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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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21:03
안 봐도 되는 전편: https://hygall.com/534446987
"초코케이크 먹었지! 미국 초코케이크 먹어본 적 있어?!"
공중전화 부스 안이 백호의 웃음소리로 꽉 찼음. 동시에 수화기 너머 채치수의 한숨 소리가 고스란히 백호의 귓가에 전해졌지. 백호는 그 한숨에서 다정함이 느껴져 일부러 과장되게 한 번 더 웃었어.
"고릴라야말로 크리스마스에 애인도 없나 봐? 나랑 전화하는 거 보니?"
깐족거리는 말투에 채치수의 입에서 너털한 웃음이 나오고 나서야 백호는 안심했음.
"아무튼 이 천재 강백호는 집에서 멋진 파티를 할 거니까 전화 끊는다?"
치수가 뭐라 더 말하려는 소리가 들렸지만 백호는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어. 뭔가 따수워진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한번 문지르고 기합을 넣었음. 미국에 온 지 이제 반년, 내일은 백호가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번째 크리스마스였지.
원래 크리스마스는 백호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 산타는 가난하고 잘못된 짓만 하는 자신에게 절대 찾아올 리 없었고 그래서 백호는 선물을 받지 못했지. 이유가 명확하니 산타할아버지를 미워한 적 없었어. 매년 말에는 언제나 산타가 찾아오지도 않을 만큼 나쁜 짓을 한 자신만을 탓했지. 겉으로만 산타가 없다고 쿨한 양키 흉내를 내면서 속으로는 내심 속상해했었음.
농구를 시작한 해부터 산타는 백호를 찾아왔어. 첫해에 체력이 좀 안 좋아 보이는 산타에게 호열이 이야기를 한 후로, 산타는 매번 호열이와 백호에게 선물을 줬음. 그다음 해에는 키가 작았고, 그다음 해에는 덩치가 엄청나게 컸지. 백호는 혹시 섭섭이냐, 고릴라냐 라고 붇고 싶었지만 괜히 아는 척했다가 산타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두려움이 더 컸기에 말을 삼켰음. 어느새 크리스마스는 백호에게 특별한 날이 되어 있었지.
"으아 진짜 춥네."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와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백호는 몸을 떨었음. 애써 모르는 척 하려 해봐도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너무나도 본격적이라 무시할 수가 없었지.
'이제 산타...안 오겠지...'
길 거리에서 풍선을 나눠주는 산타를 보고 백호는 속으로 중얼거렸음. 이곳에는 섭섭이도, 만만이도, 고릴라도 여우도 없으니 산타 역시 없을 게 뻔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고맙다는 말도 할 걸'
괜히 코를 한번 킁 들이마시고 백호는 다시 천천히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음.
-
장학생으로 미국에 오고 나서 백호 반년, 넉살이 좋은 탓에 아직 미숙한 영어에도 금세 농구부 사람들과 친해졌지. 하지만 역시 언어의 벽이라는 게 있어서 '친구'라고 할 만큼은 친해지지 못했어. 북산에 있을 때는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다 같이 훈련했지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주간은 다들 본가로 돌아가서 체육관 역시 문을 닫았어. 갈 데가 마땅히 없는 백호는 호열이에게 한 번, 치수에게 한 번 전화를 걸었고 새벽임에도 둘 다 웃으며 전화를 받아주었음. 그 따스함만으로 백호는 다시 힘을 낼 용기를 얻었지.
그렇게 다시 한번 코를 들이마시고 고개를 들었는데, 숙소 앞에 정체불명의 세 명이 나란히 서 있는 게 아니겠어.
"아 나 진짜 이 선배 미쳤나. 얼어 죽으려고 그렇게 입었어요?"
"미국이 우리나라랑 날씨 반대 아니었냐?"
"아니 뭔 학교에서 잤어요? 공부 안 해?"
"안 했는데?"
"아 태웅아 너 안 추우면 선배 파카 좀 줘라"
"추운데요"
백호는 헛것을 보는가 싶어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음.
얇은 긴바지에 맨투맨을 입고 온 만만이가 덜덜 떨며 태웅이의 옷을 강탈하려 하고 있었고 그 옆에 섭섭이는 만만이 캐리어를 눕히고 입을만한 옷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어.
"백호 오늘 없나? 아 선배 그만 좀 떨어요"
"내가 안 떨게 생겼냐. 야 내가 묵는 호텔로 가자"
"호텔에 묵어요? 와 진짜 부자네"
"어차피 너네도 묵을 곳 없잖아"
"오 설마?"
"그래서 좀 큰 거 잡았다."
말을 마치자마자 대만이는 크게 기침을 하곤 부르르 몸을 떨었음.
"미국이 진짜 크긴 하다"
"그러냐? 태섭이 넌 몇시간 걸렸어?"
"버스 타고 왔으면 오늘 안에 못 왔어요."
"그 정도야? 태웅이 넌?"
"저도 뭐 비슷해요"
"그럼 너네 있는데는 지금 여름이냐?"
"뭔 소리야"
"땅이 크니까 반은 여름 반은 겨울일 수도 있잖아"
"아 미친 소리 좀 하지 마요"
"아 몰라 추워. 야 서태웅 파카 좀 벗어라"
"싫어요"
또 다시 벌어지는 싸움에 백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음. 웃음 소리를 듣고 셋 역시 돌아보며 크게 웃었지. 태웅이 손에 든 케이크와 정대만 캐리어 속에 잔뜩 들어 있는 그리운 고향 음식, 그리고 태섭이 머리에 쓰여져 있는 산타 모자에 백호는 울음을 참고 더 크게 웃었음.
슬램덩크
다들 메리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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