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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6 17:10

2년전에 쓴 글 찾아서 백업
 

 

 그의 아버지인 '아브락사스 말포이'가 어둠의 군주, 볼드모트 경을 섬겨왔고, 자신도 항상 그러고 싶었다. 슬리데린의 반장이 된 후 권력에 취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둠을 좋아했고, 섬겼으며 자신이 신성한 28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이 기뻤다. 머드블러드잡종, 혈통 배신자와는 차원히 다른, 신성하고 아름다운 순수혈통. 그는 자신의 피에 아름답고 신성한 순수혈통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황홀했다.

 

 그는 그렇기에 자신이 가문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 가문의 여식을 말포이 가의 안주인 자리에 앉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 말포이 가와 블랙 가의 왕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눈치챘으며, 그래서 루시우스 말포이는 자신의 약혼녀가 분명 블랙 가의 여자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벨라트릭스 블랙은 어둠의 왕에게 빠져도 너무 빠져버린 뒤였고, 안드로메다 블랙은 그가 들었을 때에는 이미 머글 출신의 동급생과 도망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선택지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처음으로 그의 약혼녀가 될, 나시사 블랙과 함께 식사를 했다.

 

 15살 답지 않게 굉장히 절제되어 있으며, 정말로 아름다웠다. . 심장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우스 말포이는 그때 당황했다. 지금까지 결코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호그와트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으나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같은 슬리데린 기숙사 였으면서 그녀를 잘 알지 못했던 그 시간들을 후회했다.

 

 그는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에 좀 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 앞에서 단 한 번도 실수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실수해버릴 것 같아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우아하게 음식을 오물거리는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첫눈에 반한 것이라. 씁쓸하게 웃으며 곱씹었다. 드물게 찻잔을 든 그의 손이 떨렸다. 실수를 할까, 차를 쏟을까봐 노심초사한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시사 블랙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차를 홀짝였을 뿐이다.

 

 

 그러나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에게 마음 한 구석도 허용치 않았다. 내 마음은 이리 당신으로 전부 채워져 있어서 다른 것을 채울 틈도 없는데. 어째서, 당신은. 당신이 마음만 내어줄 수 있다면, 나는 어둠의 군주께 가담하는 것도 그만두겠어요. 그러니까 나를 봐주면 안되나요. 루시우스 말포이는 자신의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아래로 긴 창문으로 빛추는 달빛에 반사된 그녀의 금발은 몹시도 반짝였으며 그림자 때문에 그늘이 드리워진 푸른 눈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품있고, 우아하며 블랙가의 막내 딸. 말포이 가의 안주인.

 

 응접실의 테이블에 두 남녀가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와 밖에서 이따금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만이 고요를 깨트렸다. 양방의 사랑이 없는 결혼이었으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런 평화가, 너무나 소중했다. 그녀가 지금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될 건 없었다. 그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그의 아내였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 이었으나. . 쿵. 이렇게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삼키는 것만으로도 그는 벅찼다.

 

 나의 마음을 보여주면 달아날까, 나를 싫어할까, 고백은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를 잠식했다. 그 순간 회색의 눈과 푸른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는 입술을 짖씹었다. 에라, 모르겠다. 드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일어섰고, 허리를 그녀쪽으로 기울였다. 푸른 눈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리는 거리.

 

 "싫으면.. 피해."

 

 그는 아주 드물게 격식따윈 다 집어치우고, 정중한 존댓말이 아닌 반말을 사용했다. 그와 함께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았고, 욕망이 가득담긴 뜨거운 입술이 부드러운 입술을 삼켰다. 루시우스는 그 순간에도 걱정했다. 싫다고 하면 어쩌지, 피하면 어쩌지, 내가 싫어지면 어쩌지. 잠시 있어도 반응이 없는 그녀가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러나 곧이어 혀를 얽는 것은 그가 아닌 그녀였다. 

 

 그녀는 당황했다. 오늘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날이 아닐 뿐 더러, 하자고 하지도 않았다. 그가 눈을 슬며시 감았고, 손이 그녀의 허리로 내려갔다. 손을 덜덜 떨면서 허리를 휘어잡는 그에 그녀는 직감했다. 아,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녀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입술을 살짝 벌려 혀를 섞으며 그를 끌어들였다.

 

 짙은 키스는 농밀했고, 길었다. 저택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키스에 몰두한 두 사람은 잠시 떨어지자 마자, 자신들이 침실까지 키스하며 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평소의 루시우스 답지 않게 풀어진 표정에 나시사는 침을 삼키고, 확- 그를 잡아끌어 그 위에 올라탔다. 회색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나시.."

 

 그가 채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다시 입술로 그를 막아버렸고, 동시에 손은 단추를 하나씩 풀고 있었다. 잠시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떼곤, 나시사는 은은히 웃으며 속삭였다. 블랙 가는 자존심이 높아서, 아래에 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루시우스. 그리고 그가 대답을 하기 전에 다시 입술로 말을 막아버렸다.

 

 달빛이 비추는 어두운 밤, 깊숙히 위치한 가주의 침실에 은은한 빛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사랑은 가장 큰 약점이다. 루시우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멈추지도 못했고 멈추는 법도 알 수 없었다. 그는 혹시 자신이 실수하면, 어둠의 군주가 자신의 아내에게 무슨 짓을 할까봐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점점 어둠의 군주가 존경스럽기 보다 무서워 졌으며 자신이 행하는 일이 옳지 않는 것도 자각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을 멈추게 되면 죽는다. 자신이 아니라 아내도. 가족뿐이 아니라 말포이 가문 자체가 죽는다. 가주의 자리라는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것을 그는 그때 처음 실감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아내뿐이라 생각했던 것을 고쳐먹었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 아름다운 금발에 회색의 남자아이.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둠의 군주는 몰락했다. 사람들은 말포이 가를 손가락질 했다. 대놓고하지는 못하지만, 뒤에서 그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어둠의 군주를 사랑했던 가문이, 이제는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고. 아니야, 틀렸어.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내 아내와 아들뿐이야. 

 

 누군가는 그들을 뻔뻔하다고 생각했고 손가락질 했다. 안다,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그러나 비난 받기 전에 그만두었다면 우린 이미 죽었을 거라고. 게다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감내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아내와 아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손가락질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꺼운 가면을 썼다. 가족을 사랑해서, 지키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지키고 가문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가면을 썼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살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자그맣한 욕망이 크고 무거운 죄가 되어 돌아왔다. 인생에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애초에 어둠의 군주를 섬기지 않았다면 그 욕망을 고스란히 내보일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 되었을거라고.

 

 

해포 루시사 루시우스 나시사 말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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