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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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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소집되고 첫 만남때 언제부터 있었는지 구석에 가려져 있던 밥이 누군가 얘가 막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이런 얼굴이라면? 행맨 저 예쁘고 반짝이는 얼굴에 첫눈에 안 반하고 못 배길듯.


그래서 행맨 그날부터 계속 밥 주변 어슬렁거리면서 친해지려고 애쓰는데 하나도 안 통하겠지. 밥 훈련 말고는 늘 관사나 자료실에서 책만 보는데 행맨이 말 걸때마다 미간 확 구기면서 자리 뜰 것 같다. 행맨 처음에는 맘에 드는 사람한테 거절 당하는 것도 처음이라 오기 생겨서 더 따라다녔는데 몇 주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니 훈련때나 평소나 다름 없이 바르고 진중한 밥의 모습에 점점 깊게 감길 것 같다. 성실하고 자기 일은 똑부러지게 잘하면서 주변도 잘 챙기고 훈련때 말고는 평소 성격도 유한데 자기한테만 쌀쌀맞은 게 처음에는 억울하다가도 밥의 성격 점점 파악하게 되면서 납득할듯. 처음 보자마자 들러붙어 플러팅 해대는 모습이 얼마나 가벼워 보였겠어. 그리고 물론 밥 아닌 사람들한테였지만 늘 아가리파이터 그 자체로 돌아다니는데 밥 같이 진지하고 동료 소중하게 생각하는 애가 자기를 얼마나 한심하게 봤겠냐고.
이쯤되니 행맨은 스스로도 인정했어. 처음엔 외모가 좀 맘에들어서 들이댔던 거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밥의 매력에 더더 빠져서 완전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래도 자존감 빼면 시체인 행맨은 밥의 극혐하는 표정에도 굴하지 않을 듯. 계속 노력하다보면 밥이 언젠간 저를 봐 줄 날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사실 행맨 본인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잘 몰랐지만 첫눈에 반했는데 늘 가벼운 만남들만 이어오던지라 자기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모른채 업보 쌓음





아무튼 보고싶은 장면은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밥이랑 피닉스가 버드스트라이크로 비상탈출을 하는 일이 터진 날이었어.

병실에서 의식이 돌아온 밥은 눈을 몇번 깜박이면서 천천히 정신을 차리는데 마지막 기억들과 지금의 상태를 조합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데 옆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더니 글쎄 행맨이 울고있는 거야.


"행..맨?"

"정신이 들어? 잠깐만 기다려. 사람들 불러올게."


그렇게 행맨이 데려온 의사에게 체크 받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들었어. 결과적으론 다친 곳은 없었지만 혹시 모를 탈출때의 충격을 생각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해야 한다고 내일까지는 입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지. 그리고 밥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탑건 사람들도 여럿 왔다갔어.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밥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에 집중하지 못 했어. 제가 깨어났을때 눈물을 대충 닦으며 병실 밖으로 나갔던 행맨이 계속 생각났거든.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혼자 남겨진 병실 안은 너무도 조용했어. 밥은 닫힌 병실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 앞으로 다가갔어. 문을 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손잡이를 잡아서 느리게 문을 열었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간다는 말도 없이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던 행맨이 문 넘어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밥?! 왜 나왔어, 어디 불편해? 이렇게 돌아 다녀도 되는 거야??"

"여기서 뭐 하는데."

"어…미안."

"아니. 사과하라는 게 아니고, 왜 여기에 이러고 있냐고."


앉을 곳도 없는 병실 복도에서 벽에 기대 서 있던 행맨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밥이겠지.


"할 말 있으면 하고 가."

"없어. 그런 거. 나 때문에 나온 거면 얼른 들어가.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용건 없으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너 혼자 있으니까. 훈련 자체가 기밀 사항이라 가족들도 부를 수 없잖아. 환자 혼자 두기가 좀 그래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상황이잖아. 간병 필요한 상태 아니고. 그냥 검사때문에 남은 건데. 왜 환자 취급인데."

"미안해. 근데 나 그냥 여기 없는 듯이 있을게. 나 여기 있는 거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언제 어디서나 에고로 똘똘뭉친 행맨은 어디가고 지금 나눈 대화에만 미안하단 말을 몇번이나 하는 건지. 뭐가 그렇게 미안한 상황이라고. 그런데 밥은 이상하게 그런 행맨이 귀찮고 짜증나게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결정을 해.


"가라고 해도 안 갈 거면, 들어와."

"…어?"

"밤새 여기 서있겠다고? 너 그러고 있음 내가 마음이 편하겠냐?"

"나 병실 안에 있음 불편하잖아. 난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나 힘들어. 눕고싶은데 계속 이렇게 말씨름 하게 할거야?"

"어,어 미안. 들어가. 얼른 가서 누워."


밥은 한숨을 푹 쉬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고 행맨도 느릿느릿 그 뒤를 따라 들어갔어. 그대로 누울 줄 알았던 밥은 침대에 걸터 앉아 머뭇거리고 서 있는 행맨을 빤히 바라봤어.


"누워, 밥. 힘들다고 했잖아. 얼른 자."

"야, 행맨."

"어?"

"너 아까 왜 울었어?"

"…"

"너 진짜 왜 이러는데."


밥은 한숨을 크게 쉼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어.


"너 이런 스타일 아니잖아. 차라리 평소처럼 짓궂은 농담이나 던지고 가던지."

"미안해."

"도대체 미안하단 말만 몇번을 해! 뭐가 미안하냐고! 오늘 겪은 사고에, 내 입원 그 어떤 것도 네가 관련있는 게 없는데! 정작 진짜 짜증나게 굴고 화나게 만들었을 때는 미안할 짓인지도 모르더니!"

"화 내지 마. 흥분 하면 안 좋을 것 같은데. 진정하고 오늘은 그만 쉬어, 응?"

"하아…너 진짜 왜 이러냐고."


소리를 지르는대도 그저 다정한 목소리도 걱정하는 행맨에 밥은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왜인지도 모르게.


"내가 진짜 다 미안해서 그래. 그동안 내 기분대로 너한테 함부로 굴었던 것도 미안하고. 오늘 사고도.. 그냥 다 내 잘못같고. 너 쉬어야 되는데 이렇게 화내게 만드는 것도 미안해. 그러면서도 너 혼자 두기 싫다고 고집 부리는 것도 내 이기심인 거 알아. 그냥.. 내가 다 미안해. 나 진짜 쥐 죽은 듯 있다가 너 퇴원하는 것 만 보고 사라질게. 응?"

"아니 왜.. 갑자기, 너! 그리고 사고가 왜 니 잘못 같은데…그건 진짜 아니잖아.."

"너 그렇게 미동도 없이 누워 있으니까.. 그냥 다 내가 못난 탓 같고 그랬어. 비상탈출…다행이 너도 피닉스도 큰 이상 없이 돌아왔지만, 조금 이라도 늦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두서 없이 내뱉는 소리가 점점 젖어들어갔어. 행맨이 다시 우는 것 같은데 밥은 고개를 들어 확인 할 용기가 없었어. 그런 얼굴, 저 때문에 슬퍼하는 그런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정신차려, 행맨. 진정은 니가 해야 될 것 같은데."

"…좋아하는 사람이 죽을뻔 했는데 제정신인 사람이 어디있어."


밥에게서 한번 더 터져나오는 한숨소리에 행맨의 심장은 내려 앉는 기분이겠지. 이제 진짜 어글리한 모습 말고 제대로 밥의 앞에 서고 싶었는데. 가볍고 멍청이 같은 짓 안 하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조금씩 다가가려 했는데 현실은 입원해서 안정이 필요한 사람한테 또 감정적이게 구는 이기적인 모습이었지. 그런데도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누군가 때문에 감정이 널뛰고 그러면서도 조금도 떨어지기 싫은 건 처음이라 어떻게 괜찮은 척 넘겨야 될 지도 모르겠어서.


"너.. 이럴거면 왜 그랬는데."


밥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행맨을 노려봤는데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어.


"싫다고 거절할땐 언제고."

"…뭐? 그게 무슨,"

"나랑 결혼하기 싫다고, 아니 결혼이고 뭐고 만나는 것부터 거절했으면서! 이제와서…!!"

"뭐, 너 지금 뭐라고?? 무슨 소리야 그게…!"


뚝뚝 흘리던 눈물이 아직도 볼에 매달려 있는 것도 잊은 채 행맨은 저를 바라보는 밥의 눈과 마주쳤어.


"너 이성한테 거절 당한 건 내가 처음이라며 지난번에 하드덱에서 너스레 떨었지? 나도 그랬어. 그렇게 거절당한 거."


이 대화가 지금 맞는 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제가 놓치고 있는 건지 행맨은 답답함에 가슴이라도 치고 싶을 지경이었어.













알고보니 행맨 탑건에 오기 얼마전, 집안에서 중요한 혼처가 있다며 연락이 왔었는데 행맨은 부모님께 제대로 설명을 듣기도 전에 그런 결혼 하기 싫다고 딱잘라 거절했는데 그게 밥이었겠지. 누군지도 모르고 거절했던 행맨과는 다르게 밥은 행맨이라 수락 했을 것 같다. 부모님 의견 제대로 안 듣고 거절할 성격은 못 되어서 밥은 제 상대가 세러신 가문의 차남이라고 설명을 듣었는데 순간 그게 누군지 알았어. 같은 기지에 있던 적은 없지만 그리 멀지 않았어서 근처 부대와의 교류 행사엔 꼭 섞이는 기지의 파일럿이었거든. 저랑은 섞일 수 없는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그 엄청난 비행실력을 보고 저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씩 동경했겠지. 혼담을 듣고 저랑 성향이 맞겠나 싶은 의문 속에서도 그래도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는데 기다리던 밥에게 들려온 소식은 거절이었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 집안에서 정해준 결혼,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까. 세러신 가문을 이어가는 장남과 달리 차남인 행맨은 자유로운 성향대로 집에서 나와 파일럿이 되었으니까. 아쉽지만 저와는 닿을 수 없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포기 했는데 얼마 후 탑건 소집때 마주쳤는데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나 뭐라나 하며 가볍게 플러팅을 날려대는 걸 보고 실망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겠지.




하는.. 뭐 이런 게 보고싶었어 동경의 대상이자 단념했던 혼담 상대가 아무것도 모르고 가볍게 추파를 던져대는 모습에 실망해서 철벽쳤던 밥과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억울한 행맨. 그래도 억울해도 뭐 어쩌겠어. 더 애절한 구애가 시작되는 거지.











행맨밥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