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4906058
view 1107
2024.09.16 06:25
3학년 인터하이가 끝나고 영수가 대협이한테 고백했을 때 저 소리 듣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거 보고싶다
저 말 하는 대협이 얼굴에는 습관적인 난처한 미소가 걸려있는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질 않아서 그 속에서 언뜻 스쳐지나가는 성가심을 읽고 영수 자기도 모르게 사과했겠지
대협이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진 자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속으로 나 정도면 윤대협한테 '특별'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단 것을 깨달아서 수치심이 들었던 것도 있음
영수는 인터하이를 끝으로 수험을 위해 농구부 은퇴했고, 대협이랑은 반도 달랐으니까 그 이후로는 별로 마주칠 일도 없이 그저 그런 한때의 팀메이트로 졸업을 맞이했음

그런 둘이 다시 마주치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한지도 좀 되고 나서 능남 OB 모임이었음 우연인지 아니면 둘 중 하나의 의도라도 섞여있었던 건지 그 동안은 OB 모임을 해도 둘이 같이 시간되는 때가 없어서 마주치질 못했는데 그날은 태산이의 결혼 보고회도 겸했기 때문에 둘 다 빠지지 않고 나왔을듯
고등학교 시절의 이루어지지 못한 고백도 어언 십여년 전이고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옛날 함께 코트에서 뛰었던 즐거운 기억들이 생각나서 그 날을 계기로 대협이랑 영수는 종종 사적으로 만나게 됨
함께 뛰었던 몇몇 멤버들하고는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만남을 이어오고 있으니까 거기에 이제 와서 한명 더 추가된다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

그렇게 시작된 만남을 지속할 수록 영수는 점점 대협이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위화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예전에도 마이페이스가 강해서 그렇지 주위를 잘 살피고 적절히, 그렇지만 부담되지 않게 주변 사람을 챙길 수 있는 애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한테 이렇게까지 하나?
간질간질한 대협이의 태도가 꺼졌다고 생각했던 불씨를 다시 살렸을 듯 쟤는 나이 먹으니까 사람 홀리는게 더 능숙해졌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수 조금씩 대협이한테 거리 두려고 하겠지 영수도 그때보다는 감정을 숨기는데 능숙해졌으니까
그런데 그 눈치 빠른 녀석이 자기가 피하는데도 계속 곁에 붙어오는거야 이미 한번 멀어졌던 사이 다시 멀어진데도 뭐가 다르겠나 어차피 이루어질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으면 됐지 마음 먹은 영수가 "너 이러면 나 또 착각해" 그러니까 그만 하자 그 동안 즐거웠다 말 하려는데 대협이가 "착각 아니야 영수야 나 너 좋아해" 너도 아직 나 좋아하는거 같은데 안될까? 해서 영수 당황하겠지

여차저차 둘이 사귀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서는 대협이가 졸라서 둘이 동거까지 시작하는데 어느날 같이 저녁 먹고 반주 하던 영수가 턱 괴고 대협이를 빤히 쳐다보는거지
왜 그래 영수 무슨일이야? 취했어? 잘래? 하고 웃으면서 길어진 앞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넘겨주는데 그런 대협이를 보고 있던 영수가 "그때는 진짜 나 안 좋아했던거 맞구나" 툭 얘기해서 대협이 드물게 당황할 듯
어? 어어? 하지만 지금은 진짜 영수 좋아하는데에... 하는 대협이한테 픽 웃으면서 알아 대답하는데 그런 영수가 어딘가 멀게 느껴져서 제 품으로 잡아끄는 대협이 보고싶다

대협이 누구한테나 흘리고 다니는 것 같으면서도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절대 착각할 일도 불안할 일도 없게 할거 같아서, 대협이 짝사랑하다 사귀게 된 영수가 그때는 정말 나 안 사랑했었네 사랑했었는데 모르다 뒤늦게 깨달은게 아니네 알게 되는게 보고싶었는데 왜 이렇게 길어졌지
감정의 시작점이 달랐던게 대협의 잘못도 아니고 지금은 자기 좋아하는 것도 잘 알고 자기도 그런 대협이를 아직도 좋아하고 같이 있으면 설레는데도,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그때 아파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종종 마음이 허해지는 영수랑 그런 영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선득해지는 대협이 보고싶다

슬램덩크 대협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