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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16:40
지역단위모름 의술모름 아무것도모름
양주로 가는 길에 함주에 잠깐 들리기로 했다.
장강성에서 쇄빙환을 해독해 준 심 노인의 상태가 궁금했다.
함주는 서쪽과 남쪽, 장강성을 잇는 지리적 위치상 육로와 수로를 타고 각지에서 모여든 물자들이 거쳐가는 곳이였다.
특히 함주를 가로지르는 함강 덕에 이곳은 다양한 문화와 물건, 사람들이 섞여 독특한 분위기가 났다.
함주의 풍기촌으로 들어서자 마을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이연화는 떠들썩한 축제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가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연화루도 적비성과 방다병으로 떠들썩했기 때문이였다.
세 사람이 연화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방다병은 과하게 적비성을 경계했다.
적비성이 이연화의 옆으로 한발자국만 와도 말벌 쫒는 양봉장 주인처럼 적비성을 몰아냈다.
적비성이 이연화에 다가오지 않으면 별 일 없겠지만 적비성은 방다병을 도발하듯 별거 없는 이야기도 가까이 다가와서 하고, 은근슬쩍 몸을 만졌다.
그런 적비성을 보며 방다병은 몇번이나 검에 손을 올렸다.
말을 모는 이연화 옆에 방다병이 불퉁한 얼굴로 붙어 앉았다.
“ 방다병. 넌 쫌...하아... 왜 자꾸 아비한테 시비야. 너 그러다가.... 큰일난다. ”
이연화의 말에 방다병이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바라봤다.
“ 시비라니!!! 시비는 아비가 먼저 걸고 있는거잖아! 너... 랑 나랑.. 그렇고 그런.. 그런 사이인거 알면서 자꾸.. 자꾸..”
이연화가 힐끗 방다병을 쳐다봤다.
“ 알긴 뭘 알아.. ”
“ 근데 넌 왜 아비 편을 드는거야! ”
“ 내가 편을 드는게 아니라.. 하아.. 니가 다칠까봐 그러지. ”
축제로 사람들이 북적거려 연화루를 마을 입구 공터에 세우고는 마을 중심으로 걸어갔다.
심 노인이 함주의 풍기촌에 사는 것만 알았지 정확한 위치를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찾아갔다.
심부는 풍기촌에서 유명한 듯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문지기에게 이연화가 왔다고, 주인에게 전해달라고 하고 난 후 1각도 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 이 선생!!!! 진정 이 선생이 오셨소? ”
쩌렁한 목소리가 들리자 이연화가 한시름 놓았다.
심 노인이 아들, 딸로 보이는 젊은 남녀 두 명과 시종들을 잔뜩 이끌고 나왔다.
“ 제 의술이 엄청난가봅니다. 이리 건강해지셨을 줄이야. 잘 지내셨습니까? ”
웃으며 인사를 건내는 이연화의 팔을 심 노인이 잡았다.
노인은 쇄빙환에 중독돼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는 걸 모를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이연화와 두 사람은 심 노인에 이끌려 심부로 들어섰다.
심부는 생각보다 부유한 듯 했다.
이국적인 정원에는 다양한 화초들이 심어져 있었다. 정자도 여러개 있었고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도 커다랬다.
연못이 보이는 정자에 앉아 이연화와 심 노인이 차를 마셨다.
“ 그 놈은 가묘를 지키라고 보냈소. 내가 죽더라도, 그 놈은 평생 그곳에서 나올 수 없도록 해놨지. ”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지만 자식은 어쩔 수 없는 자식이였다.
“ 마을이 떠들썩 한 것을 보니 축제가 열리나봅니다. ”
“ 그렇소. 우리 함주에서는 명절 만큼이나 중요한 축제라네. 함주를 가로지르는 함강으로 인해 함주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득을 보았지. 물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니, 바람의 신의 가호가 늘 함께 하길 바라는 풍신 축제라오. ”
“ 그렇군요. 아주 떠들석하네요. ”
“ 모레면 축제가 시작된다오. 축제도 보며 함주에 느긋하게 보내고 가시게. 이렇게나마 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으니. ”
심 노인의 딸이 마을 안내와 축제 안내를 자청했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낭자였다.
“ 아버지를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
심유연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건냈다.
“ 당연한 일을 한걸요. 오늘 마을 안내를 잘 부탁드립니다. ”
“ 그리고 이거.. ”
심유연이 옷을 한벌 건냈다.
“ 오시는지 미리 알았다면 준비해뒀을텐데, 아쉬운데로 오라버니의 옷을 입으세요. 체격이 비슷하여 적당히 맞을 것 같네요. 새 옷이니 예의없다 흉보지 마시고요. ”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가볍게 웃는 웃음이 가을의 맑은 날씨와 어우러져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 옷은 왜.. ”
“ 이 시기에 입는 옷들은 얇은 옷감을 여러겹 겹쳐 만든답니다. 특히 풍신 축제 때 입는 옷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바람에 옷이 날리는 모습들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
이연화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하늘색의 반투명하고 얇은 옷감이 겹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자 넓은 소매와 밑단이 바람에 나풀나풀 휘날렸다.
방다병이 이연화를 바라봤다. 풍신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손에 잡히지 않고, 잔상만 남기고 사라져 더욱 애타게 만드는.
가을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강가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깃발과 바람개비가 장식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개비 수백개가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였다.
심유연과 이연화, 방다병이 축제 준비가 한창인 강가를 걸었다.
심유연은 이연화에게 바짝 붙어 걸으면서 살갑게 말을 했다. 방다병은 그녀가 이연화에 치근덕거리는 것 같아 빈정이 상했다.
이연화에게서 멀찍히 떨어져 있는 적비성의 표정에도 불쾌감이 서려있었다.
“ 함주 전역에서 풍신 축제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풍기촌의 풍신 축제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요. ”
“ 오, 그렇습니까. ”
“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만큼 실종사건도 벌어져요. 풍신의 입김에 떠밀려 사라지는거죠. 신께 바쳐지는 제물이에요. ”
“ 제물이요 ? ”
“ 네, 풍신은 주로 외지인을 제물로 택하니 이 선생도 조심하세요. 그리고 형질인은 특히. ”
심유연의 말에 이연화와 방다병이 눈을 마주쳤다.
형질인, 실종사건.
수강촌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풍신의 입김이라는 눈속임 아래.
“ 주로 실종되는 사람들이 형질인인가보네요? ”
“ 네 맞아요. 거의 대부분이 외지에서 구경오는 형질인이더라고요. 보통 이런 축제 구경은 여러명이 같이 오니, 같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늘 형질인이 제물이 되는 것 같았어요. ”
“ 혹시 실종된 사람들의 시신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나요? ”
“ 음, 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
수강촌에서는 잡아온 음양인이 구실을 못하게 되면 처리하는 것 같았는데 시신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걸 보면, 이 곳 풍기촌에서는 납치만 해서 어디론가 보내는 듯 했다.
함주를 지나면 바로 서남지역의 시작이였다.
이 곳의 사건이 소령의 행방과 형질인 사건의 배후를 찾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터였다.
“ 이 선생은 평인이시죠? 같이 오신 두분은 그냥 봐도 형질인 같고.. ”
심유연이 이연화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고 이연화는 대강 얼버무리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을 가까이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방다병과 적비성의 심사가 뒤틀렸다.
마을과 축제 장소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다시 심부로 들어서자 어느새 날이 흐려지고 있었다.
심유연과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자 심 노인은 그들을 데리고 태평루라는 주루로 들어섰다.
주루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루의 주인장과 잘 아는 듯 꽤 넓은 자리로 안내 받았다.
술과 맛있는 음식들로 인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각지의 음식이 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다.
심 노인과 그의 가족들이 이연화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연신 술을 권했다.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했는지 이연화도 조금은 알딸딸한 상태가 되었고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옆에 앉은 방다병은 이연화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주며 이연화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적비성은 주루의 지붕에 올라 혼자 술을 마셨다. 옆으로 수복주 술병 서너개가 뒹굴고 있었다.
“ 자자! 드디어 우리 풍신 축제를 대표하는 음식이 나옵니다. 이건 함주 통틀어 이 주루에서만 먹을 수 있어요! ”
푸른 증기를 내뿜으며 커다란 만두가 나왔다.
“ 오- 저거봐. 만두에서 푸른 김이 나오고 있어! ”
방다병이 이연화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 청룡의 숨결 만두죠! ”
“ 청룡의 숨결? ”
이연화는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이름도 그렇고 푸른 증기를 내뿜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청새어로 만드는 만두죠. 청새어는 지느러미가 마치 새의 날개 같죠. 거기에 우리 주루 만의 비법 약초와 양념을 곁들이면 청룡의 숨결이 되는겁니다. ”
투실하게 살집이 있고 사람 좋은 웃음을 한주루 주인장이 오더니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안에 뭐가 들어가는 건가요? ”
“ 하하하- 우리 주루만의 비법인데 막 알려드릴 수는 없죠. ”
“ 천비초가 들어가죠? ”
이연화의 말에 웃는 얼굴이였던 주인의 표정이 변했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심 노인이 말을 꺼냈다.
“ 다른 곳에서 먹어본 적이 있나봅니다. 이 선생. ”
“ 아- 아니요. 사부의 요리책에서 본 기억이 나요. 만두의 주재료도 똑같고, 이름도 똑같고요. ”
그제서야 주인의 표정이 풀어졌다.
“ 아이고 죄송합니다. 염탐꾼인 줄 알고. 그나저나 사부님이요? ”
주인이 이연화의 손을 덥썩 잡았다.
“ 사실 이 만두의 요리법은 한 대협이 알려준거랍니다. 저희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요리법을 알려주셨다고 들었습니다. 15년도 더 된 이야기지요. 이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 선생을 보고 기뻐하셨을거예요! 그 대협의 제자라니!! 이런 인연이 다 있습니까. 사부님은 살아 계십니까? ”
과하게, 작위적으로 보일 만큼 기뻐하는 주인에 휩쓸렸다. 분위기에 쓸려, 사부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휩쓸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나왔다.
“ 사실 모르겠어요. 기억을 잃어버렸거든요. 10년 전까지만 기억이나요. ”
지붕 위에서 이연화의 말을 들은 적비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 입이 달면 수복주를 한모금 드셔보세요. 괜찮아 질거예요.
이상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독혈문에서 벽차지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맹으로 복귀한 적비성은 약마에게 물어봤었다.
독에 정통한 약마도 벽차지독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자신이 모른다면 그것은 중원의 독이 아니라고 확언했다.
이 후 약마는 며칠을 고서들을 뒤지더니 벽차지독은 남윤의 독이며, 중독되면 모든 경맥이 끊어져 죽는다고 전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해도, 경맥은 다 끊어진 상태고 오장육부의 체질이 바뀐다 했다.
체형도, 체취도, 외모도 모두 서서히 바뀌어 주변 사람도 몰라본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이연화와 이상이는 다른 모습이였다.
적비성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이연화가 이상이임을 확신하면서도 두 사람의 다른 점을 찾고 있었다.
이연화가 이상이이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길 바라는 건지 그도 알지 못했다.
“ 자자 그렇게 안타까워하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제법, 사람 구실하며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
이연화가 처진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몸을 일으켜 술잔은 시원하게 비웠다.
“ 사부의 요리책에 묘사된 맛과 똑같은지 청룡의 숨결 만두를 한번 먹어볼까요? ”
사람들도 금새 웃으며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만두를 하나씩 집었다.
이연화가 만두를 하나 집어 얼른 방다병의 접시에 올려줬다.
“ 꾸물거리지 말라고. 사람들이 다 먹어치우기 전에 얼른 먹어. ”
방다병이 푸른 김이 나오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 이연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특정한 거처없이 떠도는 삶을 살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끔씩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기억과 관계가 있을 것이고.
안쓰러움에 가슴이 아팠다가 금새 섭섭해졌다.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할 이야기를 자신에게는 해주지 않았음이.
사람들과 어울려 떠들썩한 목소리를 내며 이연화도 만두를 하나 집어 먹었다.
사부는 청룡의 숨결 만두를 이렇게 표현했었다.
폭신한 만두피와 쫄깃한 청새어. 오미의 조화가 핵심.
사부의 표현 그대로였다. 시고, 짜고, 맵고, 달고, 씁쓸한 맛의 조화가 훌륭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사부였지만, 그 사부의 요리법이라니 더욱 더 특별하게 느껴져 이연화도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과 술을 즐겁게 마셨다.
주루 주인이 웃으면서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쟁반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자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얼굴이였다.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주방을 지나쳐 창고로 들어섰다.
이어 허드렛일을 하던 여인이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 청룡의 숨결 만두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났다. ”
“ 네?? ”
“ 자기 사부의 비법이라는군. ”
“ 그럼, 그 사부란 사람이 남윤인인걸까요? 청룡의 숨결 만두는 남윤 황실의 요리법이지 않습니까. ”
주인이 초조한 듯 제자리 걸음을 하며 생각에 빠졌다.
“ 그럼 그 제자란 자도 남윤인일까요? ”
“ 모르겠다. 그 자의 말에 의하면 기억을 잃었다는데, 모를 일이지. ”
“ 이 사실을 방주에게 알리실겁니까? ”
여인의 말에 주인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방주께서 관심이나 있으실까? 사내에 빠져, 남윤 재건에는 관심도 없으신 분인데? ”
“ 어찌! 방주께 그런 무례한 언사를 하십니까! ”
“ 내 말이 틀렸나? 이 일이 방주께 관심이나 끌 것 같은가? ”
주인의 말에 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나저나 금년에도 형질인들은 많이 왔던가? 이번에도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자네나 나나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야. ”
“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모량밭으로도 사람을 풀었고, 마을에도 풀었지만, 강한 형질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없었어요. ”
“ 강한 형질이라.....아! 심부 손님으로 왔다던 사내가 있네. 기억을 잃었다는 자 말고 같이 온 사내가 양인으로 보이던데, 가서 한번 확인해보거라. ”
연화루 이연화 비성연화 다병연화
휴 아직도 떡 못치네;;;;
양주로 가는 길에 함주에 잠깐 들리기로 했다.
장강성에서 쇄빙환을 해독해 준 심 노인의 상태가 궁금했다.
함주는 서쪽과 남쪽, 장강성을 잇는 지리적 위치상 육로와 수로를 타고 각지에서 모여든 물자들이 거쳐가는 곳이였다.
특히 함주를 가로지르는 함강 덕에 이곳은 다양한 문화와 물건, 사람들이 섞여 독특한 분위기가 났다.
함주의 풍기촌으로 들어서자 마을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이연화는 떠들썩한 축제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가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연화루도 적비성과 방다병으로 떠들썩했기 때문이였다.
세 사람이 연화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방다병은 과하게 적비성을 경계했다.
적비성이 이연화의 옆으로 한발자국만 와도 말벌 쫒는 양봉장 주인처럼 적비성을 몰아냈다.
적비성이 이연화에 다가오지 않으면 별 일 없겠지만 적비성은 방다병을 도발하듯 별거 없는 이야기도 가까이 다가와서 하고, 은근슬쩍 몸을 만졌다.
그런 적비성을 보며 방다병은 몇번이나 검에 손을 올렸다.
말을 모는 이연화 옆에 방다병이 불퉁한 얼굴로 붙어 앉았다.
“ 방다병. 넌 쫌...하아... 왜 자꾸 아비한테 시비야. 너 그러다가.... 큰일난다. ”
이연화의 말에 방다병이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바라봤다.
“ 시비라니!!! 시비는 아비가 먼저 걸고 있는거잖아! 너... 랑 나랑.. 그렇고 그런.. 그런 사이인거 알면서 자꾸.. 자꾸..”
이연화가 힐끗 방다병을 쳐다봤다.
“ 알긴 뭘 알아.. ”
“ 근데 넌 왜 아비 편을 드는거야! ”
“ 내가 편을 드는게 아니라.. 하아.. 니가 다칠까봐 그러지. ”
축제로 사람들이 북적거려 연화루를 마을 입구 공터에 세우고는 마을 중심으로 걸어갔다.
심 노인이 함주의 풍기촌에 사는 것만 알았지 정확한 위치를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찾아갔다.
심부는 풍기촌에서 유명한 듯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문지기에게 이연화가 왔다고, 주인에게 전해달라고 하고 난 후 1각도 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 이 선생!!!! 진정 이 선생이 오셨소? ”
쩌렁한 목소리가 들리자 이연화가 한시름 놓았다.
심 노인이 아들, 딸로 보이는 젊은 남녀 두 명과 시종들을 잔뜩 이끌고 나왔다.
“ 제 의술이 엄청난가봅니다. 이리 건강해지셨을 줄이야. 잘 지내셨습니까? ”
웃으며 인사를 건내는 이연화의 팔을 심 노인이 잡았다.
노인은 쇄빙환에 중독돼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는 걸 모를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이연화와 두 사람은 심 노인에 이끌려 심부로 들어섰다.
심부는 생각보다 부유한 듯 했다.
이국적인 정원에는 다양한 화초들이 심어져 있었다. 정자도 여러개 있었고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도 커다랬다.
연못이 보이는 정자에 앉아 이연화와 심 노인이 차를 마셨다.
“ 그 놈은 가묘를 지키라고 보냈소. 내가 죽더라도, 그 놈은 평생 그곳에서 나올 수 없도록 해놨지. ”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지만 자식은 어쩔 수 없는 자식이였다.
“ 마을이 떠들썩 한 것을 보니 축제가 열리나봅니다. ”
“ 그렇소. 우리 함주에서는 명절 만큼이나 중요한 축제라네. 함주를 가로지르는 함강으로 인해 함주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득을 보았지. 물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니, 바람의 신의 가호가 늘 함께 하길 바라는 풍신 축제라오. ”
“ 그렇군요. 아주 떠들석하네요. ”
“ 모레면 축제가 시작된다오. 축제도 보며 함주에 느긋하게 보내고 가시게. 이렇게나마 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으니. ”
심 노인의 딸이 마을 안내와 축제 안내를 자청했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낭자였다.
“ 아버지를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
심유연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건냈다.
“ 당연한 일을 한걸요. 오늘 마을 안내를 잘 부탁드립니다. ”
“ 그리고 이거.. ”
심유연이 옷을 한벌 건냈다.
“ 오시는지 미리 알았다면 준비해뒀을텐데, 아쉬운데로 오라버니의 옷을 입으세요. 체격이 비슷하여 적당히 맞을 것 같네요. 새 옷이니 예의없다 흉보지 마시고요. ”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가볍게 웃는 웃음이 가을의 맑은 날씨와 어우러져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 옷은 왜.. ”
“ 이 시기에 입는 옷들은 얇은 옷감을 여러겹 겹쳐 만든답니다. 특히 풍신 축제 때 입는 옷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바람에 옷이 날리는 모습들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
이연화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하늘색의 반투명하고 얇은 옷감이 겹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자 넓은 소매와 밑단이 바람에 나풀나풀 휘날렸다.
방다병이 이연화를 바라봤다. 풍신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손에 잡히지 않고, 잔상만 남기고 사라져 더욱 애타게 만드는.
가을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강가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깃발과 바람개비가 장식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개비 수백개가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였다.
심유연과 이연화, 방다병이 축제 준비가 한창인 강가를 걸었다.
심유연은 이연화에게 바짝 붙어 걸으면서 살갑게 말을 했다. 방다병은 그녀가 이연화에 치근덕거리는 것 같아 빈정이 상했다.
이연화에게서 멀찍히 떨어져 있는 적비성의 표정에도 불쾌감이 서려있었다.
“ 함주 전역에서 풍신 축제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풍기촌의 풍신 축제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요. ”
“ 오, 그렇습니까. ”
“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만큼 실종사건도 벌어져요. 풍신의 입김에 떠밀려 사라지는거죠. 신께 바쳐지는 제물이에요. ”
“ 제물이요 ? ”
“ 네, 풍신은 주로 외지인을 제물로 택하니 이 선생도 조심하세요. 그리고 형질인은 특히. ”
심유연의 말에 이연화와 방다병이 눈을 마주쳤다.
형질인, 실종사건.
수강촌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풍신의 입김이라는 눈속임 아래.
“ 주로 실종되는 사람들이 형질인인가보네요? ”
“ 네 맞아요. 거의 대부분이 외지에서 구경오는 형질인이더라고요. 보통 이런 축제 구경은 여러명이 같이 오니, 같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늘 형질인이 제물이 되는 것 같았어요. ”
“ 혹시 실종된 사람들의 시신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나요? ”
“ 음, 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
수강촌에서는 잡아온 음양인이 구실을 못하게 되면 처리하는 것 같았는데 시신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걸 보면, 이 곳 풍기촌에서는 납치만 해서 어디론가 보내는 듯 했다.
함주를 지나면 바로 서남지역의 시작이였다.
이 곳의 사건이 소령의 행방과 형질인 사건의 배후를 찾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터였다.
“ 이 선생은 평인이시죠? 같이 오신 두분은 그냥 봐도 형질인 같고.. ”
심유연이 이연화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고 이연화는 대강 얼버무리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을 가까이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방다병과 적비성의 심사가 뒤틀렸다.
마을과 축제 장소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다시 심부로 들어서자 어느새 날이 흐려지고 있었다.
심유연과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자 심 노인은 그들을 데리고 태평루라는 주루로 들어섰다.
주루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루의 주인장과 잘 아는 듯 꽤 넓은 자리로 안내 받았다.
술과 맛있는 음식들로 인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각지의 음식이 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다.
심 노인과 그의 가족들이 이연화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연신 술을 권했다.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했는지 이연화도 조금은 알딸딸한 상태가 되었고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옆에 앉은 방다병은 이연화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주며 이연화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적비성은 주루의 지붕에 올라 혼자 술을 마셨다. 옆으로 수복주 술병 서너개가 뒹굴고 있었다.
“ 자자! 드디어 우리 풍신 축제를 대표하는 음식이 나옵니다. 이건 함주 통틀어 이 주루에서만 먹을 수 있어요! ”
푸른 증기를 내뿜으며 커다란 만두가 나왔다.
“ 오- 저거봐. 만두에서 푸른 김이 나오고 있어! ”
방다병이 이연화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 청룡의 숨결 만두죠! ”
“ 청룡의 숨결? ”
이연화는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이름도 그렇고 푸른 증기를 내뿜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청새어로 만드는 만두죠. 청새어는 지느러미가 마치 새의 날개 같죠. 거기에 우리 주루 만의 비법 약초와 양념을 곁들이면 청룡의 숨결이 되는겁니다. ”
투실하게 살집이 있고 사람 좋은 웃음을 한주루 주인장이 오더니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안에 뭐가 들어가는 건가요? ”
“ 하하하- 우리 주루만의 비법인데 막 알려드릴 수는 없죠. ”
“ 천비초가 들어가죠? ”
이연화의 말에 웃는 얼굴이였던 주인의 표정이 변했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심 노인이 말을 꺼냈다.
“ 다른 곳에서 먹어본 적이 있나봅니다. 이 선생. ”
“ 아- 아니요. 사부의 요리책에서 본 기억이 나요. 만두의 주재료도 똑같고, 이름도 똑같고요. ”
그제서야 주인의 표정이 풀어졌다.
“ 아이고 죄송합니다. 염탐꾼인 줄 알고. 그나저나 사부님이요? ”
주인이 이연화의 손을 덥썩 잡았다.
“ 사실 이 만두의 요리법은 한 대협이 알려준거랍니다. 저희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요리법을 알려주셨다고 들었습니다. 15년도 더 된 이야기지요. 이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 선생을 보고 기뻐하셨을거예요! 그 대협의 제자라니!! 이런 인연이 다 있습니까. 사부님은 살아 계십니까? ”
과하게, 작위적으로 보일 만큼 기뻐하는 주인에 휩쓸렸다. 분위기에 쓸려, 사부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휩쓸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나왔다.
“ 사실 모르겠어요. 기억을 잃어버렸거든요. 10년 전까지만 기억이나요. ”
지붕 위에서 이연화의 말을 들은 적비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 입이 달면 수복주를 한모금 드셔보세요. 괜찮아 질거예요.
이상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독혈문에서 벽차지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맹으로 복귀한 적비성은 약마에게 물어봤었다.
독에 정통한 약마도 벽차지독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자신이 모른다면 그것은 중원의 독이 아니라고 확언했다.
이 후 약마는 며칠을 고서들을 뒤지더니 벽차지독은 남윤의 독이며, 중독되면 모든 경맥이 끊어져 죽는다고 전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해도, 경맥은 다 끊어진 상태고 오장육부의 체질이 바뀐다 했다.
체형도, 체취도, 외모도 모두 서서히 바뀌어 주변 사람도 몰라본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이연화와 이상이는 다른 모습이였다.
적비성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이연화가 이상이임을 확신하면서도 두 사람의 다른 점을 찾고 있었다.
이연화가 이상이이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길 바라는 건지 그도 알지 못했다.
“ 자자 그렇게 안타까워하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제법, 사람 구실하며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
이연화가 처진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몸을 일으켜 술잔은 시원하게 비웠다.
“ 사부의 요리책에 묘사된 맛과 똑같은지 청룡의 숨결 만두를 한번 먹어볼까요? ”
사람들도 금새 웃으며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만두를 하나씩 집었다.
이연화가 만두를 하나 집어 얼른 방다병의 접시에 올려줬다.
“ 꾸물거리지 말라고. 사람들이 다 먹어치우기 전에 얼른 먹어. ”
방다병이 푸른 김이 나오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 이연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특정한 거처없이 떠도는 삶을 살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끔씩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기억과 관계가 있을 것이고.
안쓰러움에 가슴이 아팠다가 금새 섭섭해졌다.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할 이야기를 자신에게는 해주지 않았음이.
사람들과 어울려 떠들썩한 목소리를 내며 이연화도 만두를 하나 집어 먹었다.
사부는 청룡의 숨결 만두를 이렇게 표현했었다.
폭신한 만두피와 쫄깃한 청새어. 오미의 조화가 핵심.
사부의 표현 그대로였다. 시고, 짜고, 맵고, 달고, 씁쓸한 맛의 조화가 훌륭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사부였지만, 그 사부의 요리법이라니 더욱 더 특별하게 느껴져 이연화도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과 술을 즐겁게 마셨다.
주루 주인이 웃으면서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쟁반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자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얼굴이였다.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주방을 지나쳐 창고로 들어섰다.
이어 허드렛일을 하던 여인이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 청룡의 숨결 만두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났다. ”
“ 네?? ”
“ 자기 사부의 비법이라는군. ”
“ 그럼, 그 사부란 사람이 남윤인인걸까요? 청룡의 숨결 만두는 남윤 황실의 요리법이지 않습니까. ”
주인이 초조한 듯 제자리 걸음을 하며 생각에 빠졌다.
“ 그럼 그 제자란 자도 남윤인일까요? ”
“ 모르겠다. 그 자의 말에 의하면 기억을 잃었다는데, 모를 일이지. ”
“ 이 사실을 방주에게 알리실겁니까? ”
여인의 말에 주인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방주께서 관심이나 있으실까? 사내에 빠져, 남윤 재건에는 관심도 없으신 분인데? ”
“ 어찌! 방주께 그런 무례한 언사를 하십니까! ”
“ 내 말이 틀렸나? 이 일이 방주께 관심이나 끌 것 같은가? ”
주인의 말에 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나저나 금년에도 형질인들은 많이 왔던가? 이번에도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자네나 나나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야. ”
“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모량밭으로도 사람을 풀었고, 마을에도 풀었지만, 강한 형질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없었어요. ”
“ 강한 형질이라.....아! 심부 손님으로 왔다던 사내가 있네. 기억을 잃었다는 자 말고 같이 온 사내가 양인으로 보이던데, 가서 한번 확인해보거라. ”
연화루 이연화 비성연화 다병연화
휴 아직도 떡 못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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