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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21:27
토스 보니까 본즈가 사고로 타임포탈에 빠져서 수백년 전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커크랑 스팍이 본즈를 되찾아오려고 애쓰는 에피가 있던데, 그런 식으로 본즈가 300년 전의 칸과 만나게 되는 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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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댐잇. 여기가 대체 어디야...

본즈는 울창한 숲 속을 헤매며 욕설을 연발했음. 상황은 대충 파악할 수 있었음. 탐사 중인 외계행성에 있던 그 구덩이가 하필이면 다른 시공간으로 향하는 포탈이었고, 자신은 그 구덩이에 빠져버렸고, 지금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에 와버렸단 말이지. 페이저도 통신기도 없이 빈손으로.

이럴 때 가장 적절한 선택은 엔티호에서 그를 구조하러 와주기를 기다리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그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음. 본즈에게는 구조될 때까지 당장 끼니와 잠을 해결할 만한 장소가 필요했음.

 - 어, 뭐야? 건물이잖아? 이런 곳에...

일단 다행이었음. 불이 켜진 건물이라면 사람이 살고 있을 테니, 먹을 것을 제공받거나 아니면 최소한 마을로 향하는 길이라도 물어볼 수 있겠지. 본즈는 그 건물로 향했음.

멀리서 볼 때는 작아 보였는데, 가까이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이런 외딴 곳에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시설이라니, 교도소나 수용소 같은 건가? 하지만 달리 선택이 없었기에, 본즈는 대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음.

 - 저기요? 잠시 말씀 좀...!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예상치 못한 얼굴이 등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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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즈는 입을 떡 벌리며 뒷걸음질을 쳤음.

 - 칸...?!!!

 -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십니까, 고객님?

본즈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헤집었음. 눈앞에 있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은 분명히 칸이었음. 그리고 본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면 이 거대한 건물의 정체는...

 - 저기, 미안한데, 지금 몇 년도야? 여긴 어디야?

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중하게 대답했음.

 - 1971년. 강화인간 연구시설의 인도 지부입니다.

(맙소사...)

이곳은 300년 전, 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음. 그리고 칸이 본즈를 "고객님" 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그날은 강화인간 프로젝트에 투자한 누군가가 이 시설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날인 모양이었음. 칸은 본즈가 바로 그 고객님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고.

(댐잇, 미치겠네.)

지금이라도 뒷걸음질쳐서 나갈까? 본즈는 웬만하면 어린 칸과 엮이고 싶지 않았음. 칸이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지구 역사에서 지나치게 거물이기 때문이었음. 칸 누니엔 싱은 장차 지구의 4분의 1을 정복하게 될 인물인데, 만약 본즈가 괜히 칸의 유년기에 개입했다가 이후 역사가 통째로 바뀌어버리면 어떡해? 스타플릿의 철칙 중 하나는 외계 행성뿐 아니라 지구의 역사에도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음.

 - 이봐, 나는 사실...

 - 칸!! 어서 고객님을 안으로 안내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

그때, 누가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보이는 서양인 박사 한 명이 삿대질을 했음. 칸은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본즈를 안으로 잡아끌고 대문을 닫기 시작했음. 본즈는 어버버하는 틈에 그 시설 안에 들어서고 말았음.

 - 반갑습니다, 고객님! 저는 이 시설의 책임자인 하이센 박사입니다. 보내주신 투자금은 강화인간 육성을 위해 소중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 아, 네...!

 - 강화인간들을 직접 살펴보고 구입이나 대여를 결정하고 싶다고 하셨죠? 마음에 흡족하실 때까지 머물며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구입이나 대여? 그럼 저 애들을 살 수 있다는 건가?)

본즈의 머리가 핑핑 돌았음. 왜냐하면 대문 안으로 들어선 본즈의 눈에 펼쳐진 것은, 수십 명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재잘거리는 아이들. 아주 어린 애들도 있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칸도 10대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음. 본즈도 300년 전에 강화인간들이 실험실에서 육성되었다는 사실은 지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직접 보는 건 전혀 다른 기분이었음.

 - 칸, 고객님을 방으로 안내해 드려라.

 - 네, 박사님.

칸은 자연스럽게 본즈의 겉옷을 받아 챙기며 건물 안으로 안내하기 시작했음. 본즈는 꼼짝없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음. 댐잇, 짐, 스팍, 제발 빨리 날 구하러 와줘! 마음속으로 필사적인 기도를 바치는 동안, 칸이 공손히 질문했음.

 - 그런데 고객님, 존함을 듣지 못했습니다.

 - 어, 그게, 내 이름은...

레너드 맥코이라는 본명을 사용할 수는 없었음. 그렇다고 아예 터무니없는 가명을 썼다가는, 그 이름으로 불렸을 때 대답을 놓친다거나 해서 의심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음. 결국 정착한 것은 평소에 잘 안 쓰던 미들네임이었음.

 - ...호레이쇼야.

 - 네, 미스터 호레이쇼, 이쪽입니다.



결국, 그날 본즈는 하루종일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강화인간 시설을 견학해야 했음.

칸의 어린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이 이상했음. 본즈가 기억하는 그 매끈탄탄한 근육질 칸에 비해, 10대의 칸은 아직 근육도 적고 너무 가늘어 보였음. 애한테 밥은 제대로 먹이고 있냐고 따지고 싶어질 정도로. 칸 특유의 그 깊은 목소리도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가냘픈 느낌이었음.

무엇보다 어색한 것은 칸이 웃는 모습이었음. 본즈가 기억하는 칸은 언제나 뱀처럼 차갑고 냉정해서, 저 인간이 웃을 줄도 아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는데. 어린 칸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 자주 웃고 많이 웃었음. 칸의 그 푸른 눈망울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미소가 담기는 것을 보면 스스럼없는 애정이 느껴졌음.

(크루들은 내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본즈는 칸의 말을 떠올렸음. 그때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칸은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음. 칸과 다른 강화인간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성장한, 말 그대로 피만 안 섞인 가족이었음. 배고프다고 찡찡대는 다른 애들에게, 칸이 자기 몫으로 배급된 간식을 전부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서, 본즈는 저놈이 왜 살이 안 찌는지 알겠다고 투덜대면서도 몹시 복잡한 감정이 들었음.

그때, 하이센 박사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왔음.

 - 고객님, 특별히 원하시는 유형이 있으십니까?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저희가 도와드리죠.

 - 음. 그게요...

본즈는 애초에 강화인간을 구입하거나 대여하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하는 게 있을 리가 없었음. 본즈가 말을 흐리자, 하이센 박사가 자랑스럽게 늘어놓기 시작했음.

 - 와킨은 전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카티는 전략과 전술 쪽이고요. 혹시 전투 용병이 아니라 가사일이나 다른 봉사를 시키시려는 거라면, 그쪽도...

 - 저기, 칸은요? 칸은 뭘 잘하나요?

문득 호기심에 질문이 튀어나왔음. 칸의 특기 분야는 뭐지? 그러자 하이센 박사는 의기양양하게 선언했음.

 - 칸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납니다.

 - 네??

 - 칸은 저희가 제작한 첫 성공작이었거든요. 그때는 이게 성공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어서, 일단 가능한 것들은 전부 쏟아넣었습니다. 그래서 칸은 만능입니다. 그 뒤에 제작된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죠.

입을 벌린 채, 본즈는 다시 칸이 했던 말을 떠올렸음.

(I am better. At everything.)

나는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칸은 그렇게 말했었지. 그것은 잘난척이 아니라 팩트였던 것이었음. 모든 면에서 우월하게 만들어진 강화인간이라니.

 - 그래서, 원하시는 유형은 뭡니까?

 - 사실은 아직 결정을 못 내리겠는데, 전체적으로 다 보여주실 수 있나요?

본즈의 목적은 엔티호에서 구조가 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었기에 선택한 대답이었음. 다행히 하이센 박사는 수긍하는 듯했음.

 - 그럼, 무술 대련부터 감상하는 건 어떠십니까?

 - 네, 네.

얼마 후, 자리를 잡고 앉은 본즈는, 자신이 그 제안을 승낙한 것을 매우 후회하게 되었음.

칸을 포함한 아이들이 검을 들고 무대에 나설 때부터 본즈는 입을 다물지 못했음. 아무리 봐도 대련용 목검이나 죽도가 아니라, 시퍼렇게 날이 선 진검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안전장비도 없이? 스타플릿 아카데미에서도 백병전 훈련은 반드시 헬멧과 보호대를 착용하고 연습용 무기로만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본즈는 떨떠름하게 물었음.

 - 저기, 애들한테 저런 걸 휘두르게 해도 되나요?

 - 물론이죠. 저놈들은 칼에 베이거나 찔려도 금방 재생되는 녀석들이라서요.

 - 아니, 그랬다가 진짜 크게 다쳐서 죽기라도 하면요?

 - 강화인간이 상처를 재생 못 시키고 죽는다고요? 그러면 애초에 전투에 투입할 수 없는 불량품인 게지요.

본즈는 대련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음. 확실히 강화인간 아이들의 실력은 대단했고,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음. 하지만 무대에서 진검으로 부상이 발생하고, 피가 보이고, 그런데도 무대가 중단되지 않고, 애들이 스스로 피를 닦고 다리를 절뚝거려 가면서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건 아주 악랄한 아동학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음.

(개입하지 말자. 개입하지 말자...)

본즈는 지금이 300년 전의 역사 속이고, 자신은 이 시대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되새겼음. 어린 칸이 자기 몸처럼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먼 훗날 미친 범죄자로 성장한 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음. 어릴 적부터 칼로 사람을 베고, 그 자신도 칼에 베여가며 성장한 아이라면, 폭력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을 죽이는 것마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될지도.

마침내 대련이 끝나 안도하는 것도 잠시, 다음 무대가 펼쳐졌음. 이번에는 일종의 차력쇼나 서커스 같았음. 고객들에게 강화인간의 신체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기 위해, 인간 피라미드를 쌓기도 하고, 공중제비 같은 온갖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음.

와킨이라고 했던가. 전투에 특화된 강화인간이라고 소개받았던 그 사내아이. 조금 전의 대련에서 얻은 부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던 모양이었음. 그 아이는 잠시 균형을 잃고 발을 헛디뎠고, 그 아이의 어깨에 발을 딛고 올라타 있던 칸도 중심을 잃었고, 그 파문이 대열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순식간에 와당탕 무너지고 말았음.

요란한 굉음과 함께, 본즈와 하이센 박사가 동시에 욕설을 퍼부으며 벌떡 일어나 무대로 달려갔음. 본즈의 반응은 우선 애들이 괜찮은지, 다친 애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었음. 하지만 하이센 박사가 달려온 이유는 전혀 달랐음.

 - 이 쓸모없는 놈들, 고객님 앞에서 이 무슨 추태냐!!

격노한 박사의 고성이 쏟아지자 아이들이 목을 움츠렸음.

 - 실수한 놈이 누구냐! 당장 나와!!

사고의 발단인 와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음. 마침 바로 곁에 있던 본즈는 볼 수 있었음. 와킨이 부들부들 떨면서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칸이 눈을 부릅뜨고 재빨리 제지하면서 자기가 대신 나서는 것을.

 - 제 잘못입니다, 박사님. 제가 대열을 무너뜨렸습니다.

 - 칸! 네놈이 감히...!!

 - 사죄드립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칸이 본즈의 앞에 무릎을 꿇고, 하이센 박사는 씩씩거리며 근처에 있는 함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음. 본즈는 그것이 아마도 칸을 처벌하기 위한 도구라고 짐작했음.

(개입하지 말자. 개입하지 말자...)

지금은 3세기 전이야. 그때는 애들한테 주먹질이나 회초리를 동원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시대라고.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니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다져진 본즈의 결심은, 하이센 박사가 칸에게 그 도구를 휘두르는 순간 날아가 버렸음. 그것은 회초리가 아니라 금속 갈고리가 달린 채찍이었음.

 - 뭐, 뭐예요 그건?!

 - 고객님, 이놈들은 그냥 몽둥이로 때려서는 아무 타격을 못 줍니다. 제대로 고통을 가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아니 왜 고통을 가해야 하냔 말이다. 아직 어린 애들이 무대에서 실수한 것뿐이라고! 본즈가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칸이 당연하다는 듯이 채찍질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음. 섬뜩한 채찍질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다른 아이들도, 심지어 와킨조차도 벌벌 떨기만 할 뿐 아무도 막으려고 나서지 않았음. 이런 식으로 맞아본 경험이 예전부터 많았던 것으로 보였음.

 - 그만! 제발 그만 하세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본즈가 하이센 박사의 팔을 붙잡았음. 칸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음. 박사는 채찍을 바닥에 탕!! 내리치며 일갈했음.

 - 네 이놈, 당장 고객님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

 - 미스터 호레이쇼,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한때 엔티호에서 칸을 처음 만났을 때, 본즈는 저 오만한 슈퍼맨 같은 놈이 누군가에게 무릎꿇고 비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음. 하지만 그걸 직접 경험하는 것은 의외로 전혀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음.



그날 밤, 본즈가 내빈용 침실로 안내되었을 때,

 - 너... 여기서 대체 뭘...

 - 베풀어주신 자비에 감사를 표하러 왔습니다.

침대 위에 장미꽃처럼 장식된 칸. 어린 놈이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나체로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새하얀 알몸 여기저기에 미처 회복되지 못한 채찍 자국이 핑크빛으로 남아 있어서 더 섹시해 보였음. 본즈는 이제 환장할 기운조차 없어져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음.

 - 이봐, 칸... 그 박사놈이 시켜서 온 거면, 그냥 가도 돼. 이런 서비스 안 해줘도 난 괜찮아.

칸은 매우 당혹스러워했음.

 - 미스터 호레이쇼, 아까 보인 추태를 다시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만족시켜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 아니, 그러니까 난 필요없다고.

 - 혹시 제가 마음에 차지 않으신 거라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게 한 번만 기회를...

 - 아오, 돌겠네 진짜!

본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른 뒤, 칸을 똑바로 바라보며 설명하기 시작했음.

 - 이봐, 잘 들어. 난 너한테 화 안 났어. 네 잘못이 아니야. 아까 그 무대에서도 사실은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 난 지금 화난 게 아니라, 그냥 진짜로 순수하게 너랑 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니까 제발 가.

그 말에 칸은 더욱 놀라는 표정이 되었음.

 - 정말로 저를 욕망하지 않으십니까? 제 몸을?

젠장. 칸은 여전히 알몸이었고, 침대 위에서 그 늘씬한 허리를 흔들며 다리를 길게 뻗어보였음. 칸은 어른으로서도 섹시한 미남이더니 어릴 때는 르네상스 명화 속 미소년처럼 이뻤음. 설마 자기를 보고 동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마저 정당화될 정도로. 본즈는 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놈이 애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욕망에 맞섰음.

 - 응. 싫어.

 - 어째서요...?

본즈는 여기서 고객의 대답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음. 만약 칸한테 내 취향이 아니라거나 안 땡긴다고 대답했다가는, 칸은 이 연구기관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상품"으로 인식되어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 그래서 본즈는 정직하게 털어놓았음.

 - 난 어른이고 넌 애니까. 원래 어른은 애랑 그런 짓 하는 거 아니야.

 - 예? 하지만 다른 고객님들은...

 - 네가 이제까지 별 쓰레기 변태같은 어른들만 봐서 모르겠지만, 원래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어린애랑 안 해. 어른은 어른끼리 해야 하는 거란 말이야. 난 지금 벌써 서른세 살이야. 넌 몇 살이지? 열일곱? 열여덟?

 - 열두 살입니다만.

 - 뭐야?!!

겨우 열두 살에 벌써 이 정도 키에 신체발육이라고? 본즈의 경악한 표정에, 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음.

 - 저희들은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신진대사도 더 빠르고요.

본즈도 이해할 수 있었음. 강화인간 프로젝트가 경제적으로 돈이 되기 위해서는, 강화인간 아이들이 최대한 빨리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와야만 하는 것이었음. 아이 하나를 어른으로 키워내는 데에는 엄청난 자원이 드니까. 만약 강화인간 아이들이 일반인처럼 20년에 걸쳐 천천히 성장한다면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었음.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칸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되자, 본즈는 현타를 넘어서 비참한 감정이 들었음.

 - 젠장, 그런... 그 정도로 어린애였다고?

 - 저희는 두뇌발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정신적 연령도 신체 나이와 거진 일치합니다. 미스터 호레이쇼, 굳이 신경쓰지 않고 제 몸을 취하셔도...

 - 그만, 그만 해. 제발.

본즈는 미칠 지경이었음. 두뇌발달이고 나발이고, 열두 살짜리가 어른의 침대에 찾아와서 자기 몸을 제공하면 안 되는 것이었음. 그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음. 게다가 칸에게는 이번이 처음도 아닌 것 같아서 본즈의 기분은 더욱 참담해졌음.

 - 왜 제 나이를 그토록 중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법적으로 인간이 아닙니다. 저희들에게 무슨 짓을 하시더라도 결코 법에 저촉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으실 겁니다. 오늘 하룻밤 동안 저를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 예. 부디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대로 고객님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돌아가면 오히려 저는 벌을 받을 겁니다.

본즈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일어섰음.

 - 좋아. 그럼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할게. 일단 넌 옷부터 좀 입어. 잠옷 가져왔지?

칸은 어리둥절해졌지만, 일단 고객님이 시키는 대로 옆에 있는 잠옷을 걸쳐 입었음.

 - 주방에 가서 핫밀크 한 잔만 가져와. 초코 시럽도 넣어서.

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를 쟁반에 받쳐 들고 오자, 본즈의 다음 지시가 떨어졌음.

 - 그거 네가 다 마셔. 아니, 한번에 말고,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셔야 해. 옳지. 그렇게.

칸은 영문도 모른 채 그 핫밀크를 혼자 다 마셨음. 따끈하고 진하고 달콤했음. 온몸에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았음. 그러자 본즈가 침대를 팡팡 때리면서 손짓을 했음.

 - 이제 불 끄고 여기 와서 누워.

칸이 얌전히 침대에 눕자, 본즈는 이불을 당겨서 꼭꼭 덮어주고는, 자기도 옆에 누워서 칸을 토닥이며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음.

 - 옛날에 우주를 항해하는 배가 있었어. 그 배에는 우주를 아주 싫어하는 의사가 타고 있었어.

 - ...미스터 호레이쇼,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 옛날 이야기 들려주잖아. 원래 애들은 어른이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는 거야.

 - 하지만 왜...

 - 조용히 해. 이제부터 넌 말하는 거 금지야. 눈 감고 누워만 있어. 자아, 그러니까 우주를 항해하는 배가 어느 외계인 별에 정박했는데, 그 별에 사는 외계인들이 글쎄...

본즈의 잔잔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음. 칸은 어둠 속에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채 본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음. 온종일 고된 하루를 보낸 데다 따끈한 우유까지 마시고 누운 몸이 노곤노곤 풀어지기 시작했음. 생전 처음 경험하는, 아주 따사로운 기분이었음.



다음날 아침.

본즈가 눈을 떴을 때, 칸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음. 입을 살짝 벌린 채 잠든 칸의 얼굴은 귀여웠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소년의 체온은 따뜻했음.

그리고 본즈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패닉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아주 제대로 어겨버린 것이었음. 내가 칸한테 중요한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냥 스쳐지나가는 엑스트라로 잊혀졌어야 했는데. 이제 칸 누니엔 싱은 이 특이한 고객님을 평생 잊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죄없는 아이가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을 그냥 구경만 했어야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칸은 하루종일 다른 임무를 받아서 떠나는 바람에 본즈와 마주칠 일이 없었음. 본즈는 칸이 없는 시설을 멍하니 견학하면서, 자신이 대체 어떻게 했어야 옳았는지 곱씹으며 하루를 보냈음.

그리고 그날 밤.

본즈가 자기 방으로 돌아왔을 때, 당연하지만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음. 본즈는 그 넓고 차가운 침대에 혼자 누우면서, 어제 느꼈던 칸의 온기를 그리워하지 않으려 애썼음.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음.

 - 뭐야. 누구야?

 - 저기, 미스터 호레이쇼...

칸이 잠옷 차림으로 베개를 끌어안은 채 문 밖에 서 있었음. 본즈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음.

 - 칸, 무슨 일이야? 또 박사가 보냈어?

 -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그냥 왔는데... 저... 혹시 어제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본즈는 거절하려 했음. 더 이상 칸과 깊게 인연을 맺는 일은 피해야 했음. 그런데 문을 좀더 열어보니, 칸이 혼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음.

 - 실은 제가 어제 일을 말했더니, 다들 오고 싶다고 해서...

칸의 뒤에는 잠옷 차림으로 베개를 끌어안은 강화인간 아이들이 대여섯 명쯤 쭈뼛거리며 서 있었음. 본즈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칸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음.

 - ...죄송합니다. 역시 안 되겠지요.

칸의 몹시 상심한 표정에, 뒤에 있는 애들까지 덩달아 시무룩해지는 것을 보면서, 본즈는 자신이 아주 좆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도저히 이 애들의 부탁을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았음. 평생 못된 어른들 밑에서만 자라온 아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정상적인 어른을 한 명 만나서 의지하게 됐는데, 그걸 뿌리칠 수가 없었음.

 - 예끼놈들, 뭐하고 섰어! 당장 들어오지 못해!

공연히 버럭대며 헛기침을 하는 본즈의 말에, 칸과 아이들은 순간 멍해졌다가 곧 표정이 환해지며 우루루 뛰어들어왔음. 본즈는 침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그 옆에 칸이 눕고, 다른 아이들이 가로세로 뒤엉켜 누웠음.

 - 자. 모두들 자리 잡았지? 그럼 시작할게. 우주 저 너머에 어느 외계인들이 사는 별에서 있었던 일인데...

엔티호와 함께 우주를 누비며 겪은 갖가지 모험 덕분에, 본즈의 이야기 보따리는 마를 일이 없었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가슴 한켠에서 속삭였지만, 본즈는 그 생각을 지워버렸음. 칸이 마치 별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데, 그를 둘러싼 아이들의 온기가 이토록 따뜻한데,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음.



베니칸 칼어빵본즈 본즈칸 칸텀 존해리슨텀 베니텀

* 하이센 박사는 칸 코믹스판에 나오는 인물임. 와킨은 토스에 나오는 칸의 강화인간 부하 이름.

* 강화인간 애들이 일반인보다 성장이 훨씬 빠르다는 건 라이센스 소설판에 나오는 설정임. 그 설정에 따르면 강화인간 아이는 10세의 나이에 이미 외관상 15세로 보인다고.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인외는 인외인가봄.


어나더 https://hygall.com/593236305
2024.05.05 03: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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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하고 벌써부터 다음편이 기대된다 센세!!!
진짜 스크롤이 아까워서 눈물 날 것 같음 하
강화인간 크루들이 항상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어릴 때 아이만의 행복을 알려주는 건 생각 못 해봤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너무 따스하고 다들 귀엽고 정말 사랑스럽다
명령을 빙자해서 핫밀크초코 먹이고 칸 재우는 것도 너무 간질거리는 부분임! 돌아간 칸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크루들에게 발개진 얼굴로 말해주는 걸 생각하면 나붕까지 행복해지고...다음 편 나올 때까지 매일 이거 핥으면서 지낼거임 빨리 다음 편 줘 센세...영원히 함께야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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