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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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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계 아닌 궁중물
과거의 이야기 2
그로부터 며칠후에 강징은 태후가 기거하는 자녕궁에 문안 인사를 들러갔다가 해귀인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어. 해귀인은 황제가 등극전에 맞이한 시첩으로 왕부에서부터 함께 한 이라 황제의 존중을 받는 후궁이었음. 한미한 가문의 서녀에 왕부의 시첩 출신이라 품계가 낮았지만 말이야. 강징은 저보다 나이가 열댓살가량 많은데다가 요절한 공주의 생모이기도 한 그녀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거든. 강징이 후궁에서 나이가 제일 어려도 지위가 제일 높은데다 황제와 태후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비빈들의 은근한 질시를 받고 있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음. 물론 황제가 비빈들간의 쟁총으로 인한 다툼을 끔찍하게 싫어하는지라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지만. 태후가 해귀인의 손등을 토닥이며 연치가 적지 않은데 회임을 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함. 해귀인이 이번이 첫회임도 아니고 폐하와 태후마마께서 살뜰히 보살펴주시니 순산을 할것이라며 웃었음. 그러고는 폐하께서 저녁에 제 궁에 오신다하여 이만 물러가보겠다고 하고 물러남. 그녀는 문앞에서 마주친 강징에게는 예법대로 인사를 하긴 했으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채였음. 강징은 애써 웃는 낯으로 해귀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넴. 해귀인이 대뜸 마마께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며 속을 긁었음. 아직 시침을 들지 않은 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러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했어. 강징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신경을 써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자 피식 웃고는 그만 물러가보겠다며 자리를 뜸.
강징은 자녕궁으로 들어가기전에 옷 매무새를 바로 하고 안으로 들어와 태후에게 절을 올렸어. 태후가 해귀인을 대할때와는 다르게 웃는 낯으로 강징을 대하며 직접 손을 붙잡아 자리에서 일으킴. 상궁에게 귀비가 좋아하는 차와 연자떡을 내오라고 분부한 다음에 옆자리에 앉히고는 얼굴을 찬찬히 살핌. 태후가 아직도 부어있는 눈을 보고는 못마땅한듯 어찌 울었느냐며 해귀인의 회임 소식을 듣고 속이 상해서 운것이냐고 물어보았어. 그 말에 강징이 고개를 푹 숙이고 신첩이 못나서 투기를 하였다고 송구하다고 하는데 태후가 한숨을 쉬더니 투기를 할게 무에 있냐며 야단을 침. 해귀인이 설령 이번에 황자를 낳더라도 훗날 귀비 네가 낳을 공주보단 귀하지 않을것이라고 말이야. 강징이 그 말에 더욱 침울해져서 아직 폐하의 시침조차 못 든 몸으로 어찌 자식을 바라겠냐는데 태후가 아직 나이가 어리니 벌써부터 조바심을 낼것 없다고 달램. 황제가 너를 지나치게 귀애하다보니 네가 성년이 될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징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함. 강징이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데 태후가 그런 강징이 사랑스러운듯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음. 아가, 넌 웃는게 가장 예쁘단다. 그러니 앞으론 웃는 모습만 보여다오. 태후는 강징을 제 친자식처럼 예뻐했는데 그건 강징이 존귀한 가문 출신인것도 한몫했음. 게다가 태후는 강징의 외가인 미산 우씨의 방계 출신으로 사사롭게 따지면 강징과는 친족이었거든. 태후가 너는 복이 많은 관상이니 자손이 많을것이다 필시 네가 낳은 아이가 장차 고소의 황통을 이을것이라고 지금은 비록 후궁에 불과하지만 앞일은 모르는 법이라고 함. 태후는 자신이 그랬듯이 제 친족인 강징이 황제의 후손을 낳아주길 바라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음. 강징은 황후 자리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은애하는 낭군의 아이를 품에 안은 저를 생각하니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음.
강징은 해귀인의 회임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술 대신 차를 연거푸 마시다가 상석에 앉은 황제와 눈을 마주치고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임. 벌써 나흘째 몸이 아프단 핑계로 방문을 계속 거절하고 있으니 제 속내가 어떤지 알아차렸을테지. 귀비씩이나 되어서 투기를 한다고 눈밖에 나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제 궁에서 황제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음. 황제가 다른 비빈들과 밤을 보내는게 당연한데도 다른 여인을 안을 낭군을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어. 강징은 마음이 답답해서 연회 중간에 밖으로 나와서 회랑을 거닐다가 회랑의 중정에 웬 사내아이가 중년의 여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봄. 옆을 지키고 있던 상궁에게 처음 보는 아이인데 폐하의 생질이냐고 물었다가 아드님이라는 말을 듣고 눈이 커다래졌음. 황제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다는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 올해로 열한살이 된 황제의 장자는 후사가 없는 친왕의 양자로 출계한터라 슬하에 황통을 이을 후사가 없었거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상궁이 주위를 살피더니 이만 들어가보셔야 할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묻지 못했음. 강징은 연회가 파하고 나서 승건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상궁에게 아까 보았던 아이에 대해 캐물었어. 상궁이 다른 궁인들을 모두 물리고나서 혹시라도 바깥에 말이 새어나갈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주었음. 황제가 친왕이던 시절에 죄인 신분의 여인을 진심으로 은애하게 되어 선대 황제와 태후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야합을 통해 자식을 얻었다는 것. 장자가 다른 친왕의 후사로 출계한 이고 조금전에 보았던 아이가 차자라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낌. 이미 다른 친왕의 아들로 입적된 장자는 그렇다치고 차자는 왜 황궁밖에서 키우는건지 의문이 들었지. 상궁이 그런 강징의 생각을 읽은건지 고소는 모친의 신분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데 죄인을 어미로 두어 폐하의 아들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함. 그래서 궁 밖에 있는 잠저에서 양육되어지고 있다고 하곤 태후마마께선 폐하의 아드님들을 무척 싫어하시니 태후마마의 앞에서 절대 언급하시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어.
강징은 침상에 웅크리고 누워서 상궁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계속 곱씹음. 죄인의 여식도 아니고 죄인을 부인으로 맞이할 정도면 자신이 가진 모든걸 버릴 각오를 했을거야.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은애했으니 모든걸 버릴 생각을 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참아왔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짐.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황제의 마음을 가질수는 없겠구나 싶어 크게 낙담을 함. 이미 죽은 이를 무슨 수로 이긴다는 말인가. 강징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흐느껴 울었어. 제가 궁에 들어온지 이레쯤 되었을때 잠저에 유폐되어 있던 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 그날 황제가 돌산에 몸을 숨기고 울고 있었던게 단현(금슬의 줄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아내가 죽음을 이르는 말)의 슬픔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돌덩이로 가슴을 마구 짓이기는 것만 같았어. 은애하는 이와 백년해로를 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영영 이별을 할수밖에 없었던 황제가 가엾고 부친과 떨어져 궁밖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불쌍했음. 강징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바보같긴 하고 중얼거림. 제 주제에 누굴 동정하는건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어. 눈물이 사치에 불과한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만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음. 강징이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침상에 드리운 휘장을 걷다가 황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뻔함. 황제가 굳은 얼굴로 왜 울고 있었냐고 물었는데 강징이 신첩이 가을을 타는지 괜히 눈물이 난다는 핑계로 대충 무마하려고 함. 강징이 억지로 웃으며 해귀인과 함께 계실줄 알았다고 승건궁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고 물음. 그랬더니 황제가 평소와는 다르게 짐이 못올데라도 왔느냐고 언짢아하는데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임. 황제가 강징의 반응을 보고 아차싶었는지 아징 네 생각이 나서 온거라고 그리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이리 오라며 손목을 붙잡음. 그리고 황제가 승건궁의 상궁을 불러 술을 가져오라고 명함.
황제가 아무런 말없이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데 강징이 옆에서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손을 붙잡으며 만류했음. 폐하 약주가 과하십니다. 황제가 그제야 술잔을 멀리 치우고는 이리 더 가까이 오라며 강징을 끌어당김. 그리고는 달아오른 얼굴로 강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손으로 젖은 눈가를 매만지는데 그 손길이 왜인지 야릇하게만 느껴져서 심장이 쿵쿵 빠르게 뜀. 짐이 널 속상하게 만들었느냐?하고 묻기에 강징이 고개를 도리질치고는 신첩의 욕심이 과해서 그런거라고 대답했음. 황제가 욕심?하고 되묻는데 강징이 은애하는 이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냐며 신첩은 유독 그 욕심이 과한것이라고 말함. 황제가 웃으며 짐을 은애하느냐고 묻는데 강징이 지아비이시니 은애하는게 당연하단 말을 했다가 콧등을 톡 치는 바람에 움찔함. 이젠 너까지 입에 발린 소릴하는구나. 그 말을 듣고나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것마냥 눈물이 주르륵 흐름. 황제가 당황해서 또 왜 우느냐? 농을 한것인데 마음이 상했느냐며 달래려고 하는데 말없이 품에 안겨들었어. 강징은 용포를 꾹 쥐고는 폐하 신첩이 어린애처럼 구는게 싫으시지요? 신첩도 다른 비빈들처럼 품행이 방정하고 기예에 능했으면 좋았을터인데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된다고 한탄을 했어. 황제가 등을 토닥이다가 누가 뭐라고 했느냐? 모후께서 야단이라도 치셨어? 짐은 네가 철없이 구는게 좋단다. 그러니 울지 말아라. 네가 울면 짐의 가슴이 찢어질듯 하다며 달램. 강징이 겹쳤던 몸을 떼어내곤 눈썹에 눈물을 대롱대롱 단채 웃으면서 신첩을 귀애하십니까? 하고 물었음. 황제가 눈가를 다정히 쓸어주고는 그래하더니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고는 갑자기 입을 맞춰옴. 강징이 갑작스러운 접문에 굳어버리는데 어린 애들 장난같은 입맞춤이 아니라 입안으로 혀가 들어와 엉망으로 휘젓고 얽히는 그런 농염한 접문이었어. 황제가 잠시후에 겹쳤던 입술을 떼내자마자 강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가림. 황제 역시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는지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어. 강징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손으로 부채질하다가 목이 타는지 술잔에 있는 술을 한번에 들이킴. 독한 술을 급하게 들이킨 탓에 사레가 들려 괴로워하는데 황제가 등을 두드리며 밖에 있는 궁인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이름.
그날 밤 강징은 침상에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옆자리에 누운 황제를 힐끔 쳐다보았음. 그리고는 아직도 믿기지 않은듯이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매만졌음. 황제가 저를 마냥 아이처럼 생각하는것 같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보니 그건 아닌듯 했어. 태후의 말처럼 저를 귀애해서 성년이 되길 기다리고 있는거면 좋으련만. 강징이 작게 한숨을 쉬자 황제가 잠이 안오는거냐고 말을 걸어옴. 그러는 폐하께서는 왜 안주무시냐고 웃으니 아징 네가 하도 뒤척여서 잠이 달아났다고 말함. 그러고는 강징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일찍 자야 키가 크지하고 또 어린아이 대하듯 대함. 그 말에 툴툴거리며 지금보다 키가 더 크면 보기 흉할지도 모른다니까 키가 커도 어여쁠거라고 말하는게 아니겠음. 강징이 웃다가 황제의 품에 안기면서 키가 커졌다고 소박을 놓으시면 안된다고 함. 황제가 그럴 일은 없으니 얼른 자거라하고 등을 토닥이기에 약조하셔야 한다고 웅얼거리고 가물가물거리는 눈을 감음. 이튿날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눈을 떴을때 옆에 황제는 없었어. 평소였다면 빈자리를 보고 울적해했을테지만 오늘은 어제의 일로 기분이 몹시 좋았음. 강징의 소세를 하고 상궁의 도움으로 치장을 하는데 평소엔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잘하지도 않은 머리 장식도 여러개 꽂음. 지나치게 붉은게 싫다며 바르지 않던 입술 연지를 손에 묻혀 바르다가 말고 상궁을 보며 멋쩍게 웃음. 폐하께서 좋아하실까? 상궁이 그런 강징을 보고 마마께서 무얼 하시든 폐하께선 좋아하실거라고 함. 그 말에 해사하게 웃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지. 강징이 흥얼거리며 연지를 마저 바르고 자리에서 일어남.
강징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황궁의 정원을 거닐었음. 해귀인과 해귀인과 가까운 사이인 무상재가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강징을 발견하고 멀찍이서 인사를 올림. 강징은 그들이 몹시 불편했지만 다른 비빈들과 척을 져서 좋을게 없다는것을 알았음. 그래서 그 곁으로 다가가 시간이 나면 승건궁으로 가서 차나 한잔하게 하고 권유를 했는데 해귀인이 폐하께서 제 궁에서 진선을 드신다하여 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에둘러 거절을 함. 무상재는 태후께 문안을 올리러 가는 중이었다고 거절을 하는 통에 무안해짐. 강징이 그럼 다음에 시간이 나거든 승건궁에 한번 들리라고 말하곤 돌아서려고 했음. 무상재가 일부러 들으라는듯 해귀인께서는 폐하의 탄일에 무엇을 드리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을 건넸어. 해귀인이 재주가 일천하여 자수나 놓아드리려고 한다는 말에 무상재가 이번에는 기필코 폐하께 황자를 안겨드리세요 그만한 선물이 어딨겠냐고 웃었음. 무상재가 귀비마마께서는 무엇을 해드리려고 하십니까? 하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묻기에 딱히 생각해둔게 없어서 우물쭈물함. 무상재가 마마의 고향인 운몽에는 연꽃이 많이 핀다지요? 채련곡과 함께 춤을 춰드리면 어떻겠냐는데 채련곡이라는 말에 솔깃해짐. 강징이 그 말을 듣고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이만 가보아야겠다고 급하게 자리를 뜸. 해귀인이 무상재를 보고 자네도 참 어찌 그런 망측한 노래를 권하냐며 타박을 하는데 무상재가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어. 무엇 하나 잘난게 없는데 출신 성분이 고귀하다는 이유로 귀비 자리에 오른게 아니꼬와서 그럽니다. 설마 폐하의 탄일에 채련곡을 부르기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춤을 한번도 배운적이 없는 이니 탄일까진 전부 익히지 못할겁니다. 폐하께오선 경박한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는데 귀비가 설마 남녀간의 상사에 대해 노래할리가 없지요. 해귀인이 삐뚜름하게 웃으며 남총이나 다를바가 없는것이 기고만장한게 못마땅했는데 이번 일로 크게 망신을 당하고 나면 제 위치가 어떤지 깨닫게 되겠지 하고 배를 쓰다듬었음.
청형군강징 망기강징 망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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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이야기 2
그로부터 며칠후에 강징은 태후가 기거하는 자녕궁에 문안 인사를 들러갔다가 해귀인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어. 해귀인은 황제가 등극전에 맞이한 시첩으로 왕부에서부터 함께 한 이라 황제의 존중을 받는 후궁이었음. 한미한 가문의 서녀에 왕부의 시첩 출신이라 품계가 낮았지만 말이야. 강징은 저보다 나이가 열댓살가량 많은데다가 요절한 공주의 생모이기도 한 그녀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거든. 강징이 후궁에서 나이가 제일 어려도 지위가 제일 높은데다 황제와 태후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비빈들의 은근한 질시를 받고 있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음. 물론 황제가 비빈들간의 쟁총으로 인한 다툼을 끔찍하게 싫어하는지라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지만. 태후가 해귀인의 손등을 토닥이며 연치가 적지 않은데 회임을 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함. 해귀인이 이번이 첫회임도 아니고 폐하와 태후마마께서 살뜰히 보살펴주시니 순산을 할것이라며 웃었음. 그러고는 폐하께서 저녁에 제 궁에 오신다하여 이만 물러가보겠다고 하고 물러남. 그녀는 문앞에서 마주친 강징에게는 예법대로 인사를 하긴 했으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채였음. 강징은 애써 웃는 낯으로 해귀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넴. 해귀인이 대뜸 마마께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며 속을 긁었음. 아직 시침을 들지 않은 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러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했어. 강징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신경을 써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자 피식 웃고는 그만 물러가보겠다며 자리를 뜸.
강징은 자녕궁으로 들어가기전에 옷 매무새를 바로 하고 안으로 들어와 태후에게 절을 올렸어. 태후가 해귀인을 대할때와는 다르게 웃는 낯으로 강징을 대하며 직접 손을 붙잡아 자리에서 일으킴. 상궁에게 귀비가 좋아하는 차와 연자떡을 내오라고 분부한 다음에 옆자리에 앉히고는 얼굴을 찬찬히 살핌. 태후가 아직도 부어있는 눈을 보고는 못마땅한듯 어찌 울었느냐며 해귀인의 회임 소식을 듣고 속이 상해서 운것이냐고 물어보았어. 그 말에 강징이 고개를 푹 숙이고 신첩이 못나서 투기를 하였다고 송구하다고 하는데 태후가 한숨을 쉬더니 투기를 할게 무에 있냐며 야단을 침. 해귀인이 설령 이번에 황자를 낳더라도 훗날 귀비 네가 낳을 공주보단 귀하지 않을것이라고 말이야. 강징이 그 말에 더욱 침울해져서 아직 폐하의 시침조차 못 든 몸으로 어찌 자식을 바라겠냐는데 태후가 아직 나이가 어리니 벌써부터 조바심을 낼것 없다고 달램. 황제가 너를 지나치게 귀애하다보니 네가 성년이 될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징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함. 강징이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데 태후가 그런 강징이 사랑스러운듯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음. 아가, 넌 웃는게 가장 예쁘단다. 그러니 앞으론 웃는 모습만 보여다오. 태후는 강징을 제 친자식처럼 예뻐했는데 그건 강징이 존귀한 가문 출신인것도 한몫했음. 게다가 태후는 강징의 외가인 미산 우씨의 방계 출신으로 사사롭게 따지면 강징과는 친족이었거든. 태후가 너는 복이 많은 관상이니 자손이 많을것이다 필시 네가 낳은 아이가 장차 고소의 황통을 이을것이라고 지금은 비록 후궁에 불과하지만 앞일은 모르는 법이라고 함. 태후는 자신이 그랬듯이 제 친족인 강징이 황제의 후손을 낳아주길 바라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음. 강징은 황후 자리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은애하는 낭군의 아이를 품에 안은 저를 생각하니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음.
강징은 해귀인의 회임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술 대신 차를 연거푸 마시다가 상석에 앉은 황제와 눈을 마주치고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임. 벌써 나흘째 몸이 아프단 핑계로 방문을 계속 거절하고 있으니 제 속내가 어떤지 알아차렸을테지. 귀비씩이나 되어서 투기를 한다고 눈밖에 나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제 궁에서 황제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음. 황제가 다른 비빈들과 밤을 보내는게 당연한데도 다른 여인을 안을 낭군을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어. 강징은 마음이 답답해서 연회 중간에 밖으로 나와서 회랑을 거닐다가 회랑의 중정에 웬 사내아이가 중년의 여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봄. 옆을 지키고 있던 상궁에게 처음 보는 아이인데 폐하의 생질이냐고 물었다가 아드님이라는 말을 듣고 눈이 커다래졌음. 황제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다는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 올해로 열한살이 된 황제의 장자는 후사가 없는 친왕의 양자로 출계한터라 슬하에 황통을 이을 후사가 없었거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상궁이 주위를 살피더니 이만 들어가보셔야 할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묻지 못했음. 강징은 연회가 파하고 나서 승건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상궁에게 아까 보았던 아이에 대해 캐물었어. 상궁이 다른 궁인들을 모두 물리고나서 혹시라도 바깥에 말이 새어나갈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주었음. 황제가 친왕이던 시절에 죄인 신분의 여인을 진심으로 은애하게 되어 선대 황제와 태후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야합을 통해 자식을 얻었다는 것. 장자가 다른 친왕의 후사로 출계한 이고 조금전에 보았던 아이가 차자라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낌. 이미 다른 친왕의 아들로 입적된 장자는 그렇다치고 차자는 왜 황궁밖에서 키우는건지 의문이 들었지. 상궁이 그런 강징의 생각을 읽은건지 고소는 모친의 신분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데 죄인을 어미로 두어 폐하의 아들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함. 그래서 궁 밖에 있는 잠저에서 양육되어지고 있다고 하곤 태후마마께선 폐하의 아드님들을 무척 싫어하시니 태후마마의 앞에서 절대 언급하시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어.
강징은 침상에 웅크리고 누워서 상궁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계속 곱씹음. 죄인의 여식도 아니고 죄인을 부인으로 맞이할 정도면 자신이 가진 모든걸 버릴 각오를 했을거야.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은애했으니 모든걸 버릴 생각을 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참아왔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짐.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황제의 마음을 가질수는 없겠구나 싶어 크게 낙담을 함. 이미 죽은 이를 무슨 수로 이긴다는 말인가. 강징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흐느껴 울었어. 제가 궁에 들어온지 이레쯤 되었을때 잠저에 유폐되어 있던 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 그날 황제가 돌산에 몸을 숨기고 울고 있었던게 단현(금슬의 줄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아내가 죽음을 이르는 말)의 슬픔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돌덩이로 가슴을 마구 짓이기는 것만 같았어. 은애하는 이와 백년해로를 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영영 이별을 할수밖에 없었던 황제가 가엾고 부친과 떨어져 궁밖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불쌍했음. 강징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바보같긴 하고 중얼거림. 제 주제에 누굴 동정하는건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어. 눈물이 사치에 불과한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만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음. 강징이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침상에 드리운 휘장을 걷다가 황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뻔함. 황제가 굳은 얼굴로 왜 울고 있었냐고 물었는데 강징이 신첩이 가을을 타는지 괜히 눈물이 난다는 핑계로 대충 무마하려고 함. 강징이 억지로 웃으며 해귀인과 함께 계실줄 알았다고 승건궁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고 물음. 그랬더니 황제가 평소와는 다르게 짐이 못올데라도 왔느냐고 언짢아하는데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임. 황제가 강징의 반응을 보고 아차싶었는지 아징 네 생각이 나서 온거라고 그리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이리 오라며 손목을 붙잡음. 그리고 황제가 승건궁의 상궁을 불러 술을 가져오라고 명함.
황제가 아무런 말없이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데 강징이 옆에서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손을 붙잡으며 만류했음. 폐하 약주가 과하십니다. 황제가 그제야 술잔을 멀리 치우고는 이리 더 가까이 오라며 강징을 끌어당김. 그리고는 달아오른 얼굴로 강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손으로 젖은 눈가를 매만지는데 그 손길이 왜인지 야릇하게만 느껴져서 심장이 쿵쿵 빠르게 뜀. 짐이 널 속상하게 만들었느냐?하고 묻기에 강징이 고개를 도리질치고는 신첩의 욕심이 과해서 그런거라고 대답했음. 황제가 욕심?하고 되묻는데 강징이 은애하는 이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냐며 신첩은 유독 그 욕심이 과한것이라고 말함. 황제가 웃으며 짐을 은애하느냐고 묻는데 강징이 지아비이시니 은애하는게 당연하단 말을 했다가 콧등을 톡 치는 바람에 움찔함. 이젠 너까지 입에 발린 소릴하는구나. 그 말을 듣고나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것마냥 눈물이 주르륵 흐름. 황제가 당황해서 또 왜 우느냐? 농을 한것인데 마음이 상했느냐며 달래려고 하는데 말없이 품에 안겨들었어. 강징은 용포를 꾹 쥐고는 폐하 신첩이 어린애처럼 구는게 싫으시지요? 신첩도 다른 비빈들처럼 품행이 방정하고 기예에 능했으면 좋았을터인데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된다고 한탄을 했어. 황제가 등을 토닥이다가 누가 뭐라고 했느냐? 모후께서 야단이라도 치셨어? 짐은 네가 철없이 구는게 좋단다. 그러니 울지 말아라. 네가 울면 짐의 가슴이 찢어질듯 하다며 달램. 강징이 겹쳤던 몸을 떼어내곤 눈썹에 눈물을 대롱대롱 단채 웃으면서 신첩을 귀애하십니까? 하고 물었음. 황제가 눈가를 다정히 쓸어주고는 그래하더니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고는 갑자기 입을 맞춰옴. 강징이 갑작스러운 접문에 굳어버리는데 어린 애들 장난같은 입맞춤이 아니라 입안으로 혀가 들어와 엉망으로 휘젓고 얽히는 그런 농염한 접문이었어. 황제가 잠시후에 겹쳤던 입술을 떼내자마자 강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가림. 황제 역시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는지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어. 강징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손으로 부채질하다가 목이 타는지 술잔에 있는 술을 한번에 들이킴. 독한 술을 급하게 들이킨 탓에 사레가 들려 괴로워하는데 황제가 등을 두드리며 밖에 있는 궁인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이름.
그날 밤 강징은 침상에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옆자리에 누운 황제를 힐끔 쳐다보았음. 그리고는 아직도 믿기지 않은듯이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매만졌음. 황제가 저를 마냥 아이처럼 생각하는것 같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보니 그건 아닌듯 했어. 태후의 말처럼 저를 귀애해서 성년이 되길 기다리고 있는거면 좋으련만. 강징이 작게 한숨을 쉬자 황제가 잠이 안오는거냐고 말을 걸어옴. 그러는 폐하께서는 왜 안주무시냐고 웃으니 아징 네가 하도 뒤척여서 잠이 달아났다고 말함. 그러고는 강징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일찍 자야 키가 크지하고 또 어린아이 대하듯 대함. 그 말에 툴툴거리며 지금보다 키가 더 크면 보기 흉할지도 모른다니까 키가 커도 어여쁠거라고 말하는게 아니겠음. 강징이 웃다가 황제의 품에 안기면서 키가 커졌다고 소박을 놓으시면 안된다고 함. 황제가 그럴 일은 없으니 얼른 자거라하고 등을 토닥이기에 약조하셔야 한다고 웅얼거리고 가물가물거리는 눈을 감음. 이튿날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눈을 떴을때 옆에 황제는 없었어. 평소였다면 빈자리를 보고 울적해했을테지만 오늘은 어제의 일로 기분이 몹시 좋았음. 강징의 소세를 하고 상궁의 도움으로 치장을 하는데 평소엔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잘하지도 않은 머리 장식도 여러개 꽂음. 지나치게 붉은게 싫다며 바르지 않던 입술 연지를 손에 묻혀 바르다가 말고 상궁을 보며 멋쩍게 웃음. 폐하께서 좋아하실까? 상궁이 그런 강징을 보고 마마께서 무얼 하시든 폐하께선 좋아하실거라고 함. 그 말에 해사하게 웃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지. 강징이 흥얼거리며 연지를 마저 바르고 자리에서 일어남.
강징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황궁의 정원을 거닐었음. 해귀인과 해귀인과 가까운 사이인 무상재가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강징을 발견하고 멀찍이서 인사를 올림. 강징은 그들이 몹시 불편했지만 다른 비빈들과 척을 져서 좋을게 없다는것을 알았음. 그래서 그 곁으로 다가가 시간이 나면 승건궁으로 가서 차나 한잔하게 하고 권유를 했는데 해귀인이 폐하께서 제 궁에서 진선을 드신다하여 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에둘러 거절을 함. 무상재는 태후께 문안을 올리러 가는 중이었다고 거절을 하는 통에 무안해짐. 강징이 그럼 다음에 시간이 나거든 승건궁에 한번 들리라고 말하곤 돌아서려고 했음. 무상재가 일부러 들으라는듯 해귀인께서는 폐하의 탄일에 무엇을 드리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을 건넸어. 해귀인이 재주가 일천하여 자수나 놓아드리려고 한다는 말에 무상재가 이번에는 기필코 폐하께 황자를 안겨드리세요 그만한 선물이 어딨겠냐고 웃었음. 무상재가 귀비마마께서는 무엇을 해드리려고 하십니까? 하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묻기에 딱히 생각해둔게 없어서 우물쭈물함. 무상재가 마마의 고향인 운몽에는 연꽃이 많이 핀다지요? 채련곡과 함께 춤을 춰드리면 어떻겠냐는데 채련곡이라는 말에 솔깃해짐. 강징이 그 말을 듣고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이만 가보아야겠다고 급하게 자리를 뜸. 해귀인이 무상재를 보고 자네도 참 어찌 그런 망측한 노래를 권하냐며 타박을 하는데 무상재가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어. 무엇 하나 잘난게 없는데 출신 성분이 고귀하다는 이유로 귀비 자리에 오른게 아니꼬와서 그럽니다. 설마 폐하의 탄일에 채련곡을 부르기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춤을 한번도 배운적이 없는 이니 탄일까진 전부 익히지 못할겁니다. 폐하께오선 경박한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는데 귀비가 설마 남녀간의 상사에 대해 노래할리가 없지요. 해귀인이 삐뚜름하게 웃으며 남총이나 다를바가 없는것이 기고만장한게 못마땅했는데 이번 일로 크게 망신을 당하고 나면 제 위치가 어떤지 깨닫게 되겠지 하고 배를 쓰다듬었음.
청형군강징 망기강징 망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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