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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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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은 겨울 아침, 담요에 몸을 깊숙히 파묻은 강짱은 돌연 산책을 나가기로 결정함.
일전 불을 올려둔 것도 잊고 몽롱히 잡념에 빠져있다 냄비를 홀랑 태워 환기하느라 창을 연 것만으로 볼은 발갛게 트고 코끝이 얼어붙은 듯 했던 기억은 어느덧 잠기운과 함께 멀리 달아남. 눌리고 뒤집힌 머리 아랑곳 않고 칭칭 두른 담요 위로 간밤에 바닥으로 추락한 두툼한 털실로 짜인 숄을 엉거주춤 겹친 뒤 바닥면 오래 체중에 눌려 발모양이 선명한 실내화까지 신고선 휘청휘청 위태롭게 계단을 내려감. 그리고 아직 가물한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섬. 지난 밤 내린 눈에 내딛은 첫 발은 종아리 언저리까지 하얀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고 발뒷꿈치와 발목으로 스미는 냉기에 그제야 두 눈이 번쩍 뜨임. 으으. 추워.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담요를 좀 더 여미는 손길이 미덥지 못했음. 본래였더라면 당장 위기에 빠진 발을 들어 구출해낸 다음 나만의 요새로 돌아갔을 강짱은 어째서인지 허연 벌판을 서서히 헤치고 무엇의 목적을 둔 사람마냥 앞으로 나아감. 첫 신호는 발이었음. 움직임은 앞뒤를 왔다갔다 하는 탓에 실내화 안에 눈이 침투해 그 안에서 뭉치고 체온에 발바닥 아래는 축축해지기 시작함. 냉기가 아래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니 호기롭게 뛰쳐나온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앞에 쌓인 길을 실눈으로 가늠함. 이런 기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음에도 그저 저기 숲 경계자리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강력한 암시가 어서 가보라 속삭였고 이내 강짱은 도로 앞으로 몸을 이리저리 꼬다 이를 갈며 목적지로 향함. 스스로에게 그리 멀지 않다 다독여 도착한 어두운 숲의 시작점은 여전히 내리는 눈송이가 모든 것 위에 살포시 몸을 뉘이는 소리만 들릴 뿐 인간이 그렇다 할 수확거리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음. 곧장 돌아가 발을 녹일 심산으로 가득찬 사람의 시선을 끈 건 숲 안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 평탄한 지면을 따라 엇비슷하게 쌓인 면 중 홀로 완만한 굴곡을 지닌 면이었음. 아마 적당한 바위일테지. 차라리 이 기분 나쁜 실내화따위 벗어버리고자 물 위를 뛰듯 눈자락을 날리며 다가가 굴곡을 밟자 강짱은 뒤로 물러섬. 바위나 쓰러진 나무라기에 기묘한 감각이었음. 뭔가 둘둘 말아둔 담요를 밟은 것같이 부드럽지만 그 안에 뼈대를 숨기고 있는 것같은 무언가. 고민은 길지 않았음. 얼어붙은 아래 말단 대신 연신 체온으로 녹이고 있던 손을 눈더미 아래로 푹 쑤셔넣고 그것을 가늠한 다음 적당히 잡히는 것을 잡고 수면 위로 끌어당김. 붉게 물든 낙엽 줍 듯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가 아닌지라 강짱을 따라 올라온 것은 허옇게 질린 사람의 팔과 그 아래 관절을 따라 달린 손이었음. 하얗게 입김이 뿜어져나옴. 등 뒤로 숄과 담요가 떨어졌고 두 손은 배경과 한 몸이 되어버린 사람의 형태를 발굴해내기 시작함. 이 지방은 유난히 겨울이 길고 매서워 불운한 사고가 매해 있었던 점을 떠올려도 사고를 당한 싸늘한 모습이 이것과 같을지는 알지 못했음. 강짱은 천천히 옆으로 기울인 얼굴 옆에 귀를 가져다 댐. 그리고 기다림. 아주 미약하게 귀를 간지럽히는 숨결이 확실할 때까지 좀 더 얼음장 같은 얼굴에 귀를 바짝 붙임. 머지않아 그것이 신호를 보냄. 귀를 부여잡고 잽싸게 몸을 일으킨 강짱은 그것을, 어쩌면 그 사람을 숨 죽여 바라봄. 이런 날씨에 나체로 눈 속에 파묻혀있는 사람이라니. 갑자기 찾아온 재채기로 강짱은 몸을 떪. 어쩐지 숄을 가져오고 싶다 했어. 그런 생각으로 숄을 두르고 담요를 그것 옆에 나란히 편 다음 옆으로 몸을 굴려 담요 위로 안착시킨 후 담요를 잡고 끌어 집으로 향함. 

뻣뻣한 몸을 데운 물에 넣어 녹였다 닦아 말려 이불을 몽땅 가져다 둘러 불가에 앉힌 강짱은 한시름 놓았다 손뼉을 치고 침실 서랍을 뒤적여 털실로 짠 양말 한 켤례를 찾아 어딘가 신난 걸음으로 뛰어내려옴. 그리곤 살곰살곰 다가가 이불을 들춰 곧게 뻗은 두 발에 겨우살이 장식이 수놓인 양말을 쑥 신겨놓고 이마의 송골송골한 땀을 만족스레 훔쳐냄.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물에 몸도 좀 녹이고 조금 남은 코코아도 이참에 마시고 침대에서 노곤한 시간을 보내려 했건만 저보다 큰 덩치를 씻기고 옮기느라 뜨거운 물도 맞았고 땀도 났고 지쳐버렸음. 게다가 이불이란 이불은 죄다 수상쩍은 사람한테 뒤집어 씌워 내 몫 챙기는 걸 잊었단 사실은 일을 잘 마쳤단 만족감으로 2층으로 올라와 텅 빈 침대와 마주한 후였음. 다시금 쪼르르 아래층으로 내려온 강짱은 이불을 빼내려하다 진득하게 찾아온 나른함을 두 팔 벌려 맞이해 겹겹이 쌓아 아래로 밀린 이불 한 장을 들어 몸을 안착시킴. 둘렀던 숄을 대충 말아 베고 마른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아직도 허옇게 질린 얼굴을 빤히 바라봄. 역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음. 쌓인 눈으로 가늠해 오늘 새벽에 거기 쓰러졌을 텐데 그 동안 나체로 숲을 헤맸다면 이미 불운이 그를 거뒀어야 했음. 애초에 그 숲은 사람이 밤에 돌아다닐만한 곳이 되지 못하다는 점이 중요함. 멍청한 사냥꾼이나 조난자라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됨. 그야 이 근방은 나말고 아무도 살지 않는걸. 서늘한 기운에 강짱은 몸을 웅크림. 하지만 이젠 이런 결정을 말릴 사람도 하나 남지 않았음. 졸음이 다가와 뺨을 쓰다듬음. 장작은 한낮이 될 무렵까지 탈 터였음. 아직 시린 발을 문지르다 눈을 감음. 지하 저장고 남은 훈제 연어 잔상이 아스라이 떠오름. 생선 싫어할까? 그리곤 잠에 빠짐.





오미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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