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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9 00:21
콰앙, 하고 폭발하는 굉음이 울렸다. 눈 안쪽이 시릴 만큼 폭발지가 번쩍이며 사방에서 뜨거운 공기가 훅 끼쳐들었고 곧 등뒤로 닿은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그 뒤에 온몸을 적셨던 고통에 가까운 통증을 에디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콰앙 하던 그 폭발음은 그에게 각인되어 얕은 잠에나마 겨우 평온한 순간에도 불쑥 들려와서 그를 휘저었다.

그는 며칠 간 미디어를 탄 폭발 사고에서 몇 안 되는 생존자였다. 구역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큰 폭발로 연이어 보도되던 뉴스에서는 그러나 손에 꼽는 생존자인 에디에 관한 소식은 한마디도 전해지지 않았다. 기록이 지워진 생존자. 그러나 누구보다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에디 브록이었다.

다시 쾅 하는 소리가 꿈결에 멀리 어디선가 울렸고 그의 몸이 또 한번 발작하듯 크게 튕겼다. 생존자의 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쉽게 잠들기 어려웠고 겨우 얕게나마 잠들면 감은 눈 안쪽으로 그날의 광경이 여전히 괴롭고 생생하게 반복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베놈은 처음으로 에디의 꿈속을 들여다보았다.

그에게 돌아오는 과정은 꽤 길었다. 몸에 맞지 않은 숙주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여럿 희생되었다. 머리는 안 된다던 에디와의 약속은 그에겐 미안하지만 지키지 못했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고 그에게 돌아오기 위해선 살아야 했다. 네바다 폭발지의 바퀴벌레만큼 이 집에 들어오기 쉬웠던 거미는 베놈이 에디에게로 옮겨가자마자 움직임이 멎었다.

베놈은 그를 좀 더 편히 눕히고 촉수를 여러 가닥 뽑아내어 이불처럼 몸을 감쌌다. 크게 들썩거린 몸은 여전히 잘게 떨렸으나 베놈이 그를 안아주자 곧 잠잠해졌다. 식은땀에 젖은 몸이 춥지 않도록 수건을 가져다가 곳곳을 닦아주었다. 에디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돌아왔고 안긴 몸은 힘이 더 빠져서 이제 좀 잠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에디가 잠잠하길 바랐다. 가장 완벽한 건 헤어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 회로를 돌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던 그날의 상황에서, 그가 가장 바랐던 완벽함은 에디가 이후에 잠잠하게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본 에디의 눈앞에는 급산성액에 녹아내리며 몸부림치는 자신이 있었고 곧 크게 폭발하고 번쩍인 뒤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을 잃기 전 에디의 마지막 시야엔 폭발의 여파로 몹시도 밝아진 밤하늘과 치솟는 불길과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 뿐이었다. 그리고 눈부시게 밝은 밤하늘을 향해 있는 에디의 눈 안쪽으로 깜빡이며 사라진 어떤 한 장면엔 그를 지나쳐 뒤로 뻗는 검은 손 혹은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검은 손이 있었다.



일단 들어오긴 했으나 어떻게 에디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할지는 무척 고민 되는 일이었다. 에디는 평소보다 조금 개운하게 아침을 시작했고 약간의 두통과 메스꺼움에(동시에 허기짐이 있었지만) 정말 최소한의 식사를 하며 취재를 위해 출근했다. 일과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흘러갔다.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취재는 어떤 사소한 걸림돌도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문제라면 따라주지 않는 몸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동시에 속이 좋지 않아서 뭔가를 씹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진하게 주문한 커피만 네잔째 마시던 중이었다. 취재는 거의 마무리했고 집으로 돌아가 정리하면 될 듯해서 기사를 쓰기 전에 두통약을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반도 남지 않은 커피를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놓고 물 한잔을 받아왔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식탁에서 이틀 전에도 먹은 타이레놀을 찾았다.

-에디.

타이레놀 한알을 꺼내며 에디는 바람 빠지게 픽 웃었다. 그리고 미소가 걸린 얼굴로 고개를 두어번 저어본다. 정신 차리라는 듯, 그리운 환청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러나,

-에디.

하는 두번째 조금 더 낮고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 에디.

"그만."

하지만 그는 어지러운 느낌에 식탁을 짚고 기울여 서서 중얼거렸다.

-에디.

베놈이 네번째 그를 불렀다. 꿈에서나 들을 수 있던 목소리가, 이제는 기억에서 헷갈릴 지경으로 흐릿해지던 목소리가 부르는 제 이름에 몸이 전율했다. 목 안쪽을 긁으며 나오던 낮은 소리. 무척 반갑고 그리운 목소리가 연이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낮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도. 꿈을 꾸긴 했지만 조금 푹 잔 것도 같단 생각도. 그러니까 에디는 환청이 들릴 정도로 컨디션이 나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수를 좀 해서 정신을 차려볼까 했다. 하지만 그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에디, 하고 이제는 다섯번째 부르는 목소리와 환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던 거울 속 얼굴에 또한번 욕조에 처박혔다.

기절은 길지 않았고 뻐근한 뒷목과 얼얼한 뒤통수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다시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봤다. 환청에 이어 환각까지 보이는 거라면 약을 좀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했다. 어쨌든 그는 살아남았고 그래서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중이었으니까. 거의 모든 밤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낮동안에는 조금 예민해 보일 뿐, 그럭저럭 살아가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복용하던 약을 바꿔야 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지 않기를 원했다.

"나와."

그래서 에디는 꿈같은 목소리가, 환영같던 두 눈이 진짜였으면 했다. 이보다 더이상 미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에디는 등 뒤로 스르륵 나타난 검은 얼굴을 거울 속으로 노려봤다. 조금 화난 무표정 같았지만 눈에 핏발이 설 만큼 악물고 떨림을 참는 중이었다. 뭔가가 안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세면대 아래에 무너져내려 우는 그를 달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뭐라고 말하는 베놈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말의 의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정신이었다. 그는 그저 그 목소리에 집중했을 뿐이다. 그르렁 거리듯 긁으며 나온 낮은 그 소리가 환청이 아님에 안도하며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쉽게 그칠 수 없었고 콧물과 침이 흘러 얼굴이 엉망이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베놈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불규칙한 호흡으로 이대로 모든 걸 쏟듯이 울다가는 또 기절할까봐 걱정돼서 어렵게 그를 달랬다.

"......살아 있었어?"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간신히 나온 에디의 첫마디였다. 다 갈라지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메인 듯 비집고 나와 한마디를 덧붙였다.

"왜 그랬어."

"나는 너를 구해야 했으니까. "

뭔데. 니가 뭔데. 하는 말은 정말로 목구멍에 틀어막혀서 나오질 못했다.

"너는...."

"......"

"내 유일한 숙주지, 버디."

베놈의 대답은 에디로 하여금 어딘가 맥이 풀리게 했다. 유일한 숙주. 힘 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한 바이크. 가끔 근사한 뷔페를 선사하고 낯선 행성에서 어쨌든 함께 지냄으로써 조금은 덜 심심하게 해주는 메이트. 유일하게 상성이 잘 맞았던 그러나 그저 숙주. 에디는 그날의 사건 이후 거의 매일 밤을 트라우마에 몸부림쳤고 수도 없이 진통제를 찾아다녔다. 어제까지만 해도 몸속에서 말을 걸어왔던 존재가 더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무너지고 꺼진 발 밑으로 끝도 없이 처참히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멈추지 않는 추락을 하면서 심장이 몇번을 내려앉고 눈앞은 수천번 깜빡였다. 아직도 그 고통이 이렇게 선연한데 그게 단순히 내가 너의 숙주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에디는 조금 절망스러웠다. 그보다.. 뭔가 우리가 그보다는.... 어떤 말을 골라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아서 에디는 달싹거린 입술을 다물어버렸다.

한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거울 속엔 눈이 퀭하고 까슬한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잘 먹진 못했다. 잘 쉬지도 못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도 잘 만나질 못했다. 잘 잘 수도 없었고, 또, 그리고. 평범했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꽤 애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거울에 보이는 자신은 말도 못할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전보다 살도 조금 빠졌고 몸에 남은 힘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꼴이 말이 아니지."

"그래."

"전과 다르다는 걸 너도 느낄 거야."

"맞아."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겠지? 아니. 이젠 나일 수가 없겠지. 나 같아도 그러겠어. 이런 몸으로는 얼마 못 버틸 거야. 뭐 이렇게 다시 찾아와 준 건 고맙고 또.. 아니, 됐어. 이제 가 봐도 좋아. 다른 건강한, 너에게 맞는 숙주를 찾아. 보다시피 난 좀 힘들어서, 그래, 이제 좀 쉬어야겠어. 종일 일하다 왔고 전보다 더 쉽게 피곤해져. 뭘 좀 먹어야겠어. 그러고 보니 커피 말곤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네. 혹시 베놈 너도 지금 힘들다면 초콜릿을 줄까? 찾아보면 아직 있을 거야, 그래, 저기....."

말이 길어질수록 초점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의미한 손짓은 늘어갔다. 이제는 습관이 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는 손짓. 팔짱을 괜히 꼈다 풀며 반복하는 일. 에디는 거실 쪽으로 고개를 까딱거리며 곧 발걸음을 돌렸다. 부산스럽게 거실로 나와서 어질러진 식탁 위를 훑어보았다. 타이레놀이 있는 그쯤에서 초콜릿을 본 것 같았다.

"두 개밖에 없네. 이거라도 먹을래?"

긴 여정이었고 힘을 낼 만한 뭔가를 먹지 못해서 베놈은 분명 지친 상태였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 에디가 먼저였다. 그러니 묻고 싶었다. 이게 대체 뭐냐고. 왜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어 있느냐고. 둘 사이가 조금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부딪쳤고 싸우기만 하면 자기를 1년 전으로 돌려 놓으라고 소리를 빽빽 지르지 않았던가. 방법이 극단적이긴 했으나 어쩔 수 없었고 분명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하고 말했던 과거의 언젠가가 생각났다. 원하는 걸 해줬는데, 어째서, 너는 어째서.
베놈은 지친 걸음으로 소파에 털썩 앉은 에디의 등 뒤로 말없이 딸려 나왔다. 살집과 근육이 적당히 공존했던 어깨와 등은 전에 비해 선이 얇아 보였다. 그 등을 무연히 바라봤다.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또 누르고 헛기침하며 두 개 뿐인 초콜릿을 부스럭거리는 손짓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다친 몸을 회복시킬 때는 에디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숙주인 에디가 살아야 본인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상처가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다치는 순간마다 그를 고쳐놓는 것은 당연했다. 허락도 고민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랬으므로 이미 에디의 몸에 난 멍 같은 자잘한 상처들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지익 하고 에디가 끝내 초콜릿 껍질을 깠다.

"내게도 네 생각이 들렸으면 좋겠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말이야."

"너를 죽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마찬가지지 않을까."

"내가 죽어도 너는 다른 숙주를 찾으면 되잖아."

"에디, 네가 죽는 일은 내 선택지에 없어. 다만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으니 네가 좀 더 안정적으로 살길 원했지."

에디가 괴로운 한숨을 내뱉으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멀리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말했잖아. 너는 내 유일한 숙주라고. 다른 선택은 없어. 내 선택은 버디 너야."

숙주니 버디니 하는 말들이 듣기 싫었다. 눈 앞에서 죽어버린 주제에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했다는 말은 가증스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제 몸에 들이닥쳐서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버려서 더한 구렁텅이에 빠트린 주제에. 그건 숙주나 버디 같은 가벼운 단어로 포장하면 안 됐다. 어쩌면 이건. 어쩌면 저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으로 그걸 이해할 수 있는지조차 모를 존재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 그를 잃었다는 현실에 이 지경으로 저를 던지고 살았을까.

"이곳에서 내게 인간을 하나 고르라면 너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의 표현대로 사랑하는 인간을 하나 골라보라면 그래도 너야. 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아온 내 삶을 다 바쳐서 너를 구하라고 한다면 나는 또 그렇게 할 거야."

"........."

"그러니까 다른 숙주 찾아 가란 말은 하지 마. 몸은 내가 회복할 수 있어. 이제 보니 이렇게 네 마음이 힘든 이유도 조금 알 것 같군. 그러니까 결국 그것도 나만 해결할 수 있어. 너를 구하는 게 내 일이고, 내 선택이 에디 브록이야."







베놈3 보고 미쳐버린지 n주째..... 똥 잘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