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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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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



마지막 연습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상대방의 말에 엘비스는 서둘러 동기들에게 인사하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항상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검은색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대신 조랜츠가 돌계단 앞에 홀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조를 보며 엘비스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함께 흔들었다. 조가 그 모습에 웃으며 다가왔다.


"차는?"
"…. 술 마셨어."
"내가 합석하지 말랬지."
"합석 안 했어! 애들이랑 마신 거야!"


늘 여유로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억울함이 섞여 목소리가 커졌다. 평소 차분하고 능글맞은 애가 이렇게 흥분해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라, 억울한 표정에 작은 손짓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엘비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웃음을 보자 조도 밀려오는 민망함에 따라 웃었다.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3월, 이 계단 앞에서 처음 대화 나눴던 그날이 떠올랐다. 요 몇 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시간에 거슬러 올라가듯 스쳐 지나가며,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제 앞에 서 있는 엘비스 때문인지 조는 답지 않게 이상한 감성과 감회에 젖어들어 엘비스의 손을 놓치기 싫은 듯 깍지를 끼며 꽉 쥐었다.


"..."
"왜? 키스도 했는데 손잡으면 안 돼?"
"이미 잡았으면서.."


잡힌 손이 어색한지 엘비스의 손이 조의 손안에서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제 손안에서 느껴지는 그 귀여운 움직임에 천천히 깍지 낀 손가락으로 엘비스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막 시작하는 연애에 잡힌 손가락만큼이나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둘은 집으로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네 노선은 나로 정한 거야. 다른 쪽으로 선 넘지 마. 아니 아예 그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마."
"너나 합석하고 놀지 마."
"나 합석 안 했어."


조는 제 대답을 피하듯 또다시 나온 합석 이야기에 발걸음을 멈추고, 옅게 인상을 찡그렸다. 눈을 맞추며 단호하게 말했으나 더 이상 대답 없는 엘비스의 반응에 조는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자기야 그냥 그 새끼 번호 지금 차단할래?"
"…. 친구 사이야."


'허…. 하필 또 친구야.' 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조의 딱딱한 말투에 엘비스가 눈치를 보며 시선을 피하고, 몸을 움츠렸다. 조는 그런 엘비스의 모습을 보면서도 굳이 어르고 달래주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이제 막 시작하는 관계에서 잘 보이기 위해 이해하는 척 했다가는 제 성격상 나중에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조는 알고 있었다. 고작 제 분에 못 이겨 지금껏 해온 연애들처럼 미련 없이 그만두자고 할 수 없는 관계였다.


"내가 네 친구 사이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는데, 나랑 있을 때마다 전화 오는 거 나 이제 이해 못 해줘."
"…. 응."


엘비스는 할 수 없다는 듯 대답을 했다. 전처럼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통화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예 그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말라는 조의 말이 엘비스에게 사실 억울하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 짝사랑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늘 제 옆을 지킨 소중한 친구였다. 함께한 시간 속에 괴로운 순간도 많았지만, 덕분에 그만큼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고마움이 더 깊었다. 울컥이는 마음에 엘비스가 잡힌 손을 빼내려 하자 조가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손은 왜 빼."
"몰라…. "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엘비스는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서 시선을 피하자 둘 사이 어색한 침묵이 감돌며 자꾸만 상황을 회피하려는 엘비스의 행동에 조는 하는 수없이 한 발짝 물러서서 분위기를 풀어야 했다.


"내일 공연 7시 맞아?"
"…. 왜? 올 거야?"


깍지 낀 손을 살짝 힘을 줘 잡아당기자, 제 행동에 놀랐는지 큰 눈이 더 커져서는 그제야 저를 쳐다봤다. 가까이 다가온 엘비스를 바라보며, 조는 그토록 원했던 엘비스의 검은 머리카락에 쪽쪽이며 짧게 입을 맞췄다. 가로등 밑에서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엘비스의 작은 귀에 대고 조는 속삭였다.


"당연히 가야지. 우리 공주 공연인데."





-





"조 오늘 공주 공연 7시 아니야?"
"공주라고 하지 마."
"야 걔는 원래 무용과 공주야 그럼 뭐 엘비스라고 할까."
"그냥 부르지 마. 네가 걔를 왜 불러?"


새끼 진짜 극성맞게 구네. 10년을 넘게 알고 지냈고, 옆에서 조의 연애는 물론 가벼운 관계까지 본의 아니게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 A는 조의 처음 보는 낯선 태도에 놀라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조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걔가 왜 무용과 공주인지."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바로 말해. 그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A의 놀리듯 시작된 말속에 엘비스에 대한 내용이 담기자, 조는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날카롭게 대답했다.


"너 걔가 무대 밑에서 좀 수줍고 소극적이라 그렇지 걔 무대 올라가면 완전 달라, 걔 팬이 얼마나 많은데 너 지금 가도 무대 앞에서 걔 보지도 못해."
"…."






A의 말이 과장된 거짓은 아니었는지. 무대와 가까운 앞자리는 이미 꽉 차 있었고, 조는 어쩔 수 없이 무대 옆쪽에서 공연을 봐야 했다. 한참 동안 제 관심과는 거리가 먼 무대가 이어지고, 흥미를 잃은 채 흐트러진 시선을 보내던 중, '무용과 공연'이라는 안내가 울려 퍼지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리는 "공주" 소리에 조는 자연스럽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야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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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재킷을 입은 엘비스가 긴장한 듯 어깨를 털썩이며 무대로 나오자,조는 그제야 시선을 무대로 고정하며 엘비스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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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주 센터네 긴장했나 보네, 핑크도 잘 어울리네 예쁘네 귀엽네 하던 단순한 감상평은 음악이 진행될수록 흔들리는 엘비스의 골반을 보며 조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이며 삼켰다.


엄마…. 어떡해…. 우리 공주 눈이 돌았어….



공연이 진행될수록 엘비스의 눈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았다. 조 또한 엘비스에게 눈을 뗄수없었다. 자꾸만 빠르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조는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무대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엘비스는 역시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조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자기야. 진짜 나 만나줘서 너무 고마워."
"뭐야아~"


만나자마자 덥석 손을 잡는 조를 보며, 엘비스는 다시 수줍게 웃었다. 조는 엘비스가 다시 자신이 아는 공주로 돌아온 것 같아 작게 안도했다.


"이제 어디 가? 집에 가야지 데려다줄까?"
"응? 아니 나…."


힐끔힐끔 여기저기서 엘비스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느낀 조는 당장 엘비스를 집에 보내고 싶었다. 자꾸만 집에 보내려는 조의 행동에 뒤에서 지켜보던 무용과 동기들이 다가왔다.


"아니. 우리 오늘 엘비스랑 너희 주점 갈 건데? 거기가 그렇게 합석을 잘해준다며?"
"어, 와. 딱 맞는 과랑 합석 시켜줄게."


굳이 저를 자극하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아는 조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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