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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ㅈㅈㅇ
ㅇㅌㅈㅇ





강징은 제 옆에 누워 잠든 황제를 곁눈질했다가 몸을 일으키려고 계수를 걷어냈음. 무거운 몸때문에 단번에 일어나기 힘들어 끙끙 앓다가 침상의 기둥을 잡고 겨우 일어났어. 태의가 당분간은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지 말고 정양을 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했지만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침의가 땀으로 흠뻑 젖어서 찝찝하기도 하고 근심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 바깥 바람을 쐬고 싶었음. 강징은 황제가 깨지 않게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휘장을 걷어내고 명간쪽으로 걸어나왔음. 상궁이 불침번을 서고 있다가 시키실것이 있으면 부르시지 성치도 않은 몸으로 왜 이곳까지 나오셨냐며 팔을 잡아 부축을 했음. 강징이 날이 더워서 세욕하고 싶다고 했더니 당장 준비를 할테니 잠시만 앉아계시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어. 강징은 야밤에 홀로 나한상에 앉아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제 신세가 처량하게만 느껴져 눈물이 나는것을 꾹 참고 배를 쓰다듬음. 어젯밤 무선의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고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나 컸었던 탓인지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어.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궁중 생활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이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건사고가 생기니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름. 적어도 태중의 황손들을 무사히 낳을때까지만이라도 조용히 넘어가주기를 바랐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였지. 황제의 성총을 독차지하여 황후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만들고 다른 비빈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었으니 어찌 평온하기를 바랄까. 황궁 내부의 적인 황후와 심상재도 모자라 외부에까지 위험요소가 생겼으니 사면초가와 다를바가 없었음.




강징은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따뜻한 물이 가득한 탕조에 서서히 몸을 담갔음. 상궁이 임부에게 좋다는 약초를 우린 물을 틈틈이 부어주고 부드러운 천으로 몸을 닦아주었어. 강징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자 상궁이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시냐고 물었음. 강징이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상궁의 손을 붙잡고 상궁이 출궁을 하여 혼인을 하였으면 본궁만한 나이의 여식이 있었겠지 하고 물었어. 상궁이 자신의 나이가 마마의 모친이신 우부인과 엇비슷하니 아마 그럴거라고 했음. 강징이 자네는 연희궁에서 일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수년은 족히 봐온듯이 친밀하게 느껴지고 사가의 유모에게 하듯 편히 대할수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을 했음. 상궁이 웃으면서 귀비마마를 모시게 된건 소인의 복이라고 하고는 따뜻한 물을 더 부어주었어. 예전에 태후가 해상재와 이답응 일을 미리 알고 있었던게 아니냐며 추궁을 했을때였음. 강징이 입궁한 이후로 수년간 모셨던 노상궁은 상전이 한 말을 외부에 발설한 죄로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신자고로 쫓겨났음. 지금 강징의 수발을 드는 이들은 내무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명단을 올린자들이었지. 황제가 그들중에 제법 눈치가 빠르고 영민하며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한 이들을 직접 선발해 양심전에서 잠시 데리고 있다가 검증을 통해 연희궁으로 보내준거였어. 강징은 제 수족과도 같은 상궁에게 영녕군주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저했음. 강징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사이에 시간이 꽤 지나 상궁이 세욕을 너무 오랫동안 해도 존체에 해가 되니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 한다고 했음. 강징은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탕조밖으로 나와서 미리 준비해놓은 욕의를 걸쳤어. 그리고 침전으로 돌아와 새 침의로 갈아입고 경대앞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려는데 황제가 아징하고 아명을 부르며 걸어나옴. 강징이 그 모습을 보고 왜 더 주무시지 않고 나오셨냐고 걱정하며 일어나려는데 황제가 일어나지 말라고 만류하고는 그대야말로 왜 더 자지 않고 나왔냐고 물었어. 강징이 날이 더워서 세욕을 했다고 대답하니 웃으면서 곁으로 다가옴.






망기는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강징이 옆자리에 없자 당황해서 급하게 찾으러 나온거였어. 강징의 부재를 확인하자마자 이유모를 불안에 휩싸여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음. 경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확인하고나서야 불안한 마음이 겨우 사라졌겠지. 망기는 상궁에게서 천을 건네받아서 젖은 머리카락의 물기를 꼼꼼하게 닦아주고는 상궁을 물렸음. 망기는 경대앞에 앉아서 거울을 보느라 여념이 없는 이를 뒤에서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부볐음. 제 정인이 간지럽다고 웃는 모습이 퍽 사랑스러워서 목덜미에 여러차례 입을 맞추니 강징이 그런 행동이 의아하기만 해서 무슨 고민이 있으시냐고 물었어. 망기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하는데 그 모습에 표정이 어두워져서 끌어안은 팔을 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낭군,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서로에게 숨기는것이 없어야 하는게 아닌지요. 제게 말하기 힘든 고민거리가 있으시지요? 저를 못믿으시나요. 아니면 제가 나랏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이어서 그러시는겁니까. 강징이 그렇게 따져묻는데 망기가 웃더니 그대도 나에게 숨기는게 있지 않냐고 물었음. 강징이 그 말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간밤에 있었던 일중에 무선의 이야기만 빼놓고 털어놓기로 함. 간밤에 후원에서 영녕군주를 만났는데 저에게 오만불손하게 굴어서 참기 힘들었다고 하소연함. 그리고 일전에 후원에서 폐하와 영녕군주가 함께 거니는 모습을 보았는데 영녕군주가 폐하를 대하는 모습이 마치 연모하는 이를 대하는 여인과 다를바가 없어보였다고 말했어. 망기가 영녕은 아주 어릴때부터 궁중에서 함께 자라서 친누이나 다름없는 사이라고 말하고 영녕이 자신을 친오라버니를 대하듯 격없이 대하여 그런것처럼 보인거지 그대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절대 아니라고 함. 영녕군주는 경친왕의 무남독녀라 웃어른들이 오냐오냐며 양육한 탓에 성정이 오만해서 다른 이들과 자주 부딪힌다고 짐도 그게 못마땅하다고 했음. 망기는 강징에게 군주가 그대에게 오만불손하게 군것은 조만간 불러서 따끔하게 야단을 칠테니 마음을 풀라고 함. 강징은 마음속에 품은 근심과 불안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황제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알겠다고 대답했음.







망기가 웃으면서 태의가 당분간 거동하지 말라고 했으니 자녕궁과 수강궁에 문안을 들지 말고 아이들은 유모와 궁인들에게 맡겨놓으라고 함. 그리고 긴히 할말이 있다고 침상으로 데려가서 앉히고는 강징의 얼굴을 다정히 어루어만지며 입을 열었음. 그대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황후의 금족령을 풀어주어야 할것 같다고 했음. 그 말을 들은 강징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자 망기가 한숨을 쉬며 황후의 금족령을 푸는 대신에 이전처럼 실권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황후의 부친과 조부때문에 어쩔수가 없다고 마음을 달래주려고 함. 그리고 그대의 출산이 석달도 채 안남은데다 몸이 미령한 까닭에 혼자서 육궁을 관리하긴 힘들것 같으니 서비에게 육궁 관리를 도우라고 하겠다고 했어. 강징이 억지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니 금족령이 풀려도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들지 않아도 되게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함. 그러더니 짐이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어 그대를 이리 고생하게 만드는것 같다. 짐은 은애하는 여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참으로 못난 사내라고 한탄함. 강징이 그게 무슨 소리시냐고 신첩은 그렇게 생각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손을 꼭 붙잡고는 당신께서 저를 진심으로 은애한다고 말해주신것만으로 만족한다고 했음. 그리고는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어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이렇게 함께 할수 있는것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하니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했음. 망기는 그런 강징의 뺨에 슬쩍 입을 맞추고는 조회 준비때문에 이만 양심전으로 가봐야 할것 같다고 일어섬. 강징이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배웅을 할 필요없다고 만류함. 강징이 침전의 문앞에까지 따라 나가는데 망기가 웃으면서 어깨를 만지고 이따 밤에 다시 들리겠다고 하고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이마에 입을 맞춤. 강징이 아잠하고 부르더니 망기의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는 아이들에게도 인사해주셔야지요 라고 함. 망기가 웃으면서 배를 둥글게 쓰다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부친이 자주 못온다고 심술을 부리지 말고 모친이 힘들지 않게 얌전히 놀고 있거라 말하고 웃었음. 강징이 까치발을 들어서 입가에 입을 맞춘 다음에 제 곁에 안계시는 동안 그립고 보고 싶을거에요. 오늘밤에 꼭 오셔야 한다고 용포자락을 꾹 쥐었다가 손을 떼었음. 망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이나 강징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겨우 돌아서서 침전을 나감.






위무선은 장군부의 사당에 놓인 망처의 위패를 보고 긴 한숨을 쉬었어. 죽은 처의 영전에 향과 술을 올리고 멍하니 위패만 바라보았음. 강징의 사촌 아우인 유영은 무선과 혼담이 오고 가기 시작할때 의원으로부터 남은 수명이 반년도 채 안될거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병환이 무척 깊었음. 그런 이와 혼인을 한건 어릴때부터 저를 좋아한 영이 넋이 구천을 떠돌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게다가 혼전에 죽은 여인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는 미신 때문에 유영의 부친이 어떻게든 혼인을 성사시키려고 했었거든. 무선은 죽은 처와 초야도 치르지 못했지만 천지신명과 조상앞에서 백년가약을 맺었으니 부부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지. 혼인을 한지 얼마 안되어 변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급히 전장에 나가느라 임종조차 못지켰는데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졌음. 죽은 처가 남긴 마지막 당부는 강징을 연모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의 삼년상이 끝나기 기다리지 말고 늦지 않게 청혼을 하라는 말이었음. 연꽃 장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와 이렇게 잠시나마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이제 한도 원도 없었다고 했었지. 무선은 죽은 처의 위패를 보고 한숨을 쉬다가 오랫동안 숨겨온 연심을 고백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것 같다고 마음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그리 경멸섞인 시선을 던지니 이젠 달리 방도가 없는것 같아서 맺지 못한 인연은 가슴에 묻으려고 한다고 말함.





그때 영녕군주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방도가 없다는건 표기장군 그대의 생각이지요. 사내가 검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게 아닙니까. 그대는 귀비가 그대의 말에 무척 달가워하면서 냉큼 품에 안겨들줄 알았나본데 정신차리세요라고 말하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선을 쳐다보았음. 장군이라는 사내가 경멸어린 시선 좀 받았다고 죽은 처에 위패 앞에서 하소연하는 꼴이라니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정도로 볼썽사납습니다. 그대가 풍신준랑에 명문가 여식들이 모두 흠모한다길래 대단한 사내인가 했더니 겨우 이정도밖에 안되는 사내일줄이야. 무선이 한숨을 쉬면서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데 이 이른 시간에 사당까지 출입하면 다른 이들이 어찌 생각하겠냐고 함. 영녕군주가 그래봤자 우리 두 사람이 몸이 달아 혼전에 배를 맞췄다는 추문이나 나겠지요라고 대수롭지 않은듯 대답함. 무선이 기겁해서 군주하고 소리지르니 군주가 과년한 남녀가 좋아 지내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것 아닙니까? 하고 피식 웃었음. 그리고는 무선을 쳐다보며 설마 당신 여인의 정조를 따지는 고리타분한 사내는 아니겠지요라고 한숨을 쉼. 영녕군주는 폐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대와 내가 보통의 연인들과 다를게 없다는 것을 보여야 하니 싫더라도 장단을 좀 맞추라고 말함. 그리고 혼인을 하기 전이기는 하나 망처에게 술을 올리고 싶은데 괜찮냐고 함. 무선이 그러라고 하자 영녕군주가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더니 그대는 내가 아닌 귀비를 계처로 맞아들이고 싶었겠지만 나 또한 그대가 아닌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고 싶었으니 동병상련의 처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못마땅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세요. 어차피 서로 원하는것을 얻으면 뒤도 안보고 헤어질 사이이니 하고 웃었어. 그러고는 해가 뜨려면 한시진은 남았는데 같이 바둑이나 두자고 말하곤 밖으로 나감. 무선은 사당을 나가는 군주의 뒷모습을 보고 지금이라도 이 혼사를 물려야 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깊은 고민에 빠짐.






망기는 영녕군주가 동쪽의 체순당에서 들었다는 태감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태감이 군주가 폐하께 올린다며 강소성의 명주인 양하주를 들고 왔는데 어찌 해야 하냐고 묻기에 누이와 간만에 대작을 하려고 하니 안주를 가져오라고 했음. 망기가 짐이 구하라고 한 것들은 모두 구해두었냐고 묻는데 태감이 궁중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 궁밖에서 어렵게 구해 준비를 해놓았다고 하고 물러났음. 망기가 동쪽의 체순당의 문을 여는데 영녕군주가 침상에 앉아있다가 환하게 웃으면서 일어남. 망기가 안으로 들어가자 태감이 문앞을 지키고 서서 누가 오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기 시작함. 망기가 웃으면서 황후도 아직 들어오지 못한 곳인데 네가 먼저 들어왔구나라고 말을 했더니 영녕군주가 조금 당혹스러운듯 황후마마보다 제가 먼저 이곳으로 들어오는것은 불경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음. 망기가 이 황궁에 아현 네가 못갈곳이 어디 있느냐고 이리로 와서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탁자를 두드림. 영녕군주가 폐하께서는 술에 약하신데 이른 아침부터 술을 드셔도 괜찮으시냐고 물음. 망기가 오랜만에 너와 술을 마시고 싶어서 그러니 괘념치 말라고 함. 그리고는 지금은 단둘만 있으니 폐하가 아니라 오라버니라고 불러다오. 어릴때는 곧잘 오라버니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그리 불러주지 않을셈이냐고 웃었어. 영녕군주가 이제 철없는 나이가 아닌데다 제가 황친이기는 해도 군신 관계인데 어찌 오라버니라고 부르겠냐고 말하곤 옆자리에 앉음. 영녕군주가 망기의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르고 그릇에 망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덜어주었어. 망기가 영녕군주의 잔에 반쯤 술을 따라주고는 마시라고 권함.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술을 반쯤 마시고 표정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달콤한 풍미가 제법이구나하고 호평을 함. 망기는 영녕군주가 저를 따라 잔을 비우는것을 보고 표기장군과는 사이가 좋아보이던데 마음에 드느냐. 사혼인데다가 적처도 아니고 계처라 네가 탐탁치않아 할줄 알았는데 몹시 의외라고 말을 꺼냄. 영녕군주가 웃으면서 이 고소에 폐하를 제외한 사내중에 표기장군만큼 뛰어난 이가 있답니까. 혼기를 놓친 까닭에 나이도 적지 않으니 계처로 들어가는게 딱히 흠도 아니구요. 무엇보다도 폐하께서 직접 명하신 혼인인데 어찌 거절을 할수가 있겠냐고 대답함.






망기가 웃으면서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하다가 손을 들어 영녕군주의 뺨을 쓰다듬었음. 영녕이 잠깐 당황하다가 손을 겹쳐잡고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고 묻고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는 수줍게 웃음. 망기가 어릴때부터 미색이 뛰어나더니 혼인을 앞둔 신부여서 그런지 네 용모가 마치 막 피어나는 꽃의 봉오리처럼 청순해보인다고 군주의 외모를 칭찬함. 영녕군주가 환히 웃으면서 옛날에는 제가 고소에서 제일 어여쁘다고 하시더니 이제 그런 말씀은 안하시냐고 툴툴거림. 망기가 그래서 서운하냐고 묻더니 표정을 싹 바꾸고는 입을 맞출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가 귓가에 속삭임. 예쁜 짓을 해야 예쁘게 볼것이 아니냐. 네가 그 작은 머리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짐이 참고 봐주는 것은 이번만이다. 아무리 너라도 연귀비에게 해악을 끼치려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알아들었느냐. 그 말을 들은 영녕군주의 희고 고운 얼굴이 마치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배신감과 분노로 잔뜩 일그러졌다가 분기를 억지로 누르고는 천연덕스럽게 굴었음. 제가 무엇을요? 누가 보면 제가 연희궁의 그 사람을 핍박이라도 한줄 알겠습니다. 망기가 영녕군주를 노려보며 귀비가 네 아랫 사람이더냐. 그리 낮잡아 부르는것이 예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냐고 호되게 질책하자 군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래봤자 일개 후궁이 아닙니까. 제 아무리 폐하의 총애를 받는 귀비여도 군주인 저보다 신분이 높지 않다고 했다가 망기가 탁자를 주먹으로 쾅하고 내리치자 소스라치게 놀람.





망기가 대노해서 너! 짐이 언제까지 네 오만불손한 언행을 참아줄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짐의 총비이자 황손들의 생모인 귀비를 감히 후궁이라고 무시를 해! 그래 네 말대로 지금은 후궁이지만 귀비가 언제까지 후궁일까? 귀비가 너보다 신분이 낮다 업신여기는 꼴이 가관이구나. 공주도 아니고 방계의 군주에 불과한 네가 뭐라도 되는양 구는게 가소롭기짝이 없어! 영녕군주가 그 말을 듣고 몹시 격앙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음. 그녀는 눈앞이 핑돌고 목구멍이 타들어가는것만 같아서 목소리를 쥐어짜며 겨우 말을 꺼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말씀은 차후에라도 귀비를 정궁 황후로 세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귀비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리 싸고 도십니까! 이 황궁에 자갈보다 흔히 널린것이 여인입니다! 겨우 후궁 하나 때문에 오라버니와 같이 자란 저에게 이리 심한 모멸감을 주십니까. 친누이처럼 귀애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흐느껴 울었음. 망기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는 영녕군주를 일으켜 세우고는 침상으로 데려가서 앉힘. 내 너를 친누이처럼 귀애하니 이정도 선에서 끝내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는 허튼 생각을 하지 말거라. 알았느냐. 영녕군주가 망기의 의복 자락을 움켜쥐고 저를 귀애하시니 이정도 선에서 끝내는 것이라구요. 오라버니 다음번에는 이 아현을 죽이기라도 하시렵니까? 하고 울다가 구역질이 치미는지 소매로 입을 가림.





망기가 네가 정녕 나를 오라버니라고 여긴다면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짐이 정말 모를거라고 생각했느냐. 네가 나를 오라버니가 아닌 사내로 좋아한다는 것을 모를거라고 생각했냐는 말이다! 네가 너를 친누이같이 어여뻐한다해도 내 사람에게 손을 댄다면 가차없이 징벌할것이다. 영녕군주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제 마음이 어떤지 알고 계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사혼을 내리셨습니까. 제가 오라버니를 진심으로 은애한다는것을 알면서도 어찌 다른 사내와 맺어주려고 하신겁니까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품에 안기려고 듬. 망기가 그런 영녕군주를 밀쳐서 침상에 쓰러뜨리고는 버럭 화를 내었어. 짐이 내색을한들 뭐가 달라지느냐. 어찌 내게 그런 불순한 마음을 품었나 치죄라도 할까! 그게 아니면 너와 정을 통해 난륜이라도 벌였어야 한단 말이냐! 나와 넌 종형제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맺어질 수가 없는 사이라는것을 어찌 몰라! 영녕군주가 악을 쓰며 왜 안된단 말입니까. 황후도 귀비도 폐하와는 친족이며 피가 섞인 누이 동생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저만 안되는겁니까! 망기가 한숨을 쉬며 정말 몰라서 묻느냐. 네 부친과 내 부친이신 선황은 동부동모의 연을 타고난 친형제이다! 네가 나와 같은 남씨이기 때문에 아니되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음. 영녕군주가 흐느껴 울면서 오라버니 어릴때 제게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성년이 되면 저와 혼인을 하시겠다구요. 철없던 어린 시절에 떼를 쓰는 누이를 달래려고 했던 말을 꺼내며 다시 매달림. 그러더니 비빈이 아니어도 좋고 하다 못해 명분이 없는 측비 아니 숨겨진 여인이어도 좋으니 제 마음을 받아달라고 울먹임. 망기가 군주의 태도에 지친듯 네 부친을 궁에 들라고 했다. 자꾸만 이리 추태를 부린다면 너와 표기장군의 혼사를 파기하고 너를 오랑캐의 왕의 측비로 보내겠다. 정녕 그리 되길 원하느냐. 영녕군주가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져서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망기가 얌전히 지내면 지금처럼 대해주겠다. 그러니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혼인 준비에만 신경쓰라고 하고 한숨을 쉼. 망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태감을 불러 군주를 여경헌으로 데려가고 숙취에 좋은 음료를 마시게 하라고 명했음. 영녕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앞으로 고꾸라졌음. 망기가 그런 영녕군주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듯 태감에게 일으키라고 손짓을 했어. 영녕군주는 태감이 부축을 하려는것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자신을 신첩이라고 지칭하고는 폐하를 배웅합니다 그리 말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음. 망기가 그 행태에 소름끼쳐서 태감에게 체순당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명령하고 밖으로 나옴. 체순당의 문을 닫자마자 등뒤에서 군주가 악을 지르는 소리와 물건이 깨지는 파열음이 연달아 들려왔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걸음을 옮김.





경인궁에서 혼자 진선을 하던 황후는 식사를 하다가 말고 아무런 간없이 푹 삶은 고기를 먹기 좋게 결대로 찢어서 발치에 놓인 접시에 올려놓았음. 황후의 강아지가 탁자 밑에 놓인 방석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고기를 먹기 시작함. 황후가 그런 진주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다가 다른 그릇에 고기 국물을 담아 고기가 담긴 접시 옆에 놓아주었음. 잠시후에 황후가 다 식어빠진 음식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려는 찰나에 양심전의 총관 태감이 들어와서 인사를 올림. 황후가 자네가 무슨 일인가하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을 했다가 폐하께서 금족령을 풀라는 명과 함께 하사품을 내리셨다는 태감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음. 황후가 좀처럼 믿기지 않는듯 그게 정말이냐고 몇번이고 되묻다가 태감들이 하사품이 담긴 쟁반을 줄줄이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무릎을 꿇고 예법에 맞춰서 감사 인사를 올림. 황후가 상궁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태감이 오늘이 마침 보름이니 시침을 들라는 분부가 있으셨다고 했음. 황후는 양심전에서 시침을 들 준비를 하시라는 태감의 말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어. 그리고는 상궁에게 태감들을 배웅하라고 말하고는 탁자 앞에 앉아서 아직도 고기를 먹고 있는 진주를 안아올리고 코를 부비며 기뻐함. 진주야 본궁이 폐하를 뵙는것이 얼마만인지 아느냐. 무려 두 달만이란다. 본궁이 폐하의 시침을 드는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구나. 황후가 벅찬 얼굴로 강아지의 털을 쓰다듬다가 그간의 설움에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뚝뚝 흘림. 이번 기회에 폐하를 닮은 황자를 생산해서 아버님께 인정을 받을것이다. 황후는 강아지를 방석위에 내려놓고 상궁을 불러 태의에게 좌태약을 지어 올리라고 하라고 명했음. 황후는 궁녀에게 서역에서 들어온 향유와 장미수로 세욕을 할것이니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대앞에서 앉아서 거울을 보고 장신구를 이리저리 갖다대며 무척이나 즐거워함.






강징은 내실에서 유모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보고 있다가 상궁이 들어와 폐하께서 화방의 태감을 보내셨다고 고하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음. 화방의 태감들이 연희궁의 앞뜰에 제비꽃을 심고 있는것을 보고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함. 수령 태감이 다가와서는 귀비마마께오서 제비꽃을 좋아하신다기에 궁밖에서 제비꽃 모종을 공수해와서 이리 화단을 가꾸는 것이라고 말함. 폐하께서 직접 하명하신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어. 얼마전에 같이 출궁을 했을때 들판에 핀 제비꽃을 보고 무척이나 예뻐했더니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야. 강징은 다른 태감들이 연꽃을 줄기째 꺾어서 들고오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가 뒤에 커다란 수반을 수레에 싣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더욱 당황스러워함. 수령 태감이 폐하께서 귀비마마의 존체가 미령하시니 태액지에서 연꽃을 구경하시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듯하다고 하시면서 수반에 연꽃과 비단 잉어를 넣어 연못처럼 꾸미라고 하셨다고 아뢰었음. 그리고는 그 모습을 보고 작은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전해 달라고 하셨다 그리 말을 했음. 강징이 환하게 웃으면서 폐하께는 본궁이 몹시 기뻐하였고 보석보다 더 진귀한 선물이라고 말했다고 아뢰어달라고 하며 상궁에게 눈짓을 했음. 상궁이 귀비마마의 작은 성의 표시라고 은자가 두둑이 든 전낭을 태감에게 건넸음. 그에 태감이 몸둘바를 몰라하며 전낭을 받아들고 감사 인사를 올렸어. 강징은 날이 무더우니 쉬엄쉬엄하라고 지시하고는 상궁에게 갈증 해소에 좋은 음료를 내와서 화방 소속의 태감과 궁녀들에게 나눠주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음. 강징이 안으로 들어오는데 마침 공주가 황자의 손을 붙잡고 걸음마 연습을 시키는 중이었음. 공주가 잡았던 손을 슬쩍 놓는데 황자가 잠깐 기우뚱하다가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무사히 걸음. 그리고는 칭찬을 해달라는듯이 강징과 누이인 공주를 번갈아 쳐다보았음. 공주가 그 모습을 보고 호들갑을 떨면서 모친 아윤이 걸었다고 아윤보다 신이 나서 강징에게 달려듬. 강징이 제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윤이 아린을 닮아서 영특하다고 칭찬을 해준 뒤에 사윤을 향해 팔을 뻗었어. 사윤이 유모의 도움없이 아장아장 걸어와서 강징의 다리에 매달림. 유모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사윤과 공주을 데리고 간 다음에 손을 씻기고 다시 데리고 들어왔음. 강징은 침상에 앉아있다가 공주와 황자를 차례로 품에 안아주고 보들보들한 뺨에 번갈아 입맞춤을 함. 강징의 몸이 무거운 까닭에 허리를 숙여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힘들어해서 유모가 침상으로 아이들을 데려준거겠지.





강징이 조금 있다가 연꽃이랑 잉어를 보러 가자고 말을 꺼냈는데 공주가 잉어라는 말에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임. 아직 어려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윤은 영문을 몰라하다가 공주가 뺨에 입을 쪽쪽 맞추자 좋은건지 꺄르르 웃었어. 강징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웃는데 그때 황제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남. 공주가 황제를 발견하고 부황하고 달려가자 황제가 그런 공주를 번쩍 안아들고 우리 보배 무엇을 하고 놀고 있었냐고 물어봄. 공주가 아윤이 이제 걸음마를 한다고 신이 나서 종달새처럼 쉴새없이 종알거리기 시작함. 강징이 유모를 불러서 폐하께 황자가 걸음마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라고 명했음. 유모가 사윤을 바닥에 내려놓자 뭔가 마음에 안드는지 잠시 뚱한 표정이다가 공주가 아윤하고 이름을 부르니 아장아장 걸어와서 아바하고 팔을 뻗으며 안아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함. 공주가 그런 사윤이 귀여운지 부황 아윤이도 안아주세요 말하고 자기는 내려달라고 함. 강징은 황제가 사윤을 품에 안고는 아직 어린데 말도 곧잘하는 것을 보면 총명함이 남다르다고 나중에 만고에 길이 남을 성군이 되겠다고 예뻐하는 것을 보고 천천히 다가감. 강징이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팔불출이라고 속으로 흉을 볼거라고 하였더니 자기는 이렇게 빨리 걷는 아기는 본적이 없다고 이게 다 짐과 아징 그대를 닮아 그런게 아니겠냐고 함. 강징이 웃다가 아직 해가 지기도 전인데 일과중에 아이들을 보러 오신건 아닐테고 제 반응이 궁금해서 오신거냐니까 황제가 무슨 반응하고 되묻더니 모르는척 시치미를 뗌. 강징이 반쯤 장난으로 그럼 신첩은 오수에 들어야 하니 폐하께서는 정무를 보러 양심전으로 돌아가시지요하고 몸을 돌리려니까 다급하게 장난이었다고 어깨를 붙잡음.





망기가 품에 공주를 안고 공주에게 수반속에서 헤엄치는 비단 잉어 한쌍과 치어 두마리를 보여주었음. 공주가 한참 안을 들여보다가 잉어의 배가 볼록하다고 왜그런거냐고 묻는데 강징도 그 모습을 보고는 어디 아픈게 아니냐고 걱정을 함. 망기가 심각한 표정을 한 강징을 보고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고 아픈게 아니라고 말했어. 망기가 공주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고는 잉어가 새끼를 가져서 그런거라고 했더니 공주가 강징의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잉어도 모친처럼 아기를 가진거냐고 무척 신기해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발개졌는데 망기가 그렇다고 이 잉어도 모친처럼 아기를 가졌다고 말해줌. 공주가 해맑게 잉어가 건강하게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망기가 강징의 배를 쳐다보고는 그럼 건강하게 낳아야지라고 함. 강징이 듣기 민망해져서 폐하하고 조금 언성을 높이는데 망기가 또 못들은척함. 그러고는 공주에게 우리 아린이는 여동생이 좋으니 남동생이 좋으니 하고 묻는데 공주가 둘다 좋아요라고 대답함. 망기가 강징을 돌아보고는 아징 공주의 말처럼 성별은 무엇이든 좋으니 건강하게 출산을 하는것에만 신경을 쓰라고 하며 어깨를 쓰다듬었음. 강징이 굳은 얼굴로 그럼 성별이 다른 쌍둥이도 좋으십니까? 하고 묻자 지체없이 그렇다고 대답함. 강징이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지만 성별이 다른 쌍생은 하며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망기가 손가락으로 콧등을 톡치는 바람에 말을 다 꺼내지 못함. 망기가 공주를 어르며 아린 모친께서 말도 안되는 생각을 못하도록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꾸나하고 강징의 손을 붙잡고 침전안으로 이끔.




망기강징 망징 약무선강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