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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19
자정이 지난 밤이었다. 로우의 발정기가 시작된 지 일수로는 나흘, 그러나 72시간이 채 되지 못한 밤에 별궁 정문과 연결된 층계참은 베포, 펭귄, 샤치가 한칸씩 자리를 차지해 앉아 있었다. 로우가 지난 발정기에 꼬박 칠일을 고생했던 걸 아는 그들에게 오늘밤은 천지가 개벽할 날이었다.

“히야… 근데 형수 진짜 최고다.”

턱을 괸 샤치의 얼굴에는 말로 다 표현 못할 감동이 자리했다. 일년이 미뤄진만큼 더 길고 고통스러운 발정기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극적인 변화의 원인을 꼽자면 단연 조로였다. 그로 인해 로우가 큰 탈 없이 넘어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신이랄만큼 상처 입은 이를 생각하면 다른 둘에게 샤치의 말은 생각은 하되 입 밖으로는 내지 않을 소리였다. 덕분에 그는 나란히 고개 돌린 베포, 펭귄에게서 눈총 세례를 받았다.

“대장이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린 게 다 형수 덕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죄송합니다. 내가 경솔했습니다.”

샤치도 별궁의 두 사람을 걱정함은 마찬가지다. 단지 조로 하나로 달라진 로우의 변화가 신기했을 뿐. 베포는 물론 연락을 받고 달려온 펭귄 역시 속내는 마찬가지 아니던가. 때문에 샤치가 알아서 머리를 수그리는 것으로 한고비 넘기던 중 그 뒤에서 별궁 주위를 순찰하던 2분대원이 나타났다. 포승줄에 묶인 시종장 영감을 옆에 달고서.

“영감님 또 별궁 뒷문으로 몰래 침입하시려다 잡혔습니다.”

분대원의 음성은 사무적이었다. 행여 로우에게 거슬릴까 호위대도 별궁 외부를 엄호할 뿐인데 영감님은 간도 컸다. 덕분에 영감을 잡아온 분대원도 별궁 내부에 한 발을 들였지 않나. 내일모레 팔순인 노인이 어찌나 날래던지 호위대 여럿을 잘도 따돌렸었다. 그런고로 분대원이 영감님을 이곳에 연행해온 건 다 뜻이 있음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저희 대장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을까 잠도 마다한 채 여기 죽치고 앉은 상관들더러 직접 감시하란 뜻이.

“영감님, 삼일 동안 몇번째세요?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결국 제일 윗칸에 앉은 샤치가 일어나 영감을 맞이했다. 포승줄을 풀어주며 타박하니 영감도 잘못한 줄은 알아서 못난 표정만 지을 뿐이다. 그 한결같은 모습에 베포, 펭귄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때 둘의 생각은 똑같았으리라. 저희 대장은 어떻게 저 영감님을 아무렇지 않게 달고 다니지 하고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영감님 극성에 신경줄이 다 말랐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영감은 포승줄이 풀리기 무섭게 별궁 쪽으로 뛰어가려다 샤치에게 덜미가 잡혔다.

“영감님, 제정신이세요? 나이도 드실만큼 드신 양반이 체통도 없으십니까?”
“이거 놔라, 샤치! 체통이 밥 먹여준다냐? 나는 우리 왕자님 드디어 합방하신 모습을 눈으로 보고 기록을 남길 의무가 있어!”
“그런 의무 없잖아요.”
“뭐야?!”
“하… 아무튼 영감님, 요 삼일 동안 몇번을 침입하셨는 줄 아세요? 영감님 때문에 베포랑 애들 다 잠 한숨 못 자고 별궁 지키느라 죽겠어요!”
“그정도는 아닌데……!”

영감을 층계참에 억지로 끌어앉힌 샤치가 편을 들어줄 때다. 멀뚱멀뚱 서있던 백곰의 눈치 없는 말에 펭귄이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 백곰을 아랑곳 않은 샤치와 영감이 연신 투닥거릴 때였다. 계단과 직선으로 연결된 별궁 정문 앞으로 궁정의가 내동댕이쳐지듯 나타났다. 별안간 일어난 소란에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깃털 같은 움직임을 보인 베포가 궁정의를 부축해 일으켜주니 그제야 왕진 가방이 또 날아들었다. 애당초 로우의 부름을 받아 당당히 정문 출입한 궁정의는 베포가 아니었다면 묵직한 왕진 가방에 얻어맞았으리라. 그는 십년 감수한 얼굴로 베포에게 고맙다 인사하기를 잊지 않았다.

“어르신은 또 왜 쫓겨나신 거예요?”
“또라니 무슨… 나 말고 쫓겨난 사람이 더 있나? 2분대장.”
“저기…….”

정확히는 대원들에게 붙잡힌 것이지만 베포는 영감을 가리켰다. 그에 이쪽으로 걸음하던 궁정의가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탐탁찮은 기침 소리를 낸다. 이제 막 지천명에 들어선 궁정의는 희끗한 머리가 듬성듬성 들어섰으나 풍성한 체모를 가졌다. 책상머리 인사치고는 타고난 풍채 또한 좋았는데 그에 반해 후덕한 인상을 가졌다. 때문에 꼬장꼬장한 영감보다 평판도 좋은 편이기는 했다. 궁정의장이란 직책을 가진만큼 본업에 관련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에잉, 퉷! 재수없는 걸 봤네.”

대놓고 바닥에 침을 뱉는 궁정의에 베포, 펭귄, 샤치가 돌이 됐다. 벌떡 일어난 영감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뭬야, 이 어린놈아?! 너 지금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제가 영감님 보고 그랬답니까? 하늘에 뜬 달이 재수없어서 그런 건데 반응을 보아하니 발이 저리기는 한가 봅니다?”
“저, 저, 어린 놈이 말하는 것 좀 보게!! 내가 술에 밥 말아먹을 때 똥기저귀나 차고 다닌 놈이!!”
“어유, 영감님은 술에 밥 말아드신 게 참 자랑이십니다. 그 덕에 왕자님 아니었으면 진작 장례치렀을 양반이!”
“야 이놈아! 너 왕자님께 소박맞고 왜 나한테 성질이냐? 인마!”
“그럼 성질 안 부리게 생겼습니까?! 영감님이 터진 입으로 나불댄 걸 내가 다 아는데?!”
“워, 워! 두분 진정하세요!”

이러다 진짜 싸움나겠지 싶은 상황에 둘 사이로 샤치가 끼어들었다. 펭귄이 영감님을, 베포가 궁정의를 붙잡으니 두 어른이 참견 말라며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때아닌 고함에 호위대 두엇이 슬쩍 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돌아가는 밤은 유난히 시간이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궁정의가 쫓겨난 이유는 하나였다. 왕자님 발정기도 고비는 넘긴 듯하니 조로님은 저희들이 보살피겠다 고집부린 까닭이다.
악마의 열매로 인해 로우가 특화된 쪽은 외과였다. 물론 살아있는 인체를 신경과 혈관 하나까지 포뜨듯 분리해서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이것을 실현 가능한 로우의 능력은 찬사받을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을 치료함에 쉬운 길이 어디 있으랴. 형질인자는 더욱 복잡한 호르몬 체계를 가졌으니 바른 치료를 해도 겪을 수 있는 부작용의 가짓수가 많았다. 이는 로우가 조로의 치료에 있어 왕실 궁정의장의 조언을 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까지 오를만한 실력과 연륜은 귀한 지식이었으니까. 하지만 형질인자를 잘 알고 있는데다 치료 경험도 풍부한 궁정의는 조로가 엮이면 꼭 로우를 한번씩 긁고 만다.

“왕자님은 알파 아닌가? 내 왕자님은 믿어도 알파란 족속들은 믿지 않는다네.”
“이 후레자식이 지금 망발을ㅡ!”
“진정하세요, 영감님! 여기서 소란 피우면 우리 다 쫓겨난다고요!”

외곽 복도에서 별궁으로 통하는 계단은 난간이 없었다. 때문에 성인 남성 하나가 통과할 넓이에도 끼어앉은 영감님의 입을 틀어막은 건 샤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별궁 주위를 돌던 2분대원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와 눈총을 주고 갔다. 그럴거면 다른 데로 가라는 양. 이는 저희들 분대장인 베포에게도 얄짤없는지라 씩씩대던 영감도 입을 다물기는 했다. 그사이 펭귄, 베포 밑 계단에 자리를 튼 궁정의는 해볼테면 해보라는 양 코웃음을 쳤다. 이는 영감을 향한 도발이었다. 덕분에 다른 세 명은 궁정의장 또한 할 말은 다 하는 어르신이라는 걸 떠올렸고 말이다. 이로 인해 로우가 조로의 치료 전후에 자문을 구할 때면 매번 안에서는 뭔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려오고는 했었다.

“영감님도 말이죠, 당장 내일 관짝에 들어가도 이상할 거 없는 분이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내가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번에 조로님 부추겨서 별궁에 갖다바친 것도 영감님 아닙니까? 다 늙어서 욕심부리는 것도 추합니다, 추해!”
“아니, 뭐 그건… 난 그냥 언급만 했을 뿐이야. …너희 세 놈은 뭘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냐? 그러다 눈알 빠지겄다, 이놈들아. 그리고 조로님은 내가 말 꺼내기도 전에 먼저 가시겠다 하셨는데 뭘……. 나도 물론 조로님께 거듭 감사드린다네! 내 앞으로도 이 한몸 갈아서 성심을 다해 두 분을 모실 생각이라고!”
“어휴, 저것도 말이라고 하니 원.”

궁정의가 대놓고 한숨 쉬며 타박할 때도 영감은 단정하게 빗어넘긴 백발을 긁적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야 이번 일의 시초가 자신이었음을 안 세 명이 뚫어져라 보는 것에 쑥스러운 듯했다. 그래도 영감은 발정기마다 걸레짝이 돼서 나오던 저희 왕자님이 이번엔 멀쩡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놓던 차였다.




알파는 믿을 수가 없다. 지금 조로님은 왕자님 곁에 계신 게 가장 위험하니 제게 맡기라 입 놀리던 궁정의를 로우가 내쫓은 뒤였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심한 고비를 넘긴 로우는 아직 발정기의 징후가 남아 있었다. 그러니 겁도 없이 간청하던 궁정의를 날려버린 것은 로우 또한 자비를 베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발정기 중의 알파는 흉악, 흉포한 것 아니던가. 조로만 아니었다면 궁정의는 산 채로 목이 잘려 로우의 화가 풀릴 때까지 성벽에 매달렸으리라. 이를 단언했던 로우는 때문에 조로가 곁에 있는 한 전과 같은 일은 없음을 확신했다. 애초에 이성을 잃은 것 역시 원인을 따지자면 슈거의 능력 때문 아니었나. 그로 인해 조로에게 상처를 줬을지언정 또한 이 덕분에 로우는 이성을 찾은 거였다. 심장이 터질듯한 몸 속 열기도 차분해진 지금, 로우는 타고난 형질만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궁정의는 조로의 형질이 약함을 두고 흉포한 발정기가 다시 곧 도래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로우는 그게 아님을 확신했으니까. 그가 이성을 찾은 것 조로여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단지 문제라면 역시 약한 형질에 과정이 거칠었다는 것일까. 이는 또한 도피가 자신의 발정기를 혼자 보내는 이유일 터다. 그의 발정기를 가라앉히려면 크로커다일이 감내해야 할 결과도 조로와 다름이 없을 테니. 로우는 제가 직접 겪고 나서야 젊은 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한 형질일수록 발정기도 지독하다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를 하나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지. 단, 폐하나 왕자님은 다르다. 두분 다 유난히 혹독한 유년기를 보냈지 않나. 알파는 타고난 형질 기반에 2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성장 과정이 발정기 때의 흉포함을 결정짓는다는 게 지론이야. 단지 과거에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알파가 폭주하듯 발정기와 같은 증세를 겪기도 했어. 그 몇몇의 사건들이 부각돼서 알파의 발정기가 발화기라는 오명이 붙은 게야. 사람들이 떠들려면 제대로나 알고 떠들어야 되는데 원!”

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로우가 푹신한 침구 위에 눕힌 조로를 쳐다보며 자책하던 때였다. 별궁 밖 층계참에서는 궁정의의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처치를 끝낸 로우는 차마 조로의 곁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를 제 눈 밖에 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곁에 있지도 못하던 로우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밖에서는 로우 왕자라면 무조건 다 괜찮다는 시종장 영감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바꿔주고자 마음먹은 궁정의가 있었고.

“그리고 폐하나 왕자님이나 성격이 개차반인 건 사실이잖나.”
“워, 어르신! 폐하라면 몰라도 대장은 아니예요!”
“우리 대장은 섬세하다고요!”
“맞아요!”

평소 체면을 차려서 그렇지 궁정의도 직설적인 화법의 소유자였다. 그래선지 거침없는 단어 선택에 샤치, 펭귄, 베포 순으로 반기를 든다. 영감은 정색하는 삼총사에게 역할을 빼앗겼으나 뿌듯한 얼굴이었다.어느새 계단 아래쪽에서 네 학생 앞에 서있던 궁정의는 쯧쯧 혀차는 소리를 내었다지만 말이다.

“그정도 까탈이면 성질 더러운 게 맞다, 이놈들아! 그러니 조로님 덕분에 겨우 동정 딱지 뗀 것 아니냐? 조로님 아니었으면 왕자님은 아직도 숫총각일 거다! 내 말이 틀리냐?”
“숫총각이 뭐! 그게 역병도 아닌데 뭘 그리 물고 늘어지냐? 이놈아!”
“영감님, 소리 좀요! 왜 또 발작이세요, 영감님은!”

궁정의의 말에 수긍한 세 사람이 함구할 때 벌떡 일어나 고성을 내지른 건 영감이다. 샤치가 급히 영감을 앉히며 달랠 때도 이곳의 모두는 그가 왜 숫총각에 발끈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번에도 로우를 흉보았다고 여겨 저러나 보다 했을 뿐. 하지만 이곳의 모두가 주군의 성미를 잘 아는만큼 조로가 아니었다면 로우는 여태 숫총각일 게 뻔했으니 욕이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로가 다시 한번 고마워지던 세 사람이었다.




조로가 눈을 뜬 건 나흘째 되는 이른 새벽이었다. 온몸이 두들겨맞은 듯한 격통과 함께 눈을 뜬 새벽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던 그는 더이상 제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아…….”
“그렇게 움직이면 안 돼. 잘못하면 덧난다, 조로야.”

목소리는 달빛이 닿지 않는 방구석에서 나왔다. 단지 일어났을 뿐인데 전신을 아우르는 격통에 조로가 몸을 굳힐 때 로우는 손짓 한번으로 그 옆에 쟁반을 올려뒀다. 그곳에는 물주전자와 빈 컵, 그리고 약병이 있었다. 그에 주전자를 드는데도 팔뚝이며 손끝이 저릿하니 덜덜 떨리는지라 조로는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이를 본 로우가 한달음에 곁으로 와서 주전자를 가져감은 당연했고.

“이번엔 안 도망갔네?”

물부터 한컵 시원하게 들이켠 조로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이번에도 비겁하게 도망갔다면 당장 잡으러 갔을 기세였다. 로우는 손에 올린 알약들을 무시한 채 원샷한 조로에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또 한잔의 물을 따랐다.

“일단 약부터 먹자. 위장약이랑 소염진통제, 그리고 근이완제다. 혹시 몰라서 항구토제도 준비해뒀는데 속은 어떠냐? 조로야. 혹시 매스껍다거나 하면 항구토제부터 먹을래? 식사는 언제든 가져오도록 준비시켰으니까.”

조로의 목이 많이 쉬어있었다. 이를 의식함인지 로우는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했다. 저자세로 나오는 녀석에 조로가 쥐어준 약을 먼저 삼키는 동안에는 머리맡의 전보벌레를 불러들여 음식을 주문했고 말이다. 그 뒤에도 로우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조로는 그런 놈을 빤히 보고만 있었다.

“나 토했냐?”
“어? 어… 새벽에… 그… 저… 사후피임약을 먹였는데 바로 토해서 또 먹여야 했어.”
“…….”
“그래도 72시간 내 복용은 성공률이 반반이니까 나중에 임신 여부를 확인해보는 게 안전할 거다, 조로야. 그건 내가 다 알어서 할테니 조로 넌 신경쓸 것 없어!”

로우가 이토록 순하게 군 적이 있기는 할까. 딱 붙는 연청바지뿐인 그는 상반신 곳곳에 새긴 문신과 달리 표정만은 더없이 유순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나 날렵한 인상은 그대로임에도 한껏 기가 죽어서인지 불쌍해보일 지경이다. 이를 조로가 멍하니 쳐다보려니 문밖에서 들린 소리에 돌변하는 로우가 있었다지만.

“거기 두고 가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문을 노려보던 로우의 음성 또한 된서리가 따로없다. 밖에서도 얌전히 내려놓고 사라지는 발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한번 룸이 펼쳐지고 눈앞에 나타난 작은 상에는 소뼈를 푹 고아 우린 국물에 쌀과 야채, 새우, 전복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넣고 끓인 죽이 있었다.

‘또 죽이야?’

여간해서는 음식투정 않던 조로는 이곳에 온 몇달 사이 유독 자주 접한 음식에 멈칫했다지만. 근육통을 비롯해 다리 사이가 특히 홧홧해서 그렇지 속은 멀쩡했던 그는 사실 제대로 씹을만한 걸 먹고 싶었다. 시원한 맥주도 곁들여서. 때문에 알라바스타였다면 이럴 때 한상 거하게 차려줬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남는 조로였다. 비록 겉으로는 내색 않고 수저를 들었다지만 말이다.

“너도 먹어.”
“아니, 난…….”
“아, 맞아. 발정 중에는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했나? 너 그럼 아직 발정해?”
“어? 어… 그게…….”
“그럼 있어봐. 나 금방 먹을 테니까 한번 더 하자.”
“아니야, 조로야! 나 괜찮아!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먹어라. 너 지금 몸상태도 안 좋고 그러니까…….”

약을 먹은 덕인지 그새 적응한 모양인지 숟가락질도 곧잘했던 조로가 손바닥을 보였다. 조로는 입 안의 것을 삼킨 뒤 말했다.

“나는 쉽게 망가지지 않아. 튼튼한 것도 내 장점이니까.”
“그런……!”
“그렇다고 내 몸을 경시하는 것도 아니야. 내가 그러기로 판단해서 결정한 거다, 지금 일은. 알파의 발정기라는 게 정확히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뭐 엄청 괴로울 거라고 생각은 해.”

조로는 그새 더 적응한 듯 움직임이 한결 가뿐해졌다. 그렇대도 평소와 비할 바는 못 된다지만 조로의 말처럼 몸 상태를 잘 알던 로우는 상대의 움직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사이 열심히 수저를 놀려 죽 한 대접을 비운 조로는 호탕하게 물 한 컵도 쭉 들이켰다. 배에 뭐든 음식이 들어가니 기운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로우는 또 살뜰히 조로가 비운 그릇을 치워줬고 말이다. 그사이 두툼한 매트리스 아래로 두 발을 내린 조로는 원피스 형태의 잠옷에 가리워진 다리 사이가 휑함은 느꼈다. 지금은 그로 인한 허전함보다 아랫배쪽이 여전히 열상이라도 입은 양 우릿하다는 게 더 문제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퉁퉁부은 아래가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그것 때문에 로우가 할 맛이 안 난다 해도 별수 없다 생각될만큼. 상대가 직접 문을 열어 상을 내놓은 뒤 돌아서는 동안 턱을 괴고 기다리던 조로는 영양가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근데 넌 이렇게 힘든 걸 매번 혼자 견뎠냐?”

크게 고민하는 것도 없이 불쑥 들려온 말은 로우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는 원래 색을 찾아볼 수도 없건만. 로우는 어렴풋한 기억으로 저 입에 제것을 쑤셔넣었던 게 떠올랐다. 실로 목구멍이 붓기도 했으니 저 음색의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불현듯 떠오른 단편적인 기억에 참담함을 감출 길 없던 로우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미끄러지듯 주저앉으니 이를 묵묵히 쳐다보는 조로의 시선이 깊다. 계절의 변화만큼 부쩍 길어진 밤에 아직 하늘은 달의 시간이었다.

“난 절대 후회 안 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널 찾아올 거야. 뭐, 네가 약해진 틈을 타서 덮치게 된 건 미안하게 됐다. 그게 억울해서 우는 거라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그러니까 어…… 겁탈해서 미안하다.”
“그런 게 아니다, 조로야!!!”

혼자 견디는 게 당연했다. 도피도 그랬으니까.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제가 짊어지고 가는 게 당연한 고통 아니던가. 로우는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지켜주고자 했던 이를 자신이 또다시 상처 입혔다. 그 참담함이란 발끝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제가 이성을 잃은 동안 조로에게 벌인 행동은 죽어도 용서치 못하리라. 그러니 궁정의의 말마따나 진정 조로를 위한다면 곁에 있어서는 안 될진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녀석 없이 살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럼에도 죽을 각오를 하며 조로를 멀리 할 결심을 한 순간 들려온 말이 저따위라 참지 못하게 된 거였다. 오해하는 것도 어지간해야지 어떻게 되먹은 머리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지 로우는 기가 막혔다.

“넌 진짜ㅡ!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어젯밤에 널 보고 내가 무슨 심정이었는지 짐작은 하냐?!”

두서 없이 터져나온 목소리는 형편없었다. 그러나 거칠게 얼굴을 닦아낸 로우는 조로를 노려보는가 싶더니 바로 눈을 돌렸다. 그사이 앓는 소리와 함께 더없이 둔한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킨 조로는 로우 앞에 다가왔다. 찬바닥에 엉덩이를 대기 전 미끄러지듯 들어온 이불이 누구의 소행인지 뻔해서 조로의 입끝이 슬쩍 올라갔다. 그 한편으로는 온몸의 뼈마디가 전부 따로 노는 감각에 한판 더 하자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로우 넌 나랑 한 게 그렇게 싫었냐?”
“그럴리가!!! 조로 넌 내게 항상 최고다!!”
“그럼 뭐, 됐네.”

로우의 팔을 잡은 조로가 제게 집중토록 하며 물은 내용은 그가 제일 신경쓰던 것이다. 상대가 제정신이 아닌 틈에 의사도 묻지 않고 몸을 섞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조로는 제가 오메가라고 발정기 중의 로우가 반응한 것이라 여겼다.

“넌 어떨지 몰라도 난 내가 오메가라는 걸 다행이라고 이번에 처음 생각했어. 그 덕분에 너 혼자 힘들지 않아도 됐으니까.”
“하… 조로야, 지금 여기서 신경써야 하는 건 너야. 화낼 사람도 너고.”

로우가 잡힌 팔을 빼며 한층 까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곳에는 북받친 감정을 갈무리한만큼의 냉정함이 실려있었다. 나름 분위기를 풀고자 한 조로도 다시 경직될 정도로. 잠시 빈 손을 내려다보던 그가 긴 숨을 내쉰 것은 이다음이었다. 또한 애꿎은 벽을 노려보던 로우의 어깨가 움찔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야, 네가 좋든 싫든 너랑 나는 한배를 탄 사이고, 나는 이제 로우 네가 좋은 놈이라는 것도 알아. 그리고 넌 여러번 날 구해줬는데 왜 나는 널 내버려둬야 해? 나랑 하는 게 싫은 거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진작 말했잖아.”
“그거야말로 나한테는 너뿐이다, 조로야!”
“뭐가 나뿐이라는 건데?”
“내가 원하는 몸은 조로 너밖에 없어! 네 몸이 아니라면 절대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성욕을 느끼는 건 오직 네 몸뿐이다!”
“…….”
“……그러니까 내 말은…….”
“아니, 뭐. 그렇게까지 내 몸이 마음에 들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니까…….”

다른 상대를 찾으라는 말에 욱한 성질이 튀어나왔다. 때문에 조로가 더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뜻이 잘못 전달됐지 싶다. 뒤늦게 수습하려 해봐도 이번엔 조로 역시 얼굴이 달아올라서 눈을 피하니 분위기가 영 어색하기만 했다.

“조로야, 내가 말실수를…! 아니, 방금 한 말은 한치 거짓 없는 사실이기는 한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널 좋아해. 이 한마디 하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핵심을 피하니 말도 꼬이는 게 당연했다. 때문에 입을 열수록 조로의 몸만 노리는 파렴치한이 되건만 로우는 목 언저리를 맴도는 한마디를 끝내 꺼내지 못했다. 그사이 횡설수설하던 이를 황당하게 쳐다보던 조로가 소탈한 웃음을 터뜨리니 로우는 눈을 뺏겼다. 멍투성이의 추레한 모습으로도 그는 밤하늘의 달처럼 아름다웠으므로. 이는 로우가 다시금 조로에게 반한 순간이었다.








한조각
2024.06.29 16:41
ㅇㅇ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Code: f418]
2024.06.29 17:04
ㅇㅇ
영감 진짜 시발 갈아버릴까 왜이렇게 로우한테 집착하고 조로 괴롭히는거지? 근데 로우가 조로 좋아하는게 영감보다 더한거같아서 이걸 좋아해야할지 침흘려야할지 모르겠고.. 아 갈대같은 내맘이여 끄아앙 이건 센세덕이다!! 센세가 얼른 더 알려주셔야만!!ㅠㅠㅠ 그래도 로우대신 조로가 걸레?짝이 된게 마음 놓이는 영감은... 머... 뭐 그래ㅠㅠ 그럴수있지요.. 젠장..ㅠㅠㅠ 맞어 그리고 조로랑 처음으로 잤을때도 로우 도망간거 비겁했어!!! 맞어!!! 까탈스럽고 성격 개차반인 로우.. 하.. 저 외모에 저 목소리에 저 능력 저 지위라서 가능한 저 개차반 성격..ㅠㅠ 조로도 한성격하지만 니네 진짜 찰떡이야... 꼭 둘이 많이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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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17:04
ㅇㅇ
근데 로우 너는 조로만 발라먹지말고 조로한테도 좀 알려주라고!!! 알라바스타와서 몇달동안 죽 먹을 일만 있었던 조로 생각하면.. 정말 이게 맞는걸까 싶고.. 근데 보는 나는 입이 자꾸만 귀에 걸리고 아아아아 너무 좋지요ㅠㅠㅠㅠ 게다가 조로도 로우랑 하려고 저렇게 달려들잖아요? 물론 이상하게 잘못알아서 그런거겠지만?? 그쵸? 그들은 행복해요!!!! “넌 어떨지 몰라도 난 내가 오메가라는 걸 다행이라고 이번에 처음 생각했어. 그 덕분에 너 혼자 힘들지 않아도 됐으니까.” 진짜 미치겠다 얘네ㅠㅠㅠㅠ 어허어어엉 ㅠㅠㅠㅠ막줄 진짜 미쳐버려요 센세 사랑합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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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17:06
ㅇㅇ
센세 진짜 내 비타민이고 보약이고 자양강장제고 삶의 빛이다ㅠㅠ 센세 오늘도 많이 행복해!!ㅠㅠ 그리고 얼른 금방 오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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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0:04
ㅇㅇ
로우 호위대이자 절친인 펭샤베중에 오메가가 없다는게.. 조로에겐 비극인걸까..? 진짜 별별 하고싶은말많은데 제대로 언어표현을 못하겠는 내 손꾸락과 뇌세포가 원망스러워요ㅠ 센세 그치만 글 진짜 재밌고 짜릿하고 정말 최고라능 ㅠㅠ 이걸로 조로 임신하면 로우 진짜 미쳐버리겠죠? 아 기대되서 애타는 ㅠㅠㅠ 막줄 진짜 최고ㅠㅠㅠㅠ 로우가 실컷 만들어준 멍달고 웃는 조로라니 으허어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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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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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센세 무순에서 먹고자고 노숙하는 사람 처음 보시나요??? 저는 그저 센세를 사랑하는 한마리 외로운 붕팔이일 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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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6: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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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야 그거 사랑이다? 다 아는걸 왜 니들만 모르니
[Code: 6a7d]
2024.06.30 15: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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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센세가 그려주는 로우조로가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사랑스럽고 너무 좋아 ㅠㅠ 천년만년 함께해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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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15: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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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 이 참에 임신 해버렸음 좋겠는데 너무한가 꼭 보고싶다 조로의 임신 로우 팔불출 조로 난산...로우의 애탐..그리고 로우조로 아기..가족을 꾸린 로우조로 ㅠㅠㅠㅠㅠ
[Code: 0576]
2024.06.30 16:16
ㅇㅇ
겁ㅋㅋ탈ㅋㅋㅋㅋ 조로가 저런 얘길 할 줄은 몰랐네 ㅋㅋㅋ 로우 환장... 아니 근데 예?? 피임약이요?? 왜요?? 나는 영감도 아닌데 로우조로의 아이가 너무 보고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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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1:38
ㅇㅇ
로우가 섬세한건 맞지만 성격이 개차반인것도 맞지!! 조로 꼭 임신했으면 좋겠어요 센세!! 부탁입리다!!! 팔불출 할아버지 도피도 볼 수 있는걸까요???? 로시 꼭 닮은 아이면 얼마나 좋겠어ㅠㅠ 그치만 그럴수가없고 엉엉 ㅠㅠㅠㅠ 투견이나 다름없는 치악력을 가진 조로가 입에 쑤셔넣어지는 로우를 거부하지 않은것만봐도 니네는 당장 임신을 해야합리다!! 꼭이요!! “내가 원하는 몸은 조로 너밖에 없어! 네 몸이 아니라면 절대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성욕을 느끼는 건 오직 네 몸뿐이다!” 크으 명언입리다!!!
[Code: 2d72]
2024.07.01 04:28
ㅇㅇ
아직 발정 안끝났잖아요 어서 한판 더 렛츠고 제발요
[Code: d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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