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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 21:51
선골 갖고 태어난 경국 음인 황자 담태신 오해해서 미래의 마신으로 알고 걍 존나 굴리는 소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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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그는 낡은 침상에 기대어 앉아
활짝 열린 창문 너머를 내다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창 밖 어딘가 먼 곳을 보고만 있는 담태신은 제가 알던 그 잔혹한 마존과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불어와 길게 풀어해쳐진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흔들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그의 아랫배까지 덮여 있던 얄따란 이불이 젖혀져 담태신이 검은 침의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보였다.
별채의 안은 제가 머무는 곳과는 정반대로 얼음장처럼 추웠다. 방 안을 훑어보아도 똑같이 얇은 옷이 두어벌 정도 더 걸려져 있을 뿐, 겨울을 지낼 방한용품이나 장작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제가 흔히 형양종에서 수련하는 어린 음인들에게 겨울마다 쥐여주던 손난로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을 더 내딛자마자 발 밑의 마루가 삐걱거렸다. 군데군데 부서지고 망가져 있는 마루, 잔뜩 낡아빠진 가구들. 매서운 겨울을 하루라도 날 수도 없는 것 같은 이곳.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지내고 있던 걸까?
어린 마존은 몸을 약하게 떨더니 작게 재채기를 하곤 손을 밖으로 뻗어 창을 꼭 닫았다.
''나 괜찮다니까......''
희미하게 흩어진 목소리는 열에 달떠 있었다. 가볍게 기침한 그가 닫은 창문을 잠그며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손에 감긴 천은 상처가 다시 터진 건지 피투성이었다.
''아결, 화내지 마. 내가 잘못한 거잖아.''
''......''
''.....소늠이 그렇게 화를 낸 것도 이해가 가. 내가 엽가 첫째 아가씨의 생일을 망쳤으니...좀 어떠시대? 편지랑 함께 고뿔에 좋다는 약재를 동봉했는데.''
창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흔들어서 확인한 담태신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서로 시선이 얽힌 순간에는 그는 어딘지 서글픈 얼굴이었다.
평온하면서도 미묘한 슬픈 표정이 공포에 찬 것으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짓물러서 발개진 두 눈이 확장되고, 살짝 벌어진 그의 입술이 약하게 경련했다.
''........ㅈ,전.''
전하.
더듬으며 내뱉어진 단어는 경악에 가까웠다.
잠시 동안 몸이 굳은 채 입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그는 정신을 차리곤 허겁지겁 천조각이나 다름없는 이불을 걷고 기어 내려와 제 발치에 무릎부터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합...아ㄴ, 죄송, 자,잘못....''
납작 엎드려 말을 마구 더듬다 작은 동물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곤 떨었다. 마치 무조건 그가 잘못한 것이라는 것인 마냥.
제가 그의 눈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무작정 사죄부터 해야 한다는 듯 속죄의 말이 그의 입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단전에서부터 울컥이며 솟구쳤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리기도 전에 뭉쳐진 것이 입 밖으로 날카롭게 튀어나갔다.
''일어나.''
''ㅈ,잘못....제가 잘못했,''
''일어나라니까!''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하던 더듬거리는 말소리가 단번에 뚝 끊기곤 흑, 흐읍. 하는 울음섞인 거친 숨소리만이 간혈적으로 들려왔다.
제 발치에 납작 엎드린 이 남자가 낯설었다.
냉담한 얼굴을 하곤 가차없이 선문세가들을 멸하던 마존의 얼굴이었다. 표정변화라고는 비웃음밖에 없던 잔혹하던 그가, 냉혹하게도 형양종의 모든 사람들마저 죽이곤 무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마치 처벌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여전히 고개를 숙인 상태로 덜덜 떠는 그는 피로 물든 천이 감긴 두 손을 뒤로 가져다 숨겼다. 어느샌가 흘러내리는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허름한 바닥을 적셔냈다.
ㅡㅡ
그가 뭐부터 들었을까?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열에 달떠 멍한 머리로 정신없이 비는 동안 숨이 턱턱 막혀왔다. 소늠이 이곳까지 들어온 걸 보면 무엇인진 몰라도 또다시 무언가 큰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그게 무엇일까?
엽빙상이 잘못되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니,
그녀가 잘못된 것은 아닐 거다.
이곳에 잠시 들어왔던 하인의 딸아이에게 손수 간식을 먹여준 것? 그의 부탁을 받아서 무릎에 어린 아이를 직접 앉히고 놀아주다 녹두과자를 조금 떼어 먹인 것이었는데.
아니면 그 전에 과실 하나를 얻어먹은 게 잘못이었나, 그건 새로 들어온 것처럼 보이던 부엌의 어린 시종이 자신을 같이 일하는 하인으로 착각하고 건네준 것이었다.
아니다. 그렇게 오래된 것이 잘못된 거였다면 이미 그가 알게 되어 처벌받았을 것이었다. 뭐지, 뭘까. 빨리 생각해 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어나라니까!''
날카롭게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순간 호흡을 멈췄다. 멍청하게도 그의 심기를 또다시 거스른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손등에 떨어지는 따뜻한 것이 느껴졌다.
눈을 몇번 깜빡이자 고였던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발갛게 짓무른 눈가가 욱신거렸다. 아파왔다.
내가 언제부터 울고 있었나, 그는 제가 눈물짓는 걸 싫어했다.
온몸이 덜덜 떨려오는 걸 애써 무시하며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천천히 일어났다.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이를 악물어 막았지만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으로 닦아낼 수도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손에 감긴 피로 더럽혀진 천이 약간 보여 허둥지둥 뒤로 가져다 숨겼다. 그가 보지 않았길 간절히 빌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전에 이젠 얼굴조차 보기 싫냐며 비꼬았던 것이 기억나 다시 억지로 부릅떴다.
머리가 풀어헤쳐져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또 규칙을 어겼다는 직감에 몸이 떨려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성국의 그 누구보다 예법을 칼같이 지켜야만 하는 그는 이것 또한 나무랄 것이 분명했다.
아결이 내 머리끈을 어디에 두더라?
감히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푹 숙인 고개로는 곁눈질로도 방을 둘러볼 수도 없었다. 겁에 질린 바보같은 머리로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가슴 깊이 품은 이에게 이것보다 더 미움받는 것은
이미 그의 손으로 산산조각 난 마음이 견뎌낼 수 없을 것이었다.
ㅡㅡ
''.....지금 뭐하는 거지?''
약간 얼탄 듯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기 무섭게 말을 걸려던 것을 멈추고 마존에게서 시선을 옮겨 휙 돌아봤으나 그가 훨씬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담태신과 제 사이에 껴 자신을 뒤로 밀쳐내는 처음 보는 사내에게서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은 차가운 분노가 느껴졌다.
''전하께서 여긴 어인 일이신지요?''
그는 사납게 몇 걸음 물러선 제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금 보니 자신과 키와 덩치가 엇비슷했다. 외모는 퍽 수려했지만 입술이 누군가에게 맞은 듯이 터져 있었고, 멍든 자국이 몇 곳 있었다.
명백한 폭력의 흔적이었다.
분노, 증오. 그리고 경멸로 타오르는 눈빛을 한 남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듯이 제 눈앞에서 비죽거리며 웃었다.
''내가 전에도 경고했지.''
전에도 그리하였을 건데, 그게 뭐든지간에 죄는 나에게만 물으라고.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두고서야 이제 만족하십니까?
낮게 으르렁대며 빈정거린 이는 제게서 몸을 돌려 여전히 바짝 굳은 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담태신에게로 돌아갔다.
''태신.''
괜찮아. 그렇게 조근거리는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들리던 날카로운 것과는 달리 부드럽고, 친절했다.
그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사내는 자연스럽게 그를 끌어 침상에 도로 앉혔다. 잔뜩 굳어 있던 마존은 그제서야 주춤거리며 앉아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슬쩍 이쪽을 바라보았다.
저와 눈빛이 정통으로 마주치자 여전히 눈물이 한가득 일렁이는 눈이 동요하는 듯 빠르게 두어 번 깜빡이다 다시 시선을 내리깔고 체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침묵만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익숙한 듯이 침상에 걸터앉아 잔에 물을 따라 담태신의 손에 쥐여준 남자는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
''....''
''비께서 몸이 다 낫지 않으셨으니, 할 말이 있으시다면 며칠 후에 말씀 나누세요.''
잔만 쥐고 고개를 숙인 담태신에게서 시선을 떼어
제게로 돌려 눈을 똑바로 쳐다본 이는 냉소하며 내뱉었다.
''혹은... 전하께서 제게 직접 말씀해 주신다면 그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리겠나이다.''
ㅡㅡ
''전하, 혹시....입맛이 없으세요?''
퍼득 정신을 차려보니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그곳에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릇을 들고 허겁지겁 먹느라 입가에 밥풀을 묻힌 소년이 또 머리가 아프시냐며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것을 흘끗 보고 젓가락을 내려두었다. 머릿속에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가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다 했었지?''
푸성귀 볶음을 입가로 가져가던 걸 툭 떨군 그는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한번 침을 꿀떡 삼킨 이는 이내 더듬거리며 역으로 제게 물었다.
''누...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
''......''
''아.''
소년은 한번 목을 가다듬었다.
''두 분이 혼인하신 지는 삼 년 정도 지났, 아니다. 이제 사 년이 다 되가네요.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셔요?''
''.....내가 알던 그는 좀 달랐어서.''
하는 질문의 답도 아닌 중얼거림을 들은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달라요? 마마께서는 변함이 없으신걸요. 두 해 전부터 좀...전하를 피해 다니는 것 빼면....
''피해다녀?''
합. 하고 입을 다문 소년이 눈을 굴리며 젓가락으로 애꿎은 생선만 쿡쿡 찔러댔다.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매운 양념을 끼얹은 찬이었다.
우물쭈물하던 아이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해 전 섣달그믐에 전하와 함께 엽부에 가셨다가 돌아오신 뒤로 침울해지셨다고 해야 하나, 전하를 피해서 지내기 시작하셨던 것도 그때부터였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
''네? 아뇨, 그때 전하께서도 '비에 관한 일은 한 마디도 묻지 말라!' 하고 드물게.. 어쨌든 저도 몰라요. 오로지 전하와 엽가 사람들만 알고 계실 거예요.''
생각이 많아졌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겁지겁 꿇어앉아 머리부터 조아리던 이가 떠올랐다. 수많은 이들을 학살하던 마존과 전혀 딴 판이던 모습이, 체념하는 표정을 짓고 익숙한 듯이 눈을 내리깔던 그가 아른거렸다.
''그럼 그는 원래 별채에서 지냈던 것이라고?''
''폐하께서 두 분이 혼인하셨을 때 마마께 따로 궁을 하사하거나 하지 않으셨고, 전하께서도 딱히 거처를 정해주지 않으셔서 오랫동안 쓰지 않던 별채를 고쳐서 몸종과 함께 지내고 계셔요...음, 그런데 하루의 대부분은 장서각에서 보내세요. 저를 빼곤 아무도 찾지 않고, 그곳이 책장으로 빽빽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더라구요.''
''.....''
''그....전하. 혹시 이제 좀 먹어도 될까요? 저 배고파 죽겠어요''
배싯 웃어 보이고 잽싸게 맵게 요리한 생선찜의 살을 발라먹기 시작한 소년에 저도 모르게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졌다.
''한 시진 전에 배고프다고 탕원 먹었던 게 누구였더라?''
''아이, 저 같은 막 자라는 아이들은 원래 빨리 배고파지고 많이 먹는 게 당연한 거라니까요. 제가 유독 많이 먹는 게 아니라구요!''
픽 웃으며 밉지 않게 눈을 흘겨보곤 제 앞의 손도 대지 않은 밥그릇을 그의 옆에 놓아주었다. 밥을 한가득 입에 밀어넣은 아원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저를 쳐다보았다.
''많이 먹거라.''
그렇게 일어나서 벽에 걸려진 옷을 집어드는 것을 멍하니 보던 소년이 정신을 차리곤 급히 입 안에 든 음식을 씹어삼켰다.
''지금 어디 가시려고요? 시간도 늦었는데.''
''장서각.''
''예?? 아니 전하. 마마께ㅅ,''
''그곳에 없는 것 알아, 그래서 가는 거다.''
먹고 있거라, 금방 다녀올 터이니. 라며 방을 나선 이의 저벅이는 발소리는 금세 멀어졌다.
''......탕약을 다시 올려드려야 하나?''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년은
그의 앞에 놓인 저녁거리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ㅡㅡ
탕원 : 안에 깨소나 팥소 넣고 만든 경단을 달콤한 시럽 같은 거에다 넣고 끓인 거 고기육수나 그냥 물에다 넣고 끓인 것도 있다고 함
한 시진 = 2시간
등위 라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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