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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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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술이 과한 모양이었다.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빠져나온 해우신이 멀찍이 떨어진 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생각했다.
평소의 그라면 바위가 깨끗한지 지저분한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엉덩이를 붙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다 귀찮을 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푹 꺾이며 푸우- 한숨이 튀어나왔다. 꽃향기를 담은 술냄새가 입김과 함께 퍼지다 이내 흩어졌다.

뺨을 때리는 찬바람이 소름을 오소소 돋게 했으나 조금이나마 술이 깨기 위해선 참는 게 좋을 성 싶었다. 끌어안은 무릎 위에 턱을 얹고 멍하니 바람을 쐬고 있을 때였다. 어깨 위로 조금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더니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고개를 들자 빙글빙글 웃고있는 흑안경이 보였다.

"화얼예,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 그래."

쉬이 찾을 수 없는 구석진 곳으로 왔다 생각했건만 이 인간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속을 알 수 없는 새까만 안경을 흘겨보다 다시 무릎 위로 턱을 푹 얹었다.

아 이런, 제 몸을 덮은 흑안경의 외투 때문인가. 몸이 따뜻해지자 슬슬 가시고 있던 술기운이 다시 훅 퍼지는 기분이었다. 이거 좋지 않은데..생각은 들었으나 술과 온기에 덮쳐진 몸은 더욱 흐느적 늘어졌다.

"화얼예, 많이 취했어?"

어느새 제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흑안경이 상체를 숙여 그의 얼굴을 살폈다. 장난기 가득한 그 얼굴이 어쩐지 얄미워 미간을 찌푸리며 노려보았다. 하지만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는지 흑안경은 빙글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강한 바람이 후웅 불었다. 자켓 틈을 파고드는 찬기에 해우신은 몸을 움츠렸다. 좀더 따뜻하면 좋겠는데..끔뻑거리던 눈에 들어오는 건 새까만 품이었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더는 틈을 보이지마, 정신차려 라는 말이 울렸으나 얼마 가지 않아 그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흑안경이라면 그래도 되지 않을까. 처음으로 그에게 예외란 게 생긴 순간이었다. 더는 고민할 것도 없이 해우신은 휘청 몸을 일으키더니 그 까만 품 안으로 몸을 퍽 욱여넣었다.

그가 이만 자리를 뜨려는 줄 알고 부축해주려던 흑안경은 돌연 품 안으로 들이박듯 안겨드는 몸뚱이에 황급히 중심을 잡았다. 쿵 내려앉은 엉덩이가 얼얼했으나 그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화얼예???"

당황함을 그대로 담아 해우신을 불러보았으나 그는 꼬물꼬물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만 찾기 바빴다. 그러다 이내 맘에 드는 자세를 찾았는지 만족스레 얼굴을 부비다 헤실 웃는다. 그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던 흑안경이 움찔했다. 곧이어 피식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보다 술버릇이 귀여운 편이었네?"

사실 해우신은 제 술버릇이 뭔지 알지 못했다. 8살의 나이에 당주가 되어 늘 주변을 경계하고, 틈없는 모습만 보이기 위해 이를 악물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술에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해우신은 진탕 취하고 말았다. 몸이 편안해지자 점점 머리까지 장악하는 술기운에 그의 눈이 점점 감기기 시작했다.

"졸려....."
"졸려?"
"응..."
"여기서 자면 내일 몸이 많이 배길 텐데? 들어가서 자자 샤오화, 응?"

처음 보는 순하디 순한 해우신의 모습에 흑안경은 놀릴거리를 찾은듯 킬킬거리면서도 다정하게 그를 얼렀다.

으응...잠들기 좋은 조건이 다 갖춰져 있는데 저를 일으키려는듯 살살 몸을 흔드는 손이 맘에 들지 않아 해우신은 투정을 부렸다. 그리고는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되려 더 품 속 깊이 파고들었다.
제 옷자락을 꽉 잡은 하얀 손에 흑안경이 결국 참지 못한 웃음을 파스스 터뜨렸다.

"그래 그래, 코오 잡시다. 우리 작은 꽃."

느물느물 그를 달래며 흑안경이 다시금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듯 그를 고쳐 안았다. 제게 딱 맞춘듯 품에 들어차는 몸이 맘에 들었다. 둥기둥기 그를 살살 흔들며 등을 토닥여주자 작은 머리가 더 포옥 기대온다.

지금껏 그가 이렇게 어리광을 부려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제 나이와 비교하면 엊그제 태어났다 할 수 있는 그는 늘 철벽을 세우고 꼿꼿한 모습만을 보였다. 그런 그의 풀어진 모습을 보게 된 사람이 바로 저라는 것에 흑안경은 아주 큰 만족감을 느꼈다. 제가 아닌 다른놈이 이런 모습을 보게 됐다면 그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술을 빌려서라도 가끔은 제 나이처럼 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러니 우리 작은 꽃, 부디 좋은 꿈을 꾸기 바라.

잔잔히 들려오는 노래에 깊이 잠든 해우신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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