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hygall.com/606136133


…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매버릭은 코웃음을 쳤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아이스, 어디 아파? 매버릭이 슬며시 손을 갖다 이마에 대었어.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뭐라도 잘못 먹었나? 아이스가 진지한 얼굴로 농담 따먹기나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건 매버릭도 알아. 그러니 제정신으로 이런 말을 하진 않겠지. 매버릭은 눈을 가늘게 떴어.


아이스. 혹시 슬라이더랑 이상한 내기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야.
그럼 멀쩡한 정신으로 얘기하고 있단 말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진지하게 하고 있어.
맵. 우리 조모님은 사실 뱀파이어야.


보자보자하니 더한 소리가 나왔지. 이쯤 되면 날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 매버릭이 살짝 눈썹을 찡그렸어. 아이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지. 솔직히 이런 말을 맨정신으로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이스는 어디서도 제 조부모님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말해본 적이 없지. 만약 매버릭이 상상 속 친구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레스타가 매버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두 눈을 빛내며 당장 데려오라고 성화만 안 했어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야. 아이스가 매버릭의 손을 잡았어.


그리고 조모님이 널 보겠다고 기다리고 계셔.
뭐? 
…저 문밖에서.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말렸어. 맵. 아이스가 침통하게 말했어. 




레스타는 피트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어. 너무도 귀엽고 천사 같던 아이, 그 애는 어떻게 자랐을까. 자라서도 천사 같을까. 피트가 어떤 모습일지 레스타는 정말 많이 궁금했지. 고대하던 만남이야. 레스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창문을 타넘어 짠, 하고 등장했지. 안녕? 피트!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이처럼 레스타가 쾌활하게 인사를 건넸어. 주니어는 창문으로 등장하는 레스타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어. 레스타, 그 문이 그 문이 아니잖아요! 오, 한때는 귀여운 쭈녀였건만, 자라고 나니 아주 제 아빠보다도 더 고지식한 것만 같아. 레스타는 손주의 가벼운 항변을 무시하고 피트를 돌아보았어.


머리는 어릴 적보다 짧게 잘랐지만 그런 걸 제외하면, 퍽 고대로 자란 외양이야. 깜짝 놀라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토끼처럼 귀여운 앞니가 보이는 것도 똑같았지. 아, 내 귀여운 피트. 한 발 더 빨랐다면 데려와서 자라는 모습을 마음껏 만끽했을 텐데, 그래도 그 입양해 갔던 부모가 제법 잘 키운 모양이야. 레스타가 보기 드물게 온화하게 미소 짓던 순간 잠시 넋이 나간 듯했던 피트가 입을 열었지.


와, 잠깐. 씨발, 깜짝이야. 


어쩌니 저쩌니 해도 18세기 귀족 집안의 애티튜드를 고대로 간직하고 있던 몇 백년 묵은 꼰대뱀파이어는 잠시 귀를 의심했어. 누가 내 귀여운 피트에게 욕을 가르쳤지. 그 양부모인가? 가서 없앨까? 정작 크리스와 배리가 들으면 억울해 할 발상이었지. 그렇게 레스타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치는 동안 피트는 퍽 당황한 듯한 얼굴로 주니어에게 속삭였어. 


저 분이 내 상상 속 친구라고?
믿기진 않겠지만, 응.
아니야! 
뭐? 레스타는 널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피트가 한 번 더 소근거렸어.


내 상상 속 친구가 저렇게 반짝반짝할 거라고 생각 안 했단 말야!


예뻐, 엄청. 분명 낮에 봤다면 난 그 어린 시절에 심장이 터져 이미 죽었을 거라고! 레스타의 뛰어난 청력은 뜻하지 않게 터져 나온 주접을 그대로 접수했지. 아, 생각해보면 피트는 어두운 밤의 놀이터에서만 레스타를 만났어. 아무리 달빛이 밝다 한들 인간의 시력은 뱀파이어의 그것만큼 뛰어나지 않고, 어린 아이의 기억은 많은 일들을 흐려지게 만들었을 거야. 어쨌든 중요한 건, 피트는 정말로 레스타를 기억하고 있었지. 


피트.
아, 네? 네! 어, 그러니까 죄송해요. 제가 방금 굉장히 무례하게 군 것 같은데….
나 기억해? 네가 어릴 때 우리 놀이터에서 많이 놀았는데. 
기억…하죠. 그때 재밌게 놀았는데, 막 하늘도 날고….


그런데 정말 레스타가 맞아요? 피트가 녹색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어. 그래, 이 눈이 그리웠지. 레스타는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어. 내 귀여운 피트! 지금도 귀엽다니, 이건 기적이야! 레스타는 피트의 손을 끌었어. 아무리 건장한 군인이라도 뱀파이어의 완력에 비하면 그 근력은 새털 같은 수준이지. 어린 아이처럼 끌려가 얼결에 레스타의 품에 안긴 피트가 두 눈을 깜박이는 동안 레스타가 웃었지. 


내가 정말 레스타가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볼래?
네? 아… 잠깐!!


레스타가 피트를 품에 안고 순식간에 창밖으로 뛰어내렸어. 주니어가 어찌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지. 주니어가 놀라 창가로 갔을 때 레스타가 허공에 떠 있었어. 피트는 레스타의 목에 매달려 있었지. 레스타가 피트를 꼭 끌어안은 채로 사랑하는 손주를 향해 외쳤지.


주니어, 피트 좀 데려가마!
레스타! 어딜 가는 거예요!
몰라, 찾지 마! 패터슨에게도 말해 둬!


그리고선 레스타는 피트를 끌어안은 채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 순식간에 애인을 잃어버린 주니어─아이스가 두 눈을 부릅떴지. 맙소사, 레스타!!




그렇게 패터슨과 아이스가 뜻밖의 독수공방을 한 지 일주일 후, 레스타는 피트를 데리고 무사히 돌아왔어. 다행히 부대에는 아이스가 대리하여 휴가를 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트의 눈이 아주 반짝반짝해. 심지어 티셔츠는 하와이안 티셔츠지. 잠깐 하와이?


맵, 대체 어디까지 다녀온…!
아이스, 우리 헤어지자. 
뭐?
나 레스타랑 결혼할 거야!


이건 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졸지에 조모에게 애인을 빼앗기게 생긴 아이스가 잠깐만, 맵. 하고 운을 떼려던 때에 하필 그 곁엔 혈중 레스타 부족으로 반쯤 수척해졌던 패터슨이 있었지. 마침내 돌아온 사랑스러운 배우자를 끌어안고 어딜 갔다 왔느냐고, 여행은 재밌었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예비)손주 며느리가 폭탄을 터트리는 거야. 하필 뱀파이어의 청력은 왜 이렇게 좋아서는, 패터슨은 물끄러미 품 안의 레스타를 바라보았어. 레스타가 장난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선 가볍게 웃으며 속삭였어.


그렇게 됐어. 패터슨.


카잔스키 저택에 폭탄이 터지는 순간이었어.




...

물론 장난이었다고 한다 ㅋㅋㅋ
이렇게 놀려 놓고 패터슨과 아이스 달래는데 한참 걸린 레스타와 매버릭 보고 싶다. 그런데 둘이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재밌게 놀다온 건 맞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이런 행복한 재회가 ㅂㄱㅅㄷ 



#아이스매브 약패터슨레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