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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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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비성과 방다병의 향을 같이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연화의 입덧은 서서히 나아졌어. 먹는 양은 여전히 적었지만 그래도 한입 먹으면 세입의 양을 토하던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지. 고작 찻잔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그릇이지만 죽을 깨끗히 비우는걸 보고나니 같은 양인의 향이 좀 불편한것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어. 양인이 음인 하나를 놓고 향을 풀어낸다면 그건 본시 양인이 그 음인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함과 동시에 소유욕을 드러내기 위함이야. 그렇기에 두 양인이 자신의 공격성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서로의 영역을 너무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향을 뿜어내는건 흔치 않은 일이었지.
게다가 적비성과 방다병은 물과 기름처럼 반대되는 성격이라 한 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일단 아니라고 우길정도로 척을 지는 사이잖아. 이연화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왔기에 둘이 함께 향을 주는것에 대해 회의적이었어. 하나로 안되는걸 둘이 같이 한다고 될것 같지도 않았고 워낙 성향이 다른 우성 양인이다보니 둘이 검이나 뽑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이연화가 간과한게 있어. 사소한것 하나에도 주먹 다툼을 벌이기 일수였던 방다병과 적비성이지만 그 둘의 인연의 시작점이 이연화라는 것을. 이연화란 교차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것을. 하여 이연화가 사라졌던 시간을 둘은 함께 견뎠다는 것을 말이야. 이연화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적비성과 방다병은 같은 강호에 몸을 담았다고 해도 워낙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 만날일이 거의 없었을거야.
방다병은 부유한 소공자로 적당히 즐기며 유랑했을거고 맹주 적비성은 치열하게 위로만 올라가려했겠지. 그러한 삶이 결코 나쁘다고는 할수는 없어. 사람에겐 여러가지의 삶이 있으니까. 다만 방다병은 느꼈어, 사랑받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 늘 알수 없는 부족함이 있었을거라고. 다만 적비성은 느꼈어, 세상의 모든 고수를 다 꺾고 일인자가 되어도 채우지 못하는 공허감을 있었을거라고.
방다병과 적비성에게는 이연화가 필요했어. 어렸을때의 우상과 십여전의 숙적에 불과했던 이는 이제 친우이자 지기야.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불과 몇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둘의 인생에 이연화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수가 없어. 하여 타 양인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수 있는 작은 불편함정도였어.
지기지우의 연을 몰랐을때는 알수 없었지만 한번 알고 나니 달 없는 밤의 세상은 오롯히 어둠뿐이라는게 몸서리 쳐질만큼 싫어졌어. 그러하니 벗을 돌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거잖아? 오직 이연화를 살려야한다는 목표 하나때문에 순진한 방다병과 단순한 적비성은 가슴 한쪽에서 맴도는 정제되지 못한 감정을 미처 깨닫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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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다병은 진작에 양인 향을 뿌리지 않은것을 안타까워했어. 처음부터 했으면 그 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이연화의 낯빛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처음 발견했을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어.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처럼은 보인달까, 다시 찾아냈을때 상처투성이의 생기없던 낯에 비교하면 백번 천번 나았지. 하지만 먹는 족족 그게 다 아이한테만 가나 이제 제법 불룩 튀어나온 배와 헐렁한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마른 몸에 방다병은 작게 이마를 찌푸렸어.
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보통 임산부는 입덧이 가라앉으면 왕성한 식욕을 가진다던데 이연화는 그런것 같지도 않았어. 안되겠다. 먹는 양을 어떻게든 늘려야겠어. 방다병은 이연화가 방금 마신 은어 탕이 입맛에 맞았는지 물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것에 머리속에 그와 비슷한 음식 몇가지를 떠올리며 주방으로 달려갔어.
이연화는 소화도 할겸 바로 정원을 산책할까싶어 몸을 일으켜어. 어깨위로 여름 피풍의를 덮어주는 두툼한 손은 을 잡는 무인의 손이야. 몸이 조금 좋아진것뿐 한기는 여전해 방을 나설때마다 늘 옷을 걸쳐줬어. 그러고보니 다시 만났을때 목욕도 시켜줬었지. 익숙하게 매듭을 묶어주는 손길에 이연화는 빙긋 웃었어.
- 세상에 적맹주 수발도 다 받아보고 오래 살고 볼일이야.
금원맹이 보면 아주 기절하며 자길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고 난리 칠거야, 아이고 무안한테 들키기전에 숨어야겠어. 이연화가 재밌어하며 농을 던지는것에 적비성은 무뚝뚝하게 대꾸했어.
- 더한것도 보고 싶으면 더 오래 살아라.
뼈가 있는 말에 뜨끔한 이연화는 그저 못들은척하며 밖으로 나섰어. 배가 불룩해지니 걷는 무게 중심이 쏠려 걸음걸이가 느려졌어. 옆에서 부축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잡을수 있을정도로 적비성은 가까이 있었어. 적비성은 천천히 정원을 거니는 이연화를 보았어. 불여우랑 놀다가 풍성한 소매 아래 감춰졌던 여윈 팔이 드러났어. 재회했을때 보았던 상처 자국은 이제야 좀 희미해져갔어.
몸상태가 엉망이었으니 작은 생채기조차 쉽게 낫지 않아 계속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놨는데 최근에 와서야 겨우 상처가 아물어 이제 자국만 좀 남은거지. 적비성의 시선은 이연화의 불룩한 배로 닿았어. 그런 몸으로 임신까지 하고 있다니. 아이가 있다는걸 머리로는 알아도 실감이 안났는데 - 입덧은 어쩐지 독의 연장성인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 체형이 변하는걸 보니 정말로 저 뱃속에 아이가 있구나 새삼 깨달은거야. 아이는.....적비성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어.
이연화는 적비성의 탐탁치 않은 눈빛이 자신의 배를 향하고 있다는걸 눈치채고 속으로 웃었어. 방다병은 착한 아이니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몹쓸짓 하는건 상상도 못해. 하지만 적비성은 달라. 그렇다고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 터무니 없게도 말이야.
이연화의 담담한 미소에 적비성이 미간을 찡그렸어.
연화루 비성연화 다방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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