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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9 00:44
ㅅㅈㅈㅇ

"비, 나와."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 않은데도 단번에 너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내게도 어색한 옛 성으로 부르길 고집하는 건 너뿐이니까.
목걸이를 차는 손이 약하게 떨려오는 걸 보니 난 아직도 너를 무서워하나 보다.

"비."

나지막한 음성이 다시금 닫힌 문을 통과해 들어온다. 목걸이만 차면 돼, 그 말이 뭐가 어려워서. 망설이는 사이 벌컥 열리는 문 뒤에 네가 서 있다. 역시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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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선 안 될 자리라고..."

화장대 앞에 멍하니 앉은 나를 보고 너는 답답하단 듯 입을 다문다. 내 손은 여전히 목 뒤에서 헤매고 있다. 삐끗- 삐끗, 맞지 않는 고리 탓에 더 답답한 건 내 쪽이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너를 본다. 문과 키가 거의 비슷한 너를. 그 위압감으로 날 내려다 보는 너를.

"미안... 이것만 금방 차고..."

결국 내 목은 또 가늘게 떨린다. 바보, 멍청이 허니 델 토로
내 속마음을 읽으면 네가 얼마나 질색할지 알면서도 난 이제 무의식적으로도 나 자신을 델 토로라 지칭한다.

우리가 한 집에 산 지, 내 어머니와 내가 델 토로가 된 지도 10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너는 내 어머니를 빼앗아 차지하고, 새로운 델 토로 부인으로서 완벽히 받아들였지만 나만큼은 절대 그 끼워주지 않았다. 너는 내 남매가 될 자격도, 내 아버지의 딸이 될 자격도 없다는 듯이...

가족이란 퍼즐에 허니 비 조각은 필요치 않아.

날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노려 보는 너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가 주잖아. 예정보다 일찍 약혼을 하게 됐고, 대학을 졸업해도 꿈을 펼칠 기회따윈 없이 결혼해 아이를 가져야만 하고. 다 날 끔찍이도 못 견뎌하는 너를 위해서였는데. 너는 왜 더 화가 난 거니? 베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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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

무뚝뚝하게 말하고 성큼 다가온 네가 내 뒤에 선다. 앉은뱅이 화장대 거울 속의 너는 얼굴 없는 신사, 그 표정을 볼 수 없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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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

아주 살짝씩만 닿는 살결에 움찔하자 너는 목걸이를 채우던 손을 멈춘다. 아직, 아직 고리는 채워지지 않았는데...

"미안. 계속 해..."

"넌 할 줄 아는 말이 미안밖에 없어?"

평소라면 비아냥댔을 말이 속삭인 탓에 자장가로 들린다. 죽기 전의 아빠가 밤이 되면 나를 토닥이며 속삭였던 것처럼. 어머니는 재혼 후에 더 이상 내 방에 찾아오지 않는다. 새아버지는 우리의 방이 있는 2층엔 올라오지 않으신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직 어렸을 때 너는 내 방 문을 열고 슬그머니 들어와 천둥 소리에 벌벌 떠는 나를 위로한 적이 있다. 꼭 지금처럼, 속삭이면서.

풋-

회상에 가볍게 코웃음 치는 사이 목걸이는 완벽하게 목에 걸렸다. 너는 아직 발을 떼지 않았다.

"왜, 웃지?"

얼굴을 볼 수 없어도 눈빛을 짐작할 수 있는 매서운 말에 또 움찔한다. 그러다가, 오늘이 지나면 나는 피트 가의 공식적인 약혼녀가 되어 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르게 됨을 상기한다.

"네 생각이 나서."

발끈할 줄 알았던 너는 묵묵부답이고, 나는 목걸이를 무기삼아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보다.

"...네가 아직 베노였을 때 말이야."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돈다. 넌 예상보다 더 가까이 있다. 코앞에서 마주한 건 아주 오랜만이네, 베니시오.

"몇 달 전에, 네가 그랬잖아."

너는 여전히 말이 없다. 아직 하이힐을 신지 않아서 나는 여전히 너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너의 상체와 목만 겨우 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늘만 지나면 나는 감히 네가 넘볼 수도 없는 자리에 앉게 됨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네가 말했지"

너의 목울대가 울렁인다. 목젖 부근을 짓이겨놓고 내가 너를 이겼노라, 만천하에 선포하고 싶지만... 대신 내 목걸이를 살짝 움켜쥔다.

"그런데 어쩌니 베니시오, 내가 그 나무에 오르면... 넌 어떻게 할 예정이야?"

"..."

"... 넌 네 그 큰 키로도 쳐다볼 수 없는 자리에 오른 나를 애처롭게 바라만 보게 될 거야. 네가 경멸하던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될 거야. 그렇지, 베니시오?"

너에게 대든 건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다. 너는 그때 벌게진 눈을 하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우리의 싸움을 구경하던 군중 속 여자친구를 질질 끌고 갔었지.
데리고 떠날 여자친구도, 10대 시절의 패기도 사라진 지금의 너는 어떤 모습을 할지 정말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눈을 감았다 뜨면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있으면 좋겠어. 베니시오, 나는 아직 너를 무서워하나 봐...

나는 슬쩍 고개를 든다. 더 다부진 턱, 더 날카로운 콧날, 더 깊은 눈매... 내가 늘 떠올리던 어린 시절의 너는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한 남자가 된 네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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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나 본데 허니 비,"

드디어 열린 너의 입술 틈새로 흘러 나오는 이름은 또 다시 허니 비.

"넌 한번도 내가 쳐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던 적 없어. 알아?"

이번에 말문이 막힌 건 내쪽이다

"애처롭게 바라만 보는 건 빌어먹을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똑같다고."

"..."

"그러니까 제발 내 눈앞에서 꺼져."

내내 내뱉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준 네게 보답하기 위해 내가 '꺼져 주는' 사이에도 너는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서 화장대 의자만 바라보고 있다


토로너붕붕 젊토로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