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2122483
view 829
2024.04.26 23:14
IMG_6999.png

https://hygall.com/index.php?mid=hy&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B%A1%9C%EA%B1%B4&document_srl=592079383 약압해




노먼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방치해둔 피아노를 조율한듯 했다. 그동안 쳐다보지도 못 했는데, 먼지 쌓인 게 도저히 못 봐주겠던지 깨끗히도 청소하고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자기 연주를 평가해달라는 권유에 마지못해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듣는 피아노연주라 그런지 악보를 넘기는 소리조차도 듣기 좋았다. 노먼의 연주는 수준급은 아니었지만 부드러웠다. 듣기 좋다고 하니 싱긋 웃고는 연주를 이어갔다. 앉아서 그의 연주를 듣자니 할리나를 앉혀놓고 피아노를 쳐주던 때가 생각났다. 할리나는 대놓고 수준급은 아니라고 평가했었지. 그래놓고는 선심쓰듯 오빠 연주가 제일 듣기 좋다고 했었다.
악보에 있는 곡들을 다 연주하고, 이윽고 악보 없이 연주하는 그의 손 끝에서 익숙한 음들이 들려왔다. 몇 년 전 부모님 댁에 갔을때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한 번도 그에게 내가 지은 악보들을 보여준 적은 없었기에, 모른척 이런 곡은 어디서 들은 적 있냐고 물었는데 전쟁터에서 들었단다.

보급받느라 잠시 주둔 중일때 누가 라디오를 틀었는데 마침 피아노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지친 와중에 귀는 신나서, 음악에 맞춰 휘파람을 불던 기억이 나네요.
기억을 더듬어서 쳐봤는데 괜찮은가요?

나는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음 하나하나에 라돔에서 마지막으로 보냈던 유월절 기억이 떠올라 팔짱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지 않기로 했는데 다시 안 좋은 생각에 빠지려는 순간, 그렇게 누르면 안 되는 건반이 쨍 소리를 내며 눌렸다.
고개를 드니 노먼이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장난스레 건반을 두드린 후 뚜껑을 닫았다.



.
.
.
최근 노먼이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약을 처방받아도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다. 낮에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밤에는 잠꼬대로 죽은 동료들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 난 다음날이면 온 몸이 땀에 절은 채로 애써 더 괜찮은 척 인사를 건넸다. 땀이나 닦고 말하라고 핀잔을 주고싶어도 꼴이 말이 아니라 볼에 입이나 맞춰줬다.
하루는 기어이 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깨길래 달려갔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처박고 한참을 안겨있었다. 조심히 그를 떼어내고 왜 그러냐 물으니, 이번에는 동료들 심장소리가 귀를 때리듯이 커지더니 순식간에 없어지는 꿈을 꿨단다. 그래서 내가 보이자마자 심장이 제대로 뛰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처박았다고. 한동안 같이 자면서 허튼 꿈을 길게 안 꾸도록 봐줘야 할 것 같다. 나도 따귀 쳐서 깨워줘야지.


그를 위해 자장가를 작곡해보기로 했다. 노먼이 알면 나도 다 큰 어른인데 무슨 자장가냐고 열을 올리겠지만 계속 따귀 맞기 싫으면 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될 줄은 몰랐다. 고맙다고 해야할지 밉다고 해야할지. 조카의 자장가를 작곡했을 때를 떠올리며 운율을 구상했다. 겨우 이런 걸로 그의 악몽이 없어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빈 악보를 채워나갔다.


오늘도 노먼의 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그의 방문을 열어두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부드럽지만 너무 약하지 않게 건반을 두드리며 자장가를 연주했다. 그에게 위로받았을 때를 생각하며, 손 대신 마음으로 어루만지듯 음을 실어보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연주가 끝날 무렵 신음소리가 줄어들더니 이내 나지막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노먼이 간밤에는 오랜만에 푹 잤다고 한다. 꿈결에 피아노 소리를 들었는데, 어릴적 어머니가 토닥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당분간 조금 늦게 자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로 했다. 나중에 알아채면 기분좋게 놀려줘야지.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