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버릭을 쏙 빼닮은 캐피는 부모와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걸로 모자라, 부모의 친구들이 주는 사랑 또한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버릭의 외모로 아이스맨의 똑부러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캐피가 태어난 후로 원래도 자주 왕래하던 탑건 동기들이 더 자주 아이스맨과 매버릭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자주 방문한 사람은 단언컨데 구스였다. 구스는 '매버릭의 보호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그 누구보다 캐피를 먼저 만났고, 캐피의 걸음마를 먼저 보았고, 캐피의 옹알이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매버릭이 육아에 지쳐서 퍼져있을 때면 친정 식구처럼 캐롤과 구스가 그를 도와주곤 했기에 캐피는 자연스럽게 구스와 캐롤을 가족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브래들리와 다르게 예쁜 얼굴로 예쁜 짓을 하는 캐피를 보며 구스와 캐롤은 마치 손주를 얻은 것마냥 굴었는데, 아이스맨은 괜히 이 관계가 장인-사위 관계가 된 것 같아 가끔은 그들 앞에서 뻣뻣해지곤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덕분에 부부의 육아가 쉬워진 것도 있었으니 구태여 말을 꺼내진 않았다.


캐피가 다섯 살 쯤 되자, 부모의 영특한 머리를 닮은 걸 보여주듯 온갖 현란한 말로 남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곤 하였다.


"대니, 초콜릿은 하루에 하나였지?"
"푸우우, 그건 불공평해! 마미도 아까 세 개 먹는 거 봤어!"


라던가,


"대니, 8시면 취침시간인데 침대에 들어가야지."
"파파가 안 왔는데 어떠케 들어가. 마미가 저렇게 자고 이쓰니 내가 거실을 지켜야지."


라던가. 아무튼 아이스맨은 요 입은 대체 누구를 닮은 건지 가끔 고민을 하곤 했다. 논리와 설득으로 점철된 다섯 살 아이를 이길 수 없는 부모라니, 슬라이더는 캐피 이야기를 전해 듣곤 배꼽을 잡고 킬킬 웃어댔다. 매버릭의 고집과 아이스맨의 말발을 닮은 걸 어쩌겠어. 위로가 되지 않는 답변이었고.



그럼에도 캐피를 이길 수 있는 딱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부모가 아닌 구스와 캐롤 부부였다. 두 사람에게 이미지 관리라도 하는지 캐피는 유독 두 사람이 집에 와 있으면 의젓함을 뽐내곤 했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 캐피와 입씨름을 하고 있던 매버릭은 구스가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찹찹 옷을 털고 일어나는 캐피를 보며 이마를 탁, 짚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를 우습게 보는 걸까? 캐피가 낮잠 든 사이, 캐롤에게 아이스맨이 조용히 물었다. 캐롤은 커피를 두 번 정도 들이킨 후 더 조용히 답했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예의있게 대답은 하니까?"
"아니, 아이스맨. 대니는..."



닉을 좋아해.
아이스맨은 벼락을 맞은 듯 움직이던 손을 뚝, 멈췄다. 그러자 캐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낼 뻔 했다. 아이스맨의 어깨를 살살 때린 캐롤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고. 그니까...음. 매버릭이 닉을 좋아하듯이 말이야."
"그치만 그것도 기분이 별론데."
"오, 아이스. 우리 자기가 원래 매력이 좀 있잖아."
"그니까, 난, 매력이, 없다?"
"네가 이런 캐릭터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좀 재밌어지려고 해. 아무튼 이유는 하나야."
"이유?"
"대니는 닉이 올 때마다 사 온 초콜릿을 조금 더 먹게 해준다는 걸 알고 있어. 굳이 따지면 '닉'이 아니라 '닉이 사오는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거지. 그걸 먹으려면 닉과 내 말을 잘 들어야한다는 걸 눈치 빠른 우리 다람쥐가 부모보다 더 빨리 알아차린 거고."



오, 아이스. 너 진짜 멍청한 표정이야. 지나가던 매버릭이 툭 던진 말과 캐롤의 재밌는 비밀이 모두 아이스맨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했다. 아이스맨이 내일 캐피에게 초콜릿 사주는 아빠가 좋아, 그냥 구스가 좋아? 라고 물어볼 생각을 하는 동안 구스와 매버릭은 새 기체 이야기를 하면서 캐피 잠옷을 차곡차곡 개켰다.








아이스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