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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5 04:07



전편 :https://hygall.com/611842515
(AU 다중우주 소재. 시즌 7이후 시점)



제이크의 생일로부터 사흘 뒤, 에이미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제이크는 파란 경찰 제복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에이미의 얼굴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오뉴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에이미의 머리 위를 흰 빛으로 물들였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투명한 왕관과 빛으로 수놓은 베일처럼. 그림자 사이를 훑으며 스며든 온기가 에이미의 머리를 엷게 감싸고 있었다. 혹여 상처를 틀어 막으며 지원을 요청하던 그 날의 기억은 전부 기분 나쁜 악몽이 아닐까. 제이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깨끗한 두 손과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 반지가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다. 제이크는 반지 낀 손을 뻗어 에이미의 손을 붙잡았다. '이토록 허무할 리가 없어. 이게 꿈이라면 당장 깨어나고 싶어.' 제이크의 눈에는 에이미가 어서 자신에게 걸린 죽음이라는 저주를 풀어달라고 부탁하는 듯이 보였다.

"너도 이 꿈에서 깨고 싶잖아."

제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대며 에이미의 창백한 손에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 결혼식 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미소 짓던 에이미의 모습이 꿈처럼 무너지고, 공허한 상상 속에서 흩어진 천자락이 안개가 되어 눈 앞을 부옇게 가렸다. 제이크는 에이미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제발, 이 꿈을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 줄 유일한 사람은 너 뿐이야..." 제이크가 간절하게 부탁해 보았지만 에이미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생에서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온화한 미소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사랑해'라는 말을 밖으로 내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북받쳐올랐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네 죽음을 바꿀 수 있을까.

"나 혼자 성과를 독차지하게 두지 않을 거라며. 끝까지 나를 이길 거라고 했었잖아."

제이크는 애써 울지 않으려 입꼬리를 당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럴 수록 굵은 눈물이 더 빠르게 내려와 두 뺨을 적셨다. "미안해, 이렇게 슬픈 얼굴로 보내주고 싶었던 게 아닌데." 제이크는 급하게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숨을 내쉴 때 마다 목이 메여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반지 위로 떨어진 눈물은 하얀 빛을 끌고 그림자 아래로 미끄러졌다. 영원한 서약은 어느새 엄숙한 추도사로 변하고, 첫 데이트의 들뜨던 기분도, 키스할 때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던 애틋한 기억도 전부 제이크에겐 고통스러운 추념이 되어버렸다. 멀지 않은 묘지에 관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삽을 퍼내며 제이크는 남아있던 한 줌의 기대마저 함께 묻어버렸다.

하관식이 끝난 뒤, 멍하니 앉아있는 제이크 옆으로 동료들이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찰스는 에이미와 만들었던 푸드 트럭 이야기를 꺼내다 결국 에이미한테 마지막까지 부담감을 얹어준 거 같다며 퉁퉁 부은 눈으로 눈물을 흘렸고, 로사는 에이미가 얼마나 눈물나게 믿음직 하고 착한 사람이었는지, 테리는 에이미가 얼마나 꼼꼼하면서 다정한 동료였는지를 추억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지나는 에이미처럼 재밌는 술 친구는 없다며, 애써 울지 않으려 웃긴 얘기를 꺼냈다가 눈물샘에서 나오는 땀을 말려야 한다며 손부채질을 해댔다. 마지막으로 에이미가 경찰서에서 가장 존경했던 홀트는 제이크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지만 자네가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겠지. 하지만 살아있는 한 최대한 견뎌봐야지 않겠나."

그런데 제이크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맙다 말하려는 순간, 에이미의 아버지인 빅터가 동료들을 손으로 헤치고 제이크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홀트는 눈이 벌겋게 충혈 된 빅터가 자신을 밀어내자 조금 당혹스러워 했지만 차마 자식 잃은 아버지를 이런 일로 비난하고 싶지 않아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빅터가 사위인 제이크에게 추도식 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려고 급하게 다가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빅터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냅다 제이크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질렀다.

"이 개자식, 내 딸이 죽은 건 전부 네가 무능해서야! 이래서 애비 없이 자란 놈은...!"

빅터가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얼굴을 바짝 붙였지만 제이크는 면전에 대고 날아든 모욕에 반발하긴 커녕 무력하게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형사들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며 당혹스러운 눈초리로 빅터를 흘겨보았다. 제이크는 쉬어버린 목을 힘겹게 짜내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도 에이미를 지키려 했는데..." 그러나 빅터는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주먹을 제이크의 얼굴로 날렸고, 제이크가 휘청이자 깜짝 놀란 홀트와 다른 형사들이 빅터와 제이크를 떨어트려 놓았다.

"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폭행은 범죄라고요. 제발, 그만해요. 이 자리에서 체포되고 싶으신 거 아니잖아요?" 테리가 다급히 빅터의 주먹을 붙잡아 내리며 막아섰다. 하지만 빅터는 여전히 분노가 풀리지 않았는지 스페인어로 온갖 비난을 해댔다.

"내가 알아들은 거라고는 아디오스 뿐이지만 적어도 쌍욕을 한다는 건 알겠어." 스페인어를 모르는 히치콕과 스컬리마저 빅터의 거센 억양에 놀라 주변 눈치를 볼 정도였다. 듣다 못한 로사가 제이크의 귀를 대신 막아주었고, 빅터는 자식들 손에 끌려가다시피 하면서도 끝까지 삿대짓을 멈추지 않았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간 후에도 어색해진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제이크는 부은 턱을 감싸쥐며 "원래 좋은 분이신데, 에이미를 잃어서 속상한 마음에 저러신 거야."라며 괜찮은 척 했으나 빅터가 사위인 제이크를 무시하던 장면은 동료들에게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날이 맑고 햇볕이 내리쬐도 장례식장 분위기 까지 화기애애하게 바꿔줄 순 없는 걸까. 엉망진창인 상황에도 제이크는 애써 웃으며 자신의 식사를 챙겨주는 이들에게 일일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혹시 이전에 제이크한테 비슷한 얘기 들었던 적 있어?" 식탁 구석에 앉은 테리는 주변을 살피더니 찰스에게 조심스레 귓속말로 물었다. 하지만 제이크의 거의 모든 결혼 과정을 지켜 본 찰스도 전혀 몰랐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등 뒤를 살펴보더니 테리에게 어깨를 바짝 붙이고 속닥거렸다. "그랬으면 이 지경 되게 놔뒀겠어요? 식사 자리에서 몰래 스페인어로 꼽 주는 정도라고만 알았지, 에이미네 가족하고 사이가 이정도인 줄은 몰랐죠." 테리와 찰스가 속닥대는 사이, 제이크는 캐서롤을 몇 입 먹지도 않고 깨작대더니 와인만 계속 퍼마실 뿐이었다.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마지막 순서로 위로의 편지와 말을 건넸지만 정작 제이크의 정신을 위로하는 건 술이었다. 오늘따라 캐서롤의 포근한 질감이 모래알처럼 꺼끌거렸다.

결국 피가 씻겨진 자리에는 단절과 눈물만이 남았다. 장례식 이후, 제이크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찰스는 매일 다른 요리를 들고 제이크를 찾아가 짧게라도 얼굴을 보려 애썼고, 로사와 테리는 제이크의 업무를 나눠 가져갔다. 홀트는 제이크의 정신적 고통을 감안해 병가로 요양 중인 것 처럼 유급 휴가를 주면서 제이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


그리고 마침내 두 달이 지나서야 제이크는 핼슥해진 얼굴을 후드로 가린 채 99 관할서에 불쑥 찾아왔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제이크를 보았다. 심지어 홀트는 하던 일도 제쳐두고 서장실 문을 열었다. 아마 제이크도 그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짠! 이거 예상한 사람 아무도 없죠? 어어, 홀트 서장님은 미리 알았으니까 손들지 마시고요." 하지만 제이크는 으레 하던 것 처럼 실 없는 소리를 해대며 울타리 문을 열었다. 제이크의 갑작스런 등장에 엘리베이터 앞 자리에 앉아있던 스컬리와 히치콕이 놀란 눈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아직 살아있었어?" 스컬리가 묻자 제이크는 "제가 왜 죽어요."라며 퀭한 눈을 애써 피했다. 하지만 히치콕은 스컬리의 신경통 약을 꺼내 제이크에게 건넸다. "이게 진통제 중에서도 엄청 센 놈이거든. 분명 마음에 들 거야. 스컬리가 싸게 구하는 법도 알고 있대." 스컬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크는 작게 미간을 구겼다. "형사가 형사한테 약을 팔다니. 대체 뭔 생각이에요?" 제이크가 투덜대며 자리로 가자 찰스가 커피를 컵에 따라 제이크 앞에 놓아주었다. "여기서 얼굴보니 진짜 반갑기는 한데, 갑자기 일해도 괜찮겠어?" 찰스의 걱정에도 제이크는 씩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일 안하고 숨만 쉬는 게 더 힘들더라. 안 그래도 두 달 동안 카페인 금단 증상 와서 죽는 줄 알았어." 그러자 스컬리가 의자를 돌려 제이크 쪽으로 약병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이크 대신 찰스가 스컬리를 단호하게 쳐냈다.

"아, 좀! 그건 안 한다니까요!"

스컬리가 아쉬워하며 등을 돌리자 제이크는 찰스와 둘 만의 하이파이브를 주고 받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 주변 눈치를 힐끔 보던 찰스가 슬쩍 귓속말했지만 제이크는 됐다며 찰스를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로사가 프린터를 때리지 않고 얌전히 사용하고, 테리가 자신의 가장 아끼는 요거트를 제이크에게 나눠준 것 빼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제이크는 그간 별 일 없던 사람처럼 커피를 마시고 엉망진창인 서랍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틀 간의 서랍 정리를 끝낸 제이크는 이후 틈만 나면 증거 보관실로 가서 짧게는 몇 분씩, 길게는 몇 십분씩 시간을 보내다 왔다. 에이미에게 청혼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제이크는 홀로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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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제이크는 에이미 아버지인 빅터랑 사이가 그닥 안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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