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2339518
view 1273
2024.11.25 01:14
존나 맛있어.
사실 밥도 행맨을 좋아했을것 같다. 다만 그런 양아치같은 놈에게 끌린다는 걸 부정하고 싶어서 행맨이 플러팅하거나 저를 귀여워할때면 설레는 마음을 뿌리치려고 괜히 더 차갑게 굴었을 뿐임. 그런 엘리트가 그런 얼굴로, 몸으로 부딪혀오면서 저를 좋더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뿌리치냐고. 속수무책으로 행며들수밖에. 그냥 행동이나 반응을 반대로 했을 뿐이야.
탑건 이후로 행맨에 대한 주변의 평판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었어. 앙숙이던 루스터와도 친해졌을정도로 잘 어울려 놀곤 했고 주변 사람들은 행맨이 제법 밥에게 진심인것도 알았음. 그리고 코요테나 피닉스같이 행맨 또는 밥의 측근들이 봤을때 밥도 행맨이 신경쓰인다는게 보였음. 그래서 다같이 술자리라도 할때면 능글맞은 행맨보다 밥을 더 놀렸을거야.
“베이비 밥, 이제 행맨도 좀 쳐다봐줘. 쟤 아까부터 너만 보잖아”
휘파람 소리며 환호소리가 들려왔음. 밥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술에 취한 일행들이 더 짖궂은 말들로 밥을 놀렸음. 행맨이 밥의 표정을 살피다가 다들 적당히 하라며 주제를 돌려봤지만 오늘따라 더 집요하게 놀리곤 하겠지. 쟤 그건 잘할걸. 침대 위에서 유명하잖아? 잠깐, 지금 밥이 아다인지 아닌지부터 물어봐야지!
수위가 올라가자 행맨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만하라고 말렸음. 밥을 놀리거나 플러팅을 즐겨도 행맨은 항상 선은 넘지 않았거든.
밥, 행맨 불쌍하지도 않냐. 한번 대줘라!
이 새끼야, 너 취했어. 그만해.
결국 행맨이 그 대위녀석을 몇대 패주고 나서야 일단락됐어. 밥은 다 질렸다는 듯이 술집을 빠져나왔고 행맨은 입술이 터진 채로 부리나케 그런 밥을 쫓아갔음.
“밥, 잠깐만.”
“너랑 이야기할 기분아니야.”
“미안해. 그냥 나는-“
“니가 뭐가 미안한데.”
뭐가 미안하냐고! 밥이 소리쳤음. 밥도 좀 취했고,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자꾸 커져가는 마음도 무섭고, 더불어서 행맨은 그냥 장난이면 어쩌지. 그냥 나랑 자보려는 거면 어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는 평소 밥이라면 하지않을 모진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겠지.
”넌 진짜 남을 하나도 배려안하지.“
”멋대로 네 감정이나 줄줄 흘리고,“
”그런 게 날 곤란하게 만들거라는 생각은 안하지?“
”하긴 너는 원래 니 자신밖에 모르는 새끼니까.”
“그렇게 나랑 하고 싶으면 해. 뭐, 네 집으로 갈까? 아니면 내 관사?”
행맨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상처입은 표정을 지었지만 밥은 애써 모르는척했음. 진짜 나한테 진심도 아니면서.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봐.”
“관사.”
“뭐..?”
“네 관사, 한 번도 안가봤잖아.”
무표정한 얼굴로 행맨은 밥이 예상치 못한 대답을 늘어놨어. 그렇게 오기와, 오해와, 화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한 밤을 보냈어. 정말로 밥에게는 행맨이 처음이었겠지
그리고 그 날 밤 이후로 행맨이 제게 먼저 헤이, 밥. 하고 인사해오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어. 행맨은 마치 밥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어.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지. 제게 눈길조차 주지않는 행맨을 보면서 서서히 깨달았어. 나 쟤 좋아했구나. 아니, 아직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시도때도없이 찾아오는 우울과 절망에 살다가 일주일째 이어지는 헛구역질에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겠지.
“임신이네요.”
다음엔 파트너와 같이 검진을 오라던 말을 듣던 밥이 몇 번이나 되물었어. 정말, 임신인가요.
저 작은 점이 나와 제이크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충격에 뻐진 밥은 병가를 냈음. 꼬박 일주일 훈련에 빠졌고 여기저기서 수근댔지만 행맨은 관심조차 없는듯했어. 다만 밥의 관사 문 앞에 밥이 좋아하던 가게의 초콜릿케이크 놓여있긴 했어. 입이 짧은 밥이 처음으로 접시를 비웠던 그 케이크를 행맨만 기억하고 있었거든.
밥은 종일 굶고 울다 자다 반복하다가 그 케이크 박스를 보고 또 주저앉아 엉엉 울었음. 그러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결심한듯 일어났어. 왜 나만 이렇게 울고 짜고 힘들어야해.
차키를 챙긴 밥은 시동을 걸자마자 망설임없이 행맨의 집으로 향했어
”나 임신했어.“
좀처럼 울린적 없던 초인종소리에 한 번
문을 열자 나타난 밥의 얼굴에 한 번
대뜸 인사도 없이 한다는 소리에 한 번
총 세 번이나 놀라야 했던 행맨은 한동안 정지화면마냥 우두커니 서있다가 ”나 계속 세워둘거야?!“ 하는 밥의 목소리에 후다닥 밥을 집안으로 들였음. 밥은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티테이블 위에 까맣고 하얀 사진 하나를 올려놓겠지.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자면 그날 니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너랑 한 그날이 유일해.“
”그...러니까 이게,“
내 애란 말이지....
한참동안 그 사진을 노려보는 행맨의 얼굴을 읽기가 어려웠음. 놀란것도, 곤란한것도,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닌 얼굴.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심각했어. 임신한 본인보다 진지한 얼굴에 밥은 사실 이 이상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지 않았어. 행맨의 대답에 대한 대처를 미처 준비못한 채 일단 달려왔거든.
”밥.“
“어..응?”
“네가 무슨 선택을 해도 존중할게. 낳겠다면 모든 지원 다 해줄 수 있어.만약 그 반대라면 수술비라도..”
“낳을거야!“
수술- 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밥은 소름이 돋아 바로 대답해버렸어. 사실 낳을지 말지 조차 결정하지 못했는데 행맨 얼굴을 보니까 모든게 확실해져버린거야.
”그래. 필요한건 모두 말해줘. 도와줄게.“
행맨은 이미 줄줄 울고 있는 밥을 안아 달래었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네가, 정말 내 파트너가 되는걸까. 밥은 제 심장이 세차게 뛰는걸 그제서야 느꼈어. 하지만 반대로 제 심장의 박동만 느껴질 정도로 행맨은 가슴은 매우 침착하다는 것도 알아버렸겠지.
하지만 행맨도 놀라지 않은건 아니었음. 밥이 제 집을 찾아온 것도 놀라웠는데 내 애를 임신했다니. 진짜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벅찼어. 그런데 밥의 얼굴은 눈물투성이에 두려움이 가득해보였어. 어떤 설레임이나 행복은 하나도 없어보였어. 그럴만도 하지, 그날 어떤 호감으로 잔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서 오기로 그렇게 싫어하던 애랑 자고는 애가 생겼는데 밥이 반길리가 없었음.
밥이 애를 지운다고 해도 행맨은 어쩔 도리가 없었을거야. 해줄수 있는건 수술비라도 대주겠다는 말... 그말을 스스로 하면서도 너무 서글펐겠지. 그날밤이후로 밥을 잊겠다고 피해다니고 무시해왔는데 딱히 마음이 사그라든것도 아니고 더 애틋해지기만 했거든. 하지만 걔가 날 이렇게나 싫어하고 불편해하는데 ....싫어하는 짓만이라도 하지말자. 했던 거였음. 살면서 자낮이 뭐야, 누가 자길 싫어한다고 해도 눈하나 깜짝안하던 행맨이 밥의 온기없는 눈빛만으로도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렸어
”병원 가야해.“
”어..어?“
”검진말이야. 파트너랑 오랬어.“
밥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어.
”어어, 그래. 예약은 언제야? 나도 휴가낼게.“
”그렇다고 니가 내 진짜 파트너라는건 아니야!“
앞..으로는 뭐 모르겠지만. 밥은 겨우 그 말을 삼켰어. 행맨은 그냥 어색하게 웃어보였어. 그렇지, 알아. 나도.
그리고 병원에서 진료 기다리는데 밥이 덥썩 행맨 손을 잡는거야. 행맨은 놀라서 소리라도 지를뻔한거 겨우 참았겠지.
”오해하지마. 의사가 우릴 무슨 위장 부부로라도 알면 안되니까. 그러는거야.“
”어어, 알았어.“
밥은 앞에 의자라도 걷어차고 싶었음. 좀 더 그럴싸한 핑계댈걸. 이러다가 쟤가 다 알아버리겠어! 하고 속으로 자책하는데 응 맞아. 밥은 그냥 행맨 손이 잡고 싶었음. 근데 또 행맨은 평소와 다르게 밥이 하는 소리니까 아 진짜 얘가 내가 싫은데 오해사기 싫어서 억지로 잡나 했겠지. 그라서 또 맹하게 손 잡힌채로 진료보고 초음파 보고, 지도 모르게 눈물 흘리다가 밥 모르게 눈물 닦고 다음 예약 잡고 나왔겠지.
”여기 내 관사가는 길 아닌데.“
”알아.“
”....뭐야 여긴?“
”어....베이비 하우스...?“
아맞다 너 그 말 싫어하지. 미안...행맨이 뒷머릴 긁으며 사과했어. 도착한 곳은 기지에서 가까운 2층차리 주택이었어. 그렇게 크진 않지만 꽤나 구색을 갖춘 좋은 집이었거든
“아이가 태어나면...지낼데가 필요하니까. 뭐 아이 방이라든지 그런거..?”
하더니 집 열쇠를 밥 손바닥 위에 내려놓는거야.
“필요한건 뭐든 해준다고 했잖아. 부담갖지마. 이정도는 해야하는게 맞아.”
집에 들어가니 포근하고 아늑한 크림색 인테리어에 제법 신경 쓴 가구들이 보였어. 그리고 2층 계단에 닿자마자 대각선으로 보이는 작은 방엔 아기 침대도 얼핏보였어. 새러신 스케일 답게 뭐아기 용품이나 준비할줄 알았는데 냅다 집이며 가구며 준비해댄 제이크 새러신....
“아직 침대밖에 없어.”
”전부다...니가....“
”별거 없어. 오히려 급하게 마련하느라고 부족한 게 많을거야.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이리로 이사해도 좋고, 관사 계속 쓰고 싶으면 병원 오갈때 주말이나 이럴때 지내도 좋고...내말은 그러니까...“
밥은 진짜 좀 눈물이 날것같았음. 사랑받는다는거 이런건가. 우리 서로를 향한 말은 아직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떨어진 사이마냥 건조한데.
“참, 네 침실은 1층이야. 가볼래?”
그렇게 집을 둘러보다가 행맨이 전화를 받더니 급하게 기지로 가봐야 할거같다는거야
“저, 제이크!”
“어?”
“그, 네 방은 어딨어..? 그러니까 그, 서재같은거라든가..”
침실을 같이 써야하려나...? 아니 뭐 침실을 따로 쓴데도 딱히 아쉽진 않지만....
뭐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 방..? 여긴 밥 네 집이야. 내 집은 따로 있어.”
“어..?“
“내가 같이 살면서 도와주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네가 불편할것같아서.”
밥이 예의상 묻는다고 생각했어. 어쩔수 없이 생긴 아이, 어떤 생각으로 결정한건지는 몰라도 낳겠다니까 정말 해줄 수 있는건 다해주고 싶었음. 근데 그 모든 것들 사이에 내가 있길 바라지 않겠지. 싶었어. 이 집을 급하게 구하고 사람을 써서 공간을 채우면서도 자기 자리는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어. 손님방 조차 없이 꾸민 집은 밥의 침실, 서재, 드레스룸, 그리고 아기방. 이게 전부였어.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내 집 여기서 10분거리니까.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쉬어 밥.
뭐야...이젠 베이비라고 부르지도 않잖아.
행맨은 마치 사이좋은 친구처럼 저를 한 번 안아 다독여주더니 이 큰 집에 밥을 홀로 남겨두고 떠났어.
우리,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거야, 행맨?
행맨밥
사실 밥도 행맨을 좋아했을것 같다. 다만 그런 양아치같은 놈에게 끌린다는 걸 부정하고 싶어서 행맨이 플러팅하거나 저를 귀여워할때면 설레는 마음을 뿌리치려고 괜히 더 차갑게 굴었을 뿐임. 그런 엘리트가 그런 얼굴로, 몸으로 부딪혀오면서 저를 좋더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뿌리치냐고. 속수무책으로 행며들수밖에. 그냥 행동이나 반응을 반대로 했을 뿐이야.
탑건 이후로 행맨에 대한 주변의 평판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었어. 앙숙이던 루스터와도 친해졌을정도로 잘 어울려 놀곤 했고 주변 사람들은 행맨이 제법 밥에게 진심인것도 알았음. 그리고 코요테나 피닉스같이 행맨 또는 밥의 측근들이 봤을때 밥도 행맨이 신경쓰인다는게 보였음. 그래서 다같이 술자리라도 할때면 능글맞은 행맨보다 밥을 더 놀렸을거야.
“베이비 밥, 이제 행맨도 좀 쳐다봐줘. 쟤 아까부터 너만 보잖아”
휘파람 소리며 환호소리가 들려왔음. 밥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술에 취한 일행들이 더 짖궂은 말들로 밥을 놀렸음. 행맨이 밥의 표정을 살피다가 다들 적당히 하라며 주제를 돌려봤지만 오늘따라 더 집요하게 놀리곤 하겠지. 쟤 그건 잘할걸. 침대 위에서 유명하잖아? 잠깐, 지금 밥이 아다인지 아닌지부터 물어봐야지!
수위가 올라가자 행맨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만하라고 말렸음. 밥을 놀리거나 플러팅을 즐겨도 행맨은 항상 선은 넘지 않았거든.
밥, 행맨 불쌍하지도 않냐. 한번 대줘라!
이 새끼야, 너 취했어. 그만해.
결국 행맨이 그 대위녀석을 몇대 패주고 나서야 일단락됐어. 밥은 다 질렸다는 듯이 술집을 빠져나왔고 행맨은 입술이 터진 채로 부리나케 그런 밥을 쫓아갔음.
“밥, 잠깐만.”
“너랑 이야기할 기분아니야.”
“미안해. 그냥 나는-“
“니가 뭐가 미안한데.”
뭐가 미안하냐고! 밥이 소리쳤음. 밥도 좀 취했고,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자꾸 커져가는 마음도 무섭고, 더불어서 행맨은 그냥 장난이면 어쩌지. 그냥 나랑 자보려는 거면 어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는 평소 밥이라면 하지않을 모진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겠지.
”넌 진짜 남을 하나도 배려안하지.“
”멋대로 네 감정이나 줄줄 흘리고,“
”그런 게 날 곤란하게 만들거라는 생각은 안하지?“
”하긴 너는 원래 니 자신밖에 모르는 새끼니까.”
“그렇게 나랑 하고 싶으면 해. 뭐, 네 집으로 갈까? 아니면 내 관사?”
행맨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상처입은 표정을 지었지만 밥은 애써 모르는척했음. 진짜 나한테 진심도 아니면서.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봐.”
“관사.”
“뭐..?”
“네 관사, 한 번도 안가봤잖아.”
무표정한 얼굴로 행맨은 밥이 예상치 못한 대답을 늘어놨어. 그렇게 오기와, 오해와, 화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한 밤을 보냈어. 정말로 밥에게는 행맨이 처음이었겠지
그리고 그 날 밤 이후로 행맨이 제게 먼저 헤이, 밥. 하고 인사해오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어. 행맨은 마치 밥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어.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지. 제게 눈길조차 주지않는 행맨을 보면서 서서히 깨달았어. 나 쟤 좋아했구나. 아니, 아직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시도때도없이 찾아오는 우울과 절망에 살다가 일주일째 이어지는 헛구역질에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겠지.
“임신이네요.”
다음엔 파트너와 같이 검진을 오라던 말을 듣던 밥이 몇 번이나 되물었어. 정말, 임신인가요.
저 작은 점이 나와 제이크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충격에 뻐진 밥은 병가를 냈음. 꼬박 일주일 훈련에 빠졌고 여기저기서 수근댔지만 행맨은 관심조차 없는듯했어. 다만 밥의 관사 문 앞에 밥이 좋아하던 가게의 초콜릿케이크 놓여있긴 했어. 입이 짧은 밥이 처음으로 접시를 비웠던 그 케이크를 행맨만 기억하고 있었거든.
밥은 종일 굶고 울다 자다 반복하다가 그 케이크 박스를 보고 또 주저앉아 엉엉 울었음. 그러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결심한듯 일어났어. 왜 나만 이렇게 울고 짜고 힘들어야해.
차키를 챙긴 밥은 시동을 걸자마자 망설임없이 행맨의 집으로 향했어
”나 임신했어.“
좀처럼 울린적 없던 초인종소리에 한 번
문을 열자 나타난 밥의 얼굴에 한 번
대뜸 인사도 없이 한다는 소리에 한 번
총 세 번이나 놀라야 했던 행맨은 한동안 정지화면마냥 우두커니 서있다가 ”나 계속 세워둘거야?!“ 하는 밥의 목소리에 후다닥 밥을 집안으로 들였음. 밥은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티테이블 위에 까맣고 하얀 사진 하나를 올려놓겠지.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자면 그날 니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너랑 한 그날이 유일해.“
”그...러니까 이게,“
내 애란 말이지....
한참동안 그 사진을 노려보는 행맨의 얼굴을 읽기가 어려웠음. 놀란것도, 곤란한것도,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닌 얼굴.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심각했어. 임신한 본인보다 진지한 얼굴에 밥은 사실 이 이상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지 않았어. 행맨의 대답에 대한 대처를 미처 준비못한 채 일단 달려왔거든.
”밥.“
“어..응?”
“네가 무슨 선택을 해도 존중할게. 낳겠다면 모든 지원 다 해줄 수 있어.만약 그 반대라면 수술비라도..”
“낳을거야!“
수술- 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밥은 소름이 돋아 바로 대답해버렸어. 사실 낳을지 말지 조차 결정하지 못했는데 행맨 얼굴을 보니까 모든게 확실해져버린거야.
”그래. 필요한건 모두 말해줘. 도와줄게.“
행맨은 이미 줄줄 울고 있는 밥을 안아 달래었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네가, 정말 내 파트너가 되는걸까. 밥은 제 심장이 세차게 뛰는걸 그제서야 느꼈어. 하지만 반대로 제 심장의 박동만 느껴질 정도로 행맨은 가슴은 매우 침착하다는 것도 알아버렸겠지.
하지만 행맨도 놀라지 않은건 아니었음. 밥이 제 집을 찾아온 것도 놀라웠는데 내 애를 임신했다니. 진짜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벅찼어. 그런데 밥의 얼굴은 눈물투성이에 두려움이 가득해보였어. 어떤 설레임이나 행복은 하나도 없어보였어. 그럴만도 하지, 그날 어떤 호감으로 잔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서 오기로 그렇게 싫어하던 애랑 자고는 애가 생겼는데 밥이 반길리가 없었음.
밥이 애를 지운다고 해도 행맨은 어쩔 도리가 없었을거야. 해줄수 있는건 수술비라도 대주겠다는 말... 그말을 스스로 하면서도 너무 서글펐겠지. 그날밤이후로 밥을 잊겠다고 피해다니고 무시해왔는데 딱히 마음이 사그라든것도 아니고 더 애틋해지기만 했거든. 하지만 걔가 날 이렇게나 싫어하고 불편해하는데 ....싫어하는 짓만이라도 하지말자. 했던 거였음. 살면서 자낮이 뭐야, 누가 자길 싫어한다고 해도 눈하나 깜짝안하던 행맨이 밥의 온기없는 눈빛만으로도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렸어
”병원 가야해.“
”어..어?“
”검진말이야. 파트너랑 오랬어.“
밥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어.
”어어, 그래. 예약은 언제야? 나도 휴가낼게.“
”그렇다고 니가 내 진짜 파트너라는건 아니야!“
앞..으로는 뭐 모르겠지만. 밥은 겨우 그 말을 삼켰어. 행맨은 그냥 어색하게 웃어보였어. 그렇지, 알아. 나도.
그리고 병원에서 진료 기다리는데 밥이 덥썩 행맨 손을 잡는거야. 행맨은 놀라서 소리라도 지를뻔한거 겨우 참았겠지.
”오해하지마. 의사가 우릴 무슨 위장 부부로라도 알면 안되니까. 그러는거야.“
”어어, 알았어.“
밥은 앞에 의자라도 걷어차고 싶었음. 좀 더 그럴싸한 핑계댈걸. 이러다가 쟤가 다 알아버리겠어! 하고 속으로 자책하는데 응 맞아. 밥은 그냥 행맨 손이 잡고 싶었음. 근데 또 행맨은 평소와 다르게 밥이 하는 소리니까 아 진짜 얘가 내가 싫은데 오해사기 싫어서 억지로 잡나 했겠지. 그라서 또 맹하게 손 잡힌채로 진료보고 초음파 보고, 지도 모르게 눈물 흘리다가 밥 모르게 눈물 닦고 다음 예약 잡고 나왔겠지.
”여기 내 관사가는 길 아닌데.“
”알아.“
”....뭐야 여긴?“
”어....베이비 하우스...?“
아맞다 너 그 말 싫어하지. 미안...행맨이 뒷머릴 긁으며 사과했어. 도착한 곳은 기지에서 가까운 2층차리 주택이었어. 그렇게 크진 않지만 꽤나 구색을 갖춘 좋은 집이었거든
“아이가 태어나면...지낼데가 필요하니까. 뭐 아이 방이라든지 그런거..?”
하더니 집 열쇠를 밥 손바닥 위에 내려놓는거야.
“필요한건 뭐든 해준다고 했잖아. 부담갖지마. 이정도는 해야하는게 맞아.”
집에 들어가니 포근하고 아늑한 크림색 인테리어에 제법 신경 쓴 가구들이 보였어. 그리고 2층 계단에 닿자마자 대각선으로 보이는 작은 방엔 아기 침대도 얼핏보였어. 새러신 스케일 답게 뭐아기 용품이나 준비할줄 알았는데 냅다 집이며 가구며 준비해댄 제이크 새러신....
“아직 침대밖에 없어.”
”전부다...니가....“
”별거 없어. 오히려 급하게 마련하느라고 부족한 게 많을거야.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이리로 이사해도 좋고, 관사 계속 쓰고 싶으면 병원 오갈때 주말이나 이럴때 지내도 좋고...내말은 그러니까...“
밥은 진짜 좀 눈물이 날것같았음. 사랑받는다는거 이런건가. 우리 서로를 향한 말은 아직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떨어진 사이마냥 건조한데.
“참, 네 침실은 1층이야. 가볼래?”
그렇게 집을 둘러보다가 행맨이 전화를 받더니 급하게 기지로 가봐야 할거같다는거야
“저, 제이크!”
“어?”
“그, 네 방은 어딨어..? 그러니까 그, 서재같은거라든가..”
침실을 같이 써야하려나...? 아니 뭐 침실을 따로 쓴데도 딱히 아쉽진 않지만....
뭐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 방..? 여긴 밥 네 집이야. 내 집은 따로 있어.”
“어..?“
“내가 같이 살면서 도와주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네가 불편할것같아서.”
밥이 예의상 묻는다고 생각했어. 어쩔수 없이 생긴 아이, 어떤 생각으로 결정한건지는 몰라도 낳겠다니까 정말 해줄 수 있는건 다해주고 싶었음. 근데 그 모든 것들 사이에 내가 있길 바라지 않겠지. 싶었어. 이 집을 급하게 구하고 사람을 써서 공간을 채우면서도 자기 자리는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어. 손님방 조차 없이 꾸민 집은 밥의 침실, 서재, 드레스룸, 그리고 아기방. 이게 전부였어.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내 집 여기서 10분거리니까.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쉬어 밥.
뭐야...이젠 베이비라고 부르지도 않잖아.
행맨은 마치 사이좋은 친구처럼 저를 한 번 안아 다독여주더니 이 큰 집에 밥을 홀로 남겨두고 떠났어.
우리,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거야, 행맨?
행맨밥
https://hygall.com/612339518
[Code: 1b7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