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끝끝내 잠들지 못했던 지난 밤, 스네이프는 동이 트기 직전이 되어서야 해리를 방에다 옮겨놓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근처 호숫가를 찾았다. 다소 우거진 숲속에 위치한 블랙 가의 집 뒤편에는 자그마한 호수가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자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닌 듯했다. 저보다는 덜 음습하지만 그래도 어둠침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블랙 가는 나름 미적인 것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호수는 제법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물가 주위로는 혹 할만한 신비의 약초들과 처음 보는 듯한 야생화, 반듯하게 자라 녹음을 선사하는 나무들, 팅커벨이라도 돌아다니고 있는지 그 위로는 아주 작은 알갱이의 반짝이들이 뿌려지고 있었다. 음침함으로는 자신보다 더 한 블랙가가 아기자기하고도 동화다운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으나 잔잔한 호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다시 심연 밑으로 가라앉았다. 날이 쌀쌀한데도 로브 조차 걸치지 않은 스네이프는 단 한 순간의 일렁임도 없이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고 섰다. 코 밑으로 들어와 폐를 싸늘하게끔 만드는 바람이 부는데도 수면은 움직임이 없다. 잠자코 바라만 보던 그의 한쪽 입꼬리가 잠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하고 자신도 그중 하나였으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달았던 상황들이 삶의 포기를 부추겼다. 그것은 자신이 살고 싶었으나 살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죽고 싶지 않았으나 생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사악한 뱀에게 물려 독이 온 몸으로 퍼지는 기분이 들었을 때는, 고통과 함께 의아하게도 평온함이 들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소년의 눈이 놓으려던 생명줄을 다시 붙들고 싶게 만들었다.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보다 거기서 오는 정신적인 괴로움이 더 컸다. 해리 포터에게서 유일하게 릴리를 찾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초록색 눈이었다. 외형과 말투 그리고 저돌적으로 나오던 모든 행동들은 제임스 포터가 보일 만큼 빼다 박은 듯했지만 그 두 눈만이 릴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건 뉘우침과 동시에 소년을 지키고자 하는 하는 행동력에 힘을 주었으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서야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해리 포터의 눈을 통해 릴리를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제임스에게서 릴리로 그리고 해리 포터로. 마지막에 자신이 보았던 것은 그저 해리 포터 뿐이었다. 그저 초록색 눈동자는 릴리의 아이임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았을 뿐이며 자신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뉘우침 뿐만 아니라 작은 애정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단지 작다고 상정한 것이 비록 지금 자신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 문제면 문제였다. 대체 언제서부터 너에게 그런 마음이 들었나. 나는 왜 그런 우스운 감정이 들었는가. 이 세상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알게 된다면 아마도 비웃음을 날리며 돌을 던질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감정은 터무니없고 괴이하며 끔찍한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자의 마음이라, 저 자신도 비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게 너는 왜 그렇게 올곧았나. 왜 그렇게 태산처럼 굳건했으며 태양처럼 빛났는가. 왜 음지로 숨은 나에게까지 쓸데없이 빛을 내렸는가.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 나에게 찾아온 죽음을 그대로 맞이하게끔 내버려 뒀어야지. 왜 살고자 하는 마음에 불을 붙여서는, 스네이프는 얇은 입술 새로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 보다 마법 세계를 구한, 살아 남은 아이에 대한 감정을 무슨 수로 정리해야 하는 가를 먼저 연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 미움 받는 것을 또 다시 행해야만 했다. 그건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였다. 신 조차도 사랑하지 않을 사내. 미운 말만 내뱉고 시선 끝에 칼을 꽂으면 알아서 정리가 되겠지. 지금 이렇게 헤매는 것도 소년, 아니 청년의 작은 배려심 때문이다. 세상이 망해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희망 따위 품지 못하도록 상대방의 마음부터 돌아서게 만들면 될 것이다. 예전처럼 나를 대해. 미워서 죽을 것 처럼 대하라고.

 

 

"왜 로브도 안 입고 나와 계세요."

 

 

그렇게 굴지마라. 나에게 호의를 베풀지 마. 내가 어떤 놈인지 네가 더 잘 알잖아. 등 뒤에 들린 음성에 몸을 돌리려던 스네이프는 어깨 위로 두른 짙은 남색의 그것도 보온 마법이 걸린 로브에 사고가 먼저 정지해버렸다. 로브에서는 아이의 체취가 미치도록 풍겨오고 있었다.

 

해리는 제 로브를 걸쳐주고 팔짱을 낀 채 그의 곁에 섰다. 자다가 절로 눈이 떠져 창가에 섰다가 호숫가에 있는 스네이프를 보고 망설임 없이 제 것을 들고나온 해리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대로 내버려 둘까 했지만 어쩐지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잠 자리가 불편했나, 아니면 나와 한 집에 있다는 것이 영 불편해 그런가. 그의 과거가 어쨌든 간에 저에게 어떤 행동들을 했더라도 지금은 거기에 대한 감정을 쏟아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피곤하고 또 피곤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미 과거이고 그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들을 한 사람이었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더는 스네이프를 미워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기쁠 뿐이다. 저와 같은 시간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일찍 일어나신 거에요, 아니면 잠을 못 주무신 거에요?"

 

 

강한 알파의 페로몬과 해리의 체취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법으로 인한 것이지만 어쩐지 새벽 내 알게 된 아이의 온기를 다시 느끼는 것만 같아 사고와 몸이 굳어있던 스네이프는 겨우 입술을 열어 대꾸를 했다.

 

 

"못 잤다."

"잠 자리가 많이 불편했어요? 침대를 바꿔드릴까요."

"네 코 고는 소리에 잘 수가 있어야지."

 

 

잠을 못 잤다 하니 분명 뭐가 불편해 그런 것이리라 상정한 해리가 그 이유를 물었다가 놀란 얼굴로 스네이프를 돌아봤다. "제가요? 저 코 곤다는 소리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는데요." 엄청나고도 괴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굴었다. 이제는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코를 세게 골아도 옆방도 아닌 맞은 편에 위치했으니 들릴 리가 만무한데도 해리는 이 어이없는 이유를 믿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눈을 굴려 어느새 저만큼이나 큰 해리를 쏘아봤다. 다른 의미로 곱게 볼 수가 없었다. 이런 놈이 어떻게 이 세상을 구한 거지? 해리는 그 눈초리를 코를 대차게 굴어 잠을 방해했던 가해자를 향한 것이라 인식한 모양인지 입술을 말아 깨물었다. "저 정말 얌전히 자는데." 뭐라 구시렁거리고는 앞으로 주의하겠단 말을 분명히 덧붙였다. 그리고 잠깐 눈치를 보고는 화제를 돌렸다.

 

 

"여기 괜찮죠?"

"···블랙의 집 치고는."

"이거 제가 만든 거에요."

"뭐?"

 

 

그럴 줄 알았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블랙가가 소유한 집 치고는 다소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런데 해리 포터가 이 호숫가를 만들었다 생각하니 그것도 좀 영 어색했다. 마법 약 실력은 형편 없지만 이런 것에는 또 재주가 있었던 듯싶다. 그럼 무슨 마음으로 이 호수를 만들었던 것일까. 자꾸 쓸데없는 것들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잔재주는 확실히 뛰어나군." 칭찬 아닌 칭찬을 한마디 툭 내뱉으니 해리가 무척 기뻐하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마법 약에는 소질이 없어도 다른 건 다 괜찮다고요."

"그 부분이 약하다는 것을 알면 좀 연습을 해라."

 

 

꾸중을 들으니 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리가 샐쭉 웃고는 팔짱을 풀고 이제는 뒷짐을 진 채 저 멀리 내다 보았다. 이제는 호그와트를 졸업한 마법사이니 굳이 꼭 마법 약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약재상을 찾아가 사면 되는 일이라 하자 스네이프가 크게 화를 냈다. "마법 약은 마법사들이 반드시 익히고 있어야 할 기본 소양임을-" 그러나 목에 너무 힘을 준 탓인지 울컥 올라왔던 화가 기침으로 인해 다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장이 꼬일 정도로 거센 기침에 해리가 놀라 더 가까이 다가왔다. 기침하느라 허리를 숙인 상대의 시선에 맞춰 고개를 낮추며 살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아직 회복하지 못한 목은 그가 마음대로 말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 답답함을 해리는 이해했다. "이제 들어가요,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요." 찬바람이 호흡기를 더 건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기침을 하던 스네이프는 제 팔뚝으로 부드럽게 감겨오는 손에 눈을 들어 올렸다. 기침하느라 몰랐는데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가깝다. 초록색 눈동자 속에 자신이 비칠 지경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가 해리의 시선이 자신의 입술로 떨어지는 순간 억지로 허리를 곧게 폈다. 형편없는 저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보고 있고 다 알고 있겠지만 그것도 자세히, 세밀하게 자신의 못남을 일러주고 싶지 않았다. "부축 따위 필요 없다." 겨우 목을 짜내 말한 것이라고는 깊은 배려에 대한 거절이 담긴 의사였다. 그리고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어 버리듯 가슴에 안겨주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현관 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창문으로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해리가 보였다. 시선이 다리 쪽으로 약간 내려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일부러 괜찮은 척 온 몸에 힘을 주고 집으로 들어갔으나 중심이 곧 무너지고 말았다. 지팡이가 없으면 걷질 못하는 하찮은 몸뚱이다. 부끄러움에 잠시 현관으로부터 이어진 복도에 서 있었는데 해리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서며 거실 쪽으로 손짓했다. "가 계세요, 차 끓여서 갈 테니까." 이만 들어가자 했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기분이 상했겠지. 저를 망가뜨렸음에도 뻔뻔스럽게 거절하는 꼴이 영 아니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해리는 로브를 손에 쥐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너무 가깝게 다가갔나 싶어 거리를 둘까 하는 고민을 해보지만 이것도 영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이중 첩자로 활동했었고 또 그 옛날부터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었던 사람이니 당연히 익숙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더구나 몸 상태도 별로 좋지 못한 편이 아닌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해리는 옷걸이에 로브를 걸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 짧은 시간 걸치고 있었을 뿐인데 로브에서는 스네이프의 향이 풍겨왔다. 손에 쥔 것을 내려다보던 해리가 코 밑으로 가져갔다. 비 내음 같기도 하고, 그런데 또 깊이 들이마시니 풋풋한 무화과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어제 제가 쓰는 목욕제품을 썼을 텐데 그 냄새는 하나 나지 않았다. 덜커덩. 아래층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제야 로브에서 얼굴을 뗀 해리는 멋쩍음에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 있으세요?" 거실로 가보니 일인용 소파 팔걸이에 애매하게 엉덩이를 걸친 스네이프가 굉장히 두꺼운 책 모서리를 겨우 잡고선 자신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책을 꺼내려다 바닥으로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또 한 권의 책이 떨어져 있었다. 해리가 얼른 가서 주워 들자 그가 잠깐 입술을 말아 깨물고 말았다.

 

 

"그저 책을 꺼내려다 떨어뜨린 것 뿐이다."

"네, 그런 것 같네요."

 

 

떨어진 책을 책장에 도로 끼워 넣은 해리를 향해 그가 밉지 않게 쏘아봤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그것도 못할 정도면 아예 드러눕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절대적인 환자가 아님을 인식시켜 주려 했지만 해리가 빙긋 웃는 바람에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서 도와드린 거에요. 잠시만요, 차 좀 내올게요." 주방으로 들어가던 해리가 이참에 아침 식사까지 간단히 내오겠다 외쳤다. 스네이프는 몸을 돌려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무릎에 책을 내려놓고 아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뭔가 바뀐 기분이다. 분위기가? 아니면 성격이? 타고난 성격은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럼 뭐지. 옛날과 다르게 저를 대하는 것에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더 침착해졌다. 어제 이 집으로 걸음 하는 내내 얼마나 저를 쏘아붙일까 내심 걱정했었 던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잠시 후, 해리가 작은 트레이에 미리 따라 놓은 찻잔 두 개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져왔다. 작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스네이프 옆, 긴 검은 벨벳 소파에 앉은 해리는 그에게 찻잔부터 건넸다. "목 좀 축이세요." 손이 닿지 않게 조심히 찻잔을 받아 향을 맡아보니 진한 장미 향이 풍겨왔다. 그의 한쪽 눈썹이 들어 올려졌다.

 

 

"장미?"

"네, 장미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고 해서요. 스ㄴ··· 아니, 교수님이 계속 몸이 차가우신 것 같아서."

"어차피 네 교수도 아니니 그냥 이전처럼 불러라. 어제부터 듣기 영 이상하군."

 

 

그 쪽으로 먹기 좋게 자른 샌드위치를 놓던 해리가 물었다.

 

 

"그럼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내가 널 뭐라 부르지?"

"포터요."

"그런데?"

 

 

전에도 그렇고 나 또한 저를 성으로 부르고 있으니 너도 똑같이 하란 의미로 말했는데 해리는 그게 아닌지 불만 어린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언제부터 그리 살가운 사이였다고. 누가 원수 아니냐 해도 딱히 부정할 수 없는 관계였다. 저는 몰라도 아이에게 저는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자꾸 날 신경 쓰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분명-" 해리가 말을 가로챘다. "제 집에 계시니까 당연히 그럴 수 밖에요. 그렇다고 나가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저는 저대로 나름 신경 쓸 테니까 교··· 수님이 알아서 상대해주세요." 제발 그러지 말라 말하고 싶었다. 그럴수록 자신만 더 괴로워진다. 스네이프는 장미차로 건조한 목을 축이고는 오래된 책 위로 내려놨다. 물어볼 것이 하나 있었다. 사실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당장 궁금한 것은 지난 밤 몽중에 대한 것이었다. 본인은 그 사실을 새카맣게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다. 해리 포터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구렁이 담 넘 듯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을 뗄까 말까 고민하다 겨우 소리를 냈다.

 

 

"지난 밤··· 잘 잤나?"

"음, 코를 그렇게 크게 골 정도면 아무래도 잘 잔 것 같은데요."

"내 말은."

 

 

거칠어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개운하게 잘 잤느냐는 거다. 평상시에도."

"어···."

 

 

해리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머리만 대도 금방 곯아떨어지는 론에 비하면 저는 잠자리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야지만 잠이 들 수 있었다. 보통은 한 시간에서 길면 두 시간 반 정도를 소요한다. 악몽을 꾸지 않는 날이면 새벽에 깨지 않고 쭉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허나 개운하게 잘 잤느냐 하면, 이건 또 말이 달랐다. 악몽을 꾸나 안 꾸나 여전히 몸이 무거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스네이프가 정의하는 개운함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니었다. "개운하게 일어나 본 적은 없어요." 볼드모트와의 전쟁에서는 그런 걸 생각해볼 겨를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이 곳에 와서야 수면의 질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얘기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니 스네이프가 잠자코 들어주고 있었다. 할 말을 마친 해리는 소파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서 가만히 응시했다. 전에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던가. 맹세코 그런 적 없었다. 심지어 자기가 어떤 말을 해도 그는 상대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비웃기 바빴다. 신기하네. 이 사람이 지금 바로 옆에 앉아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니. 비록 고양이처럼 까칠하고 예민하긴 해도 미소 지어질 만한 상황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가 몽유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판단에 힘을 싣고 있었다. 아마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증상이 시작됐을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볼드모트의 존재는 자신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그가 눈을 들었다. 어느새 말을 멈추고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해리가 보였다. 이제 고작 20살, 소년의 시기를 탈출했으나 아직도 앳된 청년의 얼굴. 그러나 그 앳됨도 억지로 익어버린 성숙함을 가리지는 못했다. 잠시 저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두 눈에 사로잡혔던 스네이프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끊임없이 자기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체력이 떨어졌나 보군." 답지 않게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또한 어젯밤의 일을 말하지 못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욕심이 일어났다. 몽중이라면, 그때만큼은. 조금은 내가. 멀어져야 하지만 그때라면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세게 그러쥐었다. 역겨운 자식.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딱히 체력이 떨어진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운동은 조금 더 해야겠어요. 그나저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음, 이전에 여러 번 공격 당한 일은 들었어요. 하지만 그 외에는 들은 바가 없어서요. 저는 지금 신문도 안 읽고 있거든요. 가끔 론과 헤르미온느와 편지를 주고받는 거 외에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직을 다시 제안 받았지만 네가 아는바 대로 그들에게서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포터, 너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분명 오러국에 들어갔다 들었는데."

 

 

비스듬히 앉아있던 그 자세로 해리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서 손으로 제 아랫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대신 굉장히 지쳐 보이고 피곤해 보였고 그로 인해 분위기가 대체로 제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느낌이었다.

 

 

"지쳐서요."

"······."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살아남으려 애쓰고 싸우려 노력했는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 특채로 오러국에 들어가긴 했는데···."

 

 

해리가 말을 끌었다.

 

 

"뭔가 이상했어요. 저는 제가 17살 때까지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거든요. 물론 살아 남으려 애쓰긴 했지만요. 어쨌든 전쟁은 끝나긴 한 것 같은데 저는 아직도 그때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다들 마저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원래 꿈꿨던 것을 이루기 위해 제각기 할 일을 하는데 저는 뭔가··· 그냥 전 계속 거기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동시에 무력해지고 대체 뭘 위해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전에는 볼드모트를 없애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

"그리고 이제야 실감이 나서요. 제가 그토록 아끼던 존재들이 떠났다는 것을요."

"······."

 

 

무뎌진 것인지 말하는 내내 해리의 입꼬리는 약간 올라가 있었다. 묘한 미소와 함께 허탈함과 그리움을 토해냈다. "그래서 더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저도 제가 이걸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도, 어느 정도는 쉬어도 괜찮잖아요." 꾸짖지도 않았건만 해리는 애써 변명했다. 스네이프는 이전처럼 같잖다는 듯 대꾸해야만 했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배부른 소리만 한다며 가시처럼 반응하고 자리를 떴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언제까지고 멍청할 만큼 용기 있고 굳건할 것만 같던 아이는 지금 몹시도 심신이 지쳐 있었다. 이렇게 유약한 면은 처음 보았다. 족히 100년은 넘게 산 노인 같았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다 나 때문이다. 라고 위로를 해야 할까. 이렇게 뒤늦게?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팔이 해리의 머리 쪽으로 뻗어졌다. 손끝이 머리칼 끝에 닿을 듯이 위태로웠다.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죄인이다. 손을 거두고 날카롭게 대꾸했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네···?"

 

 

해리가 자세를 바로 했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나더러 죄책감을 좀 가지라는 소리로 들렸는데."

"아뇨, 저는 절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에요. 왜 그렇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저 그리워할 뿐이라고요."

"해리 포터."

 

 

불편하리만치 가슴이 따가웠다. 또 다시 비수를 꽂는 일이 두렵다. 저 눈이 곧 취하게 될 태도를 상상해 보니 제법 가슴이 아팠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 포터가 아니라 저 자신이었다.

 

 

"정신 차려라, 네 앞에 누가 앉아 뻔뻔스럽게 숨을 쉬고 있는지 말이다."

"스네이프, 나는-"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누구 때문에 죽었지?"

"······."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시리우스 블랙은? 하물며 리무스 루핀은. 아, 위즐리 쌍둥이도 있군. 둘 중 누가 죽었더라."

 

 

해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살이 내려 날카로워진 턱선은 불툭 불거져 있었고 눈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래, 그렇게 상처 받아라. 상처 받아서 나를 밀어내. 나를 미워해. 차라리 마음껏 원망하고 분노하며 그렇게 살아라. 그걸 원동력으로 삼아. 자신이 만든 모습임에도 보기가 싫었다. 이런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반면 해리는 잊고 있었던 지난 울분이 올라왔다. 누굴 원망할 힘도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실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럴 마음도 없다 생각했는데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사내에 해리는 이를 악물었다. "자꾸 미운 말 하지 마세요." 애써 몰아치는 감정을 짓누르며 말했다. 그럴수록 분통이 터지는 건 스네이프였다. 겨우 꺼낸다는 말이 고작 미운 말 하지 말라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잠깐 휘청였고 그걸 해리가 손목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 당긴 덕분에 넘어지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스네이프가 재빨리 그 손을 뿌리쳤다. "아직도 멍청하기 짝이 없군. 이제 그냥 터뜨리는 게 어떠냐. 그렇게 네 스스로를 죽이는 대신 그동안 묵혀왔던 감정을 차라리 있는 대로 쏟아내란 말이다. 너의 그 소중한 존재들을 다 죽여버린 나에게! 아니면 정말 일부러 그러는 건가? 스스로 네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기만을 바란 건가?" 어정쩡하게 앉아있던 해리가 결국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왜 자꾸 마음대로 생각해요?! 옛날부터 그러셨죠,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거!" 웃기지도 않다. 옛날 같았으면 코웃음을 쳤을 일이었을 텐데 지금은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저를 완전히 미워하게 되면, 바라던 바였지만 그래도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오히려 화를 내는 편이 더 나았다. 세상이 다 끝난 듯 힘 없이 앉아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지금 이렇게 한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얘기한다고 내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까먹지 않길 바란다."

"이제 그만 해요."

"아니, 난 조금 더 얘기해야겠다. 시리우스가 어떻게 죽-"

"그만하라고요!"

 

 

우렁찬 목소리를 타고 마력이 흘러 나와 진동을 일으켰다. 벽에는 실금이 갔고 천장에 달린 화려하고도 우중충한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그때였다. 해리가 두통을 호소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매고는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했다. 숨쉬기가 힘든 듯 꺽꺽거렸는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스네이프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포터." 이젠 한 손으로 제 목을 잡고는 바닥을 기었다. 마력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럼 대체 왜. 그는 짐짓 창백한 안색으로 절뚝이며 걸어가 한쪽 무릎을 굽혔다. "포터, 포터!" 등에 손을 올리니 열이 뜨근뜨근 올라 있었다. 보다 못한 그는 두 손으로 해리의 양 뺨을 잡아 들어 올렸다. "숨 쉬어라. 천천히, 그래. 그렇게." 시선을 맞추고 차분히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숨을 쉬지 못해 힘들어하던 해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한참 만에야 숨통이 트였다. 해리는 그의 팔뚝을 움켜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해댔다. 아. 그가 탄식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정신적 고통에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스네이프는 빠르게 임상적 추론을 해냈다. 몽유병은 아마 이와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뺨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손으로 살며시 훔쳐냈다. 아이의 눈물은 무척 뜨겁고 간지러웠다. "천천히 숨 쉬어라." 더는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에 그는 사뭇 다정스럽게 다독거렸다. 잡힌 팔뚝이 아파왔지만 그건 지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까스로 진정된 해리는 으스러지도록 잡았던 팔뚝을 놓아주고는 대신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제발 미운 말 좀··· 하지 마세요." 약하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할 말을 마쳤다. 스네이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먼저 자리를 피한 것은 해리였다. 옷깃을 놓아주고 자리서 일어났다. "좀 쉬어야겠어요." 폐부를 보였다 생각했는지 스네이프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간 해리는 문을 닫자마자 소음 방지 주문을 외치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시트에 얼굴을 묻은 해리는 지난 일들을 잊으려 애썼다. 난 괜찮아, 괜찮아. 끊임없이 그 말을 외치다 방금 전 스네이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저를 어르던 다정스러운 목소리. 스네이프게서 다정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저를 진정시키던 그 목소리는 너무도 부드러웠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해리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무슨 일을 했으며 저에게서 어떤 것을 빼앗아 갔는지. 하지만 그게 어디 세베루스 스네이프만의 잘못인가. 저처럼 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눈을 감았다.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렀지만 모른 척 했다. 탁. 탁.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누워 있으려 했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얄궂은 얼굴. 천천히 계단을 오르던 그가 멈추어 서서 저를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이 순간. 그리고 풍겨오는 비 내음 속 무화과 향. 해리는 그를 빤히 내려다 봤다. 어쩌면 멀쩡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섰더라면, 내기니에게 물렸던 그때 제 눈을 보고 눈물만 흘리지 않았어도 저는 편안히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그 기억을 보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미워하길 바라죠."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천천히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와 같은 계단에 섰을 때, "난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요. 당신도 그 짓은 그만두고." 팔 하나를 내밀며 마저 말했다. "날 좀 좋아하도록 노력해 봐요." 스네이프는 저에게 내민 팔을 내려다보다 그의 얼굴로 올라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저는 이미 그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어서는 안되는 인간이었다.

 

 

"필요 없다."

"잡아요."

 

 

해리가 고집을 피웠다. 밀어내랬더니 오히려 다가온다.

 

 

"필요 없다고 했어."

"잡으라고요."

"넌 대체···!"

 

 

멀어져 도망치고 싶어도 등 뒤로는 벽 뿐이었다. 밑으로도 위로도 가지 못하고 서서 버티는데 해리가 아예 무너뜨려 버린다. "잡아." 단호함과 함께 훅 끼쳐오는 알파향에 무릎이 꺾이려고 했다. 어제와 같은 일이 생길까 할 수 없이 팔을 잡았다. 잡은 손에는 힘이 하나 실리지 않았지만 해리는 그대로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다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떼고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해리는 손을 들어 그의 방문을 열어주고는 목덜미 언저리로 시선을 돌렸다. 흉터는 그쪽이 아닐 텐데. 빨리 도망치고 싶은데 의아함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숨을 멈췄다. 해리가 그의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숙인 것이다. 코끝이 살결에 스쳤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타고 귀밑과 뺨으로 올라왔다. 숨을 멈췄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혹적이며 치명적인 향을 지니고 있는지 감히 예상할 수 있었다. 무엇이라도 확인하듯 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에게 물었다. "향수 뿌렸어요?" 해리가 잠시 고개를 들더니 반대편 목덜미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드러낸 목덜미로 향을 맡았다. 스네이프는 눈앞에 보이는 어두운 머리카락과 길게 늘어난 목 근육 그리고 너른 어깨가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런 거··· 뿌린 적 없다."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을 들어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냈다. 해리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좀처럼 완벽하지 못했나. 어딘가 멍해진 아이의 눈빛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죄송해요, 저랑은 다른 향이 나서요. 어제 욕실에서 제가 쓰던 제품을 썼을 텐데도. 쉬세요. 필요하면 부르시고요." 해리가 사뭇 미소 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스네이프는 어지러움에 벽에 몸을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이건 그저 알파가 가진 본능일 뿐이다. 오메가의 향을 찾은 알파의 본능. 그는 비척비척 걸어 방으로 들어가 억제제부터 챙겼다.

 

 

"해리! 해리! 거기 없냐?!"

 

 

갑자기 달아오른 열에 세면대 앞에서 찬물로 세안을 하던 해리는 침대 앞 벽난로에서 들린 론 목소리에 재빨리 욕실을 나왔다. 안 쓴 지 오래인 벽난로 안 잿더미가 론의 얼굴로 형상화되었다.

 

 

"안녕, 론."

"거기 있었구나. 아침은 먹었냐? 난 지금 현장 나왔다가 너한테 잠깐 연락한 거야."

"아까 먹었어, 그나저나 현장이라니."

 

 

론이 한숨을 쉬자 잿가루가 뿌옇게 날렸다. 손을 휘휘 젓던 해리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일이야 매일 있긴 한데 오늘은 좀 사건이 컸어. 혹시 저번에 스네이프 공격했던 빅투아르 기억나? 그 자식이 마법부 근처에 나타나서 완전 깽판을 치고 사라졌어!"

 

 

빅투아르는 도망친 죽음을 먹는 자들과 배반한 자들을 찾아내 반드시 죽이고 마는 볼드모트의 수족으로서 유독 스네이프에게 앙심이 깊은 자였다. 내기니 다음으로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자가 바로 빅투아르다. 해리는 벽난로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스네이프를 찾고 있나.

 

 

"다친 사람은? 오러들은 괜찮아?"

"오러들은 괜찮은데 시민 몇 명이 좀 다쳤어. 그 자식 때문에 죽겠다 진짜. 그나저나 스네이프가 안전 가옥에 있다고 하던데, 그 얘기 들었어?"

"나랑 함께 있어."

"그래, 안전 가옥이 너··· 뭐라고?"

 

 

론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해리가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랑 같이 있어, 맥고나걸 교장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론이 짧게 머리를 흔들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너야말로 안전한 거 맞냐?! 너한테 뭐 이상한 짓 안 해?"

"무슨 짓, 완전 괜찮아. 생각보다 그렇게 막 싸우지도 않고."

"난 네가 스네이프랑 있는 게 더 불안한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말해준 바가 있어서 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맺힌 것이 많았던지라 그다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걱정하지 말라 안심시키며 몸 조심하란 당부를 남겼지만 이내 머리카락을 잔뜩 헝클어뜨리고는, "그···." 하고 운을 띄웠다. 제법 눈치가 빨라진 론이 답했다. "복귀에 관해 물으려는 거지?" 한참을 쉬었다. 이제는 정말 슬슬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때도 되었지만 뭣보다 스네이프를 노리는 빅투아르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해리, 조금만 더 쉬는 게 어때. 너 아직-" 해리가 나섰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야. 국장님한테 편지를 좀 써야겠어."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해리를 바라보던 론이 알겠다며 이만 연락을 끊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해리는 침대 끝에 앉아 한숨을 푹 쉬다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제 머릿속에는 빅투아르 대신 스네이프의 새하얀 목덜미가 떠올랐다. 빛이라고는 한 점 받은 바 없는 살빛이었다. 아랫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세게 깨물던 해리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스네이프는 거실 책장에서 꺼내온 책으로 하루를 보냈다. 해리가 가져다준 요깃거리로 배를 채우고 약을 먹었더니 몸이 나른해졌다. 곧바로 침대에 누울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책보다 침대의 유혹이 더 컸다. 가서 누울까. 그러나 유혹에 질 수록 제 기력만 더 떨어질 게 분명해 힘들더라도 자리에 앉아 꿋꿋하게 책장을 넘겼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한 문장도 없었다. 무의미하게 책장만 넘기고 또 넘기고 있을 때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붉어진 하늘을 내다보던 그는 아래층에서 울리는 쿵쿵 소리에 바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소음이 일정하게 울렸다. 방 밖으로 나와 해리의 방부터 살폈다. 안에 없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아래층에 있나 본데 대체 무엇을 하길래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인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나가보니 해리가 벽에 대고 이마를 박고 있었다. 안주머니에 지팡이를 찔러 넣고 가까이 다가갔다. 방에서 뭘 하나 했더니 낮잠을 자고 있었나 보군. 스네이프가 제법 익숙한 손길을 내밀었다. 이마 위로 손을 덮어 벽에 박지 못하게 하고는 천천히 저에게로 몸을 돌리게 했다. 멍한 눈빛의 해리가 그를 보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이 같은 맑은 미소에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직도 뜨뜻한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뺨을 쓰다듬으니 해리의 눈에는 곧 눈물이 차올랐다. 이내 또르륵 아래로 떨어지자 그가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뒷목을 잡아 제게로 끌어 당겼다. "괜찮다. 아무 일도 없어. 괜찮아." 해리가 칭얼거리듯 뭐라 꿍얼거리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아이처럼 안겨 왔다.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이끄는 대로 따라가던 해리는 그의 옆에 앉았다가 아예 얄팍한 무릎을 베고 누웠다. 스네이프는 울지 않기를 바라며 머리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쳤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함부로 건넬 수 없을 없어서 갑갑하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 아이를 좀 봐.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그때였다. 거실 입구 쪽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싶더니 저와 똑같이 생긴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꺼내 다시 치켜들었다. 누구지? 빅투아르가 폴리주스를 마신 건가? 그러나 아무리 폴리주스를 마셨다 한들 이 집은 강한 결계가 쳐져 있어 불법 침입자를 구분해 낼 줄 안다. 그러니까 오류를 일으킬 확률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갑자기 나타난, 저와 꼭 닮은 사내 또한 놀란 기색으로 그와 해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었다. "타임 터너인가?" 스네이프가 물었다. 그러나 타임터너는 마법부에서 벌어진 죽음을 먹는 자들과의 전투에서 모두 파괴되고 말았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모양도 조금 달랐다. 저걸 직접 만들었나. 느껴지는 마력과 눈빛을 보아하니 확실히 저 아닌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담 왜 내가.

 

 

"그래."

"왜지? 그걸 만들어야만 했었던 이유가 있었나."

 

 

그의 시선이 누워있는 해리에게로 닿았다. 스네이프는 보호하듯 손으로 해리의 뺨을 감쌌다.

 

 

"지켜야 하니까."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물어도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난 그래야만 해." 스네이프가 다시 묻기도 전에 그가 타임 터너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사라지는 사내의 배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배가 불러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배가.















해리포터
스네이프
해리스네

 
2024.05.06 19:51
ㅇㅇ
모바일
헉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임신한채 타임터너 만든거지 ...!
[Code: 8e5a]
2024.05.06 20:45
ㅇㅇ
모바일
및.친. 미래에서 온 해리 아이를 가진 스네이프!?!?!?
[Code: 0b7d]
2024.05.06 20:46
ㅇㅇ
모바일
론 위험에 처한 사람은 여러모로 교수님이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0b7d]
2024.05.06 23: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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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미래에 임신 확정인 교수님ㅋㅋㅋ 해리 밤마다 오는거 받아주랴 배부른 몸으로 해리지키랴 이리저리 굴려지겠네 하 앞으로가 너무 기대된다!
[Code: 8eae]
2024.05.07 01:20
ㅇㅇ
모바일
내센세 오셨다ㅠㅠㅠㅠ 스크롤 내리는게 아까워서 울면서 봄 하 진짜 너무 행복했어 센세 기다릴게ㅠㅠㅠㅠㅠㅠ
[Code: f131]
2024.05.07 01:54
ㅇㅇ
모바일
아니 ㅁㅊ 마지막 보고 다 까먹음 교수님 결국 해리 애 임신하는구나!!!!! 센세 최고야 사랑해....
[Code: b088]
2024.05.07 02: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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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튀 임신튀 신나는 노래~🎵🎶
[Code: 874d]
2024.05.07 05: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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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가 왔구나~~~~~~ 나 지금 진짜 너무 행복해 역시 난 센세가 어나더를 가지고 올줄 알았어 정말 고마워 오늘도 너무 재밌었어!!!! 미래의 세브가 임신이라니 너무 행복해ㅠㅜ!!!! 빨리 보고싶다 임신한 과정..///
[Code: d597]
2024.05.08 00: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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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자기 전에 넘 행복해
[Code: d121]
2024.05.09 23: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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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터너까지 등장하다니...!!!
[Code: 9aaf]
2024.05.11 22: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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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임신이라니ㅎㅎㅅㅎㅎㅎㅎ너무좋다
[Code: ebd3]
2024.05.12 04: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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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난 센세가 올줄 알았어 진짜진짜 너무 고마워 어서 세브가 임신튀?를 하는 모습도 보고싶당~~~~~!!!!♡♡♡
[Code: a934]
2024.05.19 00: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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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삼나더 들고 오고있지...ㅠㅠㅜ 나 기다릴게!!!ㅠㅜ 사랑해
[Code: 2c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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