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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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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은 꿈을 꾸었어. 어떤 미친 사람이 나와서 방안을 온통 휘젓고 망신을 피웠어
새벽녘에 태섭은 깼어.축축한 땀과 갈증으로 일어났지.
전부 꿈이라는 생각에 차분해졌어.침대 옆을 더듬다가 누군가를 발견했어
대만 이었어

태섭은 모로 누워 잠이 깼어
어둠 속에서 정신이 또렷해졌어

가지 말라고 했을때 대만은 말 그대로 했어.
현관에 우두커니 섰지
태섭은 스스로 내뱉은 말에 놀라서 대만을 여전히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

마음에서 말이 나온다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어.

대만이 말했어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리고 태섭은 입술에 닿는 대만의 것을 느꼈어.
부드럽고 뜨거운 입술이 태섭에게 닿는 순간, 태섭은 말을 잊어버렸어.

그에게 다 맡기고, 감정이 따르는대로 행동했어

태섭은 헐벗은 어깨를 움츠렸어.갑자기 변한 상황이 낯설었어. 대만을 깨워서 얘기하고 싶었어.그러나 대만이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자 덜컥 겁이났어. 태섭은 말없이 대만의 가슴팍만 만졌어.마법에 걸린것 같았어.말을 하면 풀려버릴 것같아서 아무말도 못했어
둘다 서로가 잠에서 완전히 깬걸 느꼈지
대만이 말했어

"이상한 꿈이라도 꾼거야?"

태섭은 마음속의 걱정을 훑어보았어
전부 오래전부터 내용을 아는 것들이었지. 그럼 무엇이 태섭을 걱정스럽게 하는걸까?

멀리서 밤꾀꼬리 소리가 들려왔어.태섭의 집 근처엔 전몰자 추모 공원이 있었어.나무들이 울창한 곳이었지.태섭은 습관적인 태도로 그 공원을 서글프게 여겼으나 그도 그곳의 한적한 그늘 사이를 거닐며 행복감에 젖기도 했어
가끔은 스스로의 처지를 잊을정도로 말야

'나를 잊을때야말로 행복하다니, 이건 무슨 일일까?'

대만이 생각에 빠진 태섭에게 재차 묻자 그가 말했어

"꿈에서 어떤 미친 사람이 나왔어요. 그사람이 전부 망쳐버렸어요"
"꿈일뿐이야"

"내가 잘 선택한거죠?"

태섭은 대만의 손을 찾았어 그 손을 쥐어야 모든게 실감났어

"뭔가 놓친게 있는것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원래 꿈은 기억이 안나."

태섭은 지난번에도 대만이 말다툼 사이에 티슈를 건네주었던 걸 기억해내고 물었어.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아니. 난 우리가 사귀게 될줄도 몰랐는데"

잠시 후 태섭은 그것이 고등학생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며, 대만의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


대만은 태섭의 손을 만지작거리다 끝에 입맞췄어

"다 알려고 하진 않을게"

그럼에도 태섭이 여전히 이유를 골몰하자 대만이 말했어

"넌 특별하니까"

"그런 말은 나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더 잘어울려요"

"너 칭찬하려고 하는 것 같아?"

태섭은 잠이 깨는 것 같았어

"내가 붙잡을수 없을것같아....그래도 너랑 잘 해보고 싶어."








아라는 반년만에 식을 치루려는 태섭의 결정에 거듭 난색을 표했어.

"너무 빡빡하게 잡는거 아냐? 할게 얼마나 많은데."

"선배 경기 일정도 있고, 엄마 건강도 생각하면 이게 나아."

아라는 먼저 결혼했다고 선배 노릇을 하려는듯 했어

"난 아주 상식적으로 말하는거야"

아라가 외쳤어

"오빠를 위해서."

"나도 알아."

태섭은 모든게 자연스럽기를 바랐고, 자연스럽게 감상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랐어. 동생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지만 그보단 지나간 시간을 만회할 수 있길 바랐어.

"했으면 진작해야했어. 내가 너무 미뤘어."

아라는 오빠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어

"나도 빨리 행복해지고 싶어."








하루는 길고 고단하지만 집에 오면, 그 모든 소란이 사라져

조금 있지 않아 그가 오리란걸 아니까.

'태섭아.'

그리고 포옹하며 서로의 품안에서 나는 낯선 향기에 더욱 사랑하게 돼.

그래, 이렇게도 살수있는거지.

항상 모든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태섭으로선 '우리'에 묶여서 살아가는게 나았을거야.

반년만에 결혼할 수 있을까?

삶이란 아이러니야.

정말로, 며칠전까지 하기 싫어서 난리를 쳤는데

태섭 자신도 이 급격한 방향전환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러면서도 마음을 따라 생각이 흘러가는걸 멈추지도 못했지

대만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좋은 일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했고, 어서 빨리 돌아와 이 고통을 기쁨으로 바꿔주길 바랐어

같이 있을때면 둘만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이순간 같이 있음에 감사했고, 안도했어

지금 느끼는 안전함보다 더 큰 행복의 증거는 없었어

그리고 태섭은 얼마나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었어

문득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사람이 없는 새벽의 거리를 내다보곤 했어
멀리서 연고없는 소음이 마침내 잦아들고, 빨간불이 켜지면 사위는 정적. 모두가 잠든 이 밤에 태섭은 미칠것만 같았어.
사랑을 하고 싶어서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저 남자를 깨우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다그치고 싶었어
아니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지

결혼하잖아,
마음 속의 목소리가 말했어
뭐가 더 필요해?

대만은 잠결에, 꿈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안도했어

태섭이 비스듬히 그의 가슴 아래 뺨을 대고 있었지

어떻게 알았어...?

대만은 만족스러운 사랑의 목소리를 내면서 태섭을 안으려고 했지만, 태섭은 그가 완전히 깼다는 걸 알자마자 그에게 입맞췄어






"나보고 다시 사회 봐달라고?"

준호가 말했어

"인생사 사필귀정이란 말이지"

"뭔가 뉘앙스가 별론데요."

태섭이 불퉁하게 말하자 준호가 웃음기를 갈무리하는 척도 안하면서 설명했어

"될일은 반드시 된다 이거지. 대신 너네 어떻게 다시 만난건지 말해주면."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어요, 그간엔 망설였지만..."

태섭은 그토록 간단히 요약되는 그간의 얘기에 스스로도 놀랐어

준호는, 결혼하자는 얘기가 태섭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에 안경이 콧방울까지 떨어질 정도로 놀랐어. 곧 부드러운 표정이 되었지

"그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저 잘하는 거겠죠?"

진심은 뜻밖에 튀어나왔지

"왜?"

"너무...너무,"

황망하고 무언가 콕 찝어 말할순 없는 기분, 바람 속에서 향기를 찾으려는 막연함이 태섭의 가슴을 채웠어

"행복해서요."


준호는 메리지블루에 대해 설명했어 또 자기의 경우를 들어 결혼생활의 이모저모를 펼쳐보았지

그러나 태섭은 눈앞에서 그가 보이는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낯빛이 어두워졌어

그 얘기가 전혀 자신에게 있을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치밀어오르는 불안감에 안달이 났거든.

한편으론 모든게 결정되었다는 이성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너무나 팽팽하고 녹초가 될것만같은 긴장감이 있었어








그날밤도 태섭은 대만의 옆자리에 누워서 시선으로 그의 옆모습을 덧그리고 있었어 다음날에도 해야할 일들이 있었지만 조금만 더, 하는 생각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어

원래도 밤잠이 없는 편이었지

준섭이랑 살았을때가 생각났어 그때 형제는 같이 방을 썼어 잠을 자는 형의 눈매는 고왔어 몸은 다부진 뼈가 보일만큼 말랐지 준섭은 늘 키가 컸으니까 태섭은 형이 잠드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눈을 감곤했어

대만은 준섭과 달랐어

눈썹이 짙고 콧대가 굵었어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아버지처럼

태섭은 대만의 코밑에 손을 대었어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어

태섭은 안도했고, 두려웠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아버지의 죽음에 왜 어머니가 무너졌는지, 태섭은 차츰 깨닫고 있었어








대만은 잠에서 깼어

요즘엔 깊이 잠들지 못했어

어떤 꿈이 머리위를 맴돌며 날개를 드리우는 듯 했어

감은 눈 위로 여러겹의 음영이 물결처럼 지나갔어

태섭과 결혼이 결정된 이후로, 대만은 최종적인 장에 다다랐다고 느꼈어.

애초에 태섭이 결혼하기 원치 않았던 건 가치관의 차이였지

영원같은 거 전 안믿어요.

죽고 나서의 삶도요.

인생은 왜 이렇게 짧고 혼란스러운건데요?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경계를 넘어서면 그저 한없이 계속되는건가요? 말도 안돼요. 그런건 싫어요.

그런 말들은, 그 날 태섭의 눈물젖은 고백, 가지마요, 라는 한마디에 종식되었어.

입맞춤과 이후의 정답고 애처럽고, 기쁨이 심장을 에이는 동작들은 확인에 지나지 않았어

결국 두 사람의 눈물이 지난날의 갈등과 의혹을 녹였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이 태섭에게 답을 주었을까? 그건 모르지.

그래, 대만은 태섭에 대해 알지만 또 몰라.

아직도 그래

아직도...

눈을 떴을때 왜 그가 자기 입에 손을 얹고 있는지, 왜 어둠 속에서 또렷히 빛나는 눈동자로 대만의 어드메를 노려보고 있는지

"...뭐해, 태섭아...?"

대만이 물었을때 태섭은 어깨를 떨며 이불이 들리도록 꿈틀거렸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잖아"

대만은 서둘러 일어나 불을 켰어

그곳엔 밝은 빛에 움츠러든 태섭이, 베개에 눌려 더 심해진 곱슬머리를 누르며 앉아있었지

평소같은 모습에 대만은 안도했고, 방금 그가 느꼈던 서늘한 공포를 지우기 위해 달래듯 태섭을 불러냈어

"나 진짜 놀랐어. 뭐하고 있었던 거야?"

태섭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의무감에 밀리듯 대답했어

"살아있는지 확인했어요"

"뭐?"

"선배가 죽지 않았는지 확인했다고요"








아라는 자기 전에 신행때 찍었던 여행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았어

"대만오빠? 무슨일..."

말을 꺼내면서 직감했지 태섭의 일이라는걸

아라가 채 말을 끝내지 못하는데 대만의 목소리가 들렸어

"우리 잠깐 볼수 있을까? 이따 저녁에."

아라는 그 어조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머리를 만지고 겉옷을 집어들때까지도 그러지 못했어

그리고 달재에게도 이 문제를 털어놓지 못했어










"늦게와?"

달재가 따뜻한 김이 나는 컵을 들고 현관까지 왔어

"응, 아마도...?"

아라는 자신의 동작을 따라오는 남편의 눈을 피했어 그에겐 잠깐 '친구' 고민상담 하러간다고했지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어
거짓은 없었으나, 진실도 아니었어.
이렇듯 아라의 마음은 두가지 이유로 무거웠어.
달재에 대한 미안함과 태섭에 대한 걱정.

"커피 마시는거야? 너무 늦지 않았어 시간이?"

"괜찮아 너 올때까지 다음달 피쳐 수정하고 있지뭐"

그런 달재를 보며 아라는 자기의 이 밀월에 변명해보았어
이제와 그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던데다, 설마 태섭이 또다시 마음을 바꾼거라면 최대한 늦추고 싶었지

표면적으로는 그랬지만 마음속 깊은곳 아라 자신도 너머다 볼수없는 담장 안쪽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았어

그게 뭔지 알아내기 전까진 달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았어

아라는 쓴 웃음을 지었어

내가 송태섭 동생이긴 하네.

녹색의 키튼힐을 신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달재가 얼마전 선물로 사준 것이었어

다음순간 아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의 투명하고 선한 눈동자를 본 순간 아라는 달재를 와락 끌어당겼어

잠시후 두사람이 떨어졌어

아라가 마안함이 어린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동안 달재는 현관을 열어주었어





사실 지금쯤 끝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응 근데 태섭이가 할말 있대
항상 읽어줘서 넘나 고마우



슬덩 대만태섭 대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