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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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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부모님 세대부터 가깝게 지낸 사이라 자연스레 불알칭구로 자랐을 듯 ㅇㅇ 어렸을 때는 장철한보다 여리고 작았던 공준이 동네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해서 울면 장철한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우리 쭈니 괴롭힌 새끼들 다 나온나 느그는 오늘 내 손에 다 디졌음 하면서 지켜줬을 거임 맨날 둘이 어딜 가든 붙어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공준이랑 장철한 보면 쌍쌍바 지나간다 쌍쌍바 이럴정도로 거의 한 세트였지



그러다 장철한이 초딩 때 동네 누나한테 반해서 누나 꼬시느라(사실 장철한 혼자 폼 잡고 들이댄 거였지만) 공준이랑 잘 안놀아주니까 공준이 울면서 장철한 졸졸 따라다니고 앵겼을 듯 난감해 하던 장철한은 이대로는 쭈니 점마 때문에 누나한테 고백도 못해보겠다 싶어서 맨날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던 공준 내팽개치고 뒷문으로 도망갔겠지 자유의 몸이 된 장철한이 동네 누나한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며 첫사랑에 박차를 가하던 어느 날 공준 부모님들이 철한이네 집에 찾아와서 하소연했을 거임 철한아 너 왜 요즘 우리 준이랑 안놀아주니 준이가 너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더니 밥을 한숟갈도 안뜬다 니가 가서 좀 달래보렴 하니까 장철한은 아...뭐 저러다 배고프면 지가 알아서 챙겨먹겠죠 쭈니가 아도 아이고...하면서 나몰라라 했겠지 근데 얼마 후에 공준이 학교에서 쓰러진 거임 ㄷㄷ 의사가 요즘 세상에 영양실조로 응급실 실려오는 건 첨 본다고 혹시 집에서 학대 당하는 거 아니냐 의심해서 준이네 부모님들 식겁했을 듯 옆집 사는 철한이네도 소식 듣고 공준 병문안 왔는데 앙상하게 마른 공준 모습에 장철한 뿌앵 하고 울음터져서 죽지마 준아 내가 미안해 하고 엎드려서 엉엉 우니까 자는 척 하고 있던 공준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겠지 물론 병실 안 그 누구도 그 사실은 알 수 없었지만 ㅎㅎ



암튼 그 이후로 평생 쌍쌍바처럼 붙어지낼 것 같던 두 사람은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서먹해졌음 이유인 즉슨 늘 장철한에게 치대고 앵기던 공준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장철한한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거임 저한테 울고 불고 매달릴 땐 언제고 은근하게 저를 피하는 공준 때문에 열받은 장철한은 당장이라도 너 요즘 왜 이러냐 존나 섭섭하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가오가 뇌를 지배한 장철한에게 그런 행동은 상당히 존심을 구기는 것이라 관뒀지 그렇게 점점 멀어진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준이 대학진학을 위해 도시로 떠난 후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을 듯 공준과 달리 시골에 남아 부모님의 농삿일을 이어 받은 장철한은 가끔 떠오르는 옛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굳이 공준에게 먼저 연락을 하거나 하진 않았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알아서 잘 살고 있겄지... 하면서 ㅇㅇ




그런데 5년 후 어느 날 마을의 인간확성기 황유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창 농삿일에 열중하던 장철한을 동네 마을 회관으로 무작정 끌고 온 거임 아 놔라 미친 넘아 나 아직 밭일 안끝났다고...! 마 걍 좀 닥치고 따라온나 난리났다 지금! 먼데? 니 씨 별 일 아니면 니 내 손에 뒤진다이 하면서 둘이 마을회관 앞까지 엎치락 뒤치락 레슬링하더니 잔치판이 열린 마을 회관 모습에 장철한 눈 휘둥그레 해지면서 뭐...뭐고? 오늘 뭔 날이가? 하면서 놀랬을 듯 장철한이 얼떨떨한 표정을 하니까 황유명이 실실 쪼개면서 야 니 모리나? 오늘 준이 왔다이가! 이러는 거임 그니까 장철한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심란한 얼굴로 ...가가 왜? 서울서 뭐 취직했다 안캤나? 하면서 물으니까 황유명이 몰라 나도.. 머 어른들 말로는 완전히 시골로 돌아온 거라 카던데? 하면서 뒷머리를 벅벅 긁는 거임 그 말에 입이 굳게 닫힌 장철한이 마을 회관으로 들어갈 생각은 않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만 괜히 차대겠지 니 뭐하노? 안들어갈끼가?? 하면서 황유명이 답답한 얼굴로 물으니까 장철한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쫌 이따가...하고 대답했을 듯 그럼 느그 아직도 내외하나? 세월이 얼만데...하면서 쯧 하고 혀를 찬 황유명이 마 고집 부리지 말고 쫌따 들어온나 내 먼저 들어간대이? 하고 잔치판 속으로 들어갔겠지




인싸력 자랑하며 어느 새 막걸리 통 들고 빵댕이 흔들기 시작한 황유명 뒷모습을 마을 회관 입구에 서서 지켜보던 장철한은 점마는 진짜 연구 대상이다 하면서 피식 웃다가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집에나 가야겠다 싶어 주머니에서 담배갑이랑 라이터를 꺼냈을 듯 슬슬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 보던 장철한이 지친 얼굴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는데 어라? 불이 안켜지는 거임 에라이...하필 또 이럴 때 라이터가 다 됐다며 인상을 쓴 장철한이 입에 문 담배를 뱉으려니까 갑자기 옆에서 누가 라이터를 슥 내밀더니 불을 붙여주는 거임 아니 이런 감사한 분이 다 있나 하며 인사나 하려고 눈웃음 장착하고 고개를 돌린 장철한은 제 눈앞에 서 있는 남정네를 보고 안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버렸음




그런 저를 보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오랜만이네 장철한. 하고 인사하는 남자의 얼굴에 삿대질하며 너...너... 하면서 어버버하던 장철한은 5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더 커진 거 같은 공준을 올려다 보면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땅에 떨어뜨렸을 듯 그럼 벌어진 장철한의 입에 다시 새 담배를 물려준 공준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잘 지냈냐고 묻겠지 주변에 풀벌레 소리만 들려올 때까지 잠자코 대답을 하지 않던 장철한은 약간 먹먹한 목소리로 뭐...그냥...잘 지냈지...하고 대답할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준은 다행이네...하면서 노을이 지는 밭으로 시선을 돌렸겠지 어색하고 묘한 분위기에 장철한이 괜히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니까 공준이 낮은 목소리로 머리...많이 길었네 하고 저도 입에 담배를 물었을 거임 어...걍 귀찮아서 내비뒀는데...이래 됐네... 하고 장철한이 머쓱하게 대답하면 공준이 ...잘 어울리네 하고 헛기침할 거다 그럼 장철한은 속으로 아 존나 적응 안되네 싯팔 하면서 어쩐지 빨개진 얼굴로 아, 암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그...내, 내는 배가 고파가 들어가서 뭐 좀 줏어먹을라고...니, 니는...뭐 담배 쪼까 피다가 들어오든가...하고 후다닥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을 듯 예전과 다름없이 감정이 다 드러나는 장철한의 귀여운 모습에 뭔가 안심한 듯한 공준이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고 담배 연기를 후...하고 뱉으며 웃으니 그의 하얀 볼에 보조개가 깊이 패였지 그러다 근심이 가득한 무거운 얼굴로 담배 연기를 마시며 도시와 달리 별빛이 선명하게 빛나는 시골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던 공준은 마을회관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고개를 내리니 황유명과 마을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장철한의 동글동글한 뒷통수가 보였을 거다 고향을 떠나기 전 저가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인 첫사랑 장철한을 한참 바라보던 공준은 이내 얼굴의 그늘을 지우고 환하게 웃었을 거임 역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준저 공준장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