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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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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와 나의 우정이야기이다.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스타가 되기 한참 전, 그 애가 리버풀 구단에 막 입단했던 7살 무렵에 우리 가족은 리버풀 웨스트더비 그 애의 옆집으로 이사왔다.


나는 이사온 첫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사온 집 앞에는 작은 공터와 그에 딸린 놀이터가 있었는데, 엄마는 나보고 짐 정리하는데 성가시니 거기 가서 놀고 있으라 했다. 이사온 동네에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고… 난 그곳에 있던 그네나 하릴 없이 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똑같이 생긴 삼형제가 축구공 한개를 들고 옆집에서 쫄래쫄래 나오더니 공터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처음보는 얼굴일 나를 몇번 흘끔대나 싶더니 삼형제는 곧바로 축구에 열중했다. 나 또한 형제들의 축구에 몰입해 그네를 멈추고 그들의 접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창 뺏고 뺏기는 볼 쟁탈전 끝에, 둘째로 보이는 남자애가 공을 빼앗아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슛!

가장 긴장하고 지켜보던 그 순간, 그 공은 수비를 하던 그 애 형의 정강이에 맞았고, 그대로 세게 튕겨져 나와… 


“야!!! 일어나봐!! 괜찮아?!”
“엄마… 엄마 불러올게!”
“형… 어떡해….?”


피할 새도 없이 나는 흙바닥에 누워있었다.


“으... 나… 공 맞은거야?”
“어?! 말한다!! 형! 얘 깼어!”
“미안해… 미안해…”


내 이마를 어루만지는 그애의 손이 느껴졌고, 점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찬 공이 빗맞아서 너한테 갔어. 진짜 미안해.”
“괜찮아…”
“너 이마가… 엄청 붓고 있어. 미안해 정말.”


큰 눈을 울먹거리며 잘못했다고 말하는 그 애가 너무 불쌍해보여서, 다친 건 난데, 진짜 괜찮은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괜찮다고 해버렸다. 난 일단 그 애가 울음을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때는 내가 아픈 줄도 몰랐다.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 난 허니 비야. 너는?”
“트…트렌트…알렉산더 아놀드.”
“이름이 트렌트야, 알렉산더야?”
“트렌트, 트렌트가 이름이야. 알렉산더-아놀드는 엄마 아빠 성이야.”


트렌트는 울먹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그게 트렌트와 나의 첫만남이었다.



이 어이없는 첫만남 이후로 우리는 늘 함께였다. 하필이면 들어간 초등학교에서 트렌트와 나는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으로 이마를 정통으로 맞춘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트렌트 어머니의 신신당부-책임지고 허니의 학교생활 적응 도와줘라-때문인지, 아님 그 애 본성의 선함 때문인지 난 정말로 그 애 덕분에 빠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해갔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던 이 동네 억양도 1년이 지나니 들리기 시작했고, 나도 제법 이 동네 애들처럼 스카우즈를 쓸 수 있게 되었고, 방과후에는 옆집 3형제들의 축구를 구경하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고, 1년, 1년이 지나며 트렌트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애를 따라서 해가 질때까지 집앞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그 애가 나에게 드리블을 알려주고, 패스와 슈팅을 알려주면, 나는 그 애가 어려워한 수업 내용을 다시 설명해주고, 훈련하느라 빠졌던 수업의 필기를 보여주고, 숙제를 도와줬다. 그 애가 우리집에 놀러와 책을 읽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쿠키도 먹고, 트렌트 어머니 다이애나의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에 후다닥 집으로 돌아갔던 적은 우리 사이에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일과들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은, 철없는 아이들이 나를 괴롭혔다. 집에서 싸온 간식을 먹는데 다들 젤리나 과일, 샌드위치 같은 것을 가져오곤했다. 그런데 뼛속까지 아시안인 나의 엄마는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작은 주먹밥들을 싸준 것이다. 어린 나는 그것이 너무 부끄러워 간식통을 열었다가 다시 덮어두고 먹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본 그 철없는 무리들이 내게 와서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야 허니, 넌 왜 간식 안 먹어?”
“킁킁, 야,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허니가 가져온 통에서 나! 으… seaweed…”


아이들의 놀림이 고조될 쯤, 난 더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내 도시락 통을 그 자식들의 얼굴에 던져버릴 요량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성큼성큼 다가와 그 애들을 밀쳐버린 트렌트가 훨씬 빨랐다.


“음식 가지고 놀리지마! 니네가 안 먹어본거지, 이거 맛있거든?!”


나 대신 씩씩거리며 화를 낸 그 애는 내 도시락 통을 열더니 주먹밥을 한 움큼 집어 본인 입에 쑤셔넣었다. 켁켁 거리며 목이 막혀도, 물 달란 소리 한 번을 안하고 그걸 자기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그날의 소동은 나와 트렌트, 그리고 그 무리들 다같이 detention room으로 불려가 혼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물론 그 일 이후 나의 인종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장난을 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붙어다니던 우리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세트였다. 제법 짓궂은 아이들이 너네 사귀냐고 놀리긴 했지만, 우리는 둘다 피식 웃고 지나갈 뿐이었다.


내가?

트렌트랑?

사귄다고?




어느날 점심시간에 트렌트가 급식으로 나온 내 몫의 땅콩버터 토스트를 말 없이 본인이 가져가고 대신 자기 몫의 바나나를 내게 주는 것을 보며, 같은 반 남자애가 우리에게 물었다.


“너네 뭐하냐?”


트렌트는 토스트를 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허니 견과류 알러지 있어. 땅콩버터 못 먹어.”
“헐.”


그 남자애가 나를 안 됐다는 듯이 잠깐 쳐다봤다. 뭐, 나야 견과류는 먹어봤자 쓰기만 해서 별로 아쉽지도 않았다. 나는 트렌트가 준 바나나의 껍질을 깐 후에 앙 베어물었다.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이런 일들은 아주 사소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학년이 올라간다는 것은 점차 우리의 달라질 미래처럼 거리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는 점차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나는 그래머스쿨(영국의 특목고)에 합격해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트렌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 리버풀 구단 측에서는 학교 수업 중 절반을 훈련에 할애하기를 원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트렌트는 부모님과 구단과의 협의 끝에 학업과 축구 병행이 가능한 고등학교를 찾았고, 그 애가 다닌 Rainhill high는 내가 다닌 그래머스쿨만큼이나… 우리의 동네 웨스트더비에서 거리가 있었다. 서로 고등학교 통학에만 2시간씩 써가며, 나는 학업에, 그 애는 축구에 집중하는 시기였다.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한달은 정신 없이 흘러갔다. 나는 나대로, 그 애는 그 애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빠 서로 만나 제대로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거의 두 달만에, 트렌트는 어느날 저녁 우리집에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녁 늦게 갑자기 찾아온 그 애를 엄마와 아빠가 더 반갑게 맞이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허니 2층 방안에 있다.”, 하는 소리가 들릴 때쯤 나는 이미 계단을 내려와 있었다.


“트렌트!”
“허니!”


그 애와 오랜만에 핸드셰이크를 한 후에, 또 오랜만에 헤드락을 걸려 했는데… 그 애의 키가 그 사이에 커서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았다.


“이젠 무리일걸?”
“아, 짜증나.”


그런 실없는 장난을 하며, 우리는 또 당연하다는 듯 내방으로 올라갔다. 




“나 숙제 좀 도와줘.”



방에 들어와 자리를 잡자마자, 그애는 가져온 교과서와 노트패드를 책상위에 올리며 말했다. 순간 내 숙제로도 버거워 핀잔을 주려다가, 하루의 절반은 훈련하랴, 절반은 학교수업을 따라가랴, 집에 와서는 부족한 학습시간으로 숙제를 해가느라 허덕일 이 녀석의 하루가 그려져 측은한 마음에 핀잔은 접어두었다.


에세이 숙제를 쓸 수 있도록 개요를 잡아주고 나머지는 그 애가 쓰도록 하고 있었다. 사각사각 종이 위에 굴러가는 샤프 소리만 들리고, 창밖으로는 이미 해가 완전히 져 어둑어둑해졌다. 나는 턱을 괴고 그애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 풍경이 굉장히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앉아서 숙제하고 공부하는 이 순간 자체가. 그리고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이 애와 함께 했던 많은 것들을, 그리워할 때가 자주 오겠구나 하는 것을. 나조차도 몰랐던 순간을 그리워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괜스레 감상에 젖는 것 같아 핸드폰을 가져와 노래를 틀었다. 직전에 오아시스의 노래를 듣고있었다 보다. 재생 버튼을 틀자마자 오아시스 노래가 나왔다. 트렌트는 질색하며 말했다.


“으, 야, 너는 리버풀 살면서 오아시스 노래를 듣냐?”
“쳇, 너도 비틀즈 노래만 듣는 건 아니잖아.”


실 없는 농담을 하며, 피식거리며, 그 애는 겨우겨우 숙제를 완성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김에 서로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트렌트는 벌써 몇번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스티븐 제라드가 자신을 칭찬했다며 상기된 얼굴로 말하다가도, 아직까지는 자신의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할 때는 한숨을 쉬기도 했다. 불확실한 꿈을 좇으면서도 그 애는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배우는 교과서들을 보여주자, 트렌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라리 체력훈련을 연달아 두번 하겠다며 몸서리쳤다.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가시고, 그 애가 갑자기 말을 골랐다.


“허니, 나 부탁이 있는데.”
“뭔데?”
“나 주말에 경기 있거든. 보러 와줄래?”
“뭐야, 별거 아니네. 당연히 가지! 전에도 몇번 갔잖아.”


아닌게 아니라 나는 몇번 트렌트의 초대로 아카데미 경기를 보러간 적이 있었다. 물론 최근 몇달은 고등학교 입학준비와 적응을 핑계로 보러가지 않았지만.


“나, 주장 됐거든.”
“뭐?! 야, 그걸 왜 이제 말해!!”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벌떡 일어나 그 애를 붙잡고 방방 뛰었다. 


“축하해!! 좋은 거 맞지? 잘 된거지? 널 알아봐 준거지?”


그 애는 내게 두 팔을 붙잡힌 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진정시키고 그 애는 내게서 다시 한번 확답을 받아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캡틴 아놀드의 첫 경기를 볼 생각에 잠이 안온다며 설레발을 치기까지 했다.


트렌트 부모님의 차를 얻어타고 가서 본 그 애의 경기는 리버풀의 압승이었다. 그 애의 오른발은 내가 어려서부터 본대로(이마에 정통으로 맞은 대로) 날카롭고 강력했다. 오른쪽 구석에서 그 애가 뿌려주는 패스는 정확하게 왼쪽 풀백에게로, 또는 오른쪽 윙에게로, 빈 공간으로 적절하게 맞아들어갔다. 어시스트 2개와 1개의 골을 기록한 그 애는 경기가 끝나자 땀에 젖은 채로 활짝 웃으며 관중석에 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진짜 와줬네?”
“당연하지, 오면서 연락했는데도 안 믿었어?”
“너 바빠보이니까, 못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다고 네가 첫 완장 단 경기를 빼먹을 수 있겠어?”


그 말을 듣자 그애는 기분이 좋은지 다시 헤벌쭉 웃어보였다. 저녁노을이 그 애 옆으로 내려앉아 제법 근사하게 보였다. 오후의 바람이 불자 그 애의 땀을 식힐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리버풀 스카프를 들고 있는 내 손을 잡으며 그 애가 말했다.


“앞으로도 와줄 수 있어, 허니?”


왜인지 나는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트렌트는 그걸로 되었다는 듯 내손을 한번 꽉 쥐더니 라커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인 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불확실한 미래 따위는 걱정할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시안 근성 어디 가지 못한 나는 원하던 A-level 점수를 받아 런던에 위치한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트렌트의 경우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리버풀의 1군 무대에 데뷔한 걸로도 모자라 주전 자리를 따냈고, 첫 시즌 꾸준히 리그무대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나는 그 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바빠도 리버풀 경기는 직접 보러갔고, 그 애 역시 나와의 약속을 위해 런던 경기가 있을 때면 자신에게 배정되는 두 장의 티켓 중 한장은 언제나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12월 박싱데이 무렵, 그 애는 이스트런던(가상의 PL팀; 글쓴이) 원정 경기를 위해 런던을 방문했다. 고전하긴 했지만 신승을 거둔 그 애는 경기가 끝나고 내게 겨우 손을 흔들어 보인 뒤 터널로 들어갔다. 나는 고생한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다 스카이박스 통합 라운지로 들어갔다. 친분 있는 사람이 없어 바쁘게 인사가 오고가는 장을 힘겹게 피하며 자리를 떴다. 경기는 즐거웠지만 이런 뒷자리 행사는 몇번을 경험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을 피해 라운지 밖으로 나가려는데, 트렌트에게서 문자가 왔다. 



[경기 잘 봤어?] -Trent

[응. 힘들었지? 고생많았어.] -Honey

[경기장 나갔어?] -Trent

[아직. 사람이 너무 많아ㅠ] -Honey

[나가지 말고 기다려. 나랑 어디 좀 가자. 내가 올라갈게.] -Trent


응? 문자를 봐도 바로 이해가 안가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스카이박스 라운지에… 온다는 말이겠지? 구석 테이블을 잡고 가만히 서서 5분쯤 기다리고 있는데,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카이스포츠 런던팀 담당기자 조지 해링턴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제가 이스트런던 출입 기자인데, 못 보던 분이셔서요. 결례인 것은 알지만 안면 트고자 이렇게 인사 먼저 드립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네에…”


이런 경험이 처음인지라 어색하게 두손으로 명함을 받아들었다. 나는 대학생이라 명함이 없는데 어쩌지. 통성명은 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 이름만 밝히기로 했다.


“저는 허니 비라고 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셨어요?”
“저는 전문가가 아닌걸요. 그냥 일반인이에요.”
“그래도요. 기사를 쓸 때는 기자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일반 관중들의 생생한 의견이 제일 중요한 법이거든요.”


그런가. 경기를 보면서 느낀 점을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기로 했다.


“클롭 감독님의 전술이 확실히 리버풀 선수단에 점점 녹아들고 있다고 느꼈어요. 빠르게 공을 전방으로 보내서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는, 스피드있는 전개가 재밌었구요. 그런데 뒷공간에 대한 수비 대응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거기서 나온 실점이 리버풀에게는 뼈아팠고, 이스트런던에게는 원동력이 되었죠. 후반 막판까지 팽팽하다가, 추가시간 세트피스에서 끝까지 집중한 리버풀의 손을 하늘이 들어줬다고 느꼈어요. 두팀 모두 박싱데이라 체력이 떨어져 있어서,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한 팀이 결국에 이긴 거라고 생각해요.”

“와우. 진지하게 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리버풀 구단 관계자신가요?”
“아니요, 구단 관계자는 아니고 친구 초대로 오게 되었어요.”
“아…! 리버풀 선수분의 친구신가요?”
“네.”


하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방만 만지작거렸다. 트렌트 얘는 왜 빨리 안 와. 어색해 죽겠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선수 분의 초대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왔다. 가장 피하고 싶은 질문. 여기서 트렌트의 초대로 왔다고 말하면 언론에 루머가 퍼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피하려는 찰나, 멀리서 트렌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님!"


아, 트렌트. 이렇게 최악의 타이밍에 등장할 건 뭐니.


“아놀드!”


기자는 손을 들어 그 애에게 아는 척을 해 보았다. 트렌트는 오자마자 나와 기자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섰다. 나와 그 기자가 바로 시선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포스트매치 인터뷰가 필요하면 피치로 내려오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해드렸을텐데.”
“오늘은 내 담당이 아니라서. 오늘 고생했어요, 아놀드.”


조지는 트렌트의 어깨를 두들기고, 내게는 눈인사를 하고 유유히 걸어갔다. 트렌트는 그 기자의 등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내게 물었다.


“저 기자가 이상한 거 안 물어봤어?”
“무슨?”
“신상질문 같은 거.”
“전혀. 경기 관련한 것만 물었어.”


트렌트는 끝까지 기자를 향해 눈을 흘기다 나를 데리고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디 가자는 거야?”
“가보면 알아. 나 여기 가고 싶었거든.”


주차장에 가니 의외로 그 애가 렌트해둔 차가 있었다. 삑삑. 문이 열린 뒤 조수석에 탔다. 운전대를 잡은 그 애를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어디 가는지 정말 안 알려줄거야? 나 불안해해야 되, 기대하면 되?”
“푸핫, 야. 불안은 뭐야. 그냥 기대하면 되.”


차는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경기가 끝난 지 한참 뒤라
다행히도 경기장 주변에 팬들은 없었다.





“우와…!”
“넌 런던 살면서 한번도 안 와봤냐.”
“쳇, 공부하느라 바쁘거든?”


의외로 그 애가 데려간 곳은 윈터 원더랜드였다. 짜식, 꽤나 낭만이 남아있었잖아? 오랜만에 보는 소꿉친구를 위해 크리스마스마켓에 갈 생각을 다 하고. 경기에서 이긴 것도 기특하거니와, 이런 곳을 생각해낸 게 대견해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칭찬해주니 괜히 심통부리는 것마저 어렸을 때의 그 애 그대로였다. 


아닌게 아니라 런던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학점 관리에, 의대 편입을 위한 준비를 하느라 대학생활의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런던 원정 경기가 있을 때마다 트렌트의 경기를 보러가는 내 의리를 알아준 건지, 이런 멋진 이벤트를 마련한 게 제법 귀여웠다. 신난 나는 그 애를 끌고 츄러스 줄에 서서 그동안 있었던 대학생활 이야기를 들려주고-전에 말했던 제일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이 결국엔 사귄다, 어느 교수는 성질머리가 너무 더럽다-, 핫초코 줄에 서서는 그 애의 뛴 경기의 비하인드 이야기-어느 팀은 플레이를 너무 거칠게 한다, 한번은 주심이 너무 큰 오심을 하자 감독님이 화를 내시는데 내가 다 무서웠다- 를 들으며 공감하고 서로 욕도 하고, 솔직한 의견도 나누었다. 멀리 런던 대도시에서 친구와 나누는 이 시간이 내게는 정말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 애가 그 얘기를 하기 전까진.


철저한 식단관리로 인해 츄러스와 핫초코를 일절 먹지 않으려는 트렌트가 안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한 입도 안 먹으려는 게 너무 아쉬워 괜히 먹어보라고 조르게 되었다.


“트렌트, 한 입만 먹어봐. 내일 버피 한세트 더하면 되지.”
“아, 진짜 안 돼.”
“제발~ 내 크리스마스 소원이야. 응?”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장난을 치자 그 애는 결국 에헤헤 웃으며 핫초코를 한입 먹었다. 꽤나 맛있었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까지 했다.


“거봐. 맛있지? 누나 말 들어 그니까.”


트렌트는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다가 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했다.


“허니.”
“응, 왜? 한 입 더줘? 츄로도 먹어볼래?”
“아니.”
“뭔데.”

“나 너 좋아해.”



고백을 받았는데,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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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허구의 스토리임
놀드가 전전긍긍했으면 좋겠다
상대팀은 지는 팀으로 나와서 실제 있는 팀으로 하면 안될거같아서 걍 이스트런던함

놀드너뻥 강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