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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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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테일러는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시차 적응과 위스키의 여파가 남아 머리가 몽롱했다. 그는 기지개를 켜며 앉아 어젯밤의 혼란을 떨쳐내려 했다. 하마—닉뎅이였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카펫은 말랐고, 물이나 진흙 자국도 없었으며 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역시 그냥 꿈이었겠지.” 

테일러는 자기 자신에게 중얼거리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니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같은 건가. 말도 안 되게 ‘에피스키’를 외치면 상처가 아물고, ‘아바다 케다브라’ 한 번으로 누군가가 즉사하는 그런.”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어젯밤의 어처구니없는 일을 떠올렸다. 런던 한복판에서 하마라니? 분명히 술기운에 본 이상한 환각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마음을 조금 정리한 그는 오늘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거울 앞에서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던 중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일러? 일어났어?” 

동료인 댄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일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일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응, 들어와.” 

테일러는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잠그며 대답했다. 댄이 들어섰다. 아직 비몽사몽한 그에 비해 훨씬 깔끔해 보이는 채로 서류 더미가 든 폴더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머리카락은 뒤로 깔끔하게 넘겨져 있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넘치는 에너지가 테일러에겐 조금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오늘 회의 전에 몇 가지 논의할 게 있어.” 

댄은 서류를 의자에 던지며 말했다. 

“영국 투자자들이 수정된 포트폴리오를 정오까지 원해. 지난번 예상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어. 마진이 너무 빡빡하다고….”

댄이 얘기를 늘어놓는 동안, 테일러는 반쯤 듣고만 있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하마와 어젯밤의 일들로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보안 카메라 영상을 확인해볼 가치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저 제정신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다 잊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오늘 오후까지 뭔가 확실한 걸 내놓지 않으면 파트너십은 날아갈 거야.” 

댄이 폴더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테일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침 먹고 숫자 다시 맞춰볼게.”

댄은 방을 둘러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근데 네 방 왜 이렇게 습해? 무슨 정글 온 것 같아.”

테일러는 창문을 흘낏 보았다. 여전히 약간의 김이 서려 있었지만, 방은 그 외엔 평범해 보였다.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됐나 봐." 

테일러는 얼버무렸다. 댄은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어나며 말했다. 

“뭐, 아무튼 화장실 좀 써도 돼? 나 급해.”
“어, 그래.” 

테일러는 아직 생각이 절반으로 나뉘어 어제 일과 숫자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댄이 화장실로 사라졌고 테일러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문질렀다. 커피가 절실했다. 그러다 갑자기, 화장실에서 깜짝 놀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게 뭐야?!”

댄의 목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쳤다. 테일러의 심장이 요동쳤다.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이번엔 또 뭐야?!

“무슨 일이야?” 

테일러가 외쳤지만 댄은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당황한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테일러는 화장실 문을 밀치며 열었다. 타일 바닥에서 미끄러질 뻔하면서도 서둘렀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았다.

어젯밤 아무것도 없던 욕조 안에, 물이 절반가량 찬 채로 한 백인 남자가—완전히 벌거벗은 채로—잠들어 있었다. 그의 갈색 머리는 타일에 기대어 있었고 눈은 평화롭게 감겨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기에, 테일러는 그저 입을 벌린 채 서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저, 저 사람 알아?” 

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혼란과 놀람이 뒤섞인 채였다.

“아는 사람이었으면 나도 좋겠어…!” 

테일러는 속삭이듯 외쳤고 심장은 두근거렸다. 

“어떻게 들어온 건지도 몰라!”

욕조 속 남자는 조금씩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 그러더니 눈을 반쯤 뜬 채 빛을 피하려는 듯 천천히 깜빡였다. 옅은 갈색과 초록빛이 섞인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을 반사하며 움직였다. 짙은 쌍꺼풀 사이로는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치 숲 속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테일러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너 뭐야? 도둑이야?!” 

테일러는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욕조 안의 남자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더 많이 몸을 뒤척였고, 천천히 눈을 뜨더니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주인님…”

댄은 테일러 옆에서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 주인님? 미쳤나 이 사람?” 

댄은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웃음은 당황과 혼란이 뒤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욕조에 있는 남자, 아니, 가까이서 보니 이제 소년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은 어렸고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일어나면서 드러나는 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욕조에서 일어나는 그 소년의 하얀 몸에서는 투명한 물이 흘러내렸고, 드러나는 그의 육감적인 가슴과 허벅지는 테일러의 숨을 멎게 만들었다. 그의 피부결은 한 눈에도 매끄러워 보였고, 적당히 자리한 살집이 오히려 보기 좋을 정도였다. 물이 그의 젖은 피부 위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며 그를 더욱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관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테일러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댄은 테일러를 힐끗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도대체 뭐야 테일러?” 

댄은 혼란에 찬 눈으로 테일러를 바라봤다. 그가 왜 이 상황에서 멍하니 서 있는지, 왜 욕조 속 나체의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지 의아해하는 듯했다. 그 순간, 욕조 속 소년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나왔다. 걸음마를 하듯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그의 다리와 시선은 오직 테일러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힘겨운 발걸음으로 테일러에게 다가와 젖은 팔로 그를 껴안았다.

테일러는 몸이 굳은 채 소년의 포옹을 받았다. 소년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그의 옷을 적셨다. 그의 따뜻한 피부는 차가운 두려움과 대조를 이루며 테일러의 온 신경을 마비시켰다.

“나 버리지 마…….” 

소년이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말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그는 더욱더 테일러에게 몸을 붙이며 말했다. 

“내가 잘할게. 제발… 버리지 마.”

테일러는 여전히 얼어붙은 채로 있었다. 나체의 소년은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그를 올려다보며 매달려 있었다. 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 버리지 마. 소년의 말이 아직도 공기 중에 울려 퍼지고 있는듯 했다.

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믿기 어렵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야, 테일러? 나 몰랐던 이상한 취향이라도 있는 거야? 그래도 미성년자는 좀… 아니지 않아?”

테일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뭐? 아니! 절대 아니야! 그는 더듬거리며 소년의 품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나 이 사람 몰라! 진짜로! 이 사람이 그냥… 그냥 마법처럼 나타난 거야!”

댄은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 그래. 욕조에 그냥 나타났다고? 그것도 벌거벗고? 그걸 믿으라고?”

테일러의 맥박이 빨라졌다. 댄의 의심스러운 눈길이 자신을 꿰뚫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는 이 상황이 얼마나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지 알았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설명해야만 했다. 테일러는 소년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그를 밀어내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댄에게 이 상황을 납득시키려 했다.

“들어봐. 난 이 사람이 누군지 정말 몰라. 이건 네가 생각하는 뭐 그런 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어젯밤 내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가정집에서 키우는 하마를 봤어. 근데 그 하마가 밤에 이 호텔방으로 들어온 거야. 나도 미친 소리라는 건 아는데, 근데 진짜였어. 다짜고짜 하마가 들어와서는 저 소파에 철푸덕 앉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갑자기 사라진 거야. 그래서 난 그게 그냥 술기운 때문에 본 환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사람이 나타나서 나한테 ‘주인님’하고 부르잖아—"
“잠깐, 잠깐, 천천히 말해.” 

댄이 그의 말을 끊으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마라고? 테일러, 너 진짜 술 말고 다른 걸 한 거 아니야?”

테일러는 양손을 들며 외쳤다. 

“그러니까! 나도 이게 다 꿈인 줄 알았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리고 지금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겠어!”

마침내 몇 번의 어색한 말다툼과 댄의 짧은 욕설이 오간 후, 테일러는 그가 간밤에 반인륜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납득시켰다. 댄은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넘어가면서도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테일러를 쳐다봤다.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자 테일러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아직도 잔뜩 긴장한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소년을 부드럽게 침대로 안내하며 앉게 했다. 소년은 테일러를 올려다보며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테일러는 침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이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소년과 대화를 나누어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테일러가 말을 꺼내며 침대에 앉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어젯밤... 난 여기서 피그미 하마를 봤어. 그리고 그게 너랑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소년은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테일러는 계속 말했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네가 그 하마였던 거 같아.” 

테일러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말이 얼마나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알았지만, 어젯밤부터 일어난 일들은 그 말보다 더 미친 일이었다. 정말로 댄의 말대로 테일러가 약을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네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뭔지 알아야겠어. 넌... 변신할 수 있는 존재인 거야? 아니면 저주에 걸린 거야? 난 정말 모르겠어.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 애당초 왜 여기로 온 거야?”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몇 초간의 침묵 끝에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원래 이렇게 인간이 아니었어."

테일러의 속이 울렁거렸지만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소년이 계속 이어나갔다.

“나, 나 주인님이 낮에 갔었던 그 집의 남자에게 착취당하고 있었어…” 

소년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는 나를 마치 죽이려는 것처럼 훈련시키면서 키웠어. 나를 애완동물로 키운 게 아니라 에너지를 뽑아내려구…”

테일러는 그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에너지? 무슨 말이야?”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눈을 들지 못했다. 

“그 남자가 날 이용했어. 내가 피그미 하마로 있었을 때, 나를 자기 집에서 물레방아 돌리게 한 거야. 어제는 나 쉬는 날이었거든, 이주에 한 번 쉬는 날이었는데… 근데 그 남자, 대마초 키우는 것 같아. 전기 많이 쓰면 들킬까 봐 도시 전기 안 쓰고 나를 쓴 거야. 그래서 내가 계속 물레방아 돌렸어. 다리가 퉁퉁 붓고, 발바닥에 피가 날 때까지…”

테일러는 다시 입이 떡 벌어졌다. 

“잠깐… 그러니까 넌 일종의… 발전기 같은 걸로 사용된 거야? 불법 대마초 재배를 위해서?”

소년의 어깨가 처졌고, 그는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난 거기 있구 싶지 않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어. 근데 내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건지 이렇게 변할 수 있게 되었어. 인간이 된 거야. 그리고, 그리고 주인님은 내가 인간이 되고 나서 처음 만난 다른 인간이었고, 주인님을 찾아 여기까지 왔어.”

방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테일러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너무 연약해 보였다. 너무나 상처받은 듯했다.

“알겠어. 네 사정은 어떻게든 이해를 해볼게. 근데 그렇다고 해도 왜 나를 찾아왔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냥 우연이었던 거잖아.”

소년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작게 속삭였다. 

“하마의 후각을 무시하지 마. 그리고 주인님이 날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처음으로 희망을 느낀 게 주인님이었단 말이야… 주인님을 보자마자 내 운명이 될 거라 생각했어.”

테일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소년의 목소리에는 진정한 절박함과 진실성이 느껴졌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구원자로 생각하고 있던 걸까? 그 모든 일들이 현실이라면 이 소년은 자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테일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는 대답할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년의 눈빛 속에서는 그 어떤 허구도,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진실된 간절함이 가득했다.

댄은 그동안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무거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잠깐… 그러니까 네 말은, 넌 어떤… 피그미 하마 겸 에너지 발전기로 불법 대마초 농장을 위해 이용되다가, 지금은 인간이 된 거야? 그리고 이제… 뭐? 여기 테일러랑 지내고 싶다는 거야?”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테일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제발.” 

소년은 속삭였다. 

“날 다시 보내지 말아줘. 잘할게. 뭐든지 할게. 제발… 거기로 다시 돌아가게 하지 말아 줘…”








레화블 테잨닉갈
2024.10.01 20: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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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정말 천재인거야?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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