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0359408
view 1135
2024.11.04 21:12


15. https://hygall.com/609491540



방다병은 흔들리는 마차안에서 조는듯 적비성의 어깨에 눈을 감고 기대고 있는 이연화를 힐끔힐끔 바라봤어. 


이연화를 데리고 나가는 문제에 난처해할때 때마침 약을 들고 온 관하몽이 그럼 길씨 아낙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면 되지 않냐며 혀를 쯧쯧 찼었어. 그런 간단한 것도 생각 못하냐는 비이냥이 다분했지만 방다병은 화색이 돈 얼굴로 바로 뛰어나갔다가 며칠후 잔뜩 풀이 죽어 터덜터덜 돌아왔어. 길씨 아주머니에겐 늘그막에 얻은 딸이 하나 있는데 먼저 있던 아이 둘은 둘다 병으로 일찍 죽어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운 자식이었어. 그 딸이 시집을 가서 아이를 가졌는데 해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억만금을 주어도 절대 아무데도 못간다 했다는거야. 


뭐 그럼 할수 없지, 가볍게 체념하고 이연화는 두번다시 당부쇄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표현은 안해도 속은 그게 아닌지 또 혈색을 잃어가는 꼴을 보자니 결국 단단히 준비를 하고 이연화와 외출하기로 결정할수밖에 없었어. 방다병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기운 몸때문에 떨어질것 같은 방석을 이연화의 등뒤에 다시 괴어주었어. 무거운 배때문에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시큰거리다고 부러 폭신한 방석을 여러개 가져왔어. 방다병의 시선은 이연화의 배로 떨어졌어. 아무리 미꾸라지같이 빠져나가려해도 이 몸으로라면 적어도 창문으로 뛰어내리긴 힘들겠지. 


적비성도 눈을 감고 있어 마치 휴식을 취하고 있는것 같지만 이연화가 어디로 튈까 단단히 경계하는게 방다병 눈에는 다 뻔히 보였어. 방다병은 그저 별일없이 무탈히 돌아올수있기만을 바랐어.



***


성안으로 들어서니 두텁게 내린 휘장 너머로 길거리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가감없이 들려왔어. 원래 방다병은 북적거리고 활기찬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오랫만에 사람들이 부대끼는 소리를 들으니 자기도 모르게 조금 설레이기까지 했어. 적비성의 눈가가 길어지며 약간 경고의 빛을 띄길래 방다병은 바로 마음을 바로잡았어. 놀러온게 아니야,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확실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해. 


객잔에 도착해 마차에 내릴때 쌍두마차처럼 왼적비성 우방다병이 몸이 무거운 이연화를 거들겸 도망가는거 방지할겸 양옆으로 찰싹 달라붙으니 멱리안에서 풉 소리가 흘러나왔어.


- 귀하디 귀한 공자님이랑 무서운 대마두한테 보호받는 기분이 괜찮은데.


하늘하늘 길게 늘어뜨린 쓰개천때문에 이연화의 얼굴이 희미했지만 즐거움이 드러나는 목소리를 듣자니 표정은 보지 않아도 알것 같았어. 적비성은 대꾸도 않했지만 방다병은 입을 왠지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어. 자기는 전전긍긍인데 정작 당사자는 느긋해서 살짝 얄밉지 뭐야.


- 이연화 너 수상한 짓 하기만 해봐.
-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입 댓발 나온거 집어넣어. 지나가는 들개가 라창인줄 알고 한입에 꿀꺽 삼키겠어.


방다병은 칫, 입을 다물여 이연화를 끌고 들어갔어. 객잔 윗층에 자리한 방은 아니나 다를까 가장 최고급 객실이었는데 방안을 보고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어. 장정 너댓이 누워도 너끈한 침상이 창가 정확히 반대쪽이 자리하고 있지뭐야. 의자 몇개도 창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있고 딱 하나만 있는데 거기 자신이 앉을일이 없겠지. 다시 큰 침상을 보니 둘의 발칙한 생각이 어이가 없으면서 너무 웃겨서 이연화는 정말 계속 쿡쿡 웃고 말았어. 방다병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어. 
 

- 닥쳐 이연화


웃느라 정신없는 이연화를 침상에 앉히고 멱리와 피풍의도 벗겨주면서 방다병은 투덜거렸어.

- 전과가 있는 사람을 돌보려니 만반의 준비를 한거잖아.


이연화는 차를 따라주는 적비성에게 물었어.


- 적비성, 너도 같이 궁리한거야?
- 조심해서 나쁠것 없지.
- 와 천하의 적비성이 조심이라고?


이연화의 놀림에 적비성은 무시하며 찻잔을 건넸어.  늘 파리하니 힘 없는 모습이었다 간만에 즐거워하는 이연화를 보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어. 하지만 싱글싱글 웃으며 여전히 방다병을 놀리는 이연화를 보니 어떤 속궁리를 하고 있을지 경계를 늦추진 않았어.


- 세상에 방다병하고 적비성하고 한 침상에 누울거라니.


이연화의 조동아리는 기어코 방다병이 버럭 소리지르게 만들고 적비성이 마시던 차를 뿜어내게 만들었어. 



****


- 이연화, 자라.
- 이연화, 좀 자.


이연화가 떨때는 보통 한기때문이라 평소같으면 이불을 더 덮어주며 돌봐줬겠지만 이번은 아니었어. 두 사내 사이에 끼인 이연화는 알겠다고했지만 어둠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엔 웃음기가 가득했어. 적비성은 방다병이랑 같은 침상을 써야한다는게 여간 심기가 불편한게 아닌데다 대놓고 재밌어하는 이연화에 좀 짜증 나기까지 했어. 방다병 또한 마찬가지였고. 이연화만 아니면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밤낮으로 이연화를 감시해야겠다고 의논했을때 이런 결론을 동의했을때 적비성과 방다병의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졌는지. 만약 이연화가 그것도 봤다면 아마 사흘 밤낮을 웃었을거야. 둘이 동시에 이연화를 타박하니 이연화는 아이고 알겠네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고 둘 사이로 파고 들었어.  


이연화는 지금 상황이 너무 말도 않되고 웃겨서 죽을것 같았어. 세상에 강호 대마두하고 백천원 형탐하고 한침상을 공유한다니! 만약 평소라면 적비성은 상대방을 바로 죽여버렸을거고 방다병은 이불도 없이 맨바닥에서 잘걸. 아무도 안믿을거야.  은신처에서 한방을 같이 쓰는것 부터가 충분히 말이 않되는데 - 그래도 최소한 거기는 각자의 침상이 따로 있기라도 하지 - 자기 하나 잡고있겠다고 방다병과 적비성이 이런짓까지 하다니. 속으로 또다시 하하 웃고 이연화는 눈을 감았어. 


무거운 몸을 가지고 마차에 앉아있었더니 몸이 적잔히 고단하긴 했어. 약간 뒤척이니 둘이 누가 먼저라고도 할것없이 향을 뿜어냈어. 촛불 하나만 켜놓은 희미한 어둠 아래  적비성과 방다병에게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양인의 향과 사람의 체온이 이연화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어. 이연화는 떠나기로 작정을 했지만 이렇게 둘 사이에 누워있으니 뭐라 형용할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어. 부드럽게 다독이는듯하는 향이 편안했고 가까이 붙어있는 온기가 따스했어. 이연화는 문득 이 순간에 느껴지는 평온함에 가슴 한켠이 몹시 아려왔어.


이연화의 계획은 가장 적기를 노리는 것이야. 그러니 아마 몇번쯤은 계속 이렇게 맞붙어 잘 일이 생기겠지. 이연화는 몸을 웅크렸어. 이것은 자신은 누릴 자격이 없기에. 



***

다음날 아침, 셋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가판대가 문을 열즈음해서 방다병이 시장으로 뛰어갔어고 이연화는 적비성과 객잔 윗층에서 차를 마시며 방다병을 기다렸어. 오랫만에 나온 바깥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동감이 가득해 이연화는 어쩐지 자기도 좀 그런 기운을 받는것 같다고 느껴졌어. 오고가는 사람들이며 동네 아이들이 뛰어다닌다거나 알록달록 화려한 색이 가득한 비단 장수와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그득 싫은 짐수레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같은것을 구경했어. 그리고 거리에 자리한 상점들이나 길이 통하는 골목들,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어디로 빠지는지,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는 또 어떤 길을 이용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길거리에 보이는지 빠짐없이 머리속으로 외었어. 


멱리 너머로 나른하게  바깥을 구경하는 이연화를 적비성은 유심히 지켜보았어.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 이연화는 조금도 도망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저 능청스런 겉모습에 안심할순 없어. 적비성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이연화는 고개를 돌렸어. 바람이 살짝 불어 멱리 아래 가늘게 그어진 미소가 보였어. 저를 피하지 않는 투명한 눈동자도. 난각안까지 비스듬이 햇살이 들어왔어. 직선으로 꽂히는 햇빛을 막기 휘해 쳐놓은 휘장 사이로 빛이 드리워지더니 찰나의 햇살이 이연화의 눈동자에 사르르 녹아들었어. 맑은 물처럼 제 속을 가감없이 보여줄것 같으면서도 그것은 아무것도 담고있지 않았어. 


적비성은 자기도 모르게 이연화의 손목을 붙잡았어. 

- 아비?


이연화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정신이 돌아왔지만 적비성은 손을 놓지 않았어. 이연화가 어떻게든 도망갈 기회를 보고 있다는걸 잘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그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어. 마치 잡을수 없는 안개처럼 이연화는 그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질것 같았어. 이 기묘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적비성은 머뭇거렸는데 때마침 방다병이 커다란 봉투를 들고 뛰어들어왔어. 적비성은 아무말 없이 이연화의 손을 놓았어.


시끌벅적하게 당부쇄를 들고 나타난 방다병덕에 분위기는 다시 떠들썩해졌어. 꽈배기 모양으로 바삭하게 튀긴 과자는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났는데 이연화는 그 자리에서 갓튀긴 당부쇄를 세개나 먹어치웠어. 입가에 묻은 설탕을 닦을 생각도 없이 얌냠 먹고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먹고 싶긴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간만에 뭔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니 방다병은 한시름을 덜었어.


- 본공자가 직접 사왔으니까 더 맛있지?


불여우가 칭찬 받기를 기다리며 꼬리를 흔드는거랑 꼭 겹쳐보여서 이연화는 푸스스 웃었어. 


- 귀하신 몸께서 귀하게 배달해주시니 정말 맛있네요


방다병과 이연화는 과자를 나눠먹으며 주거니 받거니 농을 던지고 적비성은 묵묵히 차를 마셨어. 바깥 거리는 행인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행인으로 북적이고 점소이는 분주하게 음식과 술을 나르고 손님중 누군가가 뭐가 우스운지 크게 웃는 소리가 나고 모두에게 평범한 하루였어. 적비성과 방다병과 이연화도 오늘은 그런 일상의 하나였어. 



하지만 그 셋을 주시하는 날카로운 눈빛이 객잔 가장 안쪽에 자리한 어두운 구석에서 번뜩였어. 



연화루 비성연화 다병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