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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21:38

캐붕ㅈㅇ..

 

 

 

 

 

상대의 약한 틈을 탄다는 것은 전술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지만, 사실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은 아니었다. 이제껏 그가 사귀어 온 경위를 보건대 그 주는 대부분 상대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것 참, 질리지도 않고…….  거절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여 상대만 바뀌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이제는 농구부 내에서도 그의 연애는 공공연한 화제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화제를 넘어서…… 이번에는 얼마나 갈까라든가, 과연 백일은 넘기겠냐든가, 하는 소소한 내기거리로도 통하고 있어 덕분에 나도 한몫 쏠쏠히 챙기기는 했다.

 

외견상으로야 지나가면서도 뒤돌아 보게 만드는 굿룩킹 비주얼임에 분명했으나 길게 보아도 석 달을 가지 못하는 연애 편력은 실상, 그가 희대의 플레이보이가 아니라는 데에 안타까움을 낳게 했다. 이른바, 좋은 남편감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모범적인 사례라고나 할까…….

 

사람은 좋다는 것에 이견은 없는데 말이지.

 

그 ‘사람은 좋음’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이렇게 특정 어느 시에 발생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당연히 사귀는 상대에게만 해당되어야 하는 것이거늘. 타의라고는 하나 만인의 연인이나 다름없는 행동이 계속된다거나, 연락은 자기부터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거나, 각종 기념일 챙기기라는 기본적인 연애 상식은 탑재되어 있기는 한 걸까……. 기타 의심이 가게 하는 그의 연애 현장은 딱히 보려고 해서 보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흥미롭게 지켜보던 나조차 ‘저런, 저래서,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들게도 했다.
 

달리 주는 것 없이 그렇게 태풍의 눈처럼 남의 이목을 한몸에 끌어당기는 것은……. 그러고 보면, 플레이보이 속성이 아예 없다고도 볼 수 없겠구만.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든, 주위를 잡아끄는 매력이란 본래부터 타고나는 것이니. 그것은 하늘이 그에게 내린 축복일까 아니면 시련……. 뭐, 어느 쪽이든 타인이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다만 그런 천부의 마성에도 한계는 없지 않아 오직 그것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잘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마음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닌지라 개개인의 관계가 건강하고 오래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좋아야 하는 것 이외에도 일련의 복합적인 조건이 필요했다. 그 조건이라는 것도 저마다 다르기에 아무렴 맞추기 힘들다고는 해도 어떤 관계에서보다 연애라는 것은 본인들의 구체적인 노력을 더욱 더 필요로 하는 영역이었다.

 

무릇,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고.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그랬던가. 그럼에도 그 모든 카드를 쥐고 있다고 해서 꼭 백 퍼센트 잘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이 얼마나 까다롭고도 손이 가는 녀석인가 싶어, 난 일찌감치 손을 떼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내가 가서 그의 손을 붙들고 코칭을 해줄 수도 없고, 사적으로 크게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라, 완전한 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한발 떨어진 거리에서 대충 팝콘 한 봉지를 들고 흥행이 보증된 스크린 앞에 선 관객 1처럼 관전하듯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역시 잘난 듯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미숙이니 어쩌니 했어도 결국 똑같이 차여 버린 내가 뭐라고, 그에게 따로 훈수를 둘 수 있었을까.

 

그러는 와중에, 가장 최근의 상대와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안정적인 만남이 계속되어 다들 의외라고 술렁이던 것도 잠시, 한 반년 정도 지나자 그때는 장안의 화제였던 그에 관한 관심도 수그러들어서……. 아, 그런가. 그럼 하는 수 없지— 라고 은밀한 마음을 단념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랐을 때쯤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의 태도는 이제까지와 조금 다른 것이었음에도. 다만, 봄의 변수만은 그에게 불운이었다.
 

이거야, 원. 잘도 ‘그런’ 장면을 마주치게 된다는 말이지, 나.

 

옛날부터 굳이 별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는 광경을 보게 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교감의 불륜 현장이라든지 코치의 숨겨진 아들과의 상봉 장면이라든지 하는 —남들이 알면 뜨악 할만한— 엮여도 곤란해질 것이 뻔한 민감한 문제는 그래도 내가 얌전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크게 번질 것이 없었다.

 

교내 몇 대 미인이라 불리며 길거리 인터뷰도 곧잘 당하는 나름 유명인에 속하던 그의 전 여친이 누군가에게 붙들려 고백받던 순간을 목격하게 된 것도, 그 근래 들어 생긴 일이었다. 그에게 그런 자각이 있었을까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선남선녀 커플이라고 교내에서 소문이 자자하기는 했어도 그렇게 꽤 괜찮은 골키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꽤 괜찮은 그녀에게 대시가 끊이지 않았음은 대강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인성마저 훌륭한 편에 속했기에, 약간의 아쉬움과 고배를 홀로 삼키며 드디어 체념할 때인가 하던 참이었는데……. 여타 계기들과 합쳐져서 계절이 어지럽게 완성해 놓은 변주는 자신에게 뜻밖의 기회를 안겨 주기도 한 모양이라고, 그렇다면…… 무언가 떠오른 순간에는 입으로 꺼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런. 과연 인생에 백 프로란 없다니까—. 그래서 살아 볼 묘미가 생긴다는 말씀.

 

피식, 작게 실소가 터져 나올 법도 했다. 절레절레 고개도 함께 저어져서 그의 실연을 고백의 기회로 삼은 것은 다소 발칙한 발상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동안,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보기에도 훤칠한 실루엣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까, 그리 급히 포획해 놓아야 했다고. 저런 근사한 표적은 또 누군가에게 먼저 가로채이기 전에…….

 

어느새 내가 있는 근처까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자태는 모델 저리 가라 할 만큼 시각적으로 수려함을 뽐내고 있어서, 좀 더 감상하고 싶은 마음과 괜히 이유 모를 심통이 동시에 나도록 했다.

 

 아아, 저리도 눈에 띄어 버리니…… 내 심미안이 절로 반응해버리는 것은 언제쯤이면 잠잠해지려나. 하루 이틀 보아 온 것도 아닌데.

 

비록 자신의 실연을 이미 두 해쯤 지나 버려서 다시 언급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두 사람 사이에 사적인 대화는 그다지 없었다고 하기에…… 나는 그에 대해서 아마 그 자신보다도 더욱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기가 차는 노릇이었다.

 

 

*      *      *

 

 

갓 입학했을 적에 어쩌다 사귀게 된 상대와는 이미 그 해를 못 가고 헤어졌다. 고백은 나 역시 받은 쪽이었고 사귄 기간도 그보다는 오래간 편이었지만, 자신의 상대 또한 나쁘지 않은 연상이었음에도 어쩔 수 없는 극명한 텐션의 차이를 못 견뎌했다. 그래서 결별의 이유가 그리 납득이 가지 않은 것도 아니었건만. 결국, 네 사람이 모두 다 괜찮은 사람을 상대로 두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들이었음에도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원인이야 간단했다. 그 흔한 이별의 사유인즉슨, 더는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없는 성격상의 상이, 혹은 차이.

 

그리고 내 경우에는 그보다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마 내가 더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러지 말자고 한마디라도 덧붙였더라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거라고 뇌내에서 이미 추론을 마친 이성이 시끄럽게도 떠드는 것을 보면 틀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한 것이,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이 서로에게는 더 유감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헤어지기 전에는 나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해주었다.

 

‘후카츠군은 좋은 사람이니까,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분명 헤어질 일은 없을 거야. 나 이런 쪽으로는 꽤 감이 좋거든. 그럼, 잘 지내.’ 마지막으로 긴 속눈썹을 날리며 윙크를 하고 레드색 고급 스포츠카를 부웅 끌고 가는 마지막 얼굴은 좀 멋있었다. 미인이기도 했고, 그 순간까지 묵묵한 연하 애인을 상대로 덕담까지 잊지 않던 성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너무 빨리 많이 아는 것은 결국 머릿속으로 그만큼의 경우의 수를 처리할 수 있게 되어서, 남들보다는 어느 정도 미래의 일을 먼저 알 수 있게 되기는 했다. 이를테면 아, 조금 있으면 마지막 순간이 오겠구나— 하는 이별의 예감을.

 

지레, 홀로 져버리고 말아야 하는 순간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딱히 모르고 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확인당했을 때에는 심장이 왜 그렇게 반응한 것인지.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개화하고는 비바람에 다 떨어져 내려서 황량하던 가지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에 서두르던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그때까지 그것이 딱히 외롭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외부로부터 보이는 모습은, 그의 눈으로 본 나는 그랬던 걸까.

 

단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라면 미련 없이 손에서 놔버리기도 잘하는 쿨한 편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흐음. 혹시 나, 스스로에게 둔한 편이었나. 감각과는 달리 감정의 역치는 분명 높은 편이기는 했어도, 이성적이라든가 냉철하다고는 많이 들어 봤지만…….

 

햇살도 좋고, 풍경 좋기로 유명한 교정 벤치에 앉아서 끄응 하고 한쪽 팔로 다른 쪽 팔꿈치를 지탱하고 턱받침을 한 미간이 어김없이 찌푸려졌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은 싫어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답이 없는 문제라면 시간을 들이고도 결과물이 영 시원치 않을 때가 많아 그리 썩,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뭐, 지금은 적당히 새잎이 돋아나서 보기 좋아졌고 내년이 되면 다시 필 텐데도, 나중에 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들과 비교했을 때는 왠지 그날 생각이 나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쯧쯧, 무엇이 급해서 그리 먼저 피어 버렸을꼬. 남들 보조에 맞추어 함께 피었더라면 더 보기 좋았을 텐데, 너만 그러고 있기 조금 쓸쓸하지 않았어. 누군가에게는 아련하게 보이던 모양이야…….

 

하아………. 이런 실없는 생각도 늘었나 보다. 이렇게 궁상맞은 카즈나리라니. 이것이야말로 캐릭 대붕괴라고, 미간에는 힘이 더 잔뜩 들어가고 말았다. 어차피 세상이란 보통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 적당히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리더니 캡틴이니 하는 자리에 서게 되고. 모든 것은 그렇게 수많은, 만물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리고 맞물려서 돌아가는 우주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일 터였다.

 

특출난 것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남들과 같다 같지 않다든가 하는 평가에도 그것이 무슨 크게 대수로운 일인가 싶었을 뿐. 그런데도 이런 당치않은 소요감은 그의 탓, 아니면 역시 계절의……. 그에게 나로 하면 좋을 것이라고 한 말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리하여 앞으로의 나는, 내 심장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다소 재고가 필요해 보였다.

 

“어이,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수업 끝나고 서점 같이 가주기로 했잖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후카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제야 입꼬리가 슬며시 들리며 살짝 감고 있던 눈이 떠졌다.

 

그래야지. 그렇게 의아한 듯, 어딘가 걱정스러운 듯 내 이름은 부드럽게 불러주지 않으면…….

 

“……새로운,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뿅.”

 

“뭐, 새로운, 너?”

 

“…….”

 

“…….”

 

팔짱을 낀 팔을 풀지 않은 채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자 한껏 궁금함을 담아 쳐다봐 오는 표정도 어느 것 하나 양보할 수는 없는 것. 이 진솔한 시선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방도란, 그래서……

 

“……미츠이, 시끄럽다뿅.”

 

“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이건 또 무슨 맹랑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보기 좋던 표정이 금방 구겨지시기는.

 

분명, 머릿속은 '이 녀석, 또 왜 이러지…….' 하면서 말풍선이 크게 부풀도록 생각의 전개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깐 말야.

 

이렇게 그의 속을 흔들어 놓으면 혹시나 질릴 틈도, 마음을 놓을 틈도, 없게 되진 않으려나……. 작은 바람으로 또한, 짓궂은 의구심으로. 자꾸만 놀리고 싶은 마음이 그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응, 미츠이.

성격이 그리 나쁜 편도 아니었는데. 평소 지나가는 말에도 일일이 반응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순간의 부추김에 지고 마는 것은 꼭 내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싫어졌어?”

 

“설마, 그런 걸로 싫어질 리가 없잖아.”

 

슬슬 놀리는 건 여기까지로 하고 다시 그의 눈을 올려다보며 자못 진지해진 표정으로 묻자, 피식하고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그도 원래의 얼굴로 답해 온다.

 

하지만, 싫어져도…… 그대로 그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것은 순간,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오래 간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명헌대만 후카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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