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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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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행맨 텔러파월

약간 뽕빨물 근데 이제 순애를 곁들인 그런게 보고싶어서 씀 군알못ㅈㅇ 양성구유 후타나리 컨셉 ㅈㅇ ㅅㅅㅊㅈㅇ







"...마지막으로, 파일럿이 충원되었다. 맥네어 대위와 함께 브래드쇼 대위를 서포트할 것이다. 들어오게, 세러신 대위."

"감사합니다, 중령님"

정석적으로 단정하게 제복을 갖춰입은 남자가 딱 맞는 타이밍에 맞추어 인사를 하며 브리핑 룸에 들어섰다. 매끈하게 넘긴 어두운 금발과 유쾌한 호선 뒤의 올리브 빛깔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방 안을 훑어보는 흥미어린 시선과 마주친 루스터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있었다.

"말했듯이 교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인사이니 유념하여 훈련하도록. 이만 해산."

여유로운 미소를 띄고있던 행맨의 눈 또한 동그랗게 되었다. 이내 미간이 잠시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그 상태로 씨익 웃는 모습이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었다. 뉴비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루스터를 발견한 태스크 포스의 몇명은 알 것 같다는 식으로 피식 웃으며 일어섰다. 행맨은 브리핑 룸에서 나가는 인원들과 악수를하며 한명 한명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루스터는 그런 행맨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맨이 루스터가 앉은 자리 앞으로 건들거리며 걸어왔다.

"야, 너가 나 추천했냐?"
"아냐. 너 오는거 방금 알았어."
"흐음... 그래? 난 또 네가 요청한 줄 알았지. 내가..."

'네 구원자니까!' 라고 말하며 놀려주려던 행맨이 문득 말 끝을 흐렸다. 갑자기 너무 중요한걸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단게 떠오른 것이다. 여기는 다른 세계인데, 여러 사건들이 모두 동일하게 존재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여기서는 그의 도움 없이 매버릭과 살아 돌아왔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피격되지 않고 미션을 완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루스터의 구원자가 되기 이전처럼 악우와 동료 사이의 어드매에서 갑작스래 가이드가 되어 마주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말의 가능성은 행맨의 심사를 슬쩍 꼬아버렸다. 루스터는 3초 이상 지속된 침묵에도 불구하고 끼어들거나 재촉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어지는 말을 독려하듯이 약간의 미소를 띄어보이며 순하게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네 가이드니까. 그리고..."
"으응?"

루스터는 그런 이유로 요청을 해서도 안되고 들어주지도 않을거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이어지는 행맨의 말을 기다렸다. 행맨은 사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전매특허와 같은 웃음을 보였다.

"네가 날 좋아하니까?"
"...뭐?"

루스터가 입을 딱 벌리고는 바보같은 소리를 내었다. 아니라고 잡아떼기엔 사실이긴 한데 또 그렇다고 긍정하기엔 맥락이 맞지도 않고 행맨의 속내를 알 수 없어 솔직히 밝히기가 두려웠다. 그렇다. 루스터는 지금 이 순간 행맨이 무서웠다. 행맨은 굳어버린 루스터를 보며 잠시 기다렸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가 어깨를 으쓱 해보이고는 루스터의 옆자리에 태연히 앉으며 말했다.

"아님 말고."
"그으... 건 왜 물어본거야?"
"오, 우리가 같은 TF에 있는게 우연인지 궁금하잖아. 근데 진짜 나 좋아하는거 아니야?"
"일단... 일단 말이지, 난 그런 이유로 사람을 추천하지 않아. 이건... 일이잖아. 진지하다고, 행맨. 그리고 해리스 중령님이 추천을 받아들였을리도 없고.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센티넬이 매칭 가이드를 팀원으로 추천한다면 솔직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긴 어려울거야."
"아, 그래?"
"그래! 그리고..."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꾸하던 루스터가 옆자리에 앉은 행맨을 힐끗 보았다. 행맨은 한 팔은 팔걸이에 얹고 다른 손으로 턱을 괸 다소 방만해보이는 자세로 루스터를 향해 앉아 있었다. 그 한껏 풀어진 여유로운 자세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있는 잘생긴 미소가 얄미울정도로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이가 없을만큼, 어쩌면 짜증이 날 정도로 예뻐보였다. 그 때 행맨이 입을 살짝 벌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왔다. 루스터는 저도 모르게 움찔 하며 뒤로 물러났다.

"맞구나?"
"뭐, 뭐가?"
"나 좋아하네."
"..."
"하하! 진짜였어? 와, 루스터가? 날?"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리고 접근 금지라면서 이렇게 가까이 와도 괜찮아? 행맨."

루스터가 애써 침착하게 대꾸했지만 행맨은 얼굴을 더욱 바싹 들이밀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눈에는 거의 노려보는듯한 안광이 서려 악마처럼 강렬한 미소를 자아냈다.

"네 얼굴 좀 봐, 루스터. 무슨 토마토같아. 네 귀 좀 보라니까? 느껴져? 안 뜨거워?"

행맨이 검지손가락으로 루스터의 귀를 톡 건드렸다. 루스터가 불에 닿기라도 한 것 처럼 덜컥거리고 물러났다. 의자 다리가 책상에 부딫혀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행맨은 마치 '이 불쌍한 것!'하는 것 처럼 눈썹을 늘어뜨리고서 가볍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농담도 못 하냐? 우리가 매칭인데 어떻게 접근금지 같은걸 해. 근데 설마 그래서 '행맨'이라고 부르는거야? 가이딩 룸에서는 계속 이름으로 부르더니."
"...아, 젠장! 젠장할..."

루스터가 얼굴을 두 손에 파뭍고는 마른 세수를 했다. 행맨은 킬킬거리며 고개를 숙인 루스터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우는거 아니지? 울지말고 일어나봐. 나 뭐 좀 물어보자."
"...뭔데."

루스터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숨처럼 대꾸했다. 행맨은 고개를 숙여 루스터와 같은 눈높이를 하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 왜 좋아해?"
"아, 제발! 제이크. 넌, 너는 원래 이렇게 항상 못되게 굴어? 널 좋아한다는 사람한테?"

행맨이 입꼬리를 아래로 삐죽 내렸다가, 눈알을 굴려 생각해보는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고개를 까딱까딱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난 싸이코패스가 아니야."
"뭐? 그럼 나한테만 이러는거야? 내가 그렇게 싫어? 내가 널 좋아하는게?"

루스터가 울상이 되어 물었다. 장난으로 우느냐고 닦아세우긴 했지만 정말로 눈이 촉촉해진 모습을 보고 놀란 행맨이 눈썹을 크게 들어올렸다.

"안 싫어해! 내가 누굴 진짜 싫어하면 이렇게 말 걸지도 않아."
"...정말?"
"정말로. 내 성격 알잖아. 그러니까 빨리 대답이나 해봐. 왜 날 좋아하는건데? 응?"
"아니, 잠깐만, 좀 저리 가봐..."

루스터는 비맞은 강아지가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을 만난 것 처럼 희망에 가득찬 얼굴을 했다가, 바짝 붙어 달달 볶아대는 등쌀에 밀려 끙끙거렸다. 질문하는게 너무 무섭고 거리감은 너무 가까웠다. 행맨에게서 은은하게 풍기는 바닐라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왜 그게 꼭 알고싶은거야?"
"궁금할 수 도 있지, 왜. 그냥 좀 말해줘! 닳는것도 아니잖아! 좋아한다면서 이런것도 말 못해?"
"아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냥 튀어나올 수 가 없잖아! 이게, 이게 무슨 준비된 보고서 같은것도 아닌데..."
"그런가? 그러면 준비해서 보고서로 줄래?"

행맨은 루스터가 벌컥 짜증을 낼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루스터는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한번 보았다가 어깨를 으쓱 했다.

"진짜 그걸 원한다면."

이번에는 행맨이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루스터는 겨우 가라앉던 열이 다시 올라 뺨이 뜨끈해지는것을 느꼈다.

"아니, 농담이야. 그냥 가볍게 생각나는대로 말 하면 충분해. 있잖아, 혹시 우리가 전에 같이 했던 미션때문이야?"
"응?"

루스터는 어리둥절했다가 곧 탑건 미션을 떠올리고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 아아... 음... 그 때... 그 때 널 다시보긴 했지. 무척 고마웠고..."

행맨은 최소한 거의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확신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어떻게 고마웠는데?"
"으음, 네 덕에 살았으니까. 매브 삼촌도 가끔 그 얘길 하시고... 안부 전해달라고 말이야. 저녁식사도 하자고 하셨잖아. 기억 안나?"
"어어, 뭐..."

행맨이 뜨끔하여 답을 얼버무렸다.

"너무 머니까 근처로 오게되면 연락 한다면서."
"맞아, 그랬지."
"아, 그 때 정말... 너무 간절했고, 거의 다 와서 상황이 그랬으니까... 말로 다 못하지. 네가 진짜 구세주였어."

딱 원하던 정답을 들은 행맨이 씨익 웃었다. 그 만족스러운 미소를 본 루스터가 헛웃음을 지었다.

"넌 정말 나르시시스트구나. 너 만큼 찬사를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그래도 내가 좋잖아. 아니야?"
"...맞아. 사실은 그런 면도 좀... 귀엽다고 생각해."
"뭐어?"
"그리고 네가 실은 항상 열심히, 진지하게 노력하기 때문에 그럴 만 하단걸 알아. 원하는 결과를 얻고나면 정말 신나하는 모습도... 솔직히 귀여운 것 같네."

행맨이 어깨동무를 풀고는 눈썹을 모으며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루스터가 소리내어 웃었다.

"왜 그래? 알려달라며. 그래, 네가 날 구해준 사람이라서 좋은 것 도 있는 것 같아. 네가 노력하는게 멋있고 솔직한게 귀여워서 좋아. 가끔 일부러 나쁘게 굴 때는 얄밉지만... 섹시해 보이기도 하고."

행맨은 루스터를 놀리는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정보를 캐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목표 달성 이후의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다. 귀엽다는 것 도 당황스러웠지만 섹시하다는 건 어떠한 색의 마음을 품은 것인지 더욱 짐작하기 어려웠다. 행맨은 자동적으로 저번의 가이딩을 떠올렸다. '하고싶어.' 라고 말 하던 루스터의 목소리와 표정이 쓸데없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루스터가 어쩔 줄 몰라하는 행맨을 재밌다는듯 바라보다 조금 더 진지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제이크, 네가 내 가이드여서 좋아. 많이들 고민하는 문제라 미리 말 해두는데, 어떤 식으로든 널 좋아하던건 맞아.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너에 대해 생각해본건 여기서 만난 후부터 였어. 그러니 그냥 매칭 가이드여서 좋은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네가 내 가이드인거랑 관계 없는 순수한 마음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야. 이건... 나로서는 따로 떨어뜨려 생각 할 수 없는 문제야. 실망했다면 미안해."

루스터는 약간 결연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였지만 행맨은 그러한 고차원적인 센티넬-가이드 관계의 이슈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 '그게 뭔데' 라는 식의 표정을 한 행맨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린 루스터가 다정한 음색으로 물었다.

"그만 갈까?"

행맨은 갑작스래 어른스러운 태도를 한 루스터를 보며 본래는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단 것이 기억났다. 그에게는 상대가 무엇을 의도했든 철저한 본인만의 선이 있었다. 선을 넘지 않을 때엔 늘상 느긋하게 별 일 아닌 것 처럼 넘겨버려 오히려 우습게 만들었고, 가끔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때에나 별명처럼 사납고 매서웠다. 쉽게 안절부절하거나, 아이같이 울상을 짓거나 쩔쩔 매지도 않았다. 이곳의 루스터도 자신이 아는것과 같은 사람이었다는 안도감과, 모르는 모습이 되어간다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가슴속에 공존했다.

작전일, 하늘은 맑고 구름이 조금 끼었다. 바람도 약간 불었지만 비행에 영향을 미칠 만큼은 아니었다. 루스터가 선두에, 맥네어가 좌측, 행맨이 우측에 위치한 대형으로 날았다. 본래는 정찰 대상 국가의 영공 가까이에 가지 않고 국제 공역 안에서 넉넉한 거리를 둔채 비행하며 루스터가 능력을 사용해 위성상 미사일 기지로 의심되는 곳을 확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항상 날씨가 좋지 않아 위성으로도 보이지 않던 더 안쪽의 지역이 운 좋게 드러난 날, 의심스러운 상이 추가로 관찰되어 영공의 경계까지 상당히 가깝게 접근할 필요가 생긴것이다. 메이슨 '스윙어' 맥네어 또한 훌륭한 파일럿이지만, 이번 작전에서는 센티넬로서 루스터의 능력을 서포트 하는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교전에 대비하여 행맨이 충원된 상황이었다. 맥네어는 신체 일부분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능력을 가진 센티넬이었고, 타인에게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센티넬마다 다르지만 루스터의 경우에는 눈을 강화하면 센티넬 능력까지 향상되어 상당히 시너지가 좋은 관계였다. 행맨은 둘에게 주어진 미션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서포트가 필요하다지만 영공 밖에서 능력을 사용해서 위성보다도 더 자세히 영토를 확인할 수 있다니, 그걸 겨우 '먼 곳을 자세히 본다'고 표현한게 어찌보면 루스터 다웠다. 둘이 합쳐 탈인간적 능력을 발휘하는 센티넬들은 성격도 잘 맞는 편인지 비행중에도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했다. 행맨이 끼어들면 능글능글한 아저씨인 맥네어가 둘을 커플 취급 하며 농담을 하는 바람에 행맨은 주로 듣고있는 편이었다.

[30초 후 포인트 도착.]
[확인.]

루스터의 목소리가 진지해졌고, 곧바로 답하는 맥네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행맨도 무전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확인.]

잠시 공기를 가르는 세찬 소음만이 지속되었다가, 루스터가 띄엄띄엄 카운트다운 했다.

[20... 15... 10...]
[준비.]
[5... 4... 3... 2... 1!]

10초 남겼을 때 맥네어가 미리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루스터는 가용한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는것을 느끼며 5초부터 카운트했고, 1을 새는것을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집중력을 능력에 쏟아부었다. 이때부터는 행맨이 시간을 셀 차례였다. 루스터가 미리 인지해둔 방향으로 능력을 전개하자 밀리초단위로 시야가 휙휙 바뀌며 순식간에 목표에 다다랐다. 창문이 없는 거대한 건물, 마찬가지로 거대한 문과 그 위에 새겨진 글자와 숫자, 간간히 열려있는 문 안으로 보이는 차량과 자재, 길고 번쩍이는 쇳덩어리, 모래바닥에 새겨진 무수히 많은 바퀴자국, 이동중인 차량이 보였고,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들과 건축중인 철골물이 길을 따라 이어졌다. 루스터는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것, 알 수 없는 것 모든것을 기억하려 애썼고 특정한 몇 가지의 사실을 확인하고 판별했다. 본래 목표였던 알파지점은 어렵지 않았다. 보아야 할 것은 모두 보았다. 때마침 행맨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5초 후 선회. 5... 4... 3... 2... 1!]

센티넬들은 카운트에 맞추어 능력을 수습하며 눈앞의 현실로 돌아오려 노력했다. 세 기가 차례대로 방향을 돌렸다. 마치 우연히 이곳으로 정했을 뿐인 루틴한 정찰 훈련인 것 처럼 크게 한바퀴 돌고 떠나야 한다. 다시 작전지점으로 돌아온 후 복귀하려 선회할 때가 베타지점을 확인할 단 한번의 기회였다. 맥네어가 무전했다.

[휴... 이봐, 루스터. 상태 어때?]
[아주 좋아. 쉬웠지 뭐. 다음이 진짜야.]
[좋아, 해보자고.]

센티넬과 함께하는 미션은 처음인 행맨은 내심 루스터의 카운트 이후 말 없이 무언가를 하고있을 동료들을 기다리며 홀로 수를 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영 미심쩍고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가벼운 목소리에 조금이지만 마음이 놓였다.

[행맨, 상태는?]

마치 그것을 아는 것 처럼 물어오는 루스터의 목소리에 행맨이 코웃음 쳤다.

[지루할 지경이야.]
[저런, 불쌍해라. 그렇지만 지금 행맨을 놀아줄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

맥네어가 긴장을 풀고자 습관처럼 떠벌거리고 장난을 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해치웠나?' 등의 말과 같은 효능이 있었던건지, 레이더 가장자리에 새로운 표식이 나타났다. 행맨이 실소했다.

[손님이 왔네.]
[뭐?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맥네어가 자책하는 소리를 들으며 행맨은 레이더를 관찰했다.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확인 기체 접근중.]
[행맨.]
[문제 없어.]
[... 30초 후 포인트 도착]

행맨이 편대에서 떨어져나와 고도를 올렸다. 그가 창 밖을 주시하며 미확인 기체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20... 15... 10...]
[준비.]

루스터는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행맨의 표식을 보며 카운트했다. 맥네어의 능력이 그의 범위를 아까보다도 더 넓게,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확장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맥네어도 전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많은 힘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집중해야 한다.

[기체 확인. UAV... CiG-41?]
[5... 4... 3... 2... 1!]

고도를 높인 덕에 레이더에 잡히지 않은 기체가 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순간적으로 발견한 행맨이 반신반의 하며 경악했다. 루스터도 분명 그를 들었지만 이제 곧 불가능 해 보일정도로 먼 거리를 확인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루스터는 군에서 매칭 센티넬과 가이드가 같은 작전에 투입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지러울 정도로 시야가 바뀐다. 눈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루스터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꽉 물었다. 모래와 바위의 계곡 사이에 숨겨진 거대한 철골물이 보였고, 공사가 완료된 상태 같았다. 차체가 무척 긴듯한 바퀴자국을 따라간다. 흔적이 절벽 아래로 사라진다...

[3초 후 선회! 3... 2... 1!]

이른 신호였지만 루스터는 정신을 끄집어올려 타이밍에 맞추어 방향을 전환했다. 어지러움이 일더니 코가 뜨끈했다. 쇠맛이 났다. 기총을 발사하는 파열음이 한 발 울렸다. 맥네어가 놀라 소리쳤다.

[행맨!]

적기와 행맨의 표식이 위험할 정도로 가까워지다가 함께 레이더 밖으로 사라진다. 루스터가 다급히 무전을 켰다.

[행맨! 위치를 보고해!]
[교전에서 이탈한다. 최대속도로!]

행맨이 순식간에 다시 레이더상에 나타나며 외쳤다. 루스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버튼을 부서져라 누르고 있던 탓에 무전상으로 그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행맨은 최대로 속력을 높이며 씩 웃었다.

[인 포지션.]
[...로미오 탱고 브라보.]

대형으로 돌아온 행맨의 목소리를 확인한 루스터가 복귀를 선언했다.

차례차례 착륙하는 편대를 향해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장난스래 환호했다. 행맨은 영화제에 초대받은 배우같이 느긋하게 손을 흔들어주며 기체에서 내려왔다. 그가 빙글빙글 웃으며 먼저 착륙한 맥네어를 향해 걸어갔다.

"스윙어! 아무래도 CiG-41은 네가 소환한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미쳤지. 다시는 그딴소리 하지 않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이 적잖이 힘든 듯 했다.

"이러다 쓰러지겠네! 불쌍한 센티넬에게 가이딩 좀 해줄래?"
"네가 그렇게 말 한 이상 절대로 쓰러질 일은 없을걸... 루스터는?"
"어, 아직 안 내렸나?

맥네어의 시선을 따라가자, 루스터의 기체는 아직 닫혀있었고 누군가 위로 올라가 창문을 두드리며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놀란 행맨이 뛰어가며 물었다.

"뭐야? 무슨 일 입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파일럿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그 정도는 보면 안다고 생각한 행맨이 대꾸하지도 않고 루스터의 기체에 다가섰다.

"거기 내려오세요! 제가 할게요. 제가 가이드입니다."

창문을 탁탁 치고있던 정비사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내려왔다. 행맨이 재빨리 기어 올라갔다. 루스터가 눈과 이마를 감싼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코 아래와 턱, 옷깃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행맨이 눈을 휘둥그래 뜨고는 창문을 세게 두들겼다.

"야! 열어봐! 뭐야? 무슨일인데?"
"...제이크?"
"그래, 나야. 너 코피 왕창 흘렸어. 의무실에 가야해."
"제이크, 나 눈이... 눈이 이상해..."
"뭐?"
"눈을 뜰 수 가 없어. 나 좀 도와줄래?"

행맨은 뒷골이 써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알았어. 어떻게 도와줄까?"
"일단 나가야겠어."
"그래. 그럼 오른손을 더 위로 올려봐..."

행맨은 더듬거리는 루스터를 도와 조종간을 조작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윽고 창문이 열렸고, 행맨이 루스터의 한 손을 잡은 채 손과 발의 위치를 하나씩 지시하며 이끌었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행맨을 도와 루스터를 부축했다. 겨우 땅 위에 발을 딛게 된 루스터가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여전히 두눈을 꼭 감고 잔뜩 긴장하여 눈썹을 좁힌 모습이었다. 행맨이 저도 모르게 잡은 손에 꽉 힘을 주며 말했다.

"괜찮을거야."

그제야 잔뜩 굳었던 얼굴에 힘이 풀린 루스터가 살짝 미소지었다.

"고마워."

행맨은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어깨 위로 루스터의 팔을 두르고 부축했다.

의무실에 도착한 후, 의사는 침대에 루스터를 눕히고 이것저것을 진찰하며 질문했다. 행맨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불길한 생각을 하고싶지 않았지만 조금전의 상황이 워낙 충격이었다. 눈이 이상하다던 루스터에게 혹시나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다면, 앞으로 루스터는 어떻게 되는 것 인지... 너무도 느닷없는 상황이었다. 모든것이 잘 해결되고 미션을 마무리 지었는데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 때, 의사가 행맨을 불렀다. 가까이 다가간 행맨이 긴장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추후에 정밀검사를 해야 하겠지만 정황상 센티넬 능력을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사용하여 몸에 물리적으로 충격이 온 상태입니다. 아마 착륙 할 때부터 이미 시야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착륙하기 위해 능력을 또 사용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다행히 아주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눈은요? 눈을 못 뜨고 있지 않습니까?"
"아, 네. 지금 일시적으로 시력 상실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센티넬이니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겁니다."

지금 시력이 상실되었다면서 너무 쉽게 회복을 말 하는 것에 황당해하던 행맨이 서서히 좀 화가 나려던 순간 의사가 의아한 기색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가이드 아니신가요?"
"맞습니다만."
"네, 그럼 가볍게라도 빨리 가이딩 해주시는 편이 환자분 고통 경감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아."
"예. 그렇지만 시력을 회복하는건 좀 더 높은 수준의 가이딩이 필요할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잘 모른다. 행맨은 그제야 가이딩이라는 이 세계의 마법은 물리적인 회복기능까지 있다던 내용을 떠올렸다. 행맨이 그를 자신의 능력으로 상식처럼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허무맹랑한 내용이었던지라 완전히 잊고있던 차였다. 다채롭게 변해가는 행맨의 표정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의사는 이내 호출기를 들여다보고서 말했다.

"잠시 자리 비워드릴게요. 간단한 가이딩 정도는 처치실에서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행맨은 문이 닫히는 것을 본 후 얼떨떨한 상태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눈을 감고있다 뿐이지 멀쩡히 모든것을 듣고있던 루스터는 손을 꼭 잡아오는 온기를 느꼈다. 서툴고 미약한 가이딩이 조금씩 스며들어왔다.

"넌... 왜 말을 안하냐? 아프면 말을 해야 도와주지. 말을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고."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여리고 아픈 감정이 깔려있었다. 루스터가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해."

다른 가이드라면 아마도 당연히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했을법한 일을 하지 않은것은 자신인데도 오히려 미안해하는게 정말 바보같았다. 그런데 또 그 때문에 마음이 더 괴로워진다. 행맨이 한숨을 푹 쉬었다.

"너 일부러 이러는거지?"
"으응?"

그럴 리 없단걸 사실은 알았다. 행맨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루스터를 내려다보았다. 머뭇거리던 행맨이 몸을 기울여 루스터의 머리 옆에 손을 두었다. 한 손은 여전히 놓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몸을 숙여 루스터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쪼듯이 윗 입술과 아랫 입술에 쪽 쪽 입 맞추는 감각이 꼭 고양이가 와서 핥는 양 간질거렸다. 루스터는 별안간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어서 부정맥이라도 온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눈과 눈 뒤가 욱씬거리던 감각이며 날카로운 송곳으로 쿡쿡 쑤시는 듯한 두통이 조금씩 나아졌다. 루스터는 온몸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팔을 들어 행맨을 끌어안았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틈을 남겨두고 띄워져 있던 상체가 루스터의 위로 내려앉았다.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행맨의 배 아래에 깔려 더없이 밀착되었다. 허리와 등을 감싸안으며 옷자락이 스치고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꼭 껴안은 모양새지만 피부는 닿아있지 않아, 가이딩이 아닌 순수한 포옹이었다. 행맨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이상할정도로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루스터의 혀가 입 안으로 밀려들어와 부드럽게 건드려왔다. 저번의 가이딩 때 처럼 강하게 그를 몰아치지 않았고 풋풋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다정스러운 입맞춤을 나눌 뿐이었다. 그러나 행맨은 어쩐지 이것도 그 못지않게 부끄러운 것 같았다. 얼굴에 열이 오른 것 처럼 뜨끈한 감각이 느꺼졌다. 입술이 닿아있다가 떨어질때면 조금이라도 더 달라붙어 있으려는 듯 미묘하게 늦어지는 착각이 일었다. 자성과도 같은 가이딩으로 살갗이 간질거렸다. 어느새 혀 아래에서 침이 고여 소리내지 않으려 해도 촉촉한 마찰음이 자연스래 만들어졌다. 루스터가 입술을 맞붙인 상태에서 침을 꼴깍 삼키며 혀를 빠는게 느껴졌다. 순간 아래가 찌릿거렸다.

"헉...!"

행맨이 숨을 들이키며 입술을 떼었다. 그가 멍하게 얕은 숨을 몰아쉬는데 루스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실눈을 떠 보았다가 이내 깜박이며 조금씩 눈을 떴다. 행맨이 저도 모르게 기쁜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루스터! 보여?"

루스터가 몇번 더 깊게 깜박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뜰 수만 있는 것 같아."
"그런게 어딨어. 뜨면 보여야... 어? 눈이 왜 이래?"

똑바로 들여다 보니 흰자에 온통 실핏줄이 터져 끔찍해 보이는 몰골이었다. 행맨이 머리 옆에 짚었던 손으로 루스터의 눈꺼풀을 이리저리 당겨보며 중얼거렸다.

"야... 너 눈알 터질뻔했나봐."
"그, 그정도야?"

당황하는 모습에 아차 싶어진 행맨이 다시 얼버무리며 안심시켰다.

"아니, 그냥 놀라서 해본 말이야. 좀 충혈되긴 했는데 멀쩡해."

루스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행맨이 다시 손을 머리옆에 짚고는 일어서 앉았다. 루스터도 껴안고 있던 팔을 풀어 몸을 일으켰다.

"눈 못 뜨겠다더니, 좀 나아졌나보네."
"아아, 눈을 뜨려고 하면 아파서 도저히 뜰 수가 없었는데, 뭔가 괜찮아진 것 같길래..."
"뭐? 그렇게 애매한 느낌으로 그래도 되나? 좀 더 조심해."
"네 말이 맞아. 근데 보고싶어서..."

행맨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루스터가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얼굴 보고싶어서 그랬어."

물어보지도 않은걸 술술 말하고 있는 주제에 수줍은 것 처럼 빨개진 두 볼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관이 피투성이라 험악한 꼴을 하고 있는 주제에... 근데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부담스럽기만 해야 할 모습이 싫지가 않았다. 행맨이 소리없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루스터는 그것도 모르고 말 한 그대로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귀엽게 입 맞추어 주던 표정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루스터는 그저 키스를 하고 난 후 반질반질 탐스러울 입술을 눈으로 보고, 반짝이는 두 눈을 마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 모습을 상상했다.

*UAV : 무인 항공기
*CiG-41 : 가상의 6세대 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