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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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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포원 기반 종전 이후
알못주의
“괜찮습니다, 오라이온. 이 데이터패드에 서명만 하고 리차징 베드에서 한 숨 푹 자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요새 잔업이 늘어서 힘들어했잖아. 오늘만 조금 쉬어, 응?”
전 오토봇-디셉티콘 간부 총회의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프라울은 수상할 정도로 친절한 태도로 오라이온에게 끝이 안 보이는 길이의 데이터패드를 내밀었다. 애써 순하게 뜬 옵틱과 간신히 유지하는 미소는 평소와의 괴리감 때문에 아주 수상하게 느껴진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 물러날 곳도 없는 오라이온은 의자에 최대한 등을 바짝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용을 검토해보고 서명할지 말지 결정을-”
“젠장, 오라이온, 총회의까지 몇 분도 안 남았다고. 빨리 서명해!”
“으악, 프라울?! 진정해!”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프라울이 오라이온의 팔을 잡고 대리 서명을 주도하려고 하는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재즈가 유유히 걸어들어왔다.
“이런, 내가 뭘 목격한 거지. 오토봇의 기념비적인 첫 쿠데타?”
장난스러운 말투에 프라울은 얼굴을 사납게 구겼다. 오라이온은 평소대로 돌아온 그의 모습에 조용히 안심하며 슬쩍 잡혀있던 팔을 빼냈다.
“협조할 거 아니면 저리 가. 이게 내가 판단한 최선책이니까.”
흠- 재즈는 과장된 액션으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충직한 2인자로서 진심을 담아 오토봇 리더에게 충고했다.
“저라면 서명을 보류하겠어요, 오라이온.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 데이터패드에는 당신이 회의에 불참할 경우 프라울이 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는다는 내용,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호국경에게 상해를 입히는 걸 허용하겠다는 내용,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프라울과 콘적스를 맺겠다는 내용 등 심히 우려되는 조항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오라이온의 옵틱이 가늘어졌다.
“진심이야, 프라울?”
그는 언제 쩔쩔매며 의자에 바싹 붙었냐는 듯 책상 위로 몸을 바짝 숙여 프라울과 옵틱을 맞췄다. 이번에는 프라울이 당황하며 퇴각할 차례였다. 그는 오라이온의 푸른 옵틱을 슬쩍 피하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말했듯이, 그게 최선책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야. 난 어차피 누군가와 콘적스를 맺을 생각도 없었고, 서류 처리나 네 안전보장을 생각하면 내가 가장 간편한 선택지잖아.”
…오라이온이 걸고 넘어지고 싶은 건 그것보다는 회의 권한 위임과 메가트론에게 상해를 입히겠다는 조항이었지만.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도 냉정하게 장기말로 쓰는 그의 친애하는 전략사령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뜻이 있긴 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말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던데, 전쟁은 끝났어 프라울. 넌 간편한 ‘선택지’ 따위가 아니고, 날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필요도 없어. 그동안 함께 싸워준 모든 오토봇들도 마찬가지야. 시민권 문제는 곤란하게 됐지만… 친애하는 동료들의 희생은 거절하겠어. 나 혼자서 해결해볼게.”
그렇게 말하는 오라이온은 영락없이 수천 사이클동안 오토봇을 이끌던 리더였다. 그의 옵틱은 부드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빛으로 가득했고, 나직하고 결연한 목소리에서는 일종의 신성함까지 느껴졌다. 그를 리더로 받아들이고 보좌했던 메크로서는 감히 반기를 들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라이온은 프라울의 침묵을 승복선언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큭큭 웃고는 의자에서 훌쩍 일어나 필요한 데이터패드 몇 개를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두 메크는 바로 그를 뒤따라나가지는 않았다.
프라울은 오라이온의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말을 프로세싱하려 노력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콘적스 제안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당하리라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재즈는 오랜 동료이자 지금은 경쟁자라고 불러야 할 메크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마음은 숨긴다고 되는 게 아니야. 들켜야 뭐라도 시작하지.”
재즈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심을 숨기고 싶어서 자기희생을 자처하면 그 분야에서도 1등인인 오라이온한테 무참히 패배할 수밖에. 오토봇에서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임무를 전담하던 메크가 하기에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더군다나 충고의 형태였고. 프라울의 옵틱이 가늘어졌다.
“네가 조언할 처지는 아닐텐데.”
“냉철하던 전략사령관님이 이렇게 얕은 수를 쓸 정도로 조급해진 걸 보니 세척액이 앞을 가려서 말이야.”
쯧. 프라울이 혀를 찼다. 안 조급해지게 생겼나. 재즈가 중간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그는 강제 셧다운까지 감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번 총회의만큼은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를 통채로 삼키고 싶어하는 메크들 앞에서 스스로 은쟁반에 올라가는 꼴인데, 어느 계산능력 상실한 메크가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느냐고.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쌓인 데이터로 인해 프라울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오라이온에게 조언을 쏟아부어도, 그는 프라울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메크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사실 그런 점이 정말 좋-<i>으아아악.</i>
프라울은 마지막 문장을 브레인 모듈에서 애써 박박 지워버리고 서둘러 재즈와 총회의실로 향했다. 이번 회의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잡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
회의실에는 오랜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긴 테이블 양 끝에는 언제나처럼 각각 오라이온과 메가트론이 앉아 있었고, 두 메크를 보좌해왔던 주요 간부진들이 진영에 따라 자리를 채웠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오라이온 팩스로 변한 이후 그를 처음 보는 몇몇 메크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었고, 평소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건조한 모습으로 회의에 참여했던 메가트론은 이번엔 오라이온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발라먹을 듯이.
오라이온은 부담스러운 듯 자리에서 조금 꿈지럭거렸다. 내전 중에야 저런 눈빛을 많이 봤다지만 평화를 되찾은 후의 메가트론은 어딘가 굉장히 담백해져서, 저런 식으로 노골적인 감정을 맞닥뜨리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어쨌거나 회의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오라이온은 애써 보이스박스를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총회의에서는 호국경께 간단히 대 쿠인테슨 전략 브리핑을 듣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는데-”
그때 메가트론 옆에 앉아 있던 스타스크림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건 차치하고. 먼저 브리핑을 들어야 하는 상황은 따로 있지 않나?”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군.”
“당신 말이야. 프라임, 아니, 오라이온 팩스. 당신이 그… 그렇게 된 거.”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하며 스타스크림은 손을 휘적거리며 오라이온을 가리켰다.
난 또 뭐라고.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오토봇들에게 시달릴만큼 시달렸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난 공식적으로 사이버트론 정부에서 맡고 있는 직책이 없어. 내전이 끝난 후엔 전력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나. 이미 인수인계도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 내 동체가 변하는 건 공무와는 어떤 관계도 없네. 애초에 이건 회의와는-”
이번에는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의 말허리를 잘랐다.
“사이버트론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콘적스를 구해야 하는 신세라면서. 이게 사이버트론의 중대한 정치사안이 아니라면 뭔지 모르겠군.”
“그런 것까지 총회의에서 논의할 필요는 없네. 사적인 문제야.”
“...사적인 문제라.”
선을 긋는 듯한 말에 메가트론의 옵틱이 번뜩거렸다.
“이젠 ‘오라이온 팩스’의 사적인 문제에서마저 날 배제하겠다는 건가, 그래?”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메크들은 모두 움찔 놀랐다. 오라이온 팩스와 D16 사이의 얽히고 섥힌,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연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설마 메가트론 본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입에 올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라이온은… 옵틱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먼저 손을 놓은 게 나인 줄 알겠군.’
오라이온은 짐짓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굳이 메가트론의 말에 답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은 태도인 것 같기는 했지만, 고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부터 자신을 철저히 ‘프라임’으로만 대하려고 했던 건 다른 메크였다는 것마냥, 자신이 오라이온 팩스가 되자마자 당당히 사적 관계를 들먹이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자신에게 D16을 돌려줄 것도 아니면서.
하지만 메가트론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몰아붙였다. 점점 평정을 잃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게 정말로 사적인 문제라면 왜 오라이온이 되고 난 후 나에게 언질도 없었지? 왜 내가 다른 메크를 통해서 그 소식을 들어야 했냐고. 오라이온 팩스가 돌아왔다면 당연히 내가 먼저-”
“넌 D16이 아니니까.”
그 순간,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리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몇몇 메크는 몰래 청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회의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
[이번 총회의 실시간 난장판임]
전 프라임 오라이온 팩스 되고 나서 하는 첫 회의인데
분위기 ㄹㅇ 살얼음판
** 뭐야 나 말단이라 회의 못 들어가는데 너무 궁금해 뭔일 있었음?
**ㄴ 디셉 쪽에서 먼저 오라이온 님 콘적스 문제 꺼내서 오라이온 님은 사적인 문제라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중
**ㄴ 호국경이 그대로 넘어가 줄 성격이 아닐텐데
**ㄴ 안 넘어가고 있긴 함 지금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서 계속 물고 늘어짐
**ㄴㄴ 정치적인 문제?
**ㄴㄴ ㅈㅁ 전 프라임의 콘적스 엔듀라는 사이버트론이 진정한 화합을 맞았다는 걸 보여줄 절호의 상징이고 아무 메크와 콘적스를 맺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라는데 이거 청혼 아님?
**ㄴㄴㄴ 청혼이네
**ㄴㄴㄴ 청혼이네
**ㄴㄴㄴ ㅊㅎㅇㄴ
**ㄴㄴㄴ 왐마야
**아니 근데 프라임 ㅈㄴ 다정한 유죄메크라고 소문나지 않았었냐? 호국경한테 너무 쟈가운데
**ㄴ 22222 나도 지금 회의 들어와 있는데 오라이온님이 ‘넌 D16이 아니다’고 하는 순간 스파크 철렁함
**ㄴㄴ 헐 내가 호국경도 아닌데 마상…. ㅠㅠㅠ
**ㄴㄴ 미안한데 D 워딩 사실상 금지어 아니었냐
**ㄴㄴㄴ 뭐어때 알 메크는 다 아는데. 쇼크웨이브한테 쓱싹당하기밖에 더 하겠어?
**ㄴㄴㄴㄴ ㄷㄷㄷㄷㄷㄷㄷㄷ 나 댓쓴봇인데 댓삭한다
** 헐
**ㄴ 야 지금 메가트론 옵틱에 고인 거 세척액임?????
**ㄴ <strong>ㅅㅂ 진짠가봐 호국경 울어 </strong>
**ㄴ ?????????
**ㄴ 이야 역시 전 프라임 호국경을 울리다니
**ㄴㄴ 엄밀히 말해서 세척액이 흐르진 않았음
**ㄴㄴㄴ 그런 변명이 호국경을 더 비참하게 하는 거야
**ㄴ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금 전 프라임 님도 ㅈㄴ 당황하신 거 같은데 옵틱 커진거 토끼 닮음
**ㄴ 조심해라 너 메가트론한테 썰린다
**ㄴ ㅈㅁㅁㅇ 토끼?가 뭐임
**ㄴ 귀엽게 생긴 지구 유기체 [이미지 첨부]
**재밌긴 한데 어카냐 회의 진행이 안되는데
**잠만 얘들아 썬더크래커가 할 말 있대
**ㄴ 와우 ..
**ㄴ ㅋ ㅋㅋㅋㅋㅋㅋㅋ ㅁㅊ..
**ㄴ 오 ……??? 이게 뭐ㄴ
**ㄴㄴ 뭐야? 뭔데뭔데뭔데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가는 게 어딨어
***
회의 중에 인트라넷에 접속해 있는 메크들은 도파민 중독자였다. 가십을 사랑하는 그들의 브레인 모듈은 지금 심우주로 날아가려는 의식을 붙잡느라 더 이상 이 난장판을 중계할 여유가 없었다. 메가트론과 오라이온의 매우 사적인 말싸움이 소강된 후,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던 메크들 사이에서 썬더크래커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사실 이 주제에 관련해서 미리 회의 자료를 준비해왔다며, 회의실의 스크린에 발표 자료를 띄울 수 있을지 허락을 구했다. 답지 않게 감정싸움을 한 것 같아 민망함을 느끼던 오라이온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이 제안을 허락했고, 지금 그 결정을 아주아주 후회하는 중이었다.
회의실 중앙 테이블의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에는 썬더크래커가 준비했다는 ‘발표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오라이온 팩스의 콘적스 엔듀라 선정 기준] 이라는 제목이 쓸데없이 반짝거리고 화려한 글씨체로 화면을 가득 메웠다.
‘오….’
재즈가 드물게 눈치를 보며 오라이온을 곁눈질했다. 디셉티콘 측에서 뭔가 준비했을 거라는 정보를 알고 있긴 했지만 이런… 방향일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기에 그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참이었다. 오라이온은 죽은 옵틱을 하고 문제의 자료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들은 진심으로 이게 논의할 만한 안건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오라이온은 드물게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을 마주해야 했다.
'솔직히 중요한 의제인 것 같습니다' 라는 속마음이 읽히는 여러쌍의 옵틱 앞에서, 오라이온 팩스는 결국 승복했다. 물론 그 결정도 아주아주 후회할 예정이었다.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일치된 의견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 진영이 방점을 찍는 부분이 달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전직 프라임이었던 오라이온의 콘적스 엔듀라가 중요한 자리라는 데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대체로 오토봇은 그렇기 때문에 오라이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상대가 콘적스가 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었고, 디셉티콘은 이 기회에 사이버트론의 온전한 화합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전 디셉티콘 진영의 콘적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중이었다.
“아니… 난 서류에 이름만 올려줄 메크면 되네.”
당연히 그 말은 묵살되었고.
언제 분위기가 얼어붙었냐는 듯 회의 테이블에는 과열된 토의가 오가기 시작했다.
“오라이온 팩스는 이제 민간 메크다. 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신변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해.”
프라울이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듯이 말하자 메가트론이 비웃으며 응수했다.
“그리고 가장 적합한 게 자신이라고 할 셈인가.”
그때 재즈가 민첩하게 끼어들었다.
“콕 집어 프라울이라고 할 건 없지.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신뢰할 만한 메크라면 누구나… 뭐 나도 있고.”
그때 한동안 조용히 있던 사운드웨이브도 특유의 낮고 짙은 기계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과거 오토봇이였던 메크만이 오라이온 팩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비논리적이다.”
이 자식은 또 뭐야? 같은 디셉티콘이었다고 메가트론에 힘을 실어주려는 건가. 프라울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껏 안면 플레이트를 구겨 ‘메가트론은 죽어도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메가트론은 사운드웨이브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했다.
“하이가드는 원래 프라임을 지키는 개체다. 오토봇 전략사령관의 논리대로라면 나에게도 콘적스 자격이 있다.”
그럼 그렇지. 메가트론은 옵틱을 굴렸다. 하지만 비교적 침착한 것은 메가트론 뿐, 이런 반전을 알 리가 없는 다른 메크들은 마치 헬름을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프라울과 재즈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드리프트에 프라울은 할 말을 잃은 사이, 좀 더 빠르게 정신을 다잡은 재즈가 맞받아쳤다.
“우리 측 요지는 ‘오라이온 팩스’를 지킬 수 있는 메크가 필요하다는 거였어. 그는 프라임이 아닌 메크로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
“그렇다면 나도 내가 지키고 싶은 걸 지킬 권리가 있겠군.”
간부들 사이의 신경전은 팽팽하게 이어졌다.
회의에 출석한 나머지 메크들은 상사들의 치정극을 숨죽여 관람하는 중이었다. 종전하더니 사내복지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았다.
썬더크래커는 전에 없는 직업만족도에 즐거움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오라이온님의 콘적스 엔듀라 후보를 정리할까요?”
“아니 제발- 그러지 말아주게, 썬더크래커.”
오라이온은 옵틱의 전원을 끄고 얼굴을 한 손에 파묻었다.
프라이머스시여, 저에게 오라이온 팩스로서의 자유를 주시려는 게 아니었나요?
왜 제가 이 난장판의 한가운데에 있게 된 건가요?
***
결국 회의는 별다른 진척을 얻지 못하고 마무리 되었고, 인트라넷에는 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아까 총회의 난장판이라고 글쓴봇인데]
ㅅㅂ 오늘 회의에 오라이온 님 콘적스 엔듀라 후보 다 출석한 것 같다….
** ??????????
** 이게 무슨 소리야?
** 뭐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
.
.
** 후보가 회의실에만 있는 건 아님
**ㄴ 얜 또 뭐야
***
번외:
혼돈의 총회의로부터 몇 사이클 후.
오라이온이 막 프라임이 되었을 무렵에 스파클링이었거나, 내전 이후에 태어난 메크들은 사실 이 상황을 백퍼센트 즐기고 있었다. 다가갈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자 까마득한 상관이었던 전 프라임의 연애사라니, 젊은 메크들의 스파크에 불을 지피는 주제 아닌가. 메크들은 오토봇의 어떤 메크가 사실 오랫동안 프라임을 사모했다느니 디셉티콘의 순애야말로 진짜라느니 하는 루머 공장을 돌려댔다. 오토봇-디셉티콘 청사 내에서 이 가십에 대한 열기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고고, 결국 담 큰 몇몇 메크들이 에너존을 걸고 내기를 벌이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넌 누구한테 걸래?"
"당연히 메가트론이지. 두 분 서사가 넘사임."
"난 재즈 사령관님. 원래 프라임 같은 순진한 메크가 잘생긴 양아치한테 꼼짝 못하는 거랬어."
"난 프라울한테 걺."
"정보부 자존심을 걸고 사운드웨이브 참모님께 올인한다."
테이블 위로 산더미처럼 쌓인 에너존 주위로 여러 메크들이 둘러앉아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어째 자기가 속한 팀에 따라 파가 나뉘는 듯한 양상에 판돈은 매 아스트로세컨드마다 불어나는 중이고.
그때, 토론이 한창인 헬름들 위로 한 메크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당찬 목소리로 선언했다.
"난 스모크스크린한테 걸래."
무리의 헬름이 일제히 그 메크에게로 돌아갔다. 다들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그야 그럴게...
"자기 자신한테 거는 미친놈이 어딨냐, 이 미친놈아..."
힘없는 목소리가 이름모를 메크의 보이스박스를 빠져나왔지만 스모크스크린에게 닿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이미 꽤 높이 쌓여있는 에너존 위로 자기 몫의 에너존을 쏟아붓더니, 처음 왔던 것처럼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물밑에서 내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재즈와 사운드웨이브는 즉시 스모크스크린을 예의주시 대상으로 지정했다.
***
직진연하까지 참전!
오라이온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옵티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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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포원 기반 종전 이후
알못주의
“괜찮습니다, 오라이온. 이 데이터패드에 서명만 하고 리차징 베드에서 한 숨 푹 자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요새 잔업이 늘어서 힘들어했잖아. 오늘만 조금 쉬어, 응?”
전 오토봇-디셉티콘 간부 총회의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프라울은 수상할 정도로 친절한 태도로 오라이온에게 끝이 안 보이는 길이의 데이터패드를 내밀었다. 애써 순하게 뜬 옵틱과 간신히 유지하는 미소는 평소와의 괴리감 때문에 아주 수상하게 느껴진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 물러날 곳도 없는 오라이온은 의자에 최대한 등을 바짝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용을 검토해보고 서명할지 말지 결정을-”
“젠장, 오라이온, 총회의까지 몇 분도 안 남았다고. 빨리 서명해!”
“으악, 프라울?! 진정해!”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프라울이 오라이온의 팔을 잡고 대리 서명을 주도하려고 하는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재즈가 유유히 걸어들어왔다.
“이런, 내가 뭘 목격한 거지. 오토봇의 기념비적인 첫 쿠데타?”
장난스러운 말투에 프라울은 얼굴을 사납게 구겼다. 오라이온은 평소대로 돌아온 그의 모습에 조용히 안심하며 슬쩍 잡혀있던 팔을 빼냈다.
“협조할 거 아니면 저리 가. 이게 내가 판단한 최선책이니까.”
흠- 재즈는 과장된 액션으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충직한 2인자로서 진심을 담아 오토봇 리더에게 충고했다.
“저라면 서명을 보류하겠어요, 오라이온.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 데이터패드에는 당신이 회의에 불참할 경우 프라울이 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는다는 내용,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호국경에게 상해를 입히는 걸 허용하겠다는 내용,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프라울과 콘적스를 맺겠다는 내용 등 심히 우려되는 조항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오라이온의 옵틱이 가늘어졌다.
“진심이야, 프라울?”
그는 언제 쩔쩔매며 의자에 바싹 붙었냐는 듯 책상 위로 몸을 바짝 숙여 프라울과 옵틱을 맞췄다. 이번에는 프라울이 당황하며 퇴각할 차례였다. 그는 오라이온의 푸른 옵틱을 슬쩍 피하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말했듯이, 그게 최선책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야. 난 어차피 누군가와 콘적스를 맺을 생각도 없었고, 서류 처리나 네 안전보장을 생각하면 내가 가장 간편한 선택지잖아.”
…오라이온이 걸고 넘어지고 싶은 건 그것보다는 회의 권한 위임과 메가트론에게 상해를 입히겠다는 조항이었지만.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도 냉정하게 장기말로 쓰는 그의 친애하는 전략사령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뜻이 있긴 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말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던데, 전쟁은 끝났어 프라울. 넌 간편한 ‘선택지’ 따위가 아니고, 날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필요도 없어. 그동안 함께 싸워준 모든 오토봇들도 마찬가지야. 시민권 문제는 곤란하게 됐지만… 친애하는 동료들의 희생은 거절하겠어. 나 혼자서 해결해볼게.”
그렇게 말하는 오라이온은 영락없이 수천 사이클동안 오토봇을 이끌던 리더였다. 그의 옵틱은 부드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빛으로 가득했고, 나직하고 결연한 목소리에서는 일종의 신성함까지 느껴졌다. 그를 리더로 받아들이고 보좌했던 메크로서는 감히 반기를 들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라이온은 프라울의 침묵을 승복선언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큭큭 웃고는 의자에서 훌쩍 일어나 필요한 데이터패드 몇 개를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두 메크는 바로 그를 뒤따라나가지는 않았다.
프라울은 오라이온의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말을 프로세싱하려 노력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콘적스 제안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당하리라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재즈는 오랜 동료이자 지금은 경쟁자라고 불러야 할 메크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마음은 숨긴다고 되는 게 아니야. 들켜야 뭐라도 시작하지.”
재즈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심을 숨기고 싶어서 자기희생을 자처하면 그 분야에서도 1등인인 오라이온한테 무참히 패배할 수밖에. 오토봇에서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임무를 전담하던 메크가 하기에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더군다나 충고의 형태였고. 프라울의 옵틱이 가늘어졌다.
“네가 조언할 처지는 아닐텐데.”
“냉철하던 전략사령관님이 이렇게 얕은 수를 쓸 정도로 조급해진 걸 보니 세척액이 앞을 가려서 말이야.”
쯧. 프라울이 혀를 찼다. 안 조급해지게 생겼나. 재즈가 중간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그는 강제 셧다운까지 감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번 총회의만큼은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를 통채로 삼키고 싶어하는 메크들 앞에서 스스로 은쟁반에 올라가는 꼴인데, 어느 계산능력 상실한 메크가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느냐고.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쌓인 데이터로 인해 프라울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오라이온에게 조언을 쏟아부어도, 그는 프라울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메크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사실 그런 점이 정말 좋-<i>으아아악.</i>
프라울은 마지막 문장을 브레인 모듈에서 애써 박박 지워버리고 서둘러 재즈와 총회의실로 향했다. 이번 회의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잡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
회의실에는 오랜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긴 테이블 양 끝에는 언제나처럼 각각 오라이온과 메가트론이 앉아 있었고, 두 메크를 보좌해왔던 주요 간부진들이 진영에 따라 자리를 채웠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오라이온 팩스로 변한 이후 그를 처음 보는 몇몇 메크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었고, 평소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건조한 모습으로 회의에 참여했던 메가트론은 이번엔 오라이온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발라먹을 듯이.
오라이온은 부담스러운 듯 자리에서 조금 꿈지럭거렸다. 내전 중에야 저런 눈빛을 많이 봤다지만 평화를 되찾은 후의 메가트론은 어딘가 굉장히 담백해져서, 저런 식으로 노골적인 감정을 맞닥뜨리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어쨌거나 회의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오라이온은 애써 보이스박스를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총회의에서는 호국경께 간단히 대 쿠인테슨 전략 브리핑을 듣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는데-”
그때 메가트론 옆에 앉아 있던 스타스크림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건 차치하고. 먼저 브리핑을 들어야 하는 상황은 따로 있지 않나?”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군.”
“당신 말이야. 프라임, 아니, 오라이온 팩스. 당신이 그… 그렇게 된 거.”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하며 스타스크림은 손을 휘적거리며 오라이온을 가리켰다.
난 또 뭐라고.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오토봇들에게 시달릴만큼 시달렸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난 공식적으로 사이버트론 정부에서 맡고 있는 직책이 없어. 내전이 끝난 후엔 전력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나. 이미 인수인계도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 내 동체가 변하는 건 공무와는 어떤 관계도 없네. 애초에 이건 회의와는-”
이번에는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의 말허리를 잘랐다.
“사이버트론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콘적스를 구해야 하는 신세라면서. 이게 사이버트론의 중대한 정치사안이 아니라면 뭔지 모르겠군.”
“그런 것까지 총회의에서 논의할 필요는 없네. 사적인 문제야.”
“...사적인 문제라.”
선을 긋는 듯한 말에 메가트론의 옵틱이 번뜩거렸다.
“이젠 ‘오라이온 팩스’의 사적인 문제에서마저 날 배제하겠다는 건가, 그래?”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메크들은 모두 움찔 놀랐다. 오라이온 팩스와 D16 사이의 얽히고 섥힌,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연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설마 메가트론 본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입에 올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라이온은… 옵틱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먼저 손을 놓은 게 나인 줄 알겠군.’
오라이온은 짐짓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굳이 메가트론의 말에 답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은 태도인 것 같기는 했지만, 고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부터 자신을 철저히 ‘프라임’으로만 대하려고 했던 건 다른 메크였다는 것마냥, 자신이 오라이온 팩스가 되자마자 당당히 사적 관계를 들먹이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자신에게 D16을 돌려줄 것도 아니면서.
하지만 메가트론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몰아붙였다. 점점 평정을 잃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게 정말로 사적인 문제라면 왜 오라이온이 되고 난 후 나에게 언질도 없었지? 왜 내가 다른 메크를 통해서 그 소식을 들어야 했냐고. 오라이온 팩스가 돌아왔다면 당연히 내가 먼저-”
“넌 D16이 아니니까.”
그 순간,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리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몇몇 메크는 몰래 청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회의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
[이번 총회의 실시간 난장판임]
전 프라임 오라이온 팩스 되고 나서 하는 첫 회의인데
분위기 ㄹㅇ 살얼음판
** 뭐야 나 말단이라 회의 못 들어가는데 너무 궁금해 뭔일 있었음?
**ㄴ 디셉 쪽에서 먼저 오라이온 님 콘적스 문제 꺼내서 오라이온 님은 사적인 문제라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중
**ㄴ 호국경이 그대로 넘어가 줄 성격이 아닐텐데
**ㄴ 안 넘어가고 있긴 함 지금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서 계속 물고 늘어짐
**ㄴㄴ 정치적인 문제?
**ㄴㄴ ㅈㅁ 전 프라임의 콘적스 엔듀라는 사이버트론이 진정한 화합을 맞았다는 걸 보여줄 절호의 상징이고 아무 메크와 콘적스를 맺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라는데 이거 청혼 아님?
**ㄴㄴㄴ 청혼이네
**ㄴㄴㄴ 청혼이네
**ㄴㄴㄴ ㅊㅎㅇㄴ
**ㄴㄴㄴ 왐마야
**아니 근데 프라임 ㅈㄴ 다정한 유죄메크라고 소문나지 않았었냐? 호국경한테 너무 쟈가운데
**ㄴ 22222 나도 지금 회의 들어와 있는데 오라이온님이 ‘넌 D16이 아니다’고 하는 순간 스파크 철렁함
**ㄴㄴ 헐 내가 호국경도 아닌데 마상…. ㅠㅠㅠ
**ㄴㄴ 미안한데 D 워딩 사실상 금지어 아니었냐
**ㄴㄴㄴ 뭐어때 알 메크는 다 아는데. 쇼크웨이브한테 쓱싹당하기밖에 더 하겠어?
**ㄴㄴㄴㄴ ㄷㄷㄷㄷㄷㄷㄷㄷ 나 댓쓴봇인데 댓삭한다
** 헐
**ㄴ 야 지금 메가트론 옵틱에 고인 거 세척액임?????
**ㄴ <strong>ㅅㅂ 진짠가봐 호국경 울어 </strong>
**ㄴ ?????????
**ㄴ 이야 역시 전 프라임 호국경을 울리다니
**ㄴㄴ 엄밀히 말해서 세척액이 흐르진 않았음
**ㄴㄴㄴ 그런 변명이 호국경을 더 비참하게 하는 거야
**ㄴ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금 전 프라임 님도 ㅈㄴ 당황하신 거 같은데 옵틱 커진거 토끼 닮음
**ㄴ 조심해라 너 메가트론한테 썰린다
**ㄴ ㅈㅁㅁㅇ 토끼?가 뭐임
**ㄴ 귀엽게 생긴 지구 유기체 [이미지 첨부]
**재밌긴 한데 어카냐 회의 진행이 안되는데
**잠만 얘들아 썬더크래커가 할 말 있대
**ㄴ 와우 ..
**ㄴ ㅋ ㅋㅋㅋㅋㅋㅋㅋ ㅁㅊ..
**ㄴ 오 ……??? 이게 뭐ㄴ
**ㄴㄴ 뭐야? 뭔데뭔데뭔데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가는 게 어딨어
***
회의 중에 인트라넷에 접속해 있는 메크들은 도파민 중독자였다. 가십을 사랑하는 그들의 브레인 모듈은 지금 심우주로 날아가려는 의식을 붙잡느라 더 이상 이 난장판을 중계할 여유가 없었다. 메가트론과 오라이온의 매우 사적인 말싸움이 소강된 후,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던 메크들 사이에서 썬더크래커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사실 이 주제에 관련해서 미리 회의 자료를 준비해왔다며, 회의실의 스크린에 발표 자료를 띄울 수 있을지 허락을 구했다. 답지 않게 감정싸움을 한 것 같아 민망함을 느끼던 오라이온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이 제안을 허락했고, 지금 그 결정을 아주아주 후회하는 중이었다.
회의실 중앙 테이블의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에는 썬더크래커가 준비했다는 ‘발표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오라이온 팩스의 콘적스 엔듀라 선정 기준] 이라는 제목이 쓸데없이 반짝거리고 화려한 글씨체로 화면을 가득 메웠다.
‘오….’
재즈가 드물게 눈치를 보며 오라이온을 곁눈질했다. 디셉티콘 측에서 뭔가 준비했을 거라는 정보를 알고 있긴 했지만 이런… 방향일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기에 그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참이었다. 오라이온은 죽은 옵틱을 하고 문제의 자료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들은 진심으로 이게 논의할 만한 안건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오라이온은 드물게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을 마주해야 했다.
'솔직히 중요한 의제인 것 같습니다' 라는 속마음이 읽히는 여러쌍의 옵틱 앞에서, 오라이온 팩스는 결국 승복했다. 물론 그 결정도 아주아주 후회할 예정이었다.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일치된 의견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 진영이 방점을 찍는 부분이 달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전직 프라임이었던 오라이온의 콘적스 엔듀라가 중요한 자리라는 데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대체로 오토봇은 그렇기 때문에 오라이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상대가 콘적스가 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었고, 디셉티콘은 이 기회에 사이버트론의 온전한 화합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전 디셉티콘 진영의 콘적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중이었다.
“아니… 난 서류에 이름만 올려줄 메크면 되네.”
당연히 그 말은 묵살되었고.
언제 분위기가 얼어붙었냐는 듯 회의 테이블에는 과열된 토의가 오가기 시작했다.
“오라이온 팩스는 이제 민간 메크다. 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신변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해.”
프라울이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듯이 말하자 메가트론이 비웃으며 응수했다.
“그리고 가장 적합한 게 자신이라고 할 셈인가.”
그때 재즈가 민첩하게 끼어들었다.
“콕 집어 프라울이라고 할 건 없지.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신뢰할 만한 메크라면 누구나… 뭐 나도 있고.”
그때 한동안 조용히 있던 사운드웨이브도 특유의 낮고 짙은 기계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과거 오토봇이였던 메크만이 오라이온 팩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비논리적이다.”
이 자식은 또 뭐야? 같은 디셉티콘이었다고 메가트론에 힘을 실어주려는 건가. 프라울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껏 안면 플레이트를 구겨 ‘메가트론은 죽어도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메가트론은 사운드웨이브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했다.
“하이가드는 원래 프라임을 지키는 개체다. 오토봇 전략사령관의 논리대로라면 나에게도 콘적스 자격이 있다.”
그럼 그렇지. 메가트론은 옵틱을 굴렸다. 하지만 비교적 침착한 것은 메가트론 뿐, 이런 반전을 알 리가 없는 다른 메크들은 마치 헬름을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프라울과 재즈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드리프트에 프라울은 할 말을 잃은 사이, 좀 더 빠르게 정신을 다잡은 재즈가 맞받아쳤다.
“우리 측 요지는 ‘오라이온 팩스’를 지킬 수 있는 메크가 필요하다는 거였어. 그는 프라임이 아닌 메크로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
“그렇다면 나도 내가 지키고 싶은 걸 지킬 권리가 있겠군.”
간부들 사이의 신경전은 팽팽하게 이어졌다.
회의에 출석한 나머지 메크들은 상사들의 치정극을 숨죽여 관람하는 중이었다. 종전하더니 사내복지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았다.
썬더크래커는 전에 없는 직업만족도에 즐거움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오라이온님의 콘적스 엔듀라 후보를 정리할까요?”
“아니 제발- 그러지 말아주게, 썬더크래커.”
오라이온은 옵틱의 전원을 끄고 얼굴을 한 손에 파묻었다.
프라이머스시여, 저에게 오라이온 팩스로서의 자유를 주시려는 게 아니었나요?
왜 제가 이 난장판의 한가운데에 있게 된 건가요?
***
결국 회의는 별다른 진척을 얻지 못하고 마무리 되었고, 인트라넷에는 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아까 총회의 난장판이라고 글쓴봇인데]
ㅅㅂ 오늘 회의에 오라이온 님 콘적스 엔듀라 후보 다 출석한 것 같다….
** ??????????
** 이게 무슨 소리야?
** 뭐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
.
.
** 후보가 회의실에만 있는 건 아님
**ㄴ 얜 또 뭐야
***
번외:
혼돈의 총회의로부터 몇 사이클 후.
오라이온이 막 프라임이 되었을 무렵에 스파클링이었거나, 내전 이후에 태어난 메크들은 사실 이 상황을 백퍼센트 즐기고 있었다. 다가갈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자 까마득한 상관이었던 전 프라임의 연애사라니, 젊은 메크들의 스파크에 불을 지피는 주제 아닌가. 메크들은 오토봇의 어떤 메크가 사실 오랫동안 프라임을 사모했다느니 디셉티콘의 순애야말로 진짜라느니 하는 루머 공장을 돌려댔다. 오토봇-디셉티콘 청사 내에서 이 가십에 대한 열기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고고, 결국 담 큰 몇몇 메크들이 에너존을 걸고 내기를 벌이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넌 누구한테 걸래?"
"당연히 메가트론이지. 두 분 서사가 넘사임."
"난 재즈 사령관님. 원래 프라임 같은 순진한 메크가 잘생긴 양아치한테 꼼짝 못하는 거랬어."
"난 프라울한테 걺."
"정보부 자존심을 걸고 사운드웨이브 참모님께 올인한다."
테이블 위로 산더미처럼 쌓인 에너존 주위로 여러 메크들이 둘러앉아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어째 자기가 속한 팀에 따라 파가 나뉘는 듯한 양상에 판돈은 매 아스트로세컨드마다 불어나는 중이고.
그때, 토론이 한창인 헬름들 위로 한 메크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당찬 목소리로 선언했다.
"난 스모크스크린한테 걸래."
무리의 헬름이 일제히 그 메크에게로 돌아갔다. 다들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그야 그럴게...
"자기 자신한테 거는 미친놈이 어딨냐, 이 미친놈아..."
힘없는 목소리가 이름모를 메크의 보이스박스를 빠져나왔지만 스모크스크린에게 닿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이미 꽤 높이 쌓여있는 에너존 위로 자기 몫의 에너존을 쏟아붓더니, 처음 왔던 것처럼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물밑에서 내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재즈와 사운드웨이브는 즉시 스모크스크린을 예의주시 대상으로 지정했다.
***
직진연하까지 참전!
오라이온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옵티텀
https://hygall.com/612275826
[Code: b5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