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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 08:19
다주의





어둡게 가라앉은 방안으로 보이는건 달빛에 번뜩이는 짙은 눈동자였다. 아이는 제 목을 죄여오는 두 손목을 붙잡고 애원했다. 돌아오세요 어머니. 제발 돌아오세요.투명해야 될 창문엔 길게 늘어진 핏자국과 제 발밑엔 가족들의 차가워진 몸이 널브러져있었다.


딸랑-


종소리는 방안에 가득 울려퍼졌다. 창밖은 고요하다 못해 섬뜩하다. 아이의 목을 터질듯이 잡은 그녀는 제 속에 있는 존재에게 울고불며 빌었다. 뭐든지 다 할테니 아이만은 살려줘. 그 존재는 처절하게 죽어가는 둘을 보며 웃었다.


딸랑-


아이는 미세하게 풀어진 힘에 간헐적인 숨을 내뱉으며 한쪽 눈을 어렵게 떴다. 그녀의 빨갛게 부어오른 두 눈에 피가 흐른다. 그녀는 무언가와 대화하듯 어떤 말을 중얼 거렸다. 아이는 초점없는 그녀의 눈이 어느순간 마주친걸 느꼈다. 그리고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상관 안하마.’


그 말과 함께 종소리가 멎었다.







“…허억! 헉…“


번쩍 눈을 뜬 션웨이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식은땀이 그의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션웨이는 제 목에 손을 가져다댔다. 차마 닿지도 못하고 손이 덜덜 떨렸다. 끔찍했던 그날은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이젠 정말 잊었다고 생각하면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꿈속에서 선명하게 재생된다. 마른 세수를 하곤 비척이며 일어나 도망치듯 욕실로 향했다. 찬물로 얼굴을 씻어내린뒤 거울에 비친 수척해진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머니의 출소일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 사실이 션웨이에게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쓰러진 가족들의 사이에서 자신을 보는 살의 가득한 눈빛.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였다.


정신을 잃고 병원에서 눈을 떴을때 이미 모든일들이 진행된 상태였다. 션웨이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저를 막아내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어머니의 죄가 아니라는걸 시인했다. 절규하듯이 외치는 저를 누군가 등뒤에서 끌어내렸고 멀어지는 어머니의 뒷모습들 가만히 바라볼수 밖에없었다. 혼비백산인 현장에서 션웨이는 순간 저를 향해 얘기하는 어머니의 찰나를 놓치지않았다. 그녀는 메마른 입술을 아주 힘겹게 움직였다.


‘평범하게 살아.’


수많은 카메라는 붉어진 두 눈으로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연신 찍어댔다. 이미 살인마의 자식이 된 그 순간부터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이였다. 복수할 생각도 그 존재를 찾을 생각도 하지마라. 평범하게 살아. 션웨이는 자신을 보며 수근거리는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의 무서움을. 그것의 불가항력한 힘을 전혀 모르고있다. 션웨이는 여전히 제 팔을 붙잡는 낯선이들의 손을 떼어내고 힘없이 걸어갔다. 생채기가 난 발바닥엔 피가 흘렀다. 그는 떨어지지않는 다리를 질질 끌어대며 걸었다. 얼마가지못해 걸음은 무너졌고, 두 손등을 적시는 눈물은 멎을생각이 없었다.














“고생했어요 션교수.”


모든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때 우신이 짧게 인사를 했고 션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희미하게 짓고있던 그의 미소는 금방 사라졌다. 그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뒤 걸음을 재촉했다. 침착하려 애썼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운건 어쩔수가 없었다. 걸음을 빨리하던 그가 다시 시간을 확인하던 그때, 누군가와 크게 부딪혀 버리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진 션웨이는 급작스런 통증에 미간을 구겼다. 그러다 저와 부딪힌 누군가를 확인하고 다급히 그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하게 걷던탓에…”


“괜찮습니다. 저도 잠시 한눈을 판거라. ”


그러나 그는 아픈듯 한쪽 눈을 찌푸린채 웃고있었다. 일어나실수 있겠어요? 걱정스런 눈으로 그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션웨이는 그의 팔을 잡고 조심스럽게 일으켜세웠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남자는 사람좋게 웃어보이다 가방 주위로 떨어진 여러 서류들을 줍기 시작했다.
아, 하고 정신을 차린 션웨이는 제 서류들을 주웠다. 남자는 두리번 거리며 발밑을 확인한 뒤 흩어져있던 서류들을 그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션웨이는 그의 손에 쥐어진 서류들을 받아들이려 팔을 뻗었고 남자의 손이 다시금 닿던 그 순간 엄청난 불쾌감이 그의 온 몸을 뒤덮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으며 입안이 바싹 마르는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션웨이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남자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있었다. 션웨이는 어렸을적부터 그의 어머니처럼 특별한 것들을 볼 수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각하게 된 날부터 꽤나 많은 이들이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저주를 달고있다는걸 알았다. 작거나 큰 또는 얕거나 깊은 원한들. 하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남자처럼 강한 원한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저도 모르게 가만히 그를 빤히 응시하던 션웨이는 한발자국 다가온 남자에 정신을 차리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혹시 아프신곳이 생긴다면 여기로 연락주세요.”



남자의 손에 명함을 쥐어주고 걸음을 옮겼다. 어떤 대답도 듣지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를 향해 남자가 당황스런 얼굴로 저를 불렀지만 션웨이는 걸음을 멈추지않았다.













“살이 빠졌구나.“

그녀의 눈가는 마치 영원히 잘수없던 사람처럼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입술은 버석하게 메마르고 무척이나 지쳐보였다. 션웨이는 그녀의 말에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괜찮다. 너무 걱정하지마라.“

투명한 벽을 두고 둘은 잠시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정적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건 션웨이였다. 그는 애꿎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존재와 비슷한 기운을 가진 사람을 오늘 봤어요.“

”…..“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션웨이를 바라볼뿐 아무말이 없었다. 남자의 손을 스치는 순간 션웨이는 자신의 목 부근이 조여오는 착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있었다. 그 기운은 20년전과 비슷한 힘을 띄우고 있었다.


”분명 다르지만, 어딘가 그 존재를 떠올리게하는 기운이 있었어요. 분명…“


“션웨이.”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덜덜 떨리는 맞잡은 제 두손을 노려보던 그를 그녀가 나지막이 불렀다.


”힘든 일을 겪고도 넌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줬어. 내가 너에게 해준것 하나 없는데도.”


그리고 그녀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 입술을 벙긋거렸다. 션웨이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입을 응시했다.


“…어머니.”


그녀는 한층 풀어진 얼굴로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가까이 오렴. 자그맣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한참 듣던 그는 젖은 눈으로 그녀를 봤다. 그리고 그녀는 웃었다. 그 날 이후 몇십년동안 본 적이 없던 미소가 눈에 박혀왔다. 션웨이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되지않아 면회 시간은 끝이났다. 션웨이는 다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다음주에 데리러 오겠습니다. 그녀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응시하던 눈은 알수없는 감정을 띄우고있었다.











운명은 장난같다. 모든것이 시작되던 20년전부터, 션웨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작 14살이었던 그 날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분노는 언제든 불쑥 튀어나와 저를 갉아먹곤했다. 만약 그것을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죽이리라. 그래서 꾸준히 기도해 왔다. 힘을 길러서 그것이 농간하더라도 의심도 동요도 하지않고 가차없이 죽이기 위해. 그것이 또 다시 나타난다면 그 날처럼 무력하게 있지 않을거라 몇번이고 다짐해왔다.




“특수조사처 처장 자오윈란입니다.”


출소하기 하루전 어머니는 목숨을 끊으셨다. 어떻게 병원에 왔는지 기억도 나지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전화 한통에 정신없이 달려온 병원에서 저를 기다리던 남자는 그 날 자신과 부딪혔던, ’그것‘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자 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는 저를 굳은 얼굴로 돌아봤다. 션웨이는 핏발이 선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는 비로소 와닿았다. 아직 끝나지않았다. 그것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나를 떠난적이 없고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 그것을 죽이기 전까진 난 이 굴레에서 벗어날수없다는걸.










장례식엔 소수의 사람들만 왔다. 윈란은 하나 둘 떠나는 그들을 보다 여전히 혼자 남아있을 그에게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윈란은 그에게 다가갔다.


“밥이라도 드셔야죠.”


“….”


“이러다 쓰러지겠습니다.”


그럼에도 꼼짝없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던 윈란이 손을 뻗자 그가 입을 열었다. 엉망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자살이 아니군요.”


“…예. 그래서 저희가 온겁니다.”


망부석처럼 멍하니 서있던 그가 갑자기 제게 훅 다가왔고 윈란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전 유가족이지 않습니까. 사건의 정황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

단 한번도 웃어본적 없는 사람처럼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그럼에도 눈가는 붉게 부어올라있다. 가만히 그를 쳐다보던 윈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일단 밥이라도 드시러 가시죠. 천천히 얘기 해드리겠습니다.”









몇번 젓가락을 움직이는가 싶더니 도로 테이블위에 내려 놓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흘깃 바라보던 윈란은 이내 입을 열었다.


“장기가 모두 파열됐어요. 어떠한 외상도 없이 말이죠.“


”…누군가 약이나 무언가를 먹였을 가능성은요.“


”부검결과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윈란은 검지로 테이블위를 두드리다 다시금 말했다.


“ 영적인 것을 믿으시나요.“


션웨이는 시선만 끌어올려 윈란을 쳐다봤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모금 마셨다.


”저희는 그런 일을 합니다. 과학적으로도 설명할수없는 기이한 사건들을 파헤치고 조사하죠.“


”저희 어머니가 귀신에게 죽었단 말입니까.“


그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이 듣기에는 터무니없는 소리 인거 압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 가능성을 배제할순없어요. 아시지않습니까. 말도 안되는 죽음이라는거.”

마치 시시한 일상을 얘기하듯 말하는 그의 말투에 션웨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서 뭘 조사한다는 겁니까.”

윈란은 의자에 등을 기댄채 입을 달싹이다 이내 말한다.

“당신의 어머니가 유능한 무녀였다는걸 압니다.”

션웨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서요.”

“짐작가는 일이 없으신지요.”

션웨이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무슨 뜻입니까.”

“가령 원한을 샀다거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몸을 일으켰다.식당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이쪽을 보며 시선이 집중되자 윈란은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단지 조사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흰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순없어요.”

깨질것같은 머리에 눈을 꾸욱 감던 그가 심호흡을 하며 격앙된 감정을 겨우 가라앉히고 어렵게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협조할 기분이 들지않군요. 내일 연락주십시오. 이미 제 명함은 가지고 있지않습니까.”

지칠대로 지친듯한 그를 올려다보던 윈란은 알겠다는 말을 했다. 션웨이는 망설임없이 자리를 떠났고 사람들의 시선 역시 금방 제자리로 돌아갔다.


“생긴것처럼 엄청 까칠하네.”


윈란은 고개를 돌려 어느새 제 옆자리에 앉은 다칭을 쳐다봤다. 어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불평하는 그의 머리를 흐트리며 쓰다듬었다. 아, 머리 망가져!

“상황이 좋지않아. 곧 또 다른 사람들이 희생될지도 몰라.”

평소답지않게 굳어있는 윈란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칭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어쨌든 저 사람도 협조한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어? 너 코피나!”

다칭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드니 후두둑 손바닥 위로 피가 떨어졌다. 다칭은 허둥지둥 테이블 위 휴지를 뽑아 받쳐주었다. 오바하지마 돼지. 윈란은 괜찮다는듯 그를 조금 밀어냈다. 평소라면 ‘돼지라니!’라고 화를 냈을테지만 다칭은 여전히 복잡한 얼굴을 한 윈란을 보며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학교측의 배려로 3일 정도는 쉴수있게 되었다. 션웨이는 평소처럼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강의 내용들을 되짚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수도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를 무시하며 그는 계속 일에 집중하려했다.



똑- 똑-



그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잠시 조용하더니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고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문을 열었다.


“협조해주시기로 하지 않았나요?”


“집주소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겁니까.”


”저희가 뭔들 못하겠습니까.“


윈란은 능글거리는 어투로 웃으며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교수님 미모와 어울리게 깔끔하게 하고 사시는군요.”

빙글 몸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윈란이 말했다.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션웨이는 소파가 있는 곳으로 손짓했다. 앉으세요.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그럼 감사하죠. 윈란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다시 한번 깔끔히 정돈 된 집을 둘러봤다. 몇분 뒤 금방 찻잔을 내려놓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션웨이는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원한을 산 적 없습니다.”

“전혀요?”

“없습니다.”

“근거는요?”


윈란은 차를 한모금 마시며 물었다. 맞은편에서 앉아
그를 주시하던 션웨이는 천천히 입을 연다.


“어머니는 항상 예의를 갖추며 사셨습니다. 그것이 설령 악귀일지라도 그 혼에 대한 조롱과 업신을 여기시지 않으셨죠.”


“그러한들 악귀들이 자신을 없애는 자를 존중하겠습니까?”


“…애초에 그런 것들은 이미 어머니에 의해서 없어졌을텐데요.“


”션교수님. 당신은 무른겁니까 아님 무른척을 하는겁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건가요.“


션웨이는 덤덤한 얼굴로 되물었다.


“악귀는 악귀. 그것들은 먼저 말로 사람을 현혹합니다. 그 다음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죠. 하나, 둘 퍼즐을 맞추듯 공략해서 조그만한 빈틈이라도 생기게끔 속삭이는 겁니다. 아주 야비한 수법이죠.“


”당신이 제게 하듯이요?”


그의 대답에 윈란은 잠시 얼굴을 굳히다 다시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곤 몸을 숙이며 그에게 가까이 했다.


“예. 맞습니다. 그러니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 어머니와 유독 친밀했던 ‘악귀’가 있었습니까?”


션웨이는 대답 대신 천천히 찻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마셨다. 씁쓸하고 미묘한 맛이 났다.


“자오처장님.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없으시군요.”


“맞습니다. 제가 좀 성격이 급한 탓이죠. 이왕 물은거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션교수님은 제게서 무엇을 그렇게 숨기려 하시는 겁니까?”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한치 양보도 없이 둘은 가만히 서로를 응시했고 그 정적은 윈란의 전화 소리에 깨져버렸다.


“나 조사중인데……뭐? 그런건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잖아. …아 알겠어 알겠어. 금방 갈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윈란은 제게 눈길도 주지않은채 차를 마시는 그를 내려다봤다. 윈란은 답답한듯 제 뒷머리를 흐트리고 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뭡니까.”


“어머니께서 남겨놓으신 편지입니다.“


션웨이는 테이블위 놓인 하얀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힘든상황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같이 불쑥 집에 찾아오지않을테니 이후 전화는 피하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

윈란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뒤 자리를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텅빈 거실을 메웠다. 션웨이는 편지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는 손을 뻗었다 거두기를 반복했다. 망설임에 미세하게 떨리는 손은 이내 결심한듯 편지를 열어보았다. 놓치기라도 할까 한글자 한글자 매달리듯 읽었다. 그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윈란은 뺨을 매만지며 그에게 물었다. 션웨이는 아무말없이 지그시 그를 바라봤고 이에 윈란은 능청스럽게 행동했다.

“제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그렇게 뚫어져라 보심은…”

“당신은 원한을 산 적이 있습니까.”

진지한 눈으로 저를 보는 그에게 윈란은 하하 웃어보였다.

“제 직업이 이런데 원한이야 많이 사지않겠습니까?”

“대수롭지않게 말씀하시는군요.”

“저도 사람인데 좋진 않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운명이겠죠.“

윈란은 주머니속에서 사탕을 꺼내들었지만 껍질만 만지작 거릴뿐 먹지않고 툭 툭 손장난을 쳤다.


“그래서, 제게 말씀해주실 마음이 생기신겁니까?”


”참 끈질기시군요.“


“제가 아주 잘 하는겁니다.“


윈란이 눈을 동그랗게 뜬채 뻔뻔한 얼굴로 얘기하자 션웨이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고계신것처럼 어머니는 그 세계에서 이미 유명하셨습니다. 저희 마을에 기운이 쎄다한 골칫거리들은 대부분 어머니께서 처리하시곤 했습니다.“


윈란은 몸을 조금 기울이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다 어느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몇백년전 저희 마을에 봉인되어있던 지독한 악귀가 해방되기 직전이라는걸 듣게 됐습니다. 긴 세월이 흘러 아주 얇디 얇은 실타래만한 비방에 의존한채로 있는 셈이였습니다. 결국 마을에 신을 모시는 모든 무당들이 모여 의논을 했고, 저희 어머니께서 그 악귀를 누르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왕이면 혼자보다 다 같이 봉인하는게 좋지않나요?“


”만약 모두가 몰려갔더라면 그것을 봉인하기도 전에 심기를 건드렸겠죠. 그것들은 자그만한 불씨에도 무섭게 불타오릅니다. 괜히 자극을 해서 봉인이 완전히 풀리면, 골치만 아파지니까요..“


윈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매일 악귀가 봉인 된 곳으로 가 기도를 하고 의식을 치뤘습니다. 그렇게 한달, 두달이 지나 세달이 되었을때쯤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얘기했습니다.“

션웨이는 입술을 꾹 깨물다 다시금 말을 이었다.

”봉인대신 그 악귀를 자신이 데려가겠다고요.“

테이블위 올려진 윈란의 손이 움찔거렸다.

“모두가 어머니를 매섭게 비난했습니다. 악귀와 가까이하다 결국 미쳐버린거라고.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이 악귀는 생각보다 안전하다며 우리를 안심시키셨습니다. 아무도 믿지않았지만요.“

션웨이는 윈란의 찻잔에 차를 따랐고 윈란은 고맙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어머니는 그 악귀를 몸으로 받아들이셨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홀로 싸우셨습니다.”


“속임수였군요.”


윈란은 입가에 찻잔을 대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네. 어머니는 그 악귀가 한참전에 봉인을 뚫고 나올수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걸 아셨죠. ’그것‘은 즐긴겁니다. 우리의 두려움을요.”

션웨이는 찻잔을 내려놓는 윈란의 손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바라셨던 겁니다. 내가 방심하고 있으니 그것 역시 방심하기를... 어머니가 산으로 들어간지 삼일째 되던 날 밤. 심부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심상치않음을 느꼈죠. 작은 소리라도 내면 큰일 날것처럼 고요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제 눈앞에 펼쳐졌고, 손으로 벽을 더듬거리며 나아가던 때 손끝으로 질척한 무언가가 만져지더군요.“

윈란은 그의 얘기를 들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그것에 심장이 쿵 떨어졌죠. 시간이 지나 어둠에 익숙해지자 전 제 발밑에 쓰러져있는 아버지와 동생의 시체를 봤습니다. 저는 멍하니 바닥을 보며 서있다 뒷걸음을 쳤고 제 뒤에서 있던 그것은 어머니에게 빙의한채로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습니다.…자오처장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윈란은 목을 가다듬으며 답했고, 션웨이는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그것과 약속했다고 하셨습니다.”

윈란의 눈이 션웨이를 향했다.

“무엇을요?”

“저를 살리고… 다른 이가 대신 죽어도 상관않겠다는 약속을요.“

션웨이는 자조적인 웃음을 내었다.

”저는 그 당시 일어났던 살인사건들을 모두 조사했었습니다. 정말 나 대신 다른 누군가를 죽였을까…라는 생각에 미칠것같았죠. 하지만…“

”찾을수 없었겠죠. 세월 역시 오래 지났고, 미디어가 발달한 지금과 달리 그때는 소리없이 묻히는 사건이 더 많았으니까요.“

윈란은 힘겹게 말을 잇다 곧 한숨을 쉬며 미간을 꾹 꾹 눌러댔다. 션교수님. 윈란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오늘은 영 상태가 별로인것 같아서…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세요.”

션웨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윈란을 올려다봤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다시… 연락을… 드릴테니….”

윈란의 몸이 크게 휘청이며 쓰러지던 순간 션웨이는 두 팔로 그의 몸을 받쳐주었다. 축 늘어져 자신의 품에 안겨 잠에 든 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미안합니다. 더는 지체할수없어요.”












윈란은 천천히 눈을 떴다. 따끔거리는 손목에 시선을 돌리자 단단한 줄에 손과 발이 묶여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몇개의 촛불만이 방을 비추었다.


“션교수님, 이런 취향이 있으신줄 몰랐습니다.”

윈란이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거린다.

“…어쩔수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정중하게 부탁한다고 한들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하지않나요? 제게 왜이러시는 겁니까.”

윈란은 칭얼대듯 말했지만 아랑곳하지않은 션웨이는 붉은 액체가 든 병과 부적을 들고 그의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당신은 원한을 많이 받는다고 했죠.”

“네. 그랬었죠.”

션웨이는 검지와 중지로 선을 긋듯이 윈란의 명치부근 밑을 살짝 눌러내리며 얘기했다.

“보통의 원한은 이 정도로 깊고 강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런것들이 보입니까?“

”네. 말씀 안 드렸던가요?“

윈란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자오처장님은 보이지 않습니까?“

”예전엔 보였습니다. 지금은 기운만 느낄뿐이죠.“

“그렇군요.”

“저를 그 악귀라고 생각하시는겁니까?”


션웨이는 잠시 침묵하며 그를 내려다봤다.


”당신의 원한에서 ‘그것’과 비슷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전 수많은 악령들을 마주해 왔습니다. 그들에게 원한은 사는건 제게 일도 아니죠. 그런 악령들의 원한이 하나 ,둘 쌓이니 션교수님이 헷갈리시는거 아닙니까?“


“자오처장님이 말씀하지않으셨던가요. 가능성은 배제할수없다고.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이건 당신의 몸에 그것이 빙의된것인지 아닌지 알수있는 아주 간단한 의식입니다. 위험하지않아요.”

“만약 빙의라도 됐으면 어떡할겁니까? 저를 죽이실건가요?”

기가찬 표정으로 비아냥대며 윈란이 묻자 션웨이는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전 지금까지 그것을 잡기위해 끊임없이 준비해왔습니다. 설령 그것이 제 몸에 들어온다고 해도 저는 죽음을 선택할겁니다.“


그 말에 윈란은 얼굴을 굳혔다.


“죽음을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네. 제겐 더이상 잃을게 없거든요.”


윈란의 눈이 흔들리다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채 나지막이 말했다.


“알겠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얼른 끝내고 치우자고요.“


의자에 푹 기대고 눈을 감은 그에게 션웨이는 손을 뻗어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렸다. 그러곤 붉은 액체를 두 손가락에 묻힌 뒤 명치에서부터 아래로 선을 그었다. 소름끼치는 감각에 윈란은 몸을 움츠렸다. 그는 또 다른 선들과 점들을 찍으며 알수없는 주문을 계속해서 읊조렸다. 주문을 멈추지않고 눈을 감은 션웨이는 제 눈앞으로 두 손가락을 움직였다.


윈란은 속에서부터 알수없는 불쾌감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간간히 작게 기침을 하던것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션웨이는 주문을 외우며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반응은 한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윈란은 몸을 구부리고 미친듯이 기침을 했다. 숨이 멎을것처럼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타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던 션웨이는 눈을 뜨자마자 다급히 주문을 멈추었다. 그의 코에서 많은 양의 피가 뚝 뚝 떨어지고있었다. 션웨이는 얼른 그의 턱을 잡고 벌려 입안의 고인것들을 뱉어내게 했다.

“…그래서…빙의 맞아요?”

그가 힘겹게 숨을 고르며 물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 몸에 깃든 원한이 너무 깊어요. 오래전에 새겨진 것 같은데.“

션웨이는 그의 팔과 발목에 묶인 줄을 풀어냈다.

“무엇때문에 이런 원한을…”

“됐고 빨리 일으켜줘요. 몸에 아무 힘도 안들어가거든요. ”

그의 몸을 일으켜세우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듯이 기대어왔다. 션웨이는 그의 허리를 단단히 잡아냈다. 윈란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맞대고 힘겹게 얘기했다. 휴대폰좀 줘요.













다칭은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 소파에 누워있는 윈란을 보자마자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무슨일이야? 괜찮아?

“아직 일어나기 힘들겁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다칭은 휙 고개를 돌렸다. 션웨이를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들듯이 움직이려던 다칭의 팔목을 윈란이 덥썩 잡아냈다.

“집에 데려다 줘. 머리아프니까 소리 지르지말고.”

칭얼거리는 윈란을 내려다보며 다칭은 한숨을 푹 쉬었다. 흐느적대며 일어나는 그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다칭은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그 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션웨이는 입술을 달싹였다.


“저…자오처장.”


”오늘부로 션교수님은 저희를 많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세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윈란은 힘없이 손을 흔들었고 다칭은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그 둘이 집을 나서자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션웨이는 굳게 닫혀진 하얀 문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




윈란은 강의를 끝 마치고 나오는 션웨이를 기다렸다. 사탕을 입에 문 채로 바닥에 발장난을 치는 그를 발견한 션웨이는 잠시 멈칫하다 다시 그에게 걸어갔다.


“션교수님! 여기입니다.“


윈란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션웨이는 그의 앞에 서서 말없이 손목을 빤히 쳐다봤다. 윈란은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 제 손목을 향한 시선을 알아차리고 슬쩍 손을 뒤로뺐다.

“왜 그렇게 끈적하게 보세요. 조금 부끄럽네요.“

“몸은 괜찮아지신겁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윈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소리내서 웃었다. 지금껏 저한테 차갑게 구시던 션교수님 맞아요? 그는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웃지않고 제게 고개를 숙였다. “그 날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하하 웃어 넘기던 윈란의 입꼬리가 조금씩 내려가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는 괜찮아요. 그냥 푹 자고 일어나면 바로 낫습니다.“

윈란은 신빙성 없다는듯 저를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모르는척 말을 돌렸다

”아무튼 오늘은 저와 함께 가주실 곳이 있습니다.“

어깨를 툭 툭 두드리며 얘기하는 그를 보며 션웨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때문이다.






한명은 자신을 노려보고있고 또 다른 한명은 멍한 얼굴로 하고있었으며 이외 다른이들은 복잡한 얼굴로 션웨이를 주시했다.


“자, 자. 인사해 오늘부터 우리를 도와주실 션웨이 교수님!”

혼자만 신난 얼굴로 떠드는 윈란을 돌아보며 션웨이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다들 왜그래? 윈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제 내가 이러는거 익숙해질때도 되지않았어? 윈란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맨날 본인 마음대로지. 다칭은 앉아있던 의자를 휙 뒤로 돌리며 말했다. 추홍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직원이 늘었다고 해서 내 월급은 깎이는건 아니겠지? 린징의 말에 윈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부터 깎을거야. 아 왜! 말문이 막혀 잠시 조용하던 그들이 이내 다시 한마디씩 거들자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그 사이에서 연신 땀을 뻘뻘 흘리던 창정은 갑작스런 벨소리에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던 그가 소리쳤다.

“처장님 사건이예요!“











윈란은 굳은 얼굴로 사건 현장을 둘러봤다. 한걸음 한걸음 주위를 살피던 그는 우뚝 멈춰섰다.


“어떻게 생각해요 션교수.“

션웨이는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조심히 시신을 살폈다. 시신은 경동맥 쪽으로 칼이 찔려있었다. 그 이외는 깨끗했으며 이상같은건 보이지않았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찔러 넣은것같네요. 칼이 들어간 부위 주변으로 잔상처가 보이지않고 깔끔해요.”

션웨이는 고개를 들어 윈란을 봤다. 어쩐지 그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자오처장님. 션웨이의 부름에 윈란은 정신을 차리고 그를 쳐다봤다.

“전 기운밖에 읽지못합니다. 션교수님은 무언가 보이십니까?“

“눈으로는 크게 느껴지는건 없습니다만….”

션웨이는 손을뻗어 시신의 위로 천천히 움직였고 곧 미세한 이질감에 손을 멈추었다.

“분명 미세한 힘이 느껴집니다.“

션웨이는 얼굴을 굳혔다. 어두워진 그의 표정을 보던 윈란은 다시입을 열었다.

“우릴 헷갈리게 만들기 위함인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시신을 내려다보던 윈란은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이건 시작일것이다. 윈란은 잠시 눈을 꽈악 감았다 떴다. 찰나에 스치던 그 날의 기억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윈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더는 같은 일들이 반복돼선 안된다.








현장에서 돌아오는 길, 둘은 아무런 대화없이 계속해서 걸었다. 윈란은 힐끔 션웨이를 쳐다봤다. 짧은 시간동안 그와 함께하며 느낀건 그는 계속해서 감정 안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고 있다는 거다. 언뜻 내비치는 그의 분노는 당연했지만 너무 무겁다. 그리고 윈란은 그런 감정이 언제든 스스로를 무너뜨릴수 있다는걸 알고있었다.


“션교수님.”


윈란은 자신의자켓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사탕을 꺼냈다. 션웨이는 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고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빠르게 달콤한 무언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션웨이는 눈을 끔뻑이며 윈란을 쳐다봤다. 윈란은 큭큭대며 웃었다. 그리곤 그의 팔을 끌어당겨와 만지작거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션교수님 처음 뵀을 때보다 더 마른거 모르시죠? 그러다 근육이라도 빠져서 인기가 없어지면 저도 이젠 모릅니다. 저희를 도와주신다고 했잖아요. 수사할때 당신 미인계라도 써먹으려 했건만 이래선 영…“

짐짓 진지한 얼굴로 그가 말했고 션웨이는 여전히 눈을 끔뻑이며 가만히 윈란을 바라봤다. 미소지은채 그를 슬쩍 올려보던 윈란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가끔씩 마음을 내려놓아 주셔야 합니다. 안그럼 빨리 지쳐버리니까요. 그것을 잡을때까지 끝까지 버티셔야 하지않습니까. 시원하게 부는 바람도 느끼시고 하늘도 좀 올려다 보세요.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도 평범한 것들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지않습니까.“

도르륵 굴러가는 사탕의 단맛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션웨이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에 윈란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겨우 사탕으로 달래라는 겁니까.”

“나 참, 그거 제가 아끼는 맛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기 있어요?” 윈란은 속상한척 툴툴거리며 말했다. 션웨이는 입안에 퍼지는 달달한 맛의 사탕을 굴리며 윈란을 응시했다. 단순한건지 바보처럼 착한건지. 다른이였다면 벌써 학을뗐을 자신의 난폭한 행동에도 그는 능청스럽게 장난을 치고 제게 웃는다. 션웨이는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왜 이사람이 그렇게나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걸까. 자신이 ‘그것’과 헷갈릴 정도의 깊고 짙은 원한을.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윈란은 흘깃 뒤를 보며 말했다.

“그 원한이요.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짐작가는거라도 없으신가요. “

”글쎄요. 원한이라는게 원래 당사자는 모르는거아닌가요?“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정도의 원한은 언젠가 위험해질지 모릅니다.“

“오늘따라 절 많이 걱정해주시네요.”

션웨이는 그런 윈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안좋은 일에 휘말린 적이라도 있으신가요.“

그의 물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윈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생각해내려 했다.

”흐음, 제가 지은 죄는 많긴 하다만.“

여전히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윈란에 션웨이는 나지막이 말했다.

“더는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무슨일이 생긴다면 제게 말해주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윈란은 활짝 웃으며 다가와 그의 한쪽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야, 션교수님이 그래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역시 션교수님 밖에 없습니다. 자, 그럼 지금 당장 저녁이라도 먹으러 갈까요? 윈란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의 팔을 이끌었고 션웨이는 그의 막무가내에 고개를 절레 젓다가도 결국 옅게 미소를 띄웠다.













“새벽만 되면 깜빡이는 가로등인데 그곳에 꽤 유명한 괴담이 있거든요. 모두가 잠든 새벽에 그 가로등 앞으로가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무언가요?“

윈란의 물음에 리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인지 뭔지…잘은 모르겠지만…“

리친은 여전히 혼란스러운듯한 얼굴로 얘기했다. 윈란은 옅게 떠는 그녀의 손을 힐끗 쳐다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때마침 본인과 합이 맞아버려서 일겁니다.“


“합이요? 그…그럼 제가 그런 귀신들을 잘 보는 몸이라는 건가요?”


“걱정마세요. 음기가 유독 강한 날이었고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괴담이 존재하던 장소였잖아요. 그래서 영적인 것에 조금 예민한 당신과 우연히 맞았을 뿐입니다.“

여전히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저를 보는 그녀에게 윈란은 다시 말을 이었다.

”리친씨는 저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걱정하지않아도 돼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괴담이 있는 곳을 확인하려고 굳이 가진 마세요.” 리친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지나가던 때가 새벽이라고 말씀하셨죠?”


“네? 네. …설마 가보시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않을까요?”


윈란은 자리에 일어나 하하 웃어보였다. 제가 하는 일이 그런걸요. 더이상 피해를 받으면 안되니까 확인은 해봐야죠. 윈란은 생각에 잠긴채 제 턱을 매만졌다. 제 생각엔 그렇게 해결하기 어려운 놈은 아닌것 같네요. 아무튼 오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리하지마시고 퇴원할때까지 몸 잘챙기세요. 그는 짧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런 윈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리친이 무언가 떠오른듯 다급히 불렀지만 이미 그는 떠나고 난 뒤였다. 리친은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 남은 의식에서 어렴풋이 종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 새벽에 누군가 울렸을리도 없고, 평소엔 단 한번도 들린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렴풋한 기억이라 자신의 꿈인지 현실이었는지 확실하진 않았다.












윈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로등을 가만히 주시했다.
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가로등처럼 보였다. 불빛이 깜빡이지도 않았고 무언가 미묘한 기운도 느껴지지않았다. 이내 사탕을 꺼내물고 조금 떨어진 벤치에 털썩 앉았다. 시간을 보니 막 새벽 한시를 지나고 있었다. ‘..조금더 기다릴까.’ 윈란은 벤치에 등을 기대었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여보세요?“

‘자오처장님.’

“션교수님이 이 시간에 어쩐일이세요?“

통화너머로 그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같이 가지못하게 돼서 죄송합니다…일을 미뤄보려고 했습니다만…”

윈란은 피식 웃으며 입안에 사탕을 굴렸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 강의준비가 바쁜거 압니다.“

’혹시 무슨일이 생긴다면 연락주세요. 바로 가겠습니다.’

”거 참, 교수님 걱정도 많으시네요.“

윈란은 시선을 돌려 가로등을 응시하며 다시금 얘기했다.

“지금까지 보면 별 문제는 없어보여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마세요. 정말 위험할것같으면 연락드릴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기고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던 그는 다시금 주머니에 넣었다. 이후 계속해서 이상 현상을 기다렸지만 어떤 기운도 느껴지는게 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만든 괴담인가 싶을정도였다. 윈란은 지루한듯 손가락을 무릎에 툭툭 두들겼다. 그는 찌뿌둥해진 몸에 기지개를 쭈욱 피다 다시 의자에 등을 푹 기대었다. 시계를 보니 삼십분이 막 넘어가던 참이다.


윈란은 턱을 괴고 가로등이 있는 쪽을 졸음에 무거워진 눈으로 바라봤다. 조금 흐릿해진 시야에 윈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윈란은 졸음에 취한 눈을 번쩍뜨며 그 곳을 똑바로 응시했다. 흐릿했던 시야에서 그는 가로등 앞에 어떠한 인영이 서있는걸 보았다. 다시 그곳을 쳐다보니 인영은 사라지고 없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윈란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가로등이 있는 곳에 걸음을 옮겼다. 분위기는 방금전과 달리 묘해졌다. 어느새 코 앞에 다다른 가로등 앞에서 윈란은 고개를 들어 평범하게 빛을내는 가로등을 올려다봤다. 혹시나 한 생각에 다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윈란은 천천히 팔을 뻗었다. 곧 손끝에 닿은 차가운 감촉에 윈란은 다시 손을 거두었다. 흐음, 눈을 찌푸린 그는 다시 뒤로 물러나고 환하게 빛나는 불빛을 가만히 응시했다. 윈란은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곧 뒤돌아 걸어가려던 그때 한발자국 앞으로 내딛은 순간 위에서 자신을 비추던 불빛이 깜빡거렸다.




윈란아.


그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꿈에서조차 들리지않던 목소리. 커다란 그리움이 그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윈란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굳어있는 그의 표정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수없었다. 그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그의 이목구비를 다정스럽게 눈에 담으며 손을 뻗어 뺨을 매만졌다. 윈란은 그녀의 손목을 꽈악 붙잡고 제 얼굴에서 떼냈다.

윈란아 윈란아


그 말에 윈란은 가만히 그것을 지켜봤다.


”안된다는거 알잖아. 넌 시도만 해도 타버릴텐데.”


윈란아 윈란아


그녀는 하염없이 이름을 불러댔다.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목소리로.


”미안하지만 너도 못들어와.”

그녀의 눈빛은 순식간에 분노에 가득차 윈란을 노려봤다. 곧이어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이를 바득 갈며 처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죽였다. 네가 우릴 죽였어… 이건 다 네 잘못이야. 모든게 다 잘못됐어 널 데려오는게 아니였는데…우리가 아니라 네가 죽었어야 했어!

그녀의 두팔이 제 목을 죄여왔다. 크윽- 급작스런 행동에 숨을 들이키고 다급히 그녀의 팔을 떼내려 힘을주었다. 그의 팔이 미친듯이 떨리고있었다.

“날 괴롭히려고 생각해낸게 고작 이 방법이야?“

벌겋게 오른 그의 이마에 핏줄이 올랐다. 윈란은 피식 웃으며 그 악귀를 똑바로 쳐다봤다. 매섭게 노려보던 그녀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 스르륵 팔을 거두었다. 윈란은 허리를 숙이고 미친듯이 기침을 토해냈다.


푹-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질척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박혀왔다. 쿵 쿵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바들 바들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숨을 죽인채 옆을 쳐다봤다. 길다란 머리카락은 얼굴을 가렸다. 목에 박힌 커다란 칼,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것은 온 바닥을 물들이다 곧 자신의 발밑을 적셨다.


딸랑-

윈란은 고개를 좌우로 미친듯이 저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가빠지는 숨을 뱉어냈다.


딸랑-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그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목은 콱 막혀버린것같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않는다. 애써 잊으려했던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휘저었다. 깊은 바다에 잠긴것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점점 새하얗게 변하는 시야에 윈란은 중심을 잃고 무너져내리던 그때, 그의 몸을 커다란 두 손이 붙잡았다. 윈란은 반쯤 감긴 눈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션….”


“말하지 마세요. 몸에 무리가 많이 갔습니다.”


그를 내려다보던 션웨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윈란은 옅게 웃어보였다.


”여기서 올려봐도 미인은 미인이네요.”


“이 와중에도 농담할 생각이 드십니까?”


윈란은 큭큭 웃더니 제 몸을 힘겹게 바로 세웠다. 션웨인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부축했다.

“여긴 어떻게 오신거예요?”

그가 미간을 꾹 꾹 누르며 물었다.

“전화를 안받으시길래…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저랑 통화하신지 아직 한시간도 안됐을텐데 이렇게나 빨리?”

션웨이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 입을열었다.

“저와 통화한지 이미 두시간이 지났습니다.”

잠시 놀란 눈을 하던 윈란은 이내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방심한 바람에…”












이 놈에 빌어먹을 위염. 윈란은 소파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눈을 찡그렸다.어렸을때부터 달고 살았던 위염은 조금만 피곤하면 이렇게 매번 자신을 괴롭혔다. 이 정도 고통은 어느정도 익숙해서 괜찮았다. 그를 괴롭게 만드는건 아플때마다 이따금씩 헛것이 들린다는 거였다.

‘ 내일 같이 축구도 같이하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이라도 하러 갈까?‘

윈란은 환청에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약은 먹었어?”

끙끙 앓는 그의 앞에 다칭이 쭈구리고 앉아 물었다. 윈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여기서 잘거야? 집에 안가고?“

”…응. 못움직이겠다.“

다칭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러면서 교수님 앞에서는 잘도 연기하네. 저번에 창정이 혼자 있었을때 처장 쓰러진거 보고 난리난거 생각하면…“

”돼지야. 잔소리는 나중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다칭은 그의 위에 조심스럽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칭은 가라앉은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나도 점점 기운이 강해지는게 느껴져.“

윈란은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만약 그게 다시 찾아오면 어떻게 할거야?“

“…어떡하긴 없애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없앨거냐고.다칭은 채근하며 물었다.
아무말이 없는 윈란을 내려다보던 다칭의 입술이 떨렸다. 왜, 또 네 몸을 주기라도 할거야? 윈란은 몸을 돌리고 누워 왼팔로 눈을 가렸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조용히 얘기했다.

“방법이 없다면.”




그의 대답은 8년전 기억이 떠오르게 했다. 스쳐지나가듯 떠오른 기억이였음에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다칭은 주먹을 꽈악 쥐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왜 매번 마음대로 희생한다는거야? 그럴거면 차라리 그때 날 죽이지 그랬어! 난 죽어도 상관없었다고!“

윈란은 팔을 내리고 다칭을 올려다봤다. 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다칭은 자신도 울것같았다.

”…그런 말 하지마.“

윈란은 팔을뻗어 다칭의 한손을 붙잡았다. 그의 덜덜 떨리는 몸은 한동안 멎지 않았다. 다칭은 입을 굳게 다물고 그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고요한 적막이 돌던 그 곳에선 숨죽이며 우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어렸을때부터 귀신을 보는 아이래. 부모가 여기에 팔아넘겼다더라. 내 배에서 저런게 나왔다고 생각해봐….소름끼쳐.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시퍼런 멍과 상처를 온몸에 가득채운 다칭은 멍하니 앉아서 저를 향해 수근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어떤이는 미친듯이 기도를 했고 어떤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울부짖었다.

“아가야. 얼른 하렴.”

제 뒤에서 양 어깨를 꽈악 쥐며 남자가 귓가에 딱딱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칭은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제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외웠다. 외우고 또 외우고. 낮인지 밤인지 알수 없는 밀실안에서 끊임없이 그것을 반복했다. 그들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에 기도를 하여 기운을 더해준다. 그 기운은 그들의 부정을 피하게 해주고 결국 소원에 가까운 결말의 길로 인도했다. 그랬기에 저를 두려워하며 소름끼쳐하는 사람들 역시 제게 한번 찾아온뒤 매번 이 곳을 방문하며 빌었다.


소원 기도에는 댓가가 따른다. 점점 늘어나는 기도 시간에 다칭은 하루하루 몸이 말라갔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구역질이 났다. 쉴틈없이 저를 보며 빌어대는 사람들이 흐릿한 시야에 둥둥 떠다니자 머리가 아파왔다. ‘선생님 제발 기도해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부탁이예요 제발 도와주세요!‘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깨질것같은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고 그것을 지켜보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와 거칠게 팔을 잡아당기고 저를 커튼 뒤로 욱여넣어 발길질을 해댔다. 저항할 힘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은 축 늘어져있었다. 몸과 같이 흔들리는 시야에서 커튼 틈 사이 아른거리는 조명빛에 눈을 찌푸렸다.

눈부셔. 다칭이 중얼거렸다. 그건 그에게 너무 밝은 빛이었다.










가까이 오세요.

그 말에 젊은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다가왔다.

소원이 뭔가요?

입을 열자 찌릿한 고통이 입술에 느껴졌다. 피딱지가 앉은게 아직 덜 안문 모양이였다. 가만히 그를 기다리는데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이 없다 이내 천천히 저를 올려다 봤다. 다칭은 그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그는 무언가 다르다는걸 알아차렸다.

나랑 같이가자.

다칭은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수없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자 남자는 또 씨익 웃었다. 그리곤 몸을 일으켜 제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서 나가자고. 당장.

다칭은 두 눈을 깜빡이며 그가 내민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안돼요. 저는…

남자는 제게 내밀었던 손을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두 눈을 감았던 다칭은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게 내 소원이야. 가자.

다칭은 남자의 뒤로 환하게 빛나는 조명에 시선이 빼앗겼다. 유일한 빛. 다칭은 저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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