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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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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후카츠.”



  “으응.”



  “난, 역시 너처럼은 될 수 없다.”



  “으응.”



  “될 생각도 없지만, 너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도저히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어.”

 

 

 

 

나도… 알고는 있다. 그러는 것이 그일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도 그다지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일이 일어났으니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 것이고, 일어나야 할 것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기도록 해야 하는 것일 뿐. 이미 오랜 기간 체화되어 온 사고와 행동 방식 같은 것이었다. 천성도 일단은 그러했지만.

 

 

 

  “너의 말대로 미래에 언제가 우리가 혹시 갈라서야만 한다면... 그건 내 뜻이 아니고, 네가 싫어져서도 내 마음이 변해서도 아닐 거다. 그리고 기다릴 수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말해도 대충 알아듣겠지. 이 녀석아.”

 

 

  “으응.”

 

 

 

  알지, 알지. 정직하게 울리는 이 심장소리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게 해 준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말은 길어지게 하냐는 둥, 배는 고파 죽겠다는 둥, 책은 사러 언제 갈 거냐는 둥, 투덜대면서도 내 목뒤를 감싸고 있는 팔의 힘은 풀지 않아, 따뜻한 품 안에서 자꾸만 머물고 싶어 지잖아…….

 

 

 

 

  “뭐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아무튼 아야… 커흐흠, 전 여친이 해 준 말이 있다. 다음번에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는 꼭 놓치지 말고 지켜 주라고. 나한테… 좋은 사람이라더라, 하하……. 지금은 딴 녀석과 잘 사귀고 있나 보던데 잘… 된 거지. 그래서 이별 선물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 말은 꼭 들어주려고.”

 

 

 

 

  응, 꼭 지켜 줘. 그 말도 나도. 신뢰의 남자니까.

 

 

 

 

  “그래도 이전 경험이… 교훈이 안 된 게 아니라 이거다. 난 지금, 우리의 백일 날만 기다리고 있거든, 흐흐흐. 기대하라고. 허–니-.”

 

 

 

 

그것은 당연, 그런 학습능력이 없으면 그거야말로 유감이라고요……. 실로 오래간만에 프리가 된 이후 그를 찾는 행렬은 다시 늘고는 있지만, 이제는 제대로 거절하고 있으니까. 뭐, 괜찮나.

 

 

 

 

교정을 가득 비추는 늦은 봄의 햇살도 따스하고, 평소에도 듣기 좋은 음역대의 목소리는 그의 가슴 부근에 대고 있는 귀로부터 고막을 타고 바로 울려 와 귀를 더 쫑긋 세우고 그의 품 안으로 바싹 파고들도록 했다. 이러니 온 동네 고양이들이 그의 가슴팍으로 달려들어 그렇게 그르렁그르렁 대는 것도 이해는 갔다. 내가 고양이었다면, 지금 분명 그러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는 이제 내 자리니까 넘보지 마라냥. 아니, 뿅.

 

 

 

혹시 주변에 경쟁자라도 있을까 싶어 반쯤 접은 눈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보이는 것은 곧 찾아올 여름을 맞이해 기지개를 모두 마친 녹색 풍경들과 들리는 것은 바람결에 사르륵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뿐. 하늘마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아 티없이 맑았다.

 

 

 

 

  “저기, 미츠이.”

 

 

 

  “응?”

 

 

 

  “너 그때, 어째서 쓰러지지 않았어.”

 

 

 

  “뭐?”

 

 

 

  “모두의 바람대로, 기대대로. 너희가 지고 우리가 이겨서……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면, 여기서 널 다시 볼 일도 없었을 텐데.”

 

 

 

  “…….”

 

 

 

 

아무런 의도 없이 덤덤하게 흘러나오는 것은 내 이성과 냉정.

 

 

 

 

그러나

 

 

 

 

  “왜 그때, 밟아도 밟아도 쓰러지지 않아서 지금…… 자꾸만 내 심장을 욱신대게 해…….”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힘과 질량을 가진 거대한 무언가가 충돌해 오는 느낌은 내 감성으로 인한 것이었다.

 

 

 

 

 

  ‘넌 그렇게…… 마치 혜성처럼. 난데없이 내게 부딪치려고만 나타난 모양이라…… 그날 이후로 난 이제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다 지끈거려.’

 

 

 

 

 

  “왜, 그래서 싫어졌냐?”

 

 

 

  “으응, 정반대라 분하다뿅.”

 

 

 

  “훗, 옳지, 옳지. 그렇게 나오셔야지.”

 

 

 

 

아마도 그날이…… 언제나의 희극으로만 나에게 잊혔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오월은, 그가 태어난 오월의 하늘은, 지금 이렇게 그와 함께 보고 있을 일도 없었겠지. 여기서 여름 소나기도 갑자기 맞아 보고, 가을 은행잎도 밟아 보고, 겨울에는 별난 눈사람도 만들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사계절의 우리도…….

 

 

 

 

이제는 집 근처 골목 어디에선가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어쩌다 공기 중을 타고 그 향이 전해지기라도 하면, 그가 먼저 떠오를 것도 같은데. 이 좋은 날에 세상에 나온 너를……. 매년 같은 때가 되면 그의 생일을 축하할 일을 떠올리며 조금 들떠 있기도 하겠지. 그러고 보니, 자기 생일 챙겨 본 적은 언제더라. 졸업하고는, 축하 메세지는 꼬박 받고 있기는 하지만…… 부디 그때가 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을 그도 느껴 줬으면…….

 

 

 

 

이라니, 이런 이런. 이거야——, 처음부터 보기 좋게 포획당한 것은 혹시 그가 아니라 내 쪽이었나. 이 향기롭고도 무자비한 트랩에. 거기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 봐도 어떻게 내 발목을 휘감아 붙들고는 놓아 주지도 않아 회피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엉겨붙어 와 대체 어디를 끊어내야 하는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진압하려고 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 불길이라니. 혹, 이것이 치명이라는 걸까……. 여태 꺾어는 봤지만, 이토록 심장에 위협적이고 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이렇게 된 이상, 너는 나에게 재앙이 될까. 경사가 될까. 새삼스럽게 평생을 걸고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갑작스럽게 눈앞으로 들이닥친 이 기묘한 천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꺼이 부딪혀 보기로 한 것은 바로, 내 열정이었다.

 

 

 

 

뭐— 시험이니 뭐니 대단할 것은 없이, 최초에 시작하는 연인들끼리 필요한 것은 우선 서로를 먼저 알아가는 과정일 터. 그렇다면…….

 

 

 

 

  “미츠이. 이번 여름방학은 내 고향에 가 보는 건 어때.”

 

 

 

  “네 고향?”

 

 

 

  “응. 숲이 있다뿅. 여름에도 시원한 대나무숲.”

 

 

 

  “대나무숲인가. 여름에도 시원하다니, 그건 좀 솔깃한데.”

 

 

 

되고 싶다면, 너와 되고 싶은 그 연중 푸른 대나무. 너에게 내가 자라온 곳을 소개해 주고 싶다. 분명 너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시기가 좋으면, 예쁜 나비떼도 볼 수 있다뿅. 그거 좀 장관뿅.”

 

 

 

  “오, 진짜. 그럼, 대찬성이잖아. 갈래, 갈래.”

 

 

 

 

미지의 장소로 뜻밖의 권유를 받아 설렘을 가득 담은 눈이 바로 눈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 그 눈에 내가 비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숨이 닿아 코가 간질거려도, 그 순간만은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 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나쁘지는 않은 곳이였다. 내 고향은. 나름 유명한 여행 잡지에 작게나마 실린 적도 있는 숨겨진 관광 스폿이기는 하지만, 안 그래도 교통비가 살인적인 나라에서 달리 큰 수입이 없는 대학생이 다짜고짜 찾아가기에는 부담되는 비용이 드는 곳이기에, 아무래도 이번 학기는 파트타임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건 좀 고단하겠는 걸…….

 

 

 

비록 고달픈 학기가 될 것으로 예상은 됐지만, 폭신한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래는 혼자서 따로 준비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의 실연 현장을 목격한 뒤로는 거의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예정, 계획, 삶까지도 전부 본래의 궤도를 잃고 말았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어느 뜨거웠던 여름. 내 고교 마지막 청춘을 불태우고 있던 가운데 어느 영문 모를 이레귤러가 내 시야에 기적적으로 난입했을 때부터, 태초의 실수를 범하게 만들었을 때부터 이미 내 리듬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 평화로운 시절의 종말을 가져온 매혹스러운 마물. 역시, 천국은 무리이지 않을까.

 

 

 

 

그러나 너무 억울해 마시기를. 나 역시 이전까지의 평온과는 헤어져 작별을 고했으니. 네가 따라 오라 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가 있을 예정이라는대. 내 심장이 그렇게 요란스러워.

 

 

 

 

  “후카츠, 시끄럽다.”

 

 

 

  “?”

 

 

 

  “너, 이렇게 잠자코 있을 때는 요 깜찍한 머리로 뭘 생각하는진 모르겠지만, 속으로 엄청 시끄러운 건 알겠으니깐 말이다.”

 

 

 

  “흐음, 제법인데뿅.”

 

 

 

굳이 정정해 주자면,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지만.

 

 

 

  “그치. 앞으로는 그렇게… 제법이니 뭐니, 건방 떨 일도 없게 해줄 테다.”

 

 

 

피식, 확실히. 지금은 어쩌면 내 말풍선이 터져 나가고 있을지도. 그렇게 조금 더 분발해 봐, 미츠이.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을 이길 수 있게. 나더러 시끄럽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다구. 알고는 있을까. 아마 넌 이제 내가 막 궁금해진 참인 듯하다만, 난 너에 관해서는 그보다는 더 알고 있다.

 

 

 

 

눈에 들어올 때면 언제나 보고 있었으니까. 귀에 들려올 때면 항상 듣고 있었으니까. 애써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  최대한 거부하려 해 봐도  —— 존재하는 것으로, 저절로 빛을 발하는 존재에게 온 신경이 휩쓸려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넘칠 만큼 흘러들어 나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전에 그가 내게 한 말의 사정도 대강 가닥이 잡히기는 했다. 그날, 불안정한 날씨에 먼저 화려하게 피어버린 꽃잎이 봄비와 바람에 젖어서 길바닥에 즐비하고, 짙은 나뭇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것을 보고서 그가 내게서 보았다던 어떤 외로움은 결국 그것을 알아보는 자의 몫이라고.




그전까지는 딱히 상관은 없었는데. 어렴풋이 깨달은 뒤에도… 음, 까짓 것 좀 쓸쓸하면 또 어떠랴. 황량하면 황량한 대로, 이렇게 그가 먼저 알아보고 안아 와 주면— 미처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을 테니. 

 

 

 

더구나 그 차가운 비도 같이 맞아 주겠다지 않았었나. 심지어 내가 가져온 우산조차 없어도 된다던가. 차라리 푹— 같이 함께 잠겨 주겠다던 네가 있으니까……. 라거나. 이런, 아무래도 고장은 내가 제대로 나 버린 듯한데. 괜찮을까. 이거…….

 

 

 

속으로는 조금 기쁜 것 같으면서도…… 그건 그쯤이면 됐고, 그대로 두면 어디까지 달려나갈지 모를 사고가 늘 그렇듯 알아서 정지하고는 곧 제 살 길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예부터 독은 독으로 제압하랬다고, 그렇다면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정면돌파뿐이었다.

 

 

 

 

  “미츠이.”

 

 

 

  “오냐.”

 

 

 

  “우리… 첫번째 데이트는 플라네타륨이 좋겠다뿅.”

 

 

 

  “플라네타륨?”

 

 

 

  “응, 그리고 두 번째는 아쿠아리움. 세 번째는… 역시 디즈니랜드, 네 번째는 요코하마의 야경이 보고 싶다뿅. 그다음에는… 교토려나 수학여행 때 제대로 못 봤으니까, 다음은…… 아, 쿠로군도 보러 가야지. 그거 제일 중요한 거, 그리고…….”

 

 

 

 

  “야아- 뭐가 그리 급하냐. 거기 다 가보려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겠네. 시간이나 돈이나 엄청 깨지겠구만. 그리고 요코하마는, 난 좀 지겨운데 거기.”

 

 

 

 

대회가 끝난 후로 미루어 두었지만, 내 입에서는 그간 그와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 끝도 없이 흘러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물량공세로 부딪쳐 보자고 그가 막지 않았다면 전국의 유명 관광지는 다 나올 태세였다. 흐음, 가을이나 겨울에 가 볼 곳은 아직 운도 안 뗐는데.

 

 

 

 

  “지겨워도 나랑 가면, 전혀 새롭다뿅.”

 

 

 

  “오, 그럴까. 훗, 그럼 가이드는 맡겨 둬라.”

 

 

 

  “으응, 그런 것보다 낮에는 유원지에서 신나게 놀고, 밤에는 관람차 안에서 키스나 찐하게 해주면 된다뿅. 아니면… 지금이라도 상관없고.”

 

 

 

  “?”

 

 

 

  “*부드러운 입맞춤을 다시 한 번 더— 뿅.”

 

 

 

 

그러면,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 당신 품으로——.

 

 

 

 

  “풉, 하하하, 뭐냐. 촌스럽게- 언제 적 블루라이트냐고.”

 

 

 

 

한없이 낮은 텐션으로 적당히 음정 박자 무시하며 흘러나온 노래라고도 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우스웠는지, 어쩔 수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가볍게 두어 번 더 지어 보인 그가 곧 내 양볼을 두 손으로 가만히 감싸왔다. 웃음기를 지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의 정중한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 쪽에서 작게 일렁이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이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이렇게 내 마음에서 보내는 신호를 네가 읽고서 내 입술에 네 입술이 정확히 정박해 서면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도 우리는, *둘의 세계에서 언제까지나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이시다 아유미 원곡, 우에하라 다카코 ver.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中

 

 

 

 

그래서 미츠이, 네가 나를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네가 가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너의 따뜻한 품안으로 나를 안아 오면, 네가 나를 그렇게 마음껏 아끼고 사랑해 주면, 내 마음은 그대로 너로 인해 부드럽고 따뜻하게 열린다.

 

 

 

그리고 내게 심어진 네 심장이 언젠가는 탐스럽게 열리기를.

 

 

 

단지 나는,

 

 

 

『바라고 있어—.』

 

 

 

 

 

please, my love message. end.

 

 

 

 

 

 

명헌대만 후카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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