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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22:38










춥다. 손가락 끝에 긁히는 시멘트 바닥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제이슨 토드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을 것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핏방울이 속눈썹에 아롱져 떨어진다. 그게 거슬려 다시 한 번 깜빡여 본다. 야속한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시야에 잡힌 건 자신의 핏물로 흠뻑 젖은 뾰족한 구두코의 얼룩이다. 

가엾은 울새야. 누구를 기다리니?

이죽이던 조커는 손안에 든 빠루를 높이 치켜들었다 내리친다. 몇 번의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몸이 들썩이는 것을 느낀다. 고통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가늘게 나오던 신음소리 또한 이내 멎는다. 반응 없는 그의 몸을 몇 번 찔러보던 조커가 손에 든 빠루를 버리곤 콧노래와 함께 그를 떠나간다. 굳게 닫힌 문이 조커의 간단한 동작에 쉽게 열린다. 제이슨은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올려 내도록 바라던 저 문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텅 빈 어둠이 덩그러이 남겨져 있었다. 이명과 함께 세상의 소리가 멎는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누구도..

조커의 웃음소리마저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나 악의를 가득 담고 속삭인 미치광이의 즐거움은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어리석었다.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그의 죽음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현실이다. 그러니 원망할 수 없다. 그럴 순 없었다.

오, 뱃시는 오지 않을거야. 네가 그를 기다린다면 말이야.

꺼지라고. 닥치라고. 욕 한마디라도 더 내뱉고 싶어 입을 벌려 보았지만 나오는 건 맥빠지는 기침 소리 뿐이다. 어쩔 수 없다. 그는 아직 어린 몸이고, 어린 몸은 아무리 훈련한다고 한들 어른의 발길질에 속절 없이 부서지기 일쑤였다.

틱톡틱톡.

제이슨 토드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본다. 조커의 웃음소리가 멀리, 멀리 사라져가는 것과 동시에 폭탄의 시침 소리는 점점 커진다. 그는 죽을 것이다. 온몸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뒤틀린 채로.

‘브루스..’

울지 않겠노라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노라고, 수천 번의 다짐은 죽음을 앞둔 두려움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새삼스럽게도 깨닫는다. 그는 아직 어렸다. 어른이 되고 싶어 발악했지만, 그렇기에 어른이 되지 못한채로 죽음에 매몰될 것이다. 제이슨은 이제 자신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것이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제발..’

제발. 한숨처럼 나온 옅은 애원은 누구의 귀에도 닫지 못한채 폭발소리와 함께 증발했다.




-




“왠 장미?”

데미안은 못마땅한 눈으로 딕의 손에 들린 장미 다발을 바라보았다. 붉은 장미 꽃잎 한 장이 바람결에 날려 그의 발치 앞까지 날아온다. 현관문 앞에 서서 데미안의 눈치를 보던 딕이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 앞에 팔길래. 기분 좀 풀어줄까 싶어서.”
“…제정신이냐? 토드놈이 그걸로 널 팰 것 같은데.”

뜨악한 표정의 데미안이 딕의 얼굴 한 번, 그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한 번 바라보더니 결국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굳이 매를 벌어서 맞겠다는데 그걸 막아줄 만큼 오지랖이 넓은 편도 아니고, 저 우스꽝스러운 짓이 먹힌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진 않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데미안이 순순히 비켜서자 한시름 놓았는지 딕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웨인저 내부에 발을 들이자 곧 심각한 표정의 팀이 제이슨의 방으로 향하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게 좋을것 같아, 딕.”
“…많이 안좋아..?”
“비가 오니까..”

팀이 심란한 표정으로 창문 너머를 살폈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드리운 날씨는 아슬아슬하게 오후까지 빗방울을 내비치지 않더니 퇴근무렵에서야 한바탕 쏟아지기 시작했다. 눅눅하고, 차갑고, 습한 기운이 뼛속까지 침투하는 날씨에, 오늘은 하필 그 날이다. 그들과 함께 하며 많이 나아진 제이슨은 그러나 이 무렵쯤이 되면 항상 울적한 기색을 보였는데, 날씨까지 좋지 않으면 상태가 더 심각해지곤 했다. 차라리 한바탕 성질을 부리거나 난동을 피우면 낫겠는데, 정말 심각할 땐 아무 말 없이 방에 틀어박히는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혼자 둘 순 없어. 뭐라도 시도해 봐야지.”
“역효과라도 나면..”
“…그때보다 더 최악일 순 없겠지.”

딕이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숙인다. 그의 손에 들린 장미 다발이 살짝 떨리기 시작하는 걸 착잡한 눈으로 지켜보던 팀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말이 맞다. 무슨 짓을 하든 ‘그 날’보다 더 최악일 순 없었다. 그렇다면 뭐라도 시도해 보는게 더 좋겠지. 어떤 결과가 나든, 그때보단 나은 결과일 테니..

“…딕..”

제이슨의 방 문 앞까지 따라온 팀이 조심스럽게 딕을 불렀다. 문 손잡이를 잡은 딕이 부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팀은 여전히 염려스러운지 눈썹을 내리며 물었다.

“후회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딕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




아침부터 어둑어둑한 하늘이 기어코 빗방울을 내리기 시작했다. 제이슨 토드는 멍한 머리를 부여잡은 채, 그때까지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땅이 뚫을 기세로 내리는 빗줄기는 멎을 기세 없이 끝없이 쏟아진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그의 시야가 일순 환해진다. 우레와 같은 천둥 소리는 한 발 늦게 그의 귓가에 꼿혔다.

“….”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인 걸까? 무엇이 됐든 제이슨 토드는 이 맘때의 비 내리는 풍경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호오를 따지자면 싫어하는 것에 가까웠다. 벌써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욕설을 내뱉거나, 그가 애용하는 총을 들고 밤거리로 나가 범죄자를 응징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겠지만, 글쎄. 이맘때의 이런 날에는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알프레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말했고,
딕은 그가 일시적으로 우울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팀은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고,
데미안은 혀를 찼으며,
브루스는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이슨 토드는 그저 지독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무겁고, 숨은 느리고, 체온은 차가워진다. 심장마저 느리게 박동한다. 관짝에 누워있다가 눈을 뜬 그 순간처럼. 두 번째 천둥 번개가 쳤을 때, 제이슨은 창가에서 등을 돌려 그가 여태까지 누워있던 침대로 향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묵직한 족쇄의 사슬이 서로 부딪치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낸다. 아, 그래. 나는 갇혀있었지. 느린 깨달음이 머리에서 스친다. 일주일 전, 딕이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며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는 것 또한 기억이 난다.

그의 일시적 우울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얌전히 있어달라 부탁했던가.
이 날이 지나갈 때까지, 조금만 버텨달라 애원했던가.

말하는 사이사이로 눈물과 비통함이 유리 조각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 파편에 자신이 베인 것처럼 딕은 고통스레 웃었다. 그의 세이프 하우스에서부터 딕의 인도로 이 방에 당도할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지독한 피로감이 그를 짓눌러서..

“….”

제이슨은 침대에 누워 한 쪽 팔로 눈가를 가렸다. 처음 그가 이러한 지독한 피로감에 시달린 건, 라자러스 핏의 광기가 모두 물러난 다음 해였다.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집을 습격한 블랙 마스크의 부하들에게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한 건, 단지 그러한 이유였다. 그를 향하는 총구를 분명히 목도하였음에도, 지근거리에 있는 자신의 총으로 충분히 대응사격할 수 있었음에도. 제이슨 토드는 가만히 앉아 그를 향한 총구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죽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아니었다. 죽고 싶지 않아 마지막까지 굳게 닫힌 철문을 노려보던 건 다름아닌 그였다. 그럼에도 그는 방아쇠를 당기기는 커녕 총을 손에 쥐지도 못한 채로 그를 향해 발포되는 총구의 불씨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복부에 박힌 총상에 맥없이 쓰러진 그를, 마침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찾아온 딕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죽었겠지.

상념은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노크소리에 깨졌다. 딕이 살짝 문을 열며 웃는 낯으로 그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 제이.”
“….”
“하하..오늘은 날이 별로 좋진 않네.”

막 집에 들어왔는지 옷이 쫄딱 젖어 있었다. 제이슨은 눈가를 가린 팔만 아래로 내린 채 고개만을 돌려 딕을 응시했다. 막 퇴근했는지 정복을 입은 채로, 양손에는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왔다. 이곳에 갇히고 나서, 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그를 찾았고. 항상 무언가 엉뚱한 선물을 들고 왔다. 이번에는 장미였다. 한 품 가득 안기는. 붉은, 장미.

“아, 이거. 경찰서 앞에 꽃집이 생겼거든. 생각해보니 웨인저에 이런 꽃다발이 있었던 적이 없던것 같아서..한 번 사와봤어. 어때?”
“….”

여전히 말이 없는 그에게 딕은 꽃다발을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며 두서없이 말을 이어갔다. 오늘 그에게 있었던 일, 범죄자를 체포한 일, 꽃집 사장과의 시시껄렁한 대화와 퇴근 무렵 비가 갑자기 내려 쫄딱 젖은 채로 뛰어왔는 이야기..

가만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딕의 이야기를 듣던 제이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익숙한 어둠이 시야를 채웠다. 어둠 속에서 그는 딕의 하루를 덧그려보았다. 경찰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이 꼬여 바보 같이 넘어질 뻔한 딕, 한밤이 아닌 한낮에 범죄자를 쫓아 거리를 달리는 딕, 얼굴도 모르는 꽃집 사장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딕, 꽃다발을 사들곤 내리는 비에 꽃잎이 상할까, 한껏 몸을 수그리고 웨인저의 대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리는 딕..

너는 왜 나를 살렸을까.
나는 나를 포기해 버렸는데.

“제이슨.”

떨리는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어느덧 이야기는 끝나 있었다. 제이슨은 천천히 눈을 뜨곤 옆을 돌아보았다. 불을 끈 방이 어두워서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슨은 딕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살아난 이후, 딕은 그가 ‘제대로’ 살아있었을 적보다 더 많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우는 표정도 그 중 하나였다.

“후회하니?”

주어가 없는 그 물음에, 그는 무어라 답해야 했을까. 
무어라 대답해야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대답 대신 제이슨은 시선을 돌려 침대 옆 협탁에 덩그러니 놓인 장미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장미 꽃잎 하나가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모습이,

붉고, 붉어. 
마치 심장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내리는 듯 했다.




-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제이슨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조차 잊었다. 
목소리도, 모습도, 행동마저도 잊고, 계속해서 내리는 빗줄기만을 응시했다. 

그렇다면 이 방에 멍청하게 앉아있는 그는 제이슨 토드일까.
모든 자신의 모습을 잊은 그는,
제이슨 토드일 수 있는걸까.

문득 그의 시선이 침대의 협탁으로 향했다. 붉은 장미 다발은 어느덧 생기를 잃고 바스라지고 있었다. 제이슨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아, 그러고보니.

이틀째, 딕이 오지 않는다.




-




[정신 차려, 나이트윙! 정신 놓으면 안 돼! 곧 지원이 도착할 거야! 버텨!]
“하하..그게 말이 쉽지..”

딕은 옆구리에서 울컥 새어나오는 핏물을 애써 지혈하며 인이어 속 바바라에게 창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벌써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딕은 냉정하게 계산했다. 지원이 온다한들 곧바로 이 포위망을 뚫고 전세를 역전시키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거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한웅큼씩 쏟아지는 피의 양도 상당했다. 지원이 오자마자 수혈을 하는게 아닌이상, 그가 이곳에서 살아남기란 요원했다. 

“….”

죽음이 코앞이었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언제든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적어도 제이슨이, 그의 동생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만큼 회복한 뒤에야 죽는다면 좋았을 텐데..

“허억..”

비가 내리는 탓에 흐르는 피가 지워지는게 유일한 이점이었다. 부두가의 컨테이너 박스들 사이사이를 조심스럽게 옮겨 다니며 도망쳤지만, 포위망이 좁혀지는 이 상황에서 더 버티긴 힘들 것 같았다. 펭귄의 수하들이 코앞이었다. 두런두런 떠들어대는 욕설 섞인 말소리가 그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딕은 시야
까지 어그러지는 상황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바바라. 이런 말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헛소리 마, 나이트윙! 배트맨이 가고 있어! 조금만 버티면 돼!]

바바라가 숫제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그를 설득했다. 딕은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었다. 브루스. 그를 위해서도, 제이슨을 위해서도, 그는 죽지 말아야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몸은 그가 더 잘 알았다. 흘린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아,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한 번이라도 고백해볼껄.
널 좋아한다고. 
하루라도 좋으니 함께 살아가자고..

“미안, 바바라.”

반쯤 풀린 눈을 홉뜨며 딕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잡혀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한 놈이라도 더 두들겨 패고 죽을 각오였다. 멍청한 짓 하지말라는 바바라의 충고가 아득히 멀어진다. 딕은 풀린 다리에 힘을 주어 그대로 일어섰다. 

“어..?”

그대로 놈들에게 달려나가려는 찰나, 그의 뒷편으로 총성이 터지며 펭귄의 수하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미처 대응 사격조차 못할 정도의 속사였다. 

“….”

딕은 휘청이는 몸을 애써 가누며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카울조차 쓰지 않은, 제이슨이 그곳에 서 있었다. 내리는 비를 모두 맞으며. 한 쪽 손에는 이 상황과 영 어울리지 않는 장미 다발을 들고선.

“제..제이..”

멍청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속절없이 터져나왔다. 딕은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핑핑 도는 시야 사이로 제이슨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 장미가 아물거리는 시야에 잡혔다. 가물거리는 시야였지만 알 수 있었다. 그가 선물한 장미였다. 제이슨. 제이. 왜 이곳에 왔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어물어물 나오는 말은 입술 끝에 맺혔지만 그의 귀까지는 닿지 않는 듯 했다. 빗소리 때문이었다. 땅을 두드리는 폭우 소리가 너무 커서, 그래서..

그를 향해 걷는 딕의 무릎이 꺾이고, 그의 몸이 끝내 쓰러졌지만.

“딕.”

그가 느낀건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누군가의 체온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식지 않는 생생한 체온이 딕의 창백한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딕이 작게 기침을 하며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그의 맨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피부가 환상이 아니라는 걸 실감나게 해주었다.

현실이었다. 꿈만 같게도.

“하하..너무 보, 보고싶어서..꾸, 꿈인, 줄..알았지 뭐, 뭐야..”
“가만히 있어. 곧 지원이 오면..”
“늦었어. 제이..너, 너라도 얼른..떠나..늦기 전에..”

제이슨 또한 딕의 창백한 안색과 이미 식어가는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죽을 것이다. 한 번 죽었던 그였기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온기와 창백하게 질린 입술이 빗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제이슨 토드는 설핏 웃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얼굴을 내려, 딕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다. 짧은 입맞춤 이후, 제이슨의 딕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후회하지 않아. 아무것도.”

미지근한 온기가 천천히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딕은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서 멀어지는 제이슨을 올려다보았다. 제이슨이 그의 품에 장미 다발을 안기곤 천천히 그를 두고 일어섰다.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졌는지 사방에서 총구를 겨누는 소리가 났다. 딕은 입을 벌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기도, 애원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를 컨테이너 박스 벽에 기대어 앉혀 놓고 제이슨은 자신의 매그넘을 꺼내 양 손으로 겨누었다. 

“제이슨..”

널 이렇게 죽게 하려고, 그러려고..
그러나 이번에는 누구 한 명 남지 않고, 남겨두지 않고, 
함께..

이후의 일은 흐릿하다. 제이슨의 속사에 펭귄의 수하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붉은 핏물이 대지 곳곳에 스며들었다. 비명소리와 화약 내음이 코를 찔렀다.  어느덧 지원을 온 배트맨과 울새들이 전투에 합류하고, 그의 몸을 끌어당기며 소리를 지르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의 울부짖음이 빗소리를 뚫고 그의 귓가에 닿았다. 그러나 딕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
제이슨.

핏물을 머금은 붉은 장미 꽃잎 하나가, 그의 품 안에서 흘러내렸다. 




-




붉은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다. 딕이 그것을 알고 샀는지, 모르고 샀는지,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어쩌면 나오지 못하는 진심 대신,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랑한다고. 널 사랑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고.

내도록 저택에 있던 제이슨이 족쇄를 부수고 나가 바바라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그 장소로 뛰쳐나가기 전. 그는 팀에게 다가와 붉은 장미가 무엇을 뜻하냐고 물었다. 급박한 상황에,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내내 공허한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아무 반응 없던 그였기에. 자신에게 말을 붙인다는 행위 자체가 기꺼운 팀은 친절히 답변해 주었다.

붉은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라고.

답을 들은 제이슨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웃었는지, 그도 아니면 한결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이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그는 다만 잠시간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걸음을 돌렸다. 설핏, 웃음을 지은것도 같다.

그의 손에 들린 마른 장밋잎이, 그의 발자취 뒤로 떨어져 내렸다. 

긴 장마가 마침내 끝나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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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가 슨딕 / 딕슨 

걍 야밤에 해피배드엔딩 보고싶어서 써갈김

 
2024.05.07 01:11
ㅇㅇ
모바일
센세...센세 해피배드엔딩 미쳤다... 너무좋아...
[Code: 5b36]
2024.05.07 22:47
ㅇㅇ
모바일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멈춰있던 내 심장이 이 무순을 읽고 다시 뛰고 있어 분위기 미쳤다 이 둘은 사랑을 하고 있으며 나는 이 둘과 센세까지 3명을 사랑해 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야 사랑해
[Code: 7d93]
2024.05.08 03: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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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미친 살아있던 하나는 죽었고 죽었던 하나는 살아나면서 사랑이 완성됐네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아 진짜 해피배드라서 찌찌 만갈래로 찢어짐 엉엉ㅜㅠㅠㅠㅠ 행복해라 얘들아....
[Code: 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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