직 둘 뿐이라는 게 느껴졌지. 

그 충격에 탑은 온몸이 전율하고 소름이 돋아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 제 넓은 날개로 부끄러워진 온몸을 가렸지. 지금껏 벌거벗고 다녔으면서 그 수치를 모르고 살다 방금에서야 깨달은 야만인처럼. 탑은 새로운 감각에 눈을 떳어.

아이의 생김새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소란스러운 산파와 지쳐쓰러진 아이의 모친 그리고 그 옆에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부친을 건너뛰고 포대에 싸여진 아이를 내려다봐.

아직 쭈글쭈글 못생겼지만, 탑은 그 아이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반짝인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탑은 그제서야 탐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탐하고 지옥에 처박힌 악마를 이해했지.

탑과 텀의 운명적인 만남 속에서 탑은 처음으로 소유욕에 눈을 떳어. 

그 아이는 자라면 자랄 수록 그 빛이 더욱 반짝였지. 따사로운 햇빌 아래 반짝이는 머리칼이라던지, 나풀거리는 나비를 바라보며 베싯 짓는 미소까지. 그 모든 걸 그의 부모와 하인이라는 것들은 단순히 그 아이를 기른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반짝이는 걸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감상했어. 탑은 아이의 초롱초롱한 두 눈이 그들을 볼 때마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들의  눈깔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아이가 홀로서기에는 아직 세상은 너무나도 거칠었지.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었어. 

아름다운 미청년의 모습으로 자라난 아이의 모습은 성당의 벽화에 그려지는 천사와도 같았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찬양했고, 길을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훔칠 정도였으니까. 
탑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어. 지금까지야 자신이 텀에게 더럽고 추악한 마음을 품은 이들을 창조주를 대신하여 적절하게 처벌을 했으나, 언젠가 텀이 사랑에 대해 눈을 뜬다면 탑은 더 이상 그를 지킬 수 없게 될지 몰라. 

이후에 사랑과 고난을 겪어 더럽혀지고 탁해질 거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울 때 그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매분 매초마다 탑은 텀의 목에 시린 낫을 가져다대면서도 생명력이 가득한 그의 눈이 허공에서 그와 마주칠 때마다 낫을 거두길 반복했어. 

텀이 평생 여자든 남자든 다른 이의 몸을 알지 못한 채 순수하게 남는 방법은 하나 있었어. 바로 신에게 귀의하는 것. 

그러나 탑은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만물의 아버지인 신에게 귀의한다니. 탑은 제것을 제 아버지와 나눌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만약 텀이 신학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성직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면 탑은 망설임없이 낫을 휘둘렀을 거야. 

텀은 이제 완전히 아이의 모습을 벗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어. 
그러나 그 행복한 미소를 짓던 과거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졌어. 그가 운명을 느끼고 진심어린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렸지. 

텀은 이제 술병을 쥐고 거리를 방황해. 아름답다고 칭송하던 그의 외모는 망가지고, 그는 우울한 낯빛으로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었어. 그 와중에도 저 망할 십자가와 성경책은 치우지를 않다니. 

탑은 당장이라도 십자가와 성경책을 불에 태우지 않는 텀의 목을 졸라 버리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어. 
텀이 고백한 여자들이 모두 그와 이어지지 못한 것은 모두 탑이 열심히 공을 들인 결과야. 탑이 과거 걱정했던 대로, 아름다운 텀의 외모는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와인이 숙성되듯 그저 싱그러웠던 아름다움에 농후함이 뒤섞이며 성적으로 변했어.

보다 향기롭고 화려한 꽃에 온갖 잡스러운 벌레가 꼬이듯, 텀의 주위에는 사람이 떠나갈 틈이 없었어. 그러던 와중 보는 눈이라고는 바닥을 기는 뱀보다 못한 텀이 한 여자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어. 설마.. 탑은 불안함에 속이 메스꺼웠어. 

수줍은 얼굴을 한 텀은 유리창에 자신을 빗추고 뒷목을 쓸며 그녀에게 다가갔어. 엉성하고 미숙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데이트를 청했지. 그녀의 눈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주제에 말이야. 텀의 데이트 신청에 그녀의 얼굴은 행복이란 것이 가득해 터져버릴 것처럼 미소지었지. 텀의 손을 먼저 부여잡고 좋다고 뛰는 모습은 얼마나 방정맞던지..

그러나 탑이 가장 안되겠다고 여겼던 건 텀의 시선이었어. 
세상에 오로지 그와 그녀 밖에 없다는 눈빛. 

말도 안돼. 탑은 인정할 수가 없었어. 네 운명은 나여야 하는데, 어떻게 네가 그런 시선으로 내가 아닌 다른 걸 바라볼 수 있어?
질투를 배운 탑은 이제 멈출 수가 없게 되었어. 

-
아 여기가 지옥 유황불인가.. 근데 지옥불 들먹이기엔 너무 순애긴 하다..

보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