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터행맨 루행

1편 https://hygall.com/488428033 

2편 https://hygall.com/488534473

 





 

 

 

제이크 세러신은 늘 그랬다. 날 것의 감정을 받아내기보다는 갈대처럼 유연하게 흘려보내 없었던 일처럼 행세하곤 한다. 탑건 시절에도 늘상 그는 그래왔다. 루스터와 그는 삿대질하며 죽일 듯이 싸웠고, 몇 시간이 지나면 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어쩌면 그건 행맨이 가진 고약한 단점 중 하나라고 루스터는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다. 탑건의 이 잘난 파일럿은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락하다가 간신히 탈출해 몸만 건진 날에도 '새떼도 내가 좋았나보지. 혹시 내가 조류한테 취향인 건가?' 하며 실 없는 농담을 한다. 속도 없이 다트나 던지며 맥주를 마시는 그에게 루스터는 그날 밤 화를 냈다.

 

기억조차 드문드문 나는 어린 시절에 구스를 잃었던 루스터로서는 평생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옛날을 복기하며 루스터는 그가 저의 불을 부여잡고 입맞추는 체를 하는 걸 가만 받아줄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속절없이 그를 이해해야했다. 왜냐면 그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감정에 비로소 확신이 있었다. 플로리다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루스터는 머리를 싸맨 채 차오르는 감정에 헐떡이며 제이크 세러신이 목숨을 내걸고 비행하는 것에 그토록 화가 났던 이유를 짜맞출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감정. 누구보다 안어울리게도 루스터는 사랑을 믿는 부류였고 느릴 지언정 그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늘 그럴 가치가 있다는 걸.

 

"제이크 세러신, 여기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 잘 안들리는데. 나가지?"

 

그는 덥다는 듯 땀에 젖은 이너 위로 손부채질을 하며 밖은 더울걸, 너도 여기 좋아할거야. 내가 가장 하드덱 다음으로 좋아하는 펍이거든. 하고 그를 잡아 이끌었지만 브래들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참을 쓸 데 없이 힘겨루기를 하다가 행맨은 곧 주변이 둘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걸 느끼고는 순순히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세러신은 다부진 자세로 서서 펍 바깥에 달린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정리한다. 그러고는 휙 돌아보며 약간 어색하게 웃는다.

 

"혹시 방금 민망했어? 미안."

"그렇지는 않았어. 맙소사, 지금 사과하는 거야? 네가?"

"젠장, 루스터.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지 생각을 좀 해봐."

행맨은 신경이 긁힌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멍청하게 자신을 마주보는 루스터의 표정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꼭 그가 몇 시간 전에 싸운 루스터에게 대책도 없이 어깨동무를 하며 하드덱에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을 때 지었던, 얼빠진 표정 같다. 미안한데 너 못생긴 낙타 같아. 숨 넘어갈 듯 박장대소하는 행맨에, 영문도 모른채 멀거니 그를 쳐다보는 루스터다. 그제서야 행맨은 조금 기분이 풀린 듯 씩 웃어보인다.

 

"나도 사과 정도는 할 줄 알아, 브래드쇼."

물론 새벽 세 시에 미친놈처럼 문자를 보낸 누구보다는 낫지. 행맨은 꼭 사과를 요구하듯 장난스런 낯으로 다가와 그를 넌지시 쳐다본다. 그러나 루스터는 사과를 할 생각이라고는 그가 살면서 먹은 생선의 수 만큼이나 코빼기도 없다. 기억에도 희미하던 어젯 밤 그에게 무례한 문자를 보낸 새벽의 자신이 아니었다면 지금 그를 마주하고 서있을 일은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시원한 밤 공기가 그의 코 끝을 스친다. 온통 시끄러운 주점들 사이에서 말 한마디도 없이 마주보는 둘, 루스터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바라왔을 순간이다. 그리고 그건 반드시 제이크 세러신도 마찬가지이리라.









둘은, 그러니까- 행맨과 루스터, 그리고 제이크 세러신과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아주 오랫동안 걸었다. 루스터의 튼튼한 두 정강이가 근육통이 아려올 만큼, 도시 주변을 두른 오래된 성곽을 걷고 지칠 때면 더이상은 작동하지 않는 낡은 분수대 앞에 앉아 바람을 쑀다. 들려오던 소문처럼 행맨은 전역 후에 예일에서 정치학 석박을 수료하고 세러신 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정계에 진출했다. 설마 거기서도 일등한 건 아니겠지, 루스터가 묻자 행맨은 함모의 여느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이봐, 수탉. 난 항상 일등이야. 뭘 묻는 거야? 그의 말에 루스터가 드물게 시끄럽게 웃어댔다.

루스터는 한 손에 몇 일 분의 짐이 들은 무거운 캐리어를, 행맨은 온갖 브랜드의 로고가 화려하게 박힌 레이서 복장과 보호대가 가득 들은 백팩을 들고서도 무거운 줄 모르고 처음 가보던 길을 어느새 다 외울 때까지 같은 자리를 걸었다. 잘막한 언덕을 오르자 밤하늘이 보였다. 행맨은 대충 짐가방을 풀밭에 던져둔 채로 주저앉아 끊었던 담배를 피웠다. 타들어가는 종이 냄새와 재 냄새, 루스터는 그러면 생경하게도 그가 몸에 안좋은 짓을 하는 걸 구경하는 것이다. 순간 가방이 언덕배기 밑으로 내려갈 뻔 한 걸 잡으려다가 루스터가 흙바닥을 굴러 엉망이 됐고 그러면 행맨은 또 숨이 넘어가도록 흙이 잔뜩 묻은 루스터의 멍청한 얼굴을 보며 웃어댔다.

"영화에서 봤던 건데, 해보고 싶은 게 있어."

행맨은 그가 이쑤시개를 우물거리던 오래 전 습관처럼 삐딱하게 담배를 물고, 루스터가 집어다준 가방에서 자동차키를 꺼내 턱 아래에 대고 버튼을 눌렀다. 삑삑 하는 차량음이 언덕 바로 아래에 주차된 람보르기니에서 울렸다. 차가 근처에 있었는데 여태 걸어다니게 했다고? 루스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삐뚤빼뚤한 유머 감각에 눈썹을 까딱거리며 장난스레 그를 노려본다. 트렁크에 백팩을 대충 밀어넣은 그는 곧 그에게 허리까지 오는 시꺼먼 캐리어를 번쩍 들어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 다 타들어가 거의 심지만 남은 담배를 땅바닥에 퉤 뱉으며 행맨은, 왜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냐며, 타라고 손짓한다.

루스터는 그의 아주 빠른 스포츠카를 타고 쭉 뻗은 도로를 달려 번화가의 큰 호텔로 향했다. 공항이 가까운 동네였다.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거대한 통창의 스위트룸에는 욕실이 두 개나 되었지만 루스터는 이상하게 그가 씻는 소리를, 난생 처음으로 듣고 싶어 세면대에서 물이 잘 안나온다느니 수압이 약하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했다. 구스에게도, 매버릭에게도 해본 적 없는 거짓말에 그의 앞에서는 술술 나왔다. 이런 게 사랑일 수도 있구나. 루스터는 서른 다섯을 한참 넘은 지금에서야 감정을 배웠다.

한 번도 같은 방을 써본 적이 없던 둘은 한 명은 소파에 기대어 티브이를 보고 한 명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다. 머리를 채 말리지도 않은 제이크 세러신은 두터운 가운을 둘둘 말고 그에게 입을 맞춰왔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 어떤 청중도 없는 그는 말수가 적었고, 충동적인 모든 감정들에 충실했다. 다음 날에 뉴스 인터뷰가 있든간에, 새떼가 저의 엔진을 들이박아 불이 나든간에 상관 없이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멈추어서고 싶으면 멈추는 행맨. 이렇게나 그를 잘 아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루스터는 스스로가 우스울 지경이다. 어릴 적 침대 밑에서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찾아낸 듯이 그는 목 끝까지 벅차게 차오르는 충만함을 느낀다.

공용 샤워실에서 늘상 보아왔던 그의 벗은 몸이었지만 루스터는 끓어오르는 안달감을 참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남자를 안아본 적이 있던가, 아니,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기나 하던가. 정신없이 입을 맞추고, 씻지도 않은 채로 향긋한 그의 목덜미를 빨며 그는 그에게 파고들어갔다. 전투기 안에서, 하드덱의 바 테이블에서, 또 그가 헬멧을 벗어던지던 아마추어 레이싱 경기장에서, 오랫 동안 같이 걸은 성곽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를 안았더라면. 늘상 느리지만 언제나 타겟을 터뜨리는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제이크 세러신의 동그란 뒤통수를 쥐고 꼭 그를 몽땅 마셔버릴 듯이 키스했다. 흥분감에 꿈틀대는 행맨의 목울대를 쓰다듬으며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그의 안으로 저를 어떻게든 밀어넣는다. 윽, 벼락처럼 찔러오는 고통에 행맨의 밝은 에메랄드빛 눈에 눈물 방울이 맺혀 루스터는 넋이 나간 채로 그를 구걸했다.

언제나 사랑해왔던. 몇 년이 지나서야 둘은 타이밍을 놓친 사랑을 하고, 기억하던 모습과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익숙하게 서로에게 입을 맞춘다. 늦은 만큼 착실하게, 행맨을 따라 잡은 루스터는 그제야 뿌듯하게 차오르는 감정을 그에게 모조리 쏟아부을 자신이 있다.









루스터행맨 루행

짧은 삼부작 쓰면서 루행 볼 수 잇어서 너무 행복했다 읽어줘서 코맙코맙!!!

2022.08.17 00: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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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너무 따숩다ㅠㅠㅠㅠ센세 완결내줘서 고마워 너무 재밌게읽었음!!!!
[Code: bf50]
2022.08.17 00: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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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와씨ㅠㅠㅠ개좋아ㅠㅠ
[Code: 229c]
2022.08.17 06: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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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둘 이야기 넘 잘봤어요 영원히 행쇼해.....
[Code: dce6]
2022.08.17 07: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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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고마워 센세ㅠㅠㅠㅠㅠ 둘이 이루어져서 넘 좋아!!
[Code: 0e73]
2022.08.17 07: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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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이 연애 결혼 다해라 ㅜㅜㅠㅠㅠㅠ
[Code: 5660]
2022.08.17 10: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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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시작한 다음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는 루스터ㅠㅠㅠㅠㅠ
[Code: 0653]
2022.08.17 18: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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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나더 연애 시작이지 센세? 센세한테 질척거리고 싶다 너무 좋아요ㅠㅠ
[Code: 68c7]
2022.08.17 23: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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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인데 이러케 끝난다고 센세? ㅠㅠㅠㅠㅠㅠ 가지마 ㅜㅜㅜㅜㅜㅜ 연애 시작으로 억나더 ㅠㅠㅠㅜㅜㅜㅜㅜ
[Code: cdd6]
2022.08.20 02:24
ㅇㅇ
둘 감정선 너무 좋다… 이제 연애하는 모습 너무 보고 싶음 ㅠㅠㅠㅠ
[Code: 6cd2]
2022.08.20 10: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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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연애 시작인거지???? 그치 센세??? ㅜㅜㅜㅜㅜ
[Code: 74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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