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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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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ㅈㅈㅇ













장을 보고 돌아오는 가정부를 발견했지. 짐이 꽤 무거워 보여 대신 들어주려 하니 한사코 거절했음. 그래도 영 속이 편치 않아서 같이 짐을 옮기니 연신 감사하다 인사를 해서 조금 민망했어. 괜히 시선을 돌리며 가정부가 사 온 식료품을 훑어봤지. 늘 자주 먹던 채소와 과일, 우유 사이에서 이질적인 게 보였어. 도넛이며 머핀 따위의 달달한 간식들이 한 무더기였지. 단 걸 즐기지 않는 알렉스는 그게 의아해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 그 눈치를 알아챘는지 가정부가 말을 붙였어.

"요즘 간식을 자주 찾으시길래요."


그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은 달달한 것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도 아이가 곧잘 먹어서 몇 번은 챙겨주고는 했었지. 근데 그게 다른 사람 보기에도 확연히 티가 날 정도였나. 상념에 빠져 있으니, 가정부가 눈치를 보면서 다시 말을 걸어.

"치울까요?"
"아니, 그냥 둬요. 먹을 사람이 있어서."





저택의 공사 기간동안 현장에서 관련 사항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건 전부 저택의 노집사에게 일임하고 있었음. 집사는 알렉스가 어릴 때부터, 아니, 알렉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저택에서 가족들과 알렉스를 돌보던 사람이라 오히려 본인보다 믿음직스러울 거 같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어쨌든 최종 결정과 확인은 집주인인 알렉스의 몫이었고, 그날도 공사 때문에 여러 내용을 체크하느라 꽤 긴 통화가 이어졌음. 다행히 중요한 내용들이 무탈하게 하나둘 정리되어 가는데, 통화 말미에 노집사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어.

"친구를 사귀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디선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 모양이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음. 집사는 알렉스가 어릴 적부터 자신에 대한 소식은 부모님보다도 빠르게 캐치하곤 했거든. 알렉스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눈과 귀가 있듯, 일하는 사람들이 집사에게는 눈과 귀가 되어 이야기를 전하고는 하니까.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늘 제게 잔소리를 하던 노집사의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눈이 찡그려졌음.

"친구랄 것까진 없고."
"주인님이 다른 사람을 챙기시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보기 좋습니다."

느릿하게 말하며 허허 웃는 할아범의 목소리는 꼭, 어렸을 때 자신을 달래던 때 같아. 멋쩍은 기분이 들었지. 아직도 집사 눈엔 자기가 철없던 소년으로만 보이는 건지. 집사가 건강을 잘 챙기라며 애정 섞인 한마디를 했지만, 오히려 집사더러 노인네 건강이나 걱정하라며 괜스레 툴툴대다 전화를 끊었을 거야.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가 루키를 보러 놀러왔지. 아이는 이제는 아주 익숙하게 마당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음. 아이를 보니 오전에 장을 봐온 게 생각이 나서, 알렉스도 간식을 한껏 꺼내왔을 거야. 알렉스가 내오는 도넛과 주스의 양이 평소보다 훨씬 푸짐했어. 그걸 보며 아이는 눈을 빛내며 신나하면서도 먹기를 주저했지. 어이구, 테이블에 당당하게 앉을 땐 언제고.

"진짜 먹어도 돼요?"
"응. 너 아니면 먹을 사람도 없어. 얼른 먹어."


허락을 받으니 그제야 생긋 웃으며 먹기 시작해. 주저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야무지게 챙겨 먹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어. 아이가 하도 맛있게 먹기에, 먹는 걸 쳐다보기만 하던 알렉스도 덩달아 도넛을 한 입 먹어보았음. 역시 본인 입에는 너무 달았지만, 막상 같이 먹으니 먹을 만한 것 같기도 하고.


"루키 두고 저희만 먹으려니 좀 미안하네요."

아무래도 루키한테는 좋을 것 같지는 않아서 루키한테는 다른 간식을 주고, 도넛은 못 먹게 했거든. 정작 루키는 제 간식에 신이 나서 도넛에 관심도 없는데, 아이는 루키보다도 더 시무룩해하지. "루키는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은데." 알렉스가 던진 말에 킬킬거리다가도 "아, 저 아저씨 덕분에 너무 잘 먹어서 살찔 것 같아요."라는 소릴 하잖아. 정말, 애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성격인건지. 대화하다 보면 주제가 늘 사방팔방으로 튀는 게 느껴져. 도대체 쫓아가질 못하겠다니까.
"마른 애가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
고개를 저으며 핀잔을 줬더니 그마저도 즐거운지 자꾸 웃는 모습에 알렉스도 실없이 웃게 되더라고.



루키와 산책인지 달리기인지 모를 놀이를 마치고 나서,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아이에게 말했지.

"내가 다음 주에는 여기 없어서 안 오는 게 좋을 거야"
"왜요? 어디 가요?"
"음, 좀 일이 있어서."

대충 둘러대는 대답에 아이는 납득은 못 하는 것 같았어. 아이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땀을 훔치며 연신 알렉스를 쳐다봤음. 그 눈길을 모른 척하고, "근처 보안도 강화해둬서 위험할 거야. 오지 마."라고만 말해줄 뿐이었지. "아저씨, 다시 안 오는 건 아니죠?"라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일주일 뒤에는 올 거라고 답해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었어. 그래도, 돌아갈 때는 "저 다다음주에는 와도 되는 거죠?" 라며 돌아가더라고. 어찌 되었든 알아들은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었지.










그게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이었는지, 꼭 일이 벌어진 뒤에야 깨닫게 되는 걸까.
가정부에게도 미리 언질을 해두었니 이제 주변에는 한동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주변 보안을 평소보다 강화해두었으니 내심 안심하고는 억제제를 먹었지. 약 기운에 쓰러지듯 잠에 든 것까지는 분명 기억이 났거든.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제 향이 숨막힐 듯이 빼곡히 찬 공간 틈새로 낯선 향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 열감에 어질한 시야에 애써 정신을 차리니, 어째서 자신의 눈앞에 아이가 있는 건지. 현관 구석에서 자신의 억센 손아귀 아래에 갇힌 채, 벗어나지도 못하고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떨고 있는 걸 보니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어.





"너, 왜, 여기 있어."



자신이 저지른 짓인지, 셔츠는 이미 뜯어진 채였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어. 자꾸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호흡을 고르려 애쓰고 있었지.


"저, 전, 괜, 찮아, 요..."
"....나가."



자신 때문에 영향을 받았는지, 아이도 향을 갈무리하지 못 하는 듯 자꾸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지. 그걸 맡고 있으려니, 정돈되지 않는 숨이 자꾸 새어 나와. 인내심에 한계가 올 것 같아서 일으키지도 못하는 몸으로 억지로 아이를 밀어냈음. 그런데 아이는 오히려 제 팔에 매달려왔어.





"저, 괜찮아요... 아저씨니까, 진짜, 괜찮, 으니까...."

"당장 나가...!!"


겁에 질려서 달달 떠는 주제에 괜찮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모습을 보니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분노가 차올라. 알 수 없는 감정이 욱하고 속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덕에 조금이나마 더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마지막 이성을 붙잡고 아이를 문밖으로 쫓아내다시피 했지. 우악스럽게 끌려 나가는 모양새에 안타까워할 틈도 없었어. 나동그라진 아이를 살필 새도 없이 급하게 문을 닫아버렸지.












알슼조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