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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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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도 똑똑하기로는 어디가서 안 빠지는 사람인데 노부가 워낙 유명한 의사이다 보니 그 그늘에 조금씩 가려졌음. 사람들은 마치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다 스즈키 교수의 배우자로써의 삶을 더 궁금해 했겠지. 월급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힘든 수술을 끝내고 오면 어떤 식으로 피로를 풀어주는지, 그리고 짓궂은 사람들은 스즈키 교수님이 ㅅㅅ할 때 어떤 모습일지 따위를 궁금해 했을듯. 그 모든 질문은 언제나 마치다에게 향했을 거임. 노부는 집 밖에선 일 얘기 말고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잦은 인터뷰에서도 사적인 질문엔 그냥 웃어 넘겼고.

사람들의 궁금증과 달리 마치다는 소위 말해 내조라는 걸 하지 않았음. 뭘 할 필요도 없이 노부는 알아서 다 해내는 사람이었고 마치다는 또 자기만의 루틴이 있으니까. 다만 본의 아니게 노부의 피로를 풀어주는 비법은 하나 있었겠지. 잘때 노부 품으로 파고 드는 거. 작정한 건 아니고 마치다의 잠버릇 같은 거였음. 결혼 전엔 커다란 인형을 옆에 두고 거기에 푹 파묻혀 자는 걸 좋아했음. 결혼하고 나서는 노부가 워낙 바빠 같이 잠자리에 드는 날은 별로 없지만 새벽에라도 노부가 귀가하면 꼭 품을 찾아 들어가는 거지. 아침에 눈 뜨면 커다란 팔 안에 갇혀있어서 밤사이 노부가 자길 끌어다 안은 것이라 착각하지만 실은 마치다가 파고든 거임.

노부는 병원에서 위급한 수술 환자를 주로 보고 있겠지. 심할 땐 5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하루에 두 탕이나 뛸 때도 있을 거고. 남들은 의사라면 그리고 교수라면 편하게 대접받고 사는 줄 알겠지만 노부의 현장은 늘 전쟁터 같았음. 하루 종일 피를 보고 뼈가 부러지고 뒤틀린 사람들을 만지고 머리가 터진 사고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야했지. 외과 의사가 된 뒤로 살이 많이 내렸는데 고생해서라기 보다는 피를 하도 많이 봐서 식욕이 뚝 떨어진 거였음. 예전엔 그렇게 좋아하던 스테이크도 이젠 입에 대지 않게 됐음.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두는 환자가 있는 날엔 노부의 멘탈도 버틸 수가 없겠지. 유가족들에게 듣는 욕설도 그렇지만 사실 스스로가 가장 자신을 엄하게 대했으니까. 살리지 못한 사람이 또 생겼다는 것.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의사였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자신을 괴롭혔음. 결혼 전엔 이런 괴로운 마음을 꾹 누르고 깊은 한숨 한 번으로 퉁쳐야 했지.

결혼 후엔 아직 병원에서 별다른 사고가 없었음. 그래도 일상적인 피로감은 있으니까, 노부는 이제야 그걸 풀 방법이 생겼겠지. 일단 그런 날은 굳이 근무 시간 넘어서 까지 병원에 남지 않고 바로 귀가 했음.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빠르게 샤워를 하고 마치다에게 가겠지. 나누어줄 재밌는 얘기는 없지만 그냥 오늘 뉴스 봤냐는 얘기, 날씨 얘기, 아는 사람 얘기 등등을 조곤조곤 풀어놓을듯. 그럼 마치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서 들어주겠지.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노부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을듯. 병원일은 어떠냐는 질문은 부모님이 할 때에도 그냥 그렇죠. 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던 사람이, 마치다가 그걸 물으니 안심하라는듯 활짝 웃어줄 거임.

"위급상황 아니면 비교적 한산해요. 가끔은 나도 힘들긴 하지만 평생 꿈꿨던 일이니 감당해야죠. 잘 하고 있어요."

마치다는 힘들면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어색하게나마 제법 배우자 다운 말을 건넸을 거임. 노부는 그 식상한 격려의 말에도 괜시리 몸이 간지러워 비실비실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음. 이래놓고도 밤만 되면 호출 단말기를 옆에 끼고 잠드는 노부일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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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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