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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이 떠난지 일주일정도가 흘렀어.
저택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지. 주인이 없으니 귀족에게 차려줄 식사준비나 파티 준비는 덜하니까.
그래서인지 너붕은 묘하게 공허한 느낌이 들었음.
그런데 이런 대저택에 고용된 하녀가 공허하다는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거였음. 이런 안이한 생각이 든다는 건 일을 안해서라는 거겠지.



그래, 일을 해야겠다.



너붕은 당장 아가사에게 달려가 있는 일 없는 일 잔뜩 모아서 왕창 얻어왔어.
빨래 삶기, 빨기, 널기, 빗자루질, 접시 닦기, 카펫 청소하기 전부 다 너붕이 하겠다고 나섰지.
그리고 키보다 더 높게 쌓인 빨랫감을 들고 가다 티모시와 마주쳤음.



-...안녕, 티모시.
-...이건 또 뭐야.
-빨래.
-......









-겨울나기도 귀찮은데 결혼식도 같이 준비해야 된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




티모시의 투덜거림이 약 10분간 너붕의 옆에서 이어졌음.
그러나 너붕은 왜 이 시기에 대공이 결혼준비에 나섰는지 이해하고 있었어.
그리고 근질거리던 입을 겨우 열었음.




-계절 때문이겠지. 꽃이 만발할 때를 맞춰 식을 올리면 예쁘잖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대공은 봄보단 여름을 더 좋아해.




아마 상대가 망할 봄을 고집했을 거야. 라며 티모시는 계속 구시렁대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음.
몰락 귀족이라 사용인들의 고충이야 내 알 바 아닌 것으로 취급할 줄 알았는데.
티모시의 말은 전부 하인들의 입장을 제법 생각하고 하는 말이었음.
의외지. 말투나 행동거지는 아직 고귀해보이는 티모시인데.
너붕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티모시는 너붕의 빨랫감을 일부 나눠들어주고 있었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티모시는 아랑곳않고 너붕의 일을 도와줬음.
확실히 무거운 빨래가 확 줄어 고맙긴하지만 저렇게 일이 많다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 티모시도 이렇게 너붕의 일만 도와주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복도의 코너를 돌자 다른 하녀애들 둘이 이쪽을 향해 오는 소리가 들렸어.
너붕은 괜히 트집잡히고 싶지 않아 얼른 티모시에게로 몸을 돌렸음.




-여기까지 들어줬으면 됐어. 너도 이만 가봐, 일이 많다며.
-그 허약한 팔 치워. 어차피 이쪽 방향으로 가야되니까.



꿋꿋하게 제 고집을 피우는 티모시를 더는 말릴 수 없었음.
본인이 그렇다니...
너붕은 티모시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 쉬며 멀찍이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어.
아니나 다를까 멀리있든 아니든 하녀애들은 너붕을 견제하는 눈으로 다가왔지.
그러나 바로 옆에서 걷고 있는 게 티모시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악의 담긴 시선은 빠르게 거둬졌음.



-안녕, 티모시...!
-안녕.



티모시는 자신을 사모하는 눈빛들에게 차갑기 그지없이 인사했음.




-좀 비켜줄래. 바빠서.
-아, 응...



좀 과하게 싸늘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라 너붕이 오히려 민망해질 정도였지.
티모시는 하녀애들을 성큼 지나치곤 안 따라오고 뭐하냐는 듯 너붕에게 시선을 뒀음.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지만 너붕은 뒤통수가 따끔거렸어.



-...네 호의 덕에 난 오늘 밤길을 조심해야겠는걸.
-뭐? 저 애들이 네게만 특별대우하는 거란 착각을 관둬야지. 그간 내가 도운 여자애들만 몇명인데.
-...그래서 너도 엘자가 나간 뒤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잖아.



난 왜 도와주는 거야? 너붕이 결국 덧붙이자 티모시가 우뚝 섰어.
그러다 그는 뒤돌아 서서 산더미같은 빨래를 너붕 위에 턱 얹었음.



-다 왔으니 이제 네가 들어. 이러면 됐지?



너붕은 어쩐지 뿔난듯 얼굴이 붉어진채 돌아가는 티모시를 보고 황당해졌음.
이쪽에 볼 일이 있다더니 왜 돌아가는 거야. 화는 왜 내고.
하여간 티모시는 아직 귀공자같다는 면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애인건 확실했음.







다음 날 역시 싱숭생숭한 마음에 꼭두새벽부터 너붕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일거리들을 찾았어.
여전히 저택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너붕의 마음도 어딘가 붕 떠서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며 일에만 몰두하려 할 때였지.




-안녕.
-......




일하느라 모여있는 하녀 애들에게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음.
심지어 하나 둘씩 어색하게 자리를 뜨더니 결국 너붕밖에 남지 않았지.
흠.
밤길 몇 번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어제 티모시가 너붕을 도와준 여파가 생각보다 많이 컸던 모양이지.
그거 외엔 인사를 씹을 정도로 잘못한 건 없다는 생각에 너붕은 어색한 분위기를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
한동안은 꽤 불편한 공기가 이어지더라도 너붕이 티모시와 거리를 두고 관심 없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분명 그러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허니, 잠깐 나 좀 보자꾸나.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너붕을 부른 아가사가 시작이 되었음.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조용히 따로 방으로 부르는 걸 보고 너붕은 그때까지만 해도 티모시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장난스러운 훈계만 들을 줄 알았지.




-허스터 저택에서 사람이 왔더구나. 널 찾고 있다고.



아가사의 말에 너붕은 정신이 멍해졌음.
아, 허스터.
그 이름을 이렇게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어.
너붕이 다시는 귀족의 사랑이라는 말따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허스터 남작 가문말이지.
이곳에 오기 바로 전직장의 이름에 너붕은 올 것이 왔구나 각오했어.
분명 그쪽에서 너붕에 관한 추문을 들이밀었을 테지.
너붕은 차분해지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어.




-아가사, 대공께서 나가라고 하시면 바로 나갈게요. 다음 봉급도 안 받아도 돼요.
-뭐?
-분명 제가 허스터 남작님을 홀려 재산을 다 뜯어내려 했다는 걸 얘기하러 온 걸 거예요.




이런.
최대한 떨지 않고 말하려 했는데 너붕의 입술이 어느새 파르르 떨리고 있었어.



-안 믿으시겠지만, 전 허스터 남작님이 절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 제 착각이었고 어느샌가 저는 허스터 가문의 주제도 모르는 하녀가 되어있었죠. 그러니까 절 쓰지 말라고 보낸 걸 거예요. 틀림없이... 그러니 대공께서 제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허니, 잠깐만, 그만.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아가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떠는 너붕의 팔을 붙들었음.
그제야 너붕은 자신이 온몸을 떨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
아가사는 너붕의 파랗게 질린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놀란 듯했어.



-일단 진정하렴. 허스터가에서 온 하인은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더라.



아가사의 말에 너붕은 고개를 들었어.
왜소한 하인이 찾아왔는데, 대화를 요청했다고 했어.
그제야 너붕의 머릿속에서 짚이는 한 사람이 있었지.
전직장에서 만들어진 루머 속에서 그나마 의지되는 하인이었음.
너붕은 아가사의 권유에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 하인을 만나러 밖을 나섰지.


그 후 너붕은 무슨 정신으로 다시 저택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누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어.
오랜만에 만난 그 하인은 여전히 너붕을 보고 볼을 붉혔고,
자신은 이제 허스터가를 나와서 다른 저택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음.
넌지시... 그 저택도 나쁘지 않다고 권유하면서.
하지만 너붕은 정중히 거절했어.
그 하인을 보면 흑역사가 떠올랐으니까.
감히, 언감생심, 그 귀공자께서 너붕을 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때.
반지 하나조차 받은 적 없는데 순진하게도 귀족이 말하는 사랑을 믿었던 그때.
그간 했던 말은 다 거짓이었냐 따지자 너붕을 재산을 탐하는 하녀로 몰아갔던 그때.



잊어버리자.



너붕은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음.
이럴 때는 그냥 자고, 아침을 맞이하는 게 최선이었음.
아가사는 그 후 따로 언질을 주진 않았어.
그 하인에게 대략의 일을 들은 모양인지 너붕에겐 꼬치꼬치 묻지 않았어.
너붕은 그래서 그냥 일이 흘러가는 대로 두기로 했어.
하녀애들의 눈초리를 피해서 적당히.
원래 그랬던 것처럼.
대공이 돌아와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그런 말이 없으면 그냥 있기로.
그리고 너붕은 한 달을 더 대공저에서 아무 일 없이 지냈어.
이젠 초겨울도 아니라 본격적인 겨울나기에 저택의 불을 땔 나무 관리가 최우선이었지.
저택의 주인이 언제든 돌아와도 문제없이 훈훈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티모시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꽤 신경도 쓰면서.
저택이 넓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마주치지 않을 루트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겨울이라 바깥으로 피하기 어렵단 건 단점이었지만.
그래도 꽤 잘 지내고 있었지.




-야.




...잘 지내고 있던 게 아니었나?
목소리를 낮게 깔고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티모시를 보면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했어.
닦던 접시를 조심스럽게 위쪽 찬장에 끼워넣은 너붕은 작은 의자를 밟고 바닥으로 내려왔음.




-무슨 일이야?
-하, 무슨 일이냐고? 한 달 동안이나 날 피해서 숨어다닌 네가 할 말이야?
-안 숨어다녔어.
-그럼 피한 건 인정하는 거네?
-...솔직히 넌 너무 인기가 많아서 곤란해.




너붕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음.
널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날 죽이려 든다고. 진심으로.
누군가 너와 이어지려 한다면 그만큼 하녀애들에게 납득 가는 수준이어야 할 거라고.
하지만 티모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었음.




-그게 날 피한 이유라고?
-응. 좀 비켜줄래? 접시를 마저 닦아야 해.
-허니, 넌 정말...




충분히 논리적으로 말한 것 같았는데 티모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음.
그는 아직도 잔뜩 화가난 듯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너붕을 노려봤지.



-그럼 날 평생 피할 거야?
-평생은 힘들고, 지금 이렇게 마주쳤으니 또 내가 루트를 잘못 짜면 또 마주칠지도 모르지.
-......




티모시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어.
너붕 생각에도 이건 좀 심하긴 했지.
싸늘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먼저 말을 꺼낸 건 너붕이었음.




-미안, 티모시. 네가 싫어서 피한 건 아니...
-난 네가 보고 싶었어.




뜻밖의 말에 너붕은 할 말을 잃었음.




-뭐?




하지만 티모시도 그 말 이후로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지.
아니,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 것 같았어.
제 입을 틀어막고 티모시는 달아오른 장작같이 붉어진 얼굴로 서 있었음.

이거 설마... 아냐, 안 돼.

너붕은 티모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어.
너붕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내색을 보이기를 바라는 찰나의 기대감을 엿봤지.
물론 너붕도 보고싶었다는 티모시의 말에 심장이 뛰었어.
저 얼굴로 말하는데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지.
너붕은 티모시의 기대에 부응해줄 수 없었음.
티모시는 너붕에게 과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지만, 이전에 너붕은 너무 큰 상처를 입었으니까.
귀족, 혹은 귀족같은 남자는 다신 좋아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었고.
그래서 너붕은 고개를 떨궜어.




-미안해. 난 가볼게.



나는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동료로만 남았으면 좋겠어.
마음 속으로만 중얼거린 너붕은 자리를 떴어.
아니, 자리를 뜨려고 했어.
티모시가 너붕의 소매자락을 붙들지만 않았더라면.




-나랑 같이 나가.
-뭐?
-그렇게 눈치가 보이면,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면 되잖아.
-난...




놀란 너붕이 뭐라 답할 새도 없었어.
너붕은 대답 대신 티모시의 뒤로 다가온 기척에 시선을 향했어.




-이런.




그 기척의 주인은 이런 허드렛일하는 곳에 발 들일 일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음.




-내가 방해한 건가?




윌리엄.














매튜좋은너붕붕

2024.06.01 23: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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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돌아왔구나
[Code: dd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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