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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9 01:25
집안 의절하고 근근이 벌고 학교 다니는 도련님이랑 붙박이장사였던 폐차장 주인 장례 후 물려받은 말수적은 외지인



현대au라고 했지만 별전쟁 관련된 거 이름밖에 없을듯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붙잡아도 늘상 도련님이라고 불렸던 루크는 호칭보다도 그 호칭을 얻게 된 피비린내가 역해 견디질 못했음. 머리가 자라 내막을 알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뭣도 모를 나이에 몇 번인가 당한 납치 경험이 현실을 빠르게 익히게 했고 아버지의 바람과 정반대 노선으로 대상을 미워하는 안락한 삶보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불완전한 탈출을 선택함. 첫 시도가 열여섯이었고 무참비 실패했음. 경로 모색, 자금 확보, 경비 유무, GPS 파괴 따위의 세세한 계획이 짜인 건 셀 수 없는 감금과 이른바 교화를 받는 내내 이를 갈며 지금의 실패를 헛되이지 않겠다는 한 서린 경험 덕분이었단 건 말할 것도 없음. 이다지도 혈족에 목 맬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착실한 방향을 꾸렸겠지만 이제 와 아버지를 이해하고픈 마음이 한 톨조차 남았을리가. 아버지가 얕잡은 시시한 '반항' 행위는 사전 도주 경로에 미포함이던 노래를 창밖으로 방방 틀어댄 들뜬 일반인 운전자 한 명과 충돌이 벌어지고 병실에서 일어난 다음에야 조건부로 종결됨. 후에 신원조회를 시도했지만 결과야 뭐. 루크 본인 역시 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수시로 떨리고 손목 관절 아릿해 곧잘 왼손으로 감싸쥐게 됨. 

1인 병실에서 눈을 뜨자 곁에 낮잠 잔 자녀를 바라보는 듯한 아버지가 앉아있고 창가와 문가에 가드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채 배치되어 있는 꼴을 확인한 루크는 가라앉아 갈라진 목소리로 알겠어요.. 하고 중얼거림. 그리곤 손등에 꽂힌 바늘을 빼 선단을 아버지를 향해 들어보임. 끝을 보거나, 약속하거나. 하나 골라요. 정직한 방법만 쓴 게 문제였을까 결국은 자신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단 생각이 스치며 자조섞인 미소가 스밈. 아버지 말을 빌려 제 변덕에 죽어나간 파리 목숨이 얼마나 될지 몰라도 이렇게해서라도 숨통을 붙여놓겠다는 집착을 이길 수 없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음.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바늘을 조심스럽게 건네받음. 
성인이 되면 같은 이름으로 묶이지 않겠다. 완벽한 타인으로 지낼 것이다. 일절 지원도 필요없다. 그쪽에서 엉뚱한 수 써서 참견하면 내 손으로 끝내겠다. 가만 듣던 검은 손이 이마를 짚음. 내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좋다. 루크는 세월을 거쳐 보드랍고 윤기 도는 거죽 위 더러 손을 얹음. 마침내, 반쪽짜리 탈출이었음.

내던졌던 책과 다시 씨름했고 재활을 병행했고 평범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의 방향을 가벼워진 목표치를 향해 돌림. 민간인 피해 없이 이 지역에서 벗어나는 법을 홀로 연구하는 것보다 읽기도 난감한 수식 푸는 법을 참고서를 동원해 해결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쉬웠음. 남들 몇 년을 압축해 머리에 쑤셔넣은 보람은 기대보다 소박한 형태로 발현됐는데 고향 범위 내 의과대라곤 멀어지려 부단히 노력한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도 못 되는 거리에 있는 학교뿐이었음. 약속을 되새길 때면 여전히 손으로 이마를 짚는 버릇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는 순간마다 차갑게 식은 머리를 열 오른 손으로 달구게 했음. 루크는 생애 처음으로 운명이 존재한다면 참으로 가혹하다고 혀를 참. 

기나긴 기다림으로 목이 말라 달콤한 꿈을 꾸었대도 각오한 사람에게조차 현실은 씁쓸한 맛을 안겨줌. 목숨값으로 얻어낸 반푼어치 독립을 밑고 끝도 없이 되새김질 시키는 이들은 아버지가 아닌 그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지역 사람들이었음. 그들에게 있어 루크는 여전히 스카이워커이고 아들이며 다음 세대이자 도련님이었음. 부정과 수정도 두어 번이지 길거리에서 개인사를 구구절절 토로할 수 없는 노릇이니 어쩌면 이게 아버지의 노림수라는 수가 떠올라 이마를 거칠게 문지름. 

변수만 가득한 독립 속에서도 루크는 굳건히 버팀. 우선은 버티지 못하면 말그대로 배곯아 죽음이고 누구 좋자고 거래를 먼저 깰 수 없었고 시시한 반항의 끝 또한 시시할 수 없었기에 간혹 길거리에서 날아드는 낯선 이의 도련님 세례에도 웃음을 유지하려 부단히 애씀. 신문은 건네받으며 좋은 아침입니다 도련님! 이란 아침 인사를 들어도 좋은 아침이에요 부인 하고 반응하지 않기까지 약간의 마음 수련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쨌거나 해냄. 무엇보다 학교 사람들에게 그 호칭으로 불리지 않는 것만으로 숨이 트였고 비록 일과 학업 병행에 얼굴만 스치지만 스카이워커가 아닌 루크로 보여지는 집단이 일상의 일부라는 점이 큰 위안으로 다가옴. 

처음 일감을 구할 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머릴 숙이는 일이 꽤나 충격이었는지라 되도록 스스로 움직이는 일을 찾았고 수업 듣고 공부할 시간을 제외하다보니 주로 가게 배달 일을 하게 됨. 새벽 신문배달은 주인 어른이 자신을, 정확히는 정체를 아는 눈치였지만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어 불편을 끼친다면 재고해보셔도 괜찮다는 말을 두고 전임자가 말도 없이 그만두고 뜨는 바람에 곤란하던 차였다면 반겨 조금은 불안하게 시작함. 저녁과 주말 식료품점은 가게 일도 돕고 배달이 들어오면 도맡아 함. 이전에는 무려 가게 상호명이 테이프로 붙은 페인트칠 벗겨진 자전거로 힘 들여 밟아 다녔는데 루크는 성인되기 직전 해 받은 바이크가 있어 열렬한 직원들의 지지를 받아 전담 기사로 임명됨.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갸웃했으나 창고 구석에 쳐박히듯 주차된 고물 자전거를 목도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음. 


평일보다 주말이 바쁜 식료품점이 하루 점포 문을 닫겠다는 짧은 안내문을 문 앞에 붙이기 위한 테이프 자를 가위를 부탁받아 찾아온 루크는 한숨을 푸욱 내쉬는 매니저를 살핌.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물음보다도 먼저 내일은 그렇게 됐으니 하루 쉬라며 연민 가득한 얼굴로 터덜터덜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림. 사정이 엇비슷한 직원과 함께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마시던 직원에게 예정에 없던 휴무에 관해 아주 희미한 윤곽만 들을 수 있었음. 이 지역에 제일 오래 자리잡고 있던 폐차장에 일이 생겼다는 시원치 못한 발언에 이 근방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한 명과 진학으로 옮겨온 한 명만 곁눈질로 빠르게 무슨 뜻인지 알아?-몰라 너는?-나도 몰라 의견을 공유함. 모처럼 휴가를 알뜰살뜰 쓸 생각으로 신이 난 쪽과 달리 뭔가 꺼림직한 기분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 루크는 한참 미간을 구기다 얼굴이나 피라는 핀잔에 벙찐 표정으로 손바닥을 펼쳐 이마를 문지름.

묘한 궁금증은 머지않아 실마리를 잡게 됨. 시간 나면 잠시 들르라는 신문 가게 주인 어른은 가게 옆 딸린 인쇄기 창고 열쇠를 건네며 내일은 직접 열어 가지고 가야 할 거라고 하자 당연히 연결점 발견에 폐차장 때문인가요? 물음. 콧수염을 쓸어내리던 주인 어른은 알고 있었냐며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눈짓으로 허락을 구해 루크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임. 라이터 달칵이는 소리와 깊게 내쉬는 숨소리가 잠잠해지고도 적막은 이어짐. 담배를 쥐지 않은 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주인 어른은 폐차장 노친네가 간밤에 쓰러졌다며 그리 곰살맞은 양반은 아니었지만 다들 손 빌려줬으니 갈 때라도 보태야한다며 매캐한 연기를 빽빽 피움. 그제야 피어오르던 불안함이 어릴 적 아버지와 주변 이들 입에서 오르내리던 그 폐차장이었단 사실을 기억해냄. 오래 전 식료품점에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미리 지불하고 일주일치 음식을 적당히 골라 보내라는 막무가내 주문을 골치아파하는 직원들을 앞에 두고도 별말 없이 손수 골라 담아주던 매니저가 떠올라 보태야한다는 말을 뜻을 괜시리 짐작만 함. 주인 어른은 조용해진 직원을 보며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음. 웃긴 건 그 양반 자식 본 적이 없는데 장례에 와야 할 놈이 있으니 기다리란 유언장을 남겼단 거지. 제법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억양이 이리저리 튐. 그래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인 거로군요. 주인 어른은 고개를 잘잘 흔듦. 동의의 표현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애써 이해해보려는 움직임처럼 보였음.

장례 당일 새벽은 부슬비가 내렸음. 우비를 입기엔 꼴이 우스울 지경으로 가늘었고 맨몸으로 나서기엔 한 바퀴 도는 사이 찝찝하게 젖어버릴 빗방울이었음. 짧은 고민 끝에 두터운 우비를 걸치고 길들여 낡고 편한 운동화 끈을 조여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종이가루와 먼지가 한 데 뒤섞인 인쇄기 창고 공기가 바깥과 달리 텁텁해 마른 기침을 두어 번 하고서 들숨을 안에 가두고 비닐에 둘러싸인 신문 더미를 꺼내 옮김. 이미 비 예보가 있었던 모양인지 인쇄기 근처 놓인 도톰한 플라스틱비닐 커버를 들어올리며 루크는 허공에 감사의 인사를 올림. 
이 시간대가 늘 그렇듯 고요하다 못해 소름끼칠만큼 얌전한 거리는 바이크 배기음과 우비 표면과 부딪히는 빗소리뿐이었음. 이 집은 우편함, 저 집은 문 아래, 옆집은 건너뛰고, 여기는 문틈으로 반만. 주문을 중얼거리며 행여나 젖을까 신문을 감싼 비닐을 돌돌 여밈. 원래 혼자인 시간대임을 알고 있음에도 바람소리가 쟁쟁해진 귀를 열게 되는 건 얼굴도 본 적 없는 폐차장 주인을 위해 몰려간 이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누군가의 장례가 치뤄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루크는 헬멧 아래로 드러난 이마께를 손끝으로 더듬음.

가게 매니저에게서 메시지가 온 건 그 날 느즈막한 오후 무렵이었고 그때 즈음 밖은 돌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쳐 연약한 월세방 창을 흔들어대고 있었음. 폐차장 배달 다녀올 수 있겠니? 그림자 코빼기도 보지 못한 주인공이 덥썩 내놓은 액수가 아직 한참 남아 장수 직원가 매니저에게 이걸로 동네 먹여살려도 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잊을만하면 뱉었고 부도덕하다 나무라면서도 차감해 계산기를 두드리던 매니저가 마땅치 못한 일그러진 얼굴로 맞는 말이긴 하다 고갤 주억이던 모습이 고작 지지난주였음. 차액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것도 유언장에 남겨두었을지, 혹여나 자신의 장례에 올 사람에게 남길지 불어나는 질문은 사소했음. 그래서 창틀 전체가 빠져 오즈의 나라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이곳에 남기보다 차라리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편을 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 자꾸만 솟아오르는 물음표를 꾹 눌러 마침표로 만들고 지금 가게로 간다는 답장을 남긴 뒤 마른 우비를 다시금 두름.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태양이라고 했던가. 이런 바람이라면 벗기는 건 시간문제보다도 간단한 일이었을 텐데 실패했다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건물을 나선 루크의 첫 감상이었음. 바람이 부는 반대편으로 찢어지게 펄럭이는 우비는 입고 나온 게 실수였음. 어쨌거나 헬멧 끈을 조이고 이건 바람을 거스르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란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텅 빈 길을 따라 가게로 향함. 식료품점 정문은 셔터가 내려와 있어 뒷편 창고로 돌아가니 문이 열려 있어 바이크를 세우고 두 번 확인한 다음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털어내는 루크 앞에 불쑥 매니저가 모습을 드러냄. 불도 키지 않아 어둑한 실내인지라 자세히 보이지 않아도 한바탕 울음을 쏟아낸 얼굴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음. 게다가 푹 젖어 잠긴 목소리가 상상력을 더해줬음. 쉬라고 하고 불러내서 미안해. 여느 때보다 더 커다란 봉투를 건네 안으며 한사코 괜찮으니 매니저님도 들어가서 쉬시라 인사하며 돌아나오던 루크는 입구에서 고개를 돌림. 늘 하던대로 하면 될까요? 폐차장으로 첫 배달을 갔을 적 문앞에 덜렁 두고 나왔더니 가게도 아닌 매니저 개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호통치는 걸 두 매대 건너서도 들었던 기억이 생생했음. 다들 익숙해서 말해주는 걸 잊었다며 문앞 우편함 같이 생긴 서랍 안에 집 열쇠가 있니 열고 들어가 냉장고에 채워두면 된다는 지시에 몇 번인가 되물어야 했던 절차가 이제껏 문제되지 않았지만 지시사항의 주인이 사라진 지금은 명백한 무단침입이었음. 어둠 속 매니저의 머리가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루크는 냉장고에 채울게요 구두로 확인받고서 처량히 비바람에 시달리는 바이크로 돌아옴. 

아주 흠뻑 젖어버린 전신 중 가장 불쾌한 부위는 아마 발이었음. 신발이 제대로 물에 절여졌단 뜻이니 다음날까지 마르지 않으면 신을 신발이라곤 가게에서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을 구하고 가져온 양쪽 발 사이즈가 다른 검은 슬리퍼뿐이었음. 긍정적으로 굴어보자면 적어도 다른 신발이 있다는 점이고, 마르지 않을 운동화를 걱정하기엔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진짜 문제였음. 오른손에게 요구하는 일은 대개 섬세함과 거리가 먼 짐 옮기기 따위인 하중을 버티는 일이 중점이니 신경쓴 적이 손에 꼽았건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음. 아직 통제 불가하게 떨리지 않으니 최선은 배달을 무사히 마치고 곧장 돌아갈 때까지 손이 버텨주길 간절히 소망하는 수밖에 없었음. 괜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을 만끽함.

이리저리 위태롭게 쌓인 폐차 미로를 사고없이 뚫고 전달품을 들어올리는 순간 오른손이 뽑혀나가는 듯한 감각에 루크는 주저앉아 손목을 감싸쥐고 고통을 삼킴.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신체 반응 자체가 낯설어 통증보다도 생경함을 눈으로 확인하려 말끔히 붙어있는 손을 이리저리 돌리다 이내 이마에 손 언저리를 가져다대고 흐트러진 호흡을 서서히 돌려놓음. 실체없는 고통이야. 중얼거리고 흙탕물을 뒤집어쓴 다리를 털어냄. 오로지 왼손으로 짐을 들고 뒤뚱뒤뚱 나무 계단을 올라 아무리 잘 봐줘도 우편함이었던, 지붕 부분이 박살나 푹 꺼진 무언가 속으로 손을 넣어 작은 금속을 꺼내 잠긴 문을 달칵 엶. 현관에서 바로 왼쪽인 주방으로 발을 옮겨 냉장고 앞에 묵직한 비닐을 풀고 아몬드 우유 한 통을 넣고서야 다 젖고 더러운 발로 바닥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 진흙 발자국을 발견하고 한숨을 내쉼. 비닐로 닦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차곡차곡 텅 비어 허옇게 푸른빛을 내뿜는 냉기 도는 공간을 하나둘 채우고 이 난리통에도 녹지 않은 냉동식품을 손대지 않아 만실인 냉동칸 어딘가에 쑤셔넣고 잽싸게 문을 닫음. 후우. 이제 바닥만 어떻게 수습하면 일은 끝나거나 마찬가지였고 식탁 위에 매니저의 손글씨로 차액을 적은 영수증을 올려둔 뒤 유일한 남은 수인 축축히 젖은 비닐을 집으려 몸을 돌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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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 얼어붙어버린 루크 앞에 주방 문가에 위태롭게 경계심인지 애처로움인지 영 구별이 안 가는 얼룩진 얼굴이 소리없이 서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침. 둘은 말이 없었음. 한참을. 또 한참을. 그리고 천둥이 심상찮은 소릴내며 으르렁 대고서 늦어도 끝내주게 늦은 루크가 화들짝 놀라 황급히 비닐을 주워 두 손을 들어 무해함을 보인 채 배, 배달이에요, 손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셔서... 아, 급히 움직여 퍼석한 입안이 침으로 흥건해 꿀꺽 삼킴. 죄송해요. 루크는 눈을 깜빡임. 이쪽에서 아무리 반응해도 들은 채도 안 하느니 존재를 인지도 하지 않는 듯한 상대가 실제 인간이란 점을 끝없이 시신경에게 전달해야만 할 것 같았음. 이렇게 하면 안 됐는데. 그, 필요하시거나 문제 있으시면 영수증 여기 있으니까 아래에 번호 있거든요? 거기로 전화주세요. 제가 아니라 매니저님이 받으시겠지만 그래도.. 죄송했습니다. 횡설수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입을 두 박자 늦게 따라 간 머리가 막은 틈도 없이 정신이 들었을 때 루크는 주방 밖으로, 집 밖으로, 계단 아래로 넘어져 표면이 말랐던 무릎 위 진흙을 또다시 적시고 말았음. 바이크 시동은 어떻게 걸었는지, 그 좁고 위험한 폐차장 미로는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망가진 손목으로 어떻게 운전했는지, 무엇 하나 선명하지 않았지만 돌아온 좁은 방 현관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며 펼친 오른손에 거짓말같이 작은 금속 열쇠가 들려있었음.








ㅇㅇ만 나오고 딘 한 마디도 못함
루크딘 해밀옹페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