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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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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야가 아무리 눈이 돌아갔다고 해도 앞에 노부와 케이가 앉아 있는 걸 눈치챘으니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앉아서 숨을 골랐고 츠지무라는 담담한 얼굴로 아마미야에게 찬 물을 한 잔 따라주고 앉았다. 저 두 사람이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건 알지만 그 이야기를 노부와 케이가 다 들어야 할 이야기도 아니고, 들어도 될 이야기도 아닐 거라 노부는 일단 해야 할 말만 하기로 했다.
"영감이 네 동생을 어떻게 찾았는지 이야기했어?"
"사람을 썼다고만 하던데."
"누구인지는 모르고?"
"그건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네 동생의 소재를 안다는 건 어떻게 믿었고?"
"사진이 있었다. 다 자란 동생의 일상생활 사진."
그럼 그 누군지 모르는 사람찾기 전문가가 케이의 납치범도 찾은 건가? 노부는 케이를 돌아봤다.
"혹시 영감이 납치범 사진 보여줬어요?"
"아니. 난 그 사람 얼굴을 잘 몰라. 또렷이 기억나지도 않고 그때도 제대로 본 건 아니라서. 사진을 보여줬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 믿지 못했을걸. 다이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고는 하던데. 난..."
아마미야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케이를 바라보다가 노부가 슥 몸을 움직여서 아마미야의 시선을 차단하자 노부를 노려봤다.
"저분도 협박당하셨어?"
"응. 아, 인사해. 이 녀석이 아마미야 료이치로. 우리랑 프리젠테이션 붙었던 회사의 부회장. 우리를 협박한 놈의 애인'이었던' 놈이에요."
"야!"
아마미야가 노부에게 발길질을 하려고 했지만 노부는 잽싸게 발을 피했다. 그러자 케이가 노부를 살짝 뒤로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스즈키 상사의 마케팅전략실 기획1팀장 마치다 케이타입니다."
"제 '전 애인' 놈이 민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마미야 료이치로입니다."
전 애인 운운에 츠지무라의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자기 업보니 미간만 조금 찌푸리고 말았다. 뭐, 어차피 아마미야도 츠지무라한테 시위를 하느라고 애인들을 갈아치웠 던 것 같으니까. 사람을 이용한다는 걸 본인도 알았을 테니까 적당히 데리고 있다가 적당히 돈 주고 헤어질 수 있는 똥차들만 골라서 만났을 테니까. 비도덕적이면서 묘하게 도덕적인 놈.
그리고 내 애인이라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안 해서 노부는 혀 끝까지 올라온 '내 애인'이란 말을 참고 대신 케이의 어깨에 다정하게 팔을 걸쳤다. 케이가 어깨를 흔들어서 털어내 버렸지만. 흥.
"마치다 상도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네, 뭐 범죄에 휘말린 적이 있어서."
노부는 다시 케이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올리며 덧붙였다.
"츠지무라하고는 경우가 좀 달라. 이쪽은 원수라서 화근을 없애려고 찾는 거라서. 영감하고 한판하러 갈 건데 간 김에 네 노트북 값도 받아내줄까?"
놀랍게도 츠지무라를 후드려팬 가방엔 정말 노트북이 들어 있었고, 츠지무라를 때리느라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츠지무라를 때리다가 가방으로 책상을 잘못 내려친 탓에 노트북이 고장나 버렸다. 켜지고말고를 떠나서 깨졌던데?
아마미야는 어깨만 으쓱였다.
"이 녀석을 협박한 건 네 아버지일지 몰라도 우리집 영감도 알고 있거나 동의하긴 했을 거야. 나도 가서 한판 해야지. 우리집 영감한테 받을게."
"그래, 그럼. 둘이 이야기 더 하고 다음에 다 같이 밥 먹자. 나중에 동생도 소개해 줘, 츠지무라."
아마미야는 츠지무라의 얼굴을 좋아했기 때문에 얼굴은 때리지 않았지만 어깨나 팔, 등판은 꽤 두드려맞아서 당분간 꽤 아플 테니 나중에 보자고 하고 나왔다. 그 다음에 케이와 함께 간 곳은 케이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카페였다. 특이하게 경찰서 바로 옆에 있었는데 카페 안에는 변호사나 피의자, 피해자 등으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도 간간이 있었다. 가루베 다이키치라고 소개한 친구와 케이가 잠시 회포를 풀고 있자 가루베의 애인이라는 경찰이 왔다. 문제의 그 아몬이었다.
케이의 SOS를 차지한...
네 사람은 대화의 주제가 주제인지라 가루베의 안내로 카페 뒤쪽의 직원 휴게실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몬의 말로는 영감이 범인을 직접 숨겨줬거나 증거를 은폐한 거라면 범인은닉죄가 되지만 그냥 그 사람의 소재를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죄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시민들의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법치국가가 이래도 돼? 그러나 괜찮았다. 아몬은 협박을 한 주체가 대기업의 CEO이므로 이런 공적인 사건에서는 공인으로 여겨질 수 있고, 범죄사건의 범인을 가지고 범죄 피해자를 협박했으므로 협박죄가 성립된다고 했다. 노부는 그 외 필요한 것들을 듣고 이제 너네 집에 가라고 떠미는 케이를 살살 잘 달래서 다시 케이의 집에 가서 함께 잤다.
참, 직접 케이가 SOS의 발신대상에 노부를 추가하는 것도 확인했고
커플 잠옷도 샀다. 고양이 잠옷과 강아지 잠옷. 늑대 잠옷을 사서 케이에게 입히고 싶었는데 늑대 잠옷은 없더라.
케이가 마음 속 깊이 내내 자리하고 있던 불안과 근심을 어느 정도 털어낸 건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케이가 기분이 좋아지면 얼마나 귀여워지는지를 간과한 게 문제였다.
케이가 같이 자고 난 다음 날 늘 그랬듯이 노부만 회사 한 정거장 앞에 내려주고 갔기 때문에 뒤늦게 회사에 들어온 노부는 앞에서 들뜬 얼굴로 재잘거리고 있는 직원들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진짜 그 얼음의 마치다 맞아? 나 잘못 본 줄."
"나도. 웬일이야? 무슨 일 있나?"
"지난 주 금요일에 프리젠테이션 하러 나갔었잖아. 그게 잘됐었다고는 하던데."
"결과 발표 안 났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경쟁사가 입찰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누구한테?"
"거래처 쪽에서 나온 말인데. 거의 확실하다던데."
"그래서 저렇게 기분 좋다고? 에이. 이거보다 더 큰 계약에 성공했을 때도 안 그랬어. 전에 대형 계약 따내서 축하한다고, 수고하셨다고 인사했더니 눈 이렇게 무섭게 뜨고 고개만 까딱하더니 무뚝뚝하게 '감사합니다'하고 휙 가 버리던데?"
"그럼 뭐지."
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어서 노부가 다가가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재잘거리던 직원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즐거워 보이시던데."
"마치다 팀장님이요."
"마치다 팀장이 왜요?"
"웃었어요!"
"웃었어요!"
"... 네?"
직원들도 뭔가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는 자각은 있는지 얼굴을 붉히더니 횡설수설 설명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출근하는 케이와 마주쳐서 인사를 하려 했는데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케이가 옅은 미소를 띤 채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케이의 입꼬리가 올라간 건 처음 봤다면서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었을 거라고 마구 떠들었다.
케이는 행복해져야 하는데. 케이가 행복해지는 건 좋은 일인데. 노부가 반드시 케이를 행복하게 해 줄 거긴 한데.
"너무 잘 생긴 거 있죠. 물론 원래도 잘 생겼지만 조금이라도 웃으니까 진짜... 진짜 미남!"
이게 문제였다. 나한테만 예뻐 보이면 안 돼요, 케이? 노부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오전에 보고할 게 있어서 바쁘다며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노부는 왜 직원들이 난리였는지 알았다. 케이는 평소와 같은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노부를 회사 근처에서 내려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노부와 있을 때는 종종 웃었으니까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회사에서도 웃다니.
안 그래도 딱히 웃는 것 같지도 않은데 묘하게 부드러워진 케이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가 살짝 붕 떠 있엇는데 점심시간 이후에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점심 메뉴가 하필 치즈 함박이었다. 케이는 고기도 좋아하고 치즈도 좋아했다. 노부의 요구 이후로 최근 구매식당 메뉴를 신경쓰고 있는 큰형 때문에 최근 메뉴가 쭉 좋았지만 오늘 메뉴는 특히 케이의 마음에 들어 버려서 케이는 메뉴를 확인하고 지나치게 발랄해졌다. 하필 치즈 함박이 맛있기도 해서 점심을 든든히 먹고 평소와 달리 커피도 달달한 걸로 마시고 기분이 한층 좋아진 케이는 조금만 더 발랄해지면 춤이라도 출 것 같처럼 통통튀며 걸었다.
케이가 갑자기 친화력이 생기고 사람들이 좋아져서 표정이 밝아진 게 아닌 건 알았다. 그냥 근심이 해결돼서 기분이 좋으니까 자연스럽게 표정이 조금 풀린 것 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케이에게 인상을 쓰고 있으라고 할 수는 없어서 노부는 체한 것 같은 기분으로 통통 튀는 케이를 사무실까지 데려다주고 35층으로 올라갔다.
둘째 형의 사무실에 처들어가서 둘째 형을 끌고 나오자 둘째 형과 형의 비서는 새파랗게 질렸지만 순순히 따라왔다. 노부는 둘째 형을 데리고 큰형의 사무실로 처들어갔다.
"형들 비서들 다 내보내고 35층 전체를 잠가."
"스즈키 노부유키."
둘째 형은 아마미야의 똥차가 노부를 협박하려 한 걸 몰랐는지 벌떡 일어났지만, 큰형은 둘째형을 앉히고 비서에게 나가서 1시간 동안 차라도 마시고 오라고 했다. 둘째 형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어지만 둘째 형의 비서도 나갔고 큰 형은 35층 전체를 아예 잠가 버렸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워?"
"형들한테 선택지를 줄게."
"뭐?"
둘째 형은 여전히 지푸린 얼굴이었지만 노부는 대답 대신 말을 이었다.
"첫째, 큰형이랑 둘째형 눈치게임 그만 하고 합의를 해서 한 사람은 CEO로 한 사람은 해외사업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하고 영감을 회사에서 쫓아낸다. 아, 영감이 쫓아내면 어디 요양원 같은 데 처넣으려고."
"뭐?"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둘째형과 달리 최근 있었던 성추행 사건이나 협박 사건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기에 일단 노부의 말을 들어보려던 큰형조차 안색이 싹 변했다. 애초부터 이 회사를 운영할 생각은 둘째치고 이 회사에 들어올 생각도 없었으며, 케이가 먼저 입사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입사하지 않았을 노부와 달리, 형들은 이 회사에 애착이 많았다. 두 사람 다 스즈키 그룹을 자기가 운영하고 싶어했으니까. 그게 긍정적인 의미의 의욕이든 아니면 그냥 욕심이든. 그러니 난데없는 요구가 불쾌하고 놀랍기는 하겠지만.
"그게 싫다면 두 번째도 있어."
두 번째가 더 싫을걸?
"두 번째, 영감이 약 20년 전 10세 아동을 포함한 수인 여러 명을 납치, 감금, 폭행하고 불법 판매한 조직의 수장을 은닉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경찰에 고발할 거야. 그러면 기자들도 당연히 냄새를 맡겠지. 영감이 경찰에 잡혀 가는 날에는 전국에 뉴스가 나갈 거야. 휠체어도 타려나? 마스크도 하고? 무릎담요 하나 덮고? 그꼴을 보고 싶어? 그쯤 되면 형들이 갖고 싶어하는 이 회사는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닐 텐데. 주가부터 폭락할 테니까."
"무슨 소리야. 그게 사실이야?"
"납치, 감금이라니? 그게 무슨..."
"아는 경찰한테 물어봤는데 범인은닉죄에 협박죄까지 적용될 거라 하더라."
둘째 형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큰형은 둘째 형의 눈치를 보더니 두려운 얼굴로 노부를 바라봤다.
"설마... 마치다 팀장이야?"
노부가 씩 웃자, 큰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무서워 보였나? 당연히 그렇겠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영감을 물어뜯어 죽이고 싶으니까.
"내가 영감을 물어뜯어 죽여버리고도 케이를 혼자 두고 감옥에 가지 않을 방법만 찾아냈으면, 당장 위층에 올라가서 죽여 버렸을 거야. 영감 죽고 내가 살인죄로 감옥 가는 꼴을 보는 게 더 낫겠어?"
나 감옥 가면 혼자 남을 케이만 아니었으면 형들한테 기회도 안 줬어.지금도 진심으로 물어죽이고 싶으니까.
#놉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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