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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 05:47
그 후 한동안 휴게실은 모두가 오열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미야무라는 케이를 끌어안고 울다가 또 혼절할 뻔했기 때문에 츠지무라가 급히 옆으로 빼 내서 호흡을 가라앉히도록 도와주고 물을 마시게 하느라고 소란스러웠고, 가루베는 고토를 끌어안고 내가 너랑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어떻게 그동안 한 번도 네가 고토란 걸 밝히지 않았느냐고 오열했다. 그새 조금 진정한 미야무라는 고토를 끌어안고 또 오열했다. 미야무라와 고토가 그때 얼마나 친했었는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늘 냉정하지만, 그 시절에 케이가 떠나고도 제일 냉정했었던 쿠로사와는 사실 드러내지 못했을 뿐 가장 많이 아파했는지 쿠로사와 역시 혼절할 뻔했기 때문에 아몬이 서둘러 쿠로사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한참 진정시켜야 했다.
이제 다 괜찮아. 케이타도 다시 돌아왔잖아. 이제 다시 네가 외롭게 남아서 모든 걸 짊어질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다독이는 말이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눌러왔다. 류세이는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무섭게 케이를 다그치던 사람과 정말 동일인물인지 의심될 정도로 처연한 얼굴을 하고 케이를 안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여기저기서 오열하던 사람들이 겨우 진정된 뒤에 고토와 가루베가 사람들에게 술이나 차를 나눠주고 겨우 대화할 분위기가 됐다. 정리를 해 보자, 케이와 고토, 쿠니시타 말고는 지난 7번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쿠니시타는 고토의 일기를 회고록 형식으로 만들어 당시 미야무라에게 건넸다고 했다. 고토와 가장 친했던 사람 중에 유일하게 살아 남아 있던 이에게 전해서 고토의 이야기가 전해지도록 하고 싶어서.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책은 쿠니시타가 알기로는 7번의 삶에서 내내 츠지무라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츠지무라는 그 7번의 삶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책이 있었기에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고 변화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기도 했다.
"그럼 우리가 그동안 7번이나 만났었다는 거야, 지금이 8번째고? 우리가 7번의 삶을 살았다고?"
쿠로사와가 차분하게 묻자 고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7번 만났던 건 맞아요. 아마 서로서로 다 만났을 거예요. 저는 일단 모두를 다 만났었고. 하지만 7번 살았다는 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예전의 그 삶에서는 모두가 다... 케이타 형이랑 노부유키 형이 떠난 뒤에도 씩씩하게 살아갔을 거예요. 역사 책에 분명히 기록도 남아 있고. 그런데 그 이후 7번의 삶에서는..."
고토가 노부와 케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쿠니시타가 고토의 어깨를 감싸듯 툭 치며 말을 받았다.
"매번 스즈키가 마치다를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스즈키가 사망하면 모두의 삶이 한꺼번에 리셋돼 버리더라고."
노부가 케이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말에 사색이 된 친구들이 저마다 노부와 케이를 감싸안으며 어쩔 줄 몰라했고, 케이는 울컥하는 표정으로 노부의 손을 꼭 쥐었다.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한참 정적이 이어진 후에 겨우 입을 연 건 쿠로사와였다.
"리셋됐다는 건 무슨 말이야? 어떤 식이었던 거야?"
"말 그대로야. 스즈키가 떠났다는 걸 인식하고 나면 세상이 다시 시작됐어. 그렇게 7번을 거쳐서 지금 다시 만나게 된 거지."
"설마 어제 음주운전 사고도 그런 거였어?"
"맞아. 어제 스즈키가 거기서 죽었으면 세상은 다시 리셋됐을 거야."
"왜 그런 건데?"
그때 쿠니시타는 자신의 가설을 다시 설명했다. 고토와 쿠니시타가 한 일이 충돌을 일으켰거나, 두 사람이 너무 큰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영향이 이런 식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싶다고.
"그럼 우린 이제 다시 리셋되지 않는 거야?"
"우리가 별개로 뭘 하지도 않았는데 너희의 기억이 한꺼번에 돌아온 걸 보면 모든 제약이 풀린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봐. 여러 번의 삶이 반복되거나 기억을 잃게 하거나 그런 건 전혀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지만. 모두가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인식했다는 건 이제 끝난 거라고 봐야지. 아마 이젠 괜찮을 거야."
모두 7번이나 반복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기억에 없는 일이다보니 실감이 나지 않는지 멍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모두 각자 고토나 가루베에게 청했던 술잔이나 찻잔을 비우고 있을 때였다.
"그럼 이제 여행 갈 수 있겠네?"
*****
모두 의아한 얼굴로 쿠로사와를 바라보자, 쿠로사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마치다를 바라봤다.
"너, 그랬잖아. 나중에 우리가 뜻을 이루면 같이 새로운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행하자고. 네가 말한대로 도시락은 내가 쌀 테니까 차비는 네가 내."
지난 생에서 마치다가 떠나고 난 뒤에 몇 번이나 곱씹었던 기억이었다.
[역시 유이치가 최고야. 나중에 우리가 뜻을 이루면 같이 새로운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행하자. 도시락은 네가 싸. 차비는 내가 낼게.]
마치다 케이타는 황족이었지만 외가의 힘이 약한 탓에 황실의 천덕꾸러기라 가용할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았고, 쿠로사와와 미야무라도 귀족이었지만 기존의 사회질서에 만족하고 있던 집안에서 돈을 끌어오기는 물론 여의치 않았다. 그때 은행가였던 쿠니시타가 없었으면 혁명단은 자금 부족 때문에라도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다들 처음 해 보는 일이다보니 말도 안 되는 실수도 많았고 실패한 경험도 많았다. 당연히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도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늘 즐거웠다.
그래서 드디어 혁명이 성공하고 났을 때, 그들이 꿈꾸던 것을 이뤄냈다는 것을 함께 기뻐할 동지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약속 지켜라."
마치다는 울 것같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루베를 껴안고 있던 류세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마치다의 등에 매달리며 칭얼거렸다.
"그러보니까 나한테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잖아요."
[류세이,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사 줄게. 뭐 먹으러 갈까?]
"그래놓고 사 주지도 않고. 어서 맛있는 거 사 줘요."
"알았어."
스즈키가 마치다에게서 손 떼라며 류세이를 밀어냈지만, 류세이는 마치다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유럽에 별장을 사 놓은 게 있으니까 다 같이 유럽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기도 했다. 지금 이 자리의 반이 이제 막 2학기 중간고사를 끝낸 대학생이란 건 알고 있는지, 야마토와 가루베, 고토가 아무리 자영업자라고 해도 멋대로 가게를 내던지고 장기 휴가를 낼 수 없는 신세라는 건 알고 있는지, 츠지무라가 대학병원에 묶인 신세라는 건 알고 있는지, 아몬과 쿠니시타는 공무원인 경찰이라는 건 아는지, 혼자 유럽여행 계획을 늘어놓는 류세이를 만류한 건 쿠로사와였다.
"유럽 여행은 나중에 모두 사정이 되면 가기로 하고, 일단 갈 곳이 있어."
돈이 없어서 식당이나 술집도 드나들기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쿠로사와와 마치다 그리고 친구들이 항상 와인 한 병 들고 허름한 안주 몇 가지 챙겨서 오르던 산이었다. 싸구려 치즈도 살 수 없을 때는 산에서 앵두를 따먹으며 와인을 마셨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이들이 다니는 대학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 산은 그때 돈이 없던 이들의 아지트 아닌 아지트였다. 그 산에 다시 오른 이들은 그때와 달리 마치다가 좋아하던 와인 외에도 고토와 가루베가 마련해 준 다양한 술과 안주들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이 산의 어드메에는 마치다와 스즈키의 묘도 있다. 이들의 첫 번째 생은 리셋되지 않았으니, 역사책에 모두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이들의 묘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고토와 쿠니시타는 삶이 새롭게 리셋될 때마다 두 사람의 묘를 찾아서 방치된 묘를 정리해 주었다고 했고, 이번 생에서도 리셋되자마자 둘이 함께 산을 올라 두 사람의 묘를 깔끔하게 정돈해 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쿠로사와는 일부러 그 묘를 찾진 않았다. 그때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고 떠났던 매정한 두 친구들은 이제 친구들의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마치다는 달콤한 맛의 화이트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는 스즈키를 구박하고 있었다.
"그게 술이야? 음료수지."
"달다고 다 음료수예요? 이게 도수가 얼마나 높은데."
"술을 마시면 술맛이 나야지. 포도 주스 같잖아. 그게 뭐야. 어린애 입맛. 아직 어려가지구."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혀를 쯧쯨 차는 마치다를 끌어안은 스즈키는 그러면 달콤한 것만 좋아하는 어린애 입맛답게 달콤한 안주를 다 먹어버리겠다며 마치다가 열심히 먹고 있던 치즈 케이크 접시를 자기 앞으로 끌고 가 버렸다. 그리고 내 치케 돌려달라고 스즈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마치다에게 류세이가 스즈키는 버리고 우리 '큐티'가 만든 크레이프 먹어보라고 크레이프를 내밀었다. 미야무라는 전생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느끼해진 류세이가 마냥 웃긴지 류세이가 말을 할 때마다 츠지무라의 품에 안긴 채로 키득거리고 있었고, 매일 '큐티'라고 불려서 이제는 면역이 돼 버린 듯한 가루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야마토, 노보루와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마치다에게서 치즈 케이크 접시를 빼앗고 장난을 치던 스즈키는 류세이가 마치다에게 크레이프를 내밀자 마음이 급해진 건지 냉큼 마치다를 끌어안고 마치다의 입 안에 작게 자른 케이크를 직접 넣어주고 있었다.
"나밖에 없죠, 케이. 응?"
"음. 모르겠는데."
"빨리 나밖에 없다고 말해요."
"치케 더 주면 말해 줄게."
"치케? 알았어. 얼른 아, 해요. 아-"
"아-"
스즈키와 마치다가 저런 되도않은 짓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저 꼴 좀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나무라곤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두 사람을 나무라지 않았다. 모두가 두 사람이 저렇게 꽁냥거리는 걸 그만큼 그리워했을 테니까. 모두가 두 사람이 저렇게 철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게 눈물나게 기쁠 테니까.
쿠로사와는 등 뒤에서 들리는 마치다와 스즈키의 헛소리 대잔치에 귀를 닫고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대학과 대학가를 바라봤다. 저 대학은 한때는 귀족이 아니면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신분제가 철폐되고 이젠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돈이라는 새로운 장벽이 생겼지만. 쿠로사와와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처럼 국립대학이 많고 국가의 지원이 많아서 공부만 잘한다면 입학 자체가 어려운 곳이 아니게 되었다. 가난한 평민 집안이라 공부를 잘했어도 대학의 문턱도 넘지 못했던 노보루가 지금은 당당히 법학과 톱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이고. 게다가 귀족들의 횡포와 억압으로 한숨이 가득하던 도시는 지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제약이 사라지고, 개인의 자유와 의지가 더욱 의미를 갖게 된 세상을 바라보던 쿠로사와의 어깨 위로 누군가의 팔이 얹혀졌다. 고개를 돌리자 와인잔 두 개를 들고 온 마치다가 한 잔을 쿠로사와에게 내밀었다.
한때는 혁명 따위 왜 했는지 그저 허탈했고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는데.
우리가 혁명단의 모두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낸 이 세상을 너에게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는지 너는 알까.
마치다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쿠로사와의 잔에 잔을 부딪치며 보여주는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마치다가 저를 두고 다른 사람과 노는 걸 못 참는 스즈키가 금방 달려와서 두 사람의 잔에 와인잔을 서둘러 부딪치기도 했지만. 그것조차도 유쾌했다.
이제는 혁명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 시절이 후회되지 않지만.
마치다가 스즈키와 쿠로사와의 잔에 잔을 부딪치며...
"너무 좋다."
"뭐가?"
"세상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도,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다시 모인 것도."
그렇게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정말 좋다.
지금 우리가 다시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역시 그때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던 시간도 소중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케비들 읽어줘서 ㅋㅁㅋㅁ!!!!
#성혁망사놉맟환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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