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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00:51
페리한테 도망친 바비가 버논집으로 숨어드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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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주의
대충얼버무린설정이많음




버드는 야채를 정말 좋아했다. 식감이 단단한 당근부터 아삭한 파프리카, 그리고 익히면 흐물흐물해지는 주키니와 가지마저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는 버논이 해주는 붉은 야채스프를 가장 좋아했으며, 배가 불러도 절대 음식을 남기는 일이 없었다. 

식성과 달리 손질은 아주 서툴러서 항상 손이 느렸다. 식도를 쥐는 자세도 엉성했고,반대편 손으로 재료를 고정하는 손짓도 어색했다. 다칠까 싶어 옆으로 밀어내면 서운하다는 기색 대신 숙련자를 향한 호기심어린 눈빛이 차오르곤 했다. 의욕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색한 손놀림 덕분에, 버논은 늘상 버드를 한 자리에 얌전히 앉혀두기 바빴다. 그는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순진해서 벽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단단한 구석이 있었다.

무려 열 네 살이 어린 버드는 웬만한 주변사람보다 겁이 없었고 정말 물음이 많았다. 오랜시간 같은 동네에 살고있던 사람들 조차도 데면데면 다가가게 되는 게 버논이었다. 버드는 한겨울 호수를 덮은 얼음의 두께만한 벽을 한달음에 깨고 달려와 버논의 일상에 젖어들었다. 

버드는 항상 질문이 많았다. 잠자리에서 맨살을 맞대고 있을 때 조차도 가끔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질문은 어떨 땐 너무 예상밖의 것이기도 했고, 어떨 땐 과하게 상념에 빠지게 만들었다. 


'버논, 아직 많이 안 들어갔죠, 아직이죠?'

'아직 더 넣어야하죠? 더 들어갈 수 있어요?'

'자, 자지가, 버논 자지가 너무 뜨거워, ....아, 아저씨.'

'나 여기 불나면 어떡해요? 아, 아악,'


'제발 입 좀 닫아 아가.'




'새끼가 죽었어요.'

잔뜩 풀이죽은 목소리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입꼬리가 한껏 내려간 게 보일 정도였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인근 숲에서 총에 맞아 죽은 새끼 사슴을 앞마당까지 끌고온 게 이벤트였다. 이미 사후경직이 완전히 끝난 짐승을 목전에 두고 버드는 떠날줄을 몰랐다. 이런 죽음을 보는 게 처음이어서였다. 

'새끼는 안 죽여도 되잖아요. 이미 다 큰 성체동물들도 많은데. '

'얘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식사인지 뭔지 모를 시간동안 어색한 공기 앞에서 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이 이상 입을 열면 선을 넘게 된다는 걸 서로 잘 알아서였다. 


버논은 제법 살뜰하게 마지막까지 바비를 챙겼다. 이 까탈스러운 도시 양반을 답지않게 과하게 바운더리 안으로 들인건 사실이었다. 약하게 구불거리는 뒷통수를 바라보며, 속으로 미뤄두었던 생각에 저만 보이는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욕심이었다. 오랫동안 해일처럼 밀려오던 지난 기억이 더이상 밀려오지 않고, 새롭게 작은 파도가 일렁인다. 버논은 결코 이것이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쩜 핑곗거리 하나 만들수도 없게, 추방을 위한 모든것이 잘 갖춰져 있다. 기차는 티켓만 있으면 상관 없었고, 배도 마찬가지였다. 항공편도 국내선이라면 여권은 필요가 없다. 손에 쥐인 버드의 신분증으로, 바비가 떠나지 못할 곳은 없었다. 

막상 떠나려니 발이 안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으나 뻐팅길 명분이 었었다. 호의는 이 정도면 아주 후한 편이었고, 더 이상의 체류는 민폐라는걸 바비는 잘 알았다. 잠깐이지만 걱정거리가 없었던 순간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이상한 표현이지만, 며칠동안 망명을 떠나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비가 택한 건 항공편이었다. 이 땅에 갈곳은 많았다. 그 말인즉슨 숨어들 곳도 많다는 이야기가 됐다. 아직 경로를 정하지는 못한 탓에 바비는 현장예매로 발권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저를 떠나보낸다고 해서 버논의 태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서로 무슨 사이였다고, 떠나보낸다는 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새벽 일찍 눈을 뜨는 편인 버논은 빠짐없이 바비의 아침식사를 차려주었고, 시덥잖은 물음이나 시비를 걸어와도 늘 그랬던 것처럼 짧은 대꾸로 일갈하거나 눈을 한 번 마주쳐왔다. 끄트머리가 삐죽 올라간 어투로 말을 거는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적이 몇 번 없었지만, 버논은 바비의 말투나 태도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었지만 유독 짧게 느껴졌다. 근처 숲에만 차를 타고 나가도 고작 40분을 가지고 허덕이기 일쑤였는데. 바비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인사를 길게 끌 필요는 없어 바비는 먼저 등을 보이며 버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제가 사라질 때까지 닿아있다는 걸 모르는 채였다. 오전에 도착했으니 적어도 저녁에 출발하는 항공편은 아직 표가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어깨에 맨 가방은 무겁지 않았다. 바비는 많은 것을 챙겨 나오지 않았다. 당분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현금과 다른 이의 신분증, 옷 두세 벌 정도가 다였다. 그냥 옷도 아니었다. 무슨 관계였을지 모를, 집주인이 한참을 간직하고 있던 어떤 '흔적'과도 같은 옷이다.


바비는 홀로 갈팡질팡하며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왜 잘 해줬냐는 물음을 버논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대꾸했었다. 제가 그런 적이 있었냐는듯이. 바비는 불과 사흘 전, 충동적으로 던졌던 질문을 이제 와 곱씹었다. 그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다시 한껏 침잠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한 가지는, 왠지 모르게 버림받은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길가에 나앉은 개도 아니고, 잔뜩 외면당하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 기분이 나빠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 언제부터 신경썼다고. 

망가진 알고리즘처럼, 자꾸만 핀트가 어긋나며 마음대로 가설이 생성되었다. 맘에 안 드는 짓을 했나? 그래서 눈 밖에 난건가? 무슨 소리야? 그런 짓을 안 했으면 거기 계속 눌러앉아있을 생각이었던거야? 길게 몸을 늘이던 물음은 날선 갈고리가 되어 저를 붙잡고 질질 늘어졌다. 호의였을텐데. 그냥 단순한 호의였을텐데 거기 넘어가버린거야. 그래, 얼마나 불쌍하고 웃겼겠어. 3달 씩이나 떠돌다가 나타난 부랑인이면 불쌍해서 며칠 돌봐줄 법도 하지.

이제 정말 어디로 가야 하지.

페리의 손바닥에서 벗어났을 땐 그 집만 아니라면 어디든 천국일 것 같았는데. 도망쳐보니 꼭 그런것만도 아니었다. 이럴 각오를 하고 도망나온 게 아니었는데. 항상 어디로 갈 거냐는 질문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답 또한 어설프게나마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비는 슬프게도, 페리를 떠올리고 만다. 패배감이 몰려왔다.


어쩌면,

어쩌면, 페리 라이트에게, 
용서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게나마 흔적이 남았다. 공항에서 홀로 돌아오는 길, 버논은 운전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 눈밭에 차를 세웠다. 조수석 옆에 먹다남은 초코칩 봉지를 한참이고 들여다보던 버논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해가 유독 짧어지는 시기였다. 하루에 7시간을 채 떠 있지 못하는 지독한 시기였다. 

글로브박스에 하나 남아있던 담배는 자그마치 10년만에 손을 대는 물건이었다. 입에 대충 문 채로 그가 외투 안쪽을 뒤적였다. 연락이 올 데가 없는데 짧게 진동이 일어서였다.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길게 이어지는 장문의 메시지였다. 항공권을 예매할 때 연락처를 적어야 할 수 있으니, 바비에게 제 번호를 알려줬던 게 그제야 기억이 났다. 행선지를 정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읽음처리를 하고 넘기려던 버논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목적지가, 바비가 절대 향할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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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크레인 님, 저희 000항공사와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객님의 예매가 정상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일정 안내》

앵커리지 - JFK
20xx. 01. 09   19:45 출발
1회 경유 (SEA)
20xx. 01. 10   09:05도착


항공사 사정에 따라 출발시각이 변경될 수 있사오니 소지하신 티켓을 잘 확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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슼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