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2674105 <이 때 왜 아무도 안 말려줬냐
https://hygall.com/606493499 <오늘 일이랑 이어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침대에서 혼자 자기 싫으면 그냥 복도에서 자요.“

“전에도 아무 일 없었잖아.”

“알 게 뭐야. 내가 왜 같은 침대에서 자야 하는데요.”

“같이 자고 싶으니까.”

“ㄱ,“

”거기서 막히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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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도 해야 할 것 같잖아.“









나 왜 자꾸 묘하게 옆집남자한테 말리는 것 같냐?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꾸 밀리잖아. 이거 기분 탓 아니지? 애초에 옆집남자를 집에 들인 게 잘못이지.

아니지. 난 옆집남자를 집에 들인 적이 없음. 반강제로 밀고 들어왔지. 아니야. 근데 또 편의점 갔다 왔을 때에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집에 들였지.

아니? 그 때는 이미 내 짐을 옆집남자가 들고 있었잖아. 내 짐을 들고 옆집으로 보낼 수는 없는 거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첫 단추를 잘못 꿴 게 분명함. 시작이 잘못됐으니까 줄줄이 엇갈리는 거 아니야. 그럼 끝은?

마지막은 완전히 어긋나는 건가?

아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음. 저 쪽에서 막무가내면 나도 억지라도 부려야지 어캄?




“합의가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럼 그냥 나가요.“

”재워주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나가요.”

”싫어.“

”경찰 부를 거야.“

“그러든지.“

“그럼, 그냥 소파에서 구겨지든 말든 혼자 거실에서 자요!“




말이 안 통하다 못해 내가 자꾸 말리는데 어캄? 뱉어놓고 도망쳐야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음.

사실 뱉기는 했는데 쫄아서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감. 좀 천천히 당당하게 들어갈 걸.

하여튼 늘 그렇듯 역시나 따라오지는 않더라. 말은 억지를 쓰는 것 같은데 행동은 한결같음. 뭔가 말은 많은데 사실 딱히 관심은 없어 보이는 것도 똑같음.

방에 들어가서 문 닫은 다음 문에 귀 대봤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남. 진짜 거실에서 잘 건가? 옆집남자는 혼자 앉기도 빠듯한 그 소파에서? 그러든 말든.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

어차피 문제는 나한테 있었음.

내가 우리 집은 욕실 하나 밖에 없다고 말했나? 옆집은 방에 욕실도 있던데, 우리 집은 그런 거 없음.

그 말은 쫄았어도 한껏 당당하게 외친 다음 방으로 도망쳐놓고. 씻을 준비 해서 다시 방 밖으로 나가야 했다는 말임.

..난 그냥 소리나 치고 갈아 입을 잠옷이랑 수건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됨.

옆집남자는 아직 그 자리에 서있더라. 하다 못해 의자에 앉아있기라도 하기를 바랐는데. 멀뚱하니 서서 내가 문 열고 나오는 거 쳐다봄.

나도 그런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이 원망스럽긴 했는데 그럼 어캄. 그 긴 하루를 보냈는데 씻지도 않고 잘 수는 없잖아.

옆집남자는 내 동선 따라 고개도 움직이더라. 애써 외면했는데 넓은 집도 아니라 그대로 시야에 걸려서 모를 수가 없었음.

그래도 계속 못본 척 하고 욕실로 들어감. 신경 안 쓰는 척 들어가서 문 닫자마자 또 밖에서 무슨 소리 안 나는지, 예를 들면 비웃는 소리같은 거 말이야. 그런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문에 귀 대봄.

조용하더라. 조용해서 더 불안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기분 이상했음.

그건 그거고. 이미 욕실까지 왔는데 안 씻을 수는 없잖음? 개운하게 샤워도 하고 욕실을 나왔는데..

남자가 없는 거임.

혹시 나갔나? 집에는 못 들어갔을 텐데. 진짜 복도에 갔나? 아니면 건물 밖에 어디 잘 데가 있긴 있었나?

막상 없으니까 또 괜히 죄책감 들더라. 밤 공기는 꽤 쌀쌀한데 술 취한 사람을 내보내도 되나. 손 다친 건 문제 되지 않으려나.

누가 누굴 걱정하나 싶으면서도 막상 눈 앞에 안 보이니까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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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앗,”


..는 무슨. 괜히 걱정하느라 거실 둘러보면서 방에 들어갔는데 내 침대에 앉아 있었음.

난 그것도 모르고 계속 방 밖만 살피면서 들어가서 문까지 잘 닫은 것임.

옆집남자가 돌아봐서 눈 마주치자마자 심장 떨어트릴 뻔 함. 약간 떨어진 것 같음. 속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겉으로도 이상한 소리 내고 입 틀어막음.

쇼크사는 아닌데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죽은 사람 있냐? 있겠지?

어째 옆집남자는 마주칠 때마다 내 심장을 제속도로 뛰게 하는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음. 저렇게 생긴 얼굴에 저런 몸매를 갖고 순전히 위협만으로 사람 심장을 뛰게 하는 것도 재능 아니냐?



“언, 언제 들어왔, 아니 왜 들어와 있어요?”

“침대에서 자라며.”

“아까는 안 잔다며..!”

“안 잔다고는 안 했는데.“

”ㄱ, 거실에서 자기로 했잖아요.“

”내가?“

그치. 옆집남자가 그러겠다고 한 건 아니지. 가 아니라. 내 집인데 내 마음이지 뭘 납득하고 있는 거임?


“알겠어요. 그럼 거기서 자요. 원래 말한대로 내가 밖에서 잘 테니까.”

“붕대 있어?”

“엥?”

”이거 갈아야 하는데.“



이번엔 진짜 어그로 안 끌리고 침착하게 나갈 생각이었음. 진짜임. 근데 붕대 감긴 손을 들고 흔들잖아.

아무리 상처 달고 담배나 실컷 피우고 술까지, 아. 술은 실수라 그랬지. 어쨌든 본인 상처에 별로 관심도 없어 보이는 인간이라고 해도 상처까지 그냥 둘 수는 없는 거잖음.

내가 감았던 붕대 상태가 아닌 걸 보면 본인이 다시 갈긴 했나 싶긴 한데. 그럼 내가 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붕대만 가져다 주면 되는 일이잖음?

그럼 난 환자를 외면한 사람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옆집남자랑도 분리 될 수 있음. 옆집남자만 혼자 이 방 침대에서 재울 수도 있게 됨.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안 가시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단 말이지.

결국 내가 들고 있던 것들 방에 대충 정리해두고 구급함 찾으러 감. 내용물도 잘 있는 거 확인하고 다시 방으로 가져다 줌. 문도 열어뒀음. 이 방이야말로 옆집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날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작았지만.

그래도 문을 닫아 두는 거랑 열어두는 건 기분이 다르지 않겠음?



“여기요. 문은 닫고 나갈 테니까 여기서 잠만 잘 자요. 가능하면 방 밖으로 나오지 말고.”

“한 손으로는 못 하는데.”

“..이미 갈아본 거 아니에요?”

“이것도 누가 해준 거라.”


잠깐. 내가 왜 내 집에서 재워주고 붕대까지 다시 감아줘야 함? 전혀 그럴 필요 없는 거잖아.

근데 이번에도 좀 늦게 깨달았음. 한숨 쉬고 침대에 자리잡고 앉은 다음 옆집남자 손까지 넘겨 받은 후에야 깨달음.



”굳이 지금 내가 해줘야 할 필요가 있나? 내일 원래 해줬다는 사람이나, 병원 가서 갈면 되는 거잖아요.”

“고마워.”


그래도 이번엔 붕대 갈기 전에 깨달았단 말임. 아직 물릴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그대로 두고 나갈 수 있는 타이밍에 말했다니까?

근데 고맙다잖아. 난 기껏 뒤늦게라도 기분 나쁜 티 내고 발 빼려고 했는데 별안간 고맙다잖아?

그나마 불만이라도 보여주려던 얼굴 그대로 들어서 눈 마주쳤는데 희미하게 웃고 있기까지 하더라. 분명히 내 표정은 멍청해 보였을 거임.


“이것도 갚을게.”

옆집남자는 태연하고 느리게 그러는데,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이상하게 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항상 무던해 보이기만 하다가 언제는 또 예민하게 굴었다가 또 이럴 때는 발도 못 빼게 만들지를 않나.

한두 번 속는 것도 아니고, 나도 매번 예. 그러십니까. 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음?

내가 아무리 겁 많은 소시민이어도 할 말은 하고, 반항도 할 줄 아는 사람임.


“어떻게 갚을 건데요?”

“몸으로.”

방금 한 말 취소. 후퇴한다.

난 힘으로도 말로도 피지컬로도 옆집남자한테 이길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음.

그나마 학습 능력은 있어서 다행이지. 여기서 헛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방법으로 갚으라는 둥 바른 소리 해봤자 이상하게 말리는 사람은 나일 거임. 분명히 나만 손해야.

그냥 바로 못 들은 척 고개 내리고 구급함 열었음. 손에 감긴 붕대도 풀어내는데 머리 위에서 비웃는 소리같은 게 짧게 들린 것 같은 건 기분 탓일 거임.



“받을 거지?”

“이것 봐. 그 때부터 담배 계속 피웠죠? 하나도 안 나았잖아요.”

”답례?“

”며칠 안 되긴 했지만. 이것보다는 나아졌어야 하는 거예요. 병원이라도 가라니까.“

”오늘 받을래?“

”우선 소독부터 다시 할게요. 안 낫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오늘 술까지 마셔서 덧날 수도 있으니까 내일은 진짜 병원이라도 가 봐요.“

”답례로 파이는 못 만들어도 크림파이는, 아야.“



보통 사람들은 무시라는 걸 당하면 멈추지 않음? 상대가 전혀 모른 척 하면 그만두지 않냐고. 아니 하다 못해 정도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소독약 꺼내자마자 상처에 슬쩍 흘리니까 말을 멈추긴 하더라.

물론 말만 멈췄고 앓는 소리 내는 시늉만 했지. 고개 들어서 본 얼굴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음.



“그 이상은 성희롱이에요.”

“나한테 뭘 기대했는데.“


태연하기만 한 게 아니라 웃더라. 희미하게 웃는 얼굴 말고, 비웃는 표정도 아니었음.

처음 나한테 들어오세요. 할 때 봤던 거랑 비슷하게 웃는 얼굴이었어. 눈은 서늘한데 입꼬리만 약간 올라간 그 표정 말이야.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굳는단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순간 아무 말도 안 나와서 올려다 보기만 했는데 옆집남자는 여유롭게 안 다친 손으로 내 머리도 넘기더라.

씻고 수건으로만 털어서 아직 젖은 머리를 느리게 귀 뒤로 넘기고, 손은 그대로 머리칼 따라서 내려감.



”하는 일이 뭐냐며. 손은 왜 다쳤고, 전에 편의점에선..”

”...“

”내가 뭐하는 새끼로 보여.“

그 말에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함?

사람 한둘 정도는 쉽게 해치고 집에서 토막이나 낼 것 같이 생기셨습니다. 할 수는 없잖음?

난 그냥 최대한 가만히 있었음. 숨도 아껴 쉬고 내 인생도 돌아보고 엄마, 아빠.. 당신 딸은 아마 오늘 유서도 못 써두고 갑니다.

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술처마시고 혼자 사는 옆집 여자 따라 들어가서 뭘 할 것 같은 놈으로 보이냐고. 고작 성희롱?”

“..이러지 마요. 아무 짓 안 할 거잖아요.“

“여기선 소리 질러도 도와줄 사람 없어.”

“ㄱ, 괜히 겁주지 말라고요.”

“이 동네 경찰들은 외부인 말 들어주지도 않아.”

“왜 이래요..?”

”그러게 집에는 왜 들여서.“

”내가 들인 게 아니라, 억지로 들어왔잖아요.“

”처음에는.“

”..결국 내가 들인 걸로 쳐요. 그래도... 아무.. 짓 안 할 거죠..?”

“뭘 믿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아무 짓 안 한다고 본인이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뭘 믿고.“



내 머리칼 끝에 걸려있던 손은 천천히 내려가서 내 다리 근처에 놓였음. 정확히는 침대기는 했는데 나랑 너무 가까웠어.

난 방금 전까지 별 생각 없이 씻고 나와서 잘 생각이었단 말이야..? 잠옷이 반바지라 다리로 온 신경이 쏠릴 만큼 가까웠다고.



“...난 진짜 진심으로 무서우니까 제발 그런 장난 치지 마요.”

“장난 같아?”

“··· ·····장난 같아.”



진짜 진심으로 무서웠던 건 진짜였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음. 무서워서 울기 직전이었단 말임.

근데 모르겠어.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대답 했음.

그러고 눈도 못 떼고 있으니까 옆집남자가 몸을 뒤로 물리더라. 내 다리 옆에 짚고 있던 손도 물러났음.



“너무 떠니까 재미 없네.”


그 말 듣고 나서야 한숨 쉬면서 내 손에 얼굴 파묻었는데, 진짜 떨고 있더라. 아직도 손이 바들바들. 옆집남자 말대로 너무 떨고 있더라고.

손 내리고 다시 고개 들었는데 옆집남자는 당연히 태연하겠지. 뭐가 다르겠음. 이딴 장난이 아무렇지 않은 인간인데.

기분은 좀 더러워도 옆집남자 말이 맞음. 대체 이 사람한테 뭘 기대했는데? 뭘 믿고 덥석덥석 자꾸 부딪히냐고.



”..붕대 정도는 혼자서도 감을 수 있잖아요. 소독만 해도 되니까 알아서 해요.“

”화났어?“


잠깐만. 붙잡는 건 뭔가.. 뭔가 규칙 위반 아님? 들어오라고는 해도 들어오면 시큰둥, 가지 말라고는 해도 가는 것도 그러든 말든. 그게 항상 옆집남자가 보인 태도였잖아.

근데 왜, 난 대충 붕대 내려두고 일어나서 나갈 생각이었는데 왜 붙잡는 거지?

심지어 다친 손으로 붙잡음.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오히려 내가 붙잡힌 내 손을 움츠렸음.



“기대한 게 없어서 화도 안 나요.”

“장난 같다며.”

“한 쪽은 진심으로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게 어떻게 장난이 돼요.”

”장난한 거 아니니까.“

”··· ···“

“처음엔 그렇게 무서워 하더니. 자꾸 안 무서워 하잖아.”

“남을 무섭게 하는 게 좋아요?”

“안 무서우니까 들어오란다고 따라 들어오지. 취했다는데도 집에 들이고.”

“그게 무슨,”

“성희롱 당하는 주제에 그 이상 하지 말라는 게 다고.”

“..난 아까 이미 나가라고 했어요.”

“침대까지 차지했는데 이까짓 상처가 뭐 대단하다고 마음 약해져서.“

”그게 뭐가 나쁜데..? 난 그냥,”

”들러붙고 싶어지잖아.“



이게 진짜 무슨 소리지.

손이 붙잡히긴 했어도 잡아 빼면 바로 놔줄 줄 알았음. 별로 세게 잡고 있던 것도 아니었단 말이아.

그래서 잡아당겼는데 옆집남자도 바로 힘 실어서 쥐니까 내 힘으로는 꼼짝도 안 하더라.


“우선 이것 좀.. 놔볼래요?”

”미안해. 나가지 마.“




이상하다.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것 같지. 공기가 탁한 것 같기도 하고. 요즘에 방 환기를 자주 안 시켜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사람 기분 상할 말은 다 해놓고 뭐가 미안해요? 아무래도 진짜 취한 것 같으니까 조용히 이 방에서 혼자 잘 자고 나가요.”

“같이 자자고 안 할 테니까 더 있다 가.“

”..싫어요.“



그 때부터. 아니 사실은 그보다 전부터 불길한 분위기가 느껴졌음. 그래서 당장 이 방을 나가야만 할 것 같았음. 뭐가 불길했냐면, 옆집남자를 믿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날 믿을 수 없어지기 시작했어.

옆집남자는 취해서 저런다고 치자. 그럼 난? 난 왜 계속 헛소리 들어주면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데? 옆집남자는 왜 싫다는 말을 듣고도 손에 힘을 빼기는 커녕 날 보고 웃기나 할까?

옆집남자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약은 인간이라는 건 알 것 같단 말이지. 약은 인간이라, 내가 무서워서든 아니면.. 끌려서든. 살살 건들기만 해도 쉽게 흔들리느라 정신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까 저렇게 쉽겠지. 위협도, 장난도, 성희롱도, 사과도, 조롱도, 웃는 것도. 그리고..



“열쇠 잃어버려서 기다린 거 아니야.“

”그, 열쇠 잃어버렸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설마 아까 나한테 던진 열쇠가 진짜 집 열쇠였던 건 아니죠??“

”보고 싶어서 기다렸어.“



그리고 이런 말도 그렇게 쉬운 거지. 난 다 알면서도 또 속절없이 휘둘려서 말문이 막히는 거고.


”취해서 멍청해지니까 네 생각만 나잖아.“

”지금,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까지 취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 정도로 취했어요? 아무 여자나 붙잡고 보고 싶었다고 할 만큼?”

“그러니까 얼굴 좀 보게 더 있다 가.”

“..거짓말 하지 마.”



이상하지. 자꾸 숨은 막히고 휘둘려서 정신이 없는데 진짜 이상하게 어떤 말도 믿어지지는 않았음.

그 말들을 믿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 믿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건지도 모름.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옆집남자가 진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내 방어 기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도 했음.

옆집남자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마저 흐려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상하다. 분명히 다 넘어 왔는데.“



잡고 있던 손도 그제서야 놔주더라.

믿지도 않았고 거짓말이라고 했던 건 나였으면서, 기분은 이상했음. 이상하게 이상했어.

남은 한참 휘둘려서 이제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옆집남자는 멀쩡한 얼굴로 웃더라.

전부 다 주정이었을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원래 취하면 저렇게 이랬다 저랬다 하나? 분명히 취한 건 저 쪽이고 난 제정신일텐데. 도대체 뭐가 장난이고 뭐가 진심이고, 어떤 게 거짓말이고 어떤 게 사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음.


“화났어?“

”...“

”붕대는 감아주라.”



하나는 알 것 같음. 내가 재밌나 봐. 아니 날 갖고 노는 게 재밌나 봄. 내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게 웃긴가 봐?


“응?”

다친 손 들어 보여주고 재차 묻기까지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음.

다시 앉아서 붕대나 감아주자니 내가 진짜 멍청이같고. 그렇다고 밤새 이 자리에 멀뚱 서있을 수도 없고, 이대로 말 없이 방을 나가자니.. 속 좁은 사람 되는 것 같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부 쓸데 없는 고민이었음. 왜냐면 먼저 나간 건 내가 아니라 옆집남자였거든.



“여보세요.”

그대로 대치 아닌 대치같은 걸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오는 거야. 옆집남자가 내 앞에 보여주던 손 내리고, 반대편 손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 꺼내더니 화면 확인하더라.

내가 같이 보려고 본 건 아닌데. 그 상황에 누가 뭘 들여다 보면 얼떨결에 시선이 따라가게 되잖음?

그래서 그냥 같이 힐끗, 진짜 잠깐 화면을 같이 내려다 봤는데 얼핏... 여자 이름이었던 것 같음.

옆집남자는 화면 확인하자마자 바로 전화 받았고. 또 난 일부러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지만, 여자 목소리였음.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았는데 여자 목소리였던 건 확실함. 옆집남자가 여보세요, 하고 받으니까 금방 뭐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음. 남자는 처음엔 대충 짧은 말로 그렇다고 대답함.

그리고 내용은 모르지만 질문같은 여자 목소리가 이어지고, 옆집남자가 날 확인하는 것처럼 올려다 봤어.

날 보고 아니, 라고 대답했음.

무슨 질문이었는지 어떤 말에 대한 대답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여긴 내 집 내 방인데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것 같고. 목소리는 커녕 숨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그 뒤에도 옆집남자는 내 침묵 속에 뭐라고 몇 마디 더 통화했음. 그러다 곧


“어딘데.“

하고 묻고, 다시 여자 목소리가 이어진 다음.


“지금 갈게.”

라고 대답했음.

전화는 끊어졌고, 옆집남자는 내 침대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알잖아.

늘 그렇듯 인사말 같은 건 없었어. 그냥 내 옆을 지나서 방을 나갔을 뿐이지.

난 돌아보지 않았고 옆집남자도 아마 걸음 한 번 머뭇거리거나 멈추지 않았음.

곧 현관 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난.. 그냥 내 침대에 앉았음.

아직도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고, 뭐가 걸리적거려서 보니까 구급함이랑 핏자국 묻은 붕대랑 널브러져 있더라.

그러고 보니까 새 붕대는 안 감고 나갔네. 해준 사람이, 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냥 갔겠지.

대충 뭉쳐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구급함도 닫았음. 제자리에 놓지는 않고 침대 근처 아무데나 밀어뒀어.

방 문 닫으려고 일어나서 문 앞에 갔는데, 거실 보니까 옆집남자 겉옷이 거기 있더라. 얼마나 급하면 본인 옷도 놓고 나감? 늦은 시간이라 날씨도 꽤 쌀쌀할텐데.

손에 난 상처가 덧나든 말든, 쌀쌀한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든 말든,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밤을 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이제 진짜 내 알 바 아니라고.

그대로 방 나가서 겉옷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가서, 옆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다시 들어왔음. 들어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문 닫고 잠그기까지 하고 침대에 누웠어.

이 집에 이사온 이후 제일 편안하게 느껴지는 내 침대였음. 혼자 누우니까 얼마나 속시원하고 편하고 좋았겠음?

옆집남자랑은 이제 마주칠 일 없겠지. 오늘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는 않겠지. 옆집남자도, 나도. 그 쪽이 저질러도 나만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거잖음.

그 사람이 뭐하는 인간이든, 무슨 헛소리를 하든. 이제 진짜 상종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안 엮이면 되는 거잖아?

앞으로는 아무 일 없을 거고, 오늘까지도 아무 일 없었잖아.








근데···

근데 말이야. 왜 이렇게 기분이..













....왜 내 기분이 이렇게 엿같지.












🏃‍♂️맥카이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