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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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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ㅈㅇ 오타 ㅈㅇ 그냥 써재낌ㅈㅇ..



홧김에 고백 아닌 고백을 한 후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언니는 여느때처럼 출근길에 마당에서 그저 쳐다보는 나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인사를 했고, 나는 그 모습에 허무한 눈초리를 던져 보았다. 여태 꽁꽁 숨기며 참아온 감정이 무색할 만큼, 다음날 그저 헛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문의 "언니"라는 여자가 레이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게 와전된거라나 뭐라나.. 왜 그딴 소문을 내서 12년간 참은 마음을 터트리게 한 건지 짜증만 났다.


정확히 그 짜증은 나에게 있었다. 첫째, 나는 언니를 12년간 지켜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 8살때 우리집 옆집으로 언니네 가족이 이사 온 후로 쭉 내 시선 안에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네 가족과 인사하고서 난 하루도 빠짐없이 언니에 대한 생각만 했다. 처음 인사하는 날 "안녕!" 세상에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봐서 대답도 못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엄마 뒤로 숨었다. 부모님은 "애가 낯을 많이 가려요. 외동이라 언니가 생겨서 좋은 가봐요." 너스레를 떨었고, 언니네 어머니도 "이 나이때는 언니들을 동경하죠. 루니는 언니가 생겨서 좋겠구나." 귀여워해줬다. '동경'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 어려웠고 방으로 돌아와 무슨 뜻인지 찾아봤는데 읽고나서 더 아리송 해졌다. 난 언니가 그냥 좋은건데. 물론 그 좋아하는 정도가 다름은 어린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나를 잘 따르는 앞집 마이크씨네 강아지 줄리나 시내 사거리에서 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부모님까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비교해도 언니가 제일 좋았다.


유독 내성적인 나는 언니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어린 나와 놀아주지 않을까봐 늘 마당 울타리 언저리에서 쭈뼜대고 있었다. 차마 바로 보지도 못하고 힐끔거리며 한동안 언니를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을 언니가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줬다. "안녕, 루니." 그 목소리와 미소가 보고싶어서 언제나 우두커니 기다렸다. 언니가 나를 발견할 때 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발견한 언니는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냐며 따사로운 미소와 함께 먼저 다가오거나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고등학생인데도 어린 나와 어울리려고 노력하며 이것 저것 물어봤는데, 하루는 아무 생각없이 들고 있던 책에도 관심을 가졌다. 사실 언니랑 같은 수준으로 보이고 싶어 서재에서 제일 어려워보이는 책을 꺼내온건데 '너도 책을 좋아하는구나. 벌써 이런 책도 읽네' 대견하듯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 손길에 내 취미는 독서가 되었다. 그 뒤로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언니는 내 수준에 맞게 이런 저런 책을 추천해주었고 빌려주었다. 안타깝게도 책과 별로 친하지 않아 읽는데 매우 힘들었지만 언니의 취향을 알게 되어 기뻤다. 빌려준 책의 냄새를 맡으며, 책 속의 밑줄이나 메모 같은 보석들을 찾으며, 꽂아있는 책갈피를 보며 언니를 생각했다. 언젠가 언니는 책이 너무 좋아 나중에 도서관 사서가 될 거라고 얘기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진로와 미래는 정해졌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의 신분 차이에도 매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언니가 지루하리만큼 집과 학교만 오갔고, 나 또한 학교가 끝나면 더 늦게 끝나는 언니를 기다리기 위해 늘 집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일찍가도 언니는 몇시간 뒤에나 오는데 무작정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세네시간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보면 언니가 집에 도착하고 우리집 마당에 있는 나를 발견해 인사를 하곤 했다. 나는 하루 중 그 순간을 가장 기다리고 사랑했다. 학교에서 해준 마쉬멜로 이야기처럼 참고 기다리다 언니를 만나는 그 시간이 그렇게나 달콤했다. 우리는 서로 학교에서 있던 이야기나 동네 이야기를 나눴고, 앞집 마이크씨네 강아지 줄리 얘기도 했다. 사실 대화를 나눴다기보다 주로 언니가 맞춰준거지만.. 지금도 그렇게 말이 많진 않지만 난 필요한 말만 대답하는 성격이다. 말주변도 없고 지어낼 머리도 없었다. 게다가 언니 옆에만 있으면 괜히 속마음이 다 드러날까봐 쥐죽은 소리마냥 겨우 대답을 하곤 했는데, 그렇게 대답한 덕분에 (의도한건 아니지만) 언니는 내 목소리를 들으려 "응? 뭐라고?" 머리를 맞대어 오곤 했다. 그럴때마다 포근한 꽃향기가 숨막히게 다가와서 그 포근함에 취해 죽어도 좋겠다 늘 생각했다. 이런 마음도 들킬까봐 대답은 더 못했지만...


아무튼 내가 12년간 지켜본 언니는 쭉 일관되게 상냥하고 성실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 난 그간 언니의 책 취향도 알고, 친한 친구들의 이름도 다 알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도, 노래를 못 부르는 것도, 수영을 싫어해서 휴가때 아픈척 하는 것도, 약속 어기는게 싫어서 지각 한번 안하는 것도, 부모님과 진로 문제로 다투고 홧김에 집을 나와서 간 곳이 내 방이라는 것도 다 아는데. 언니는 날 헷갈리게 한 적이 없다. 아니 없었다. 어제 한 대화를 생각하면 그 머릿속을 하나도 모르겠다. 다시 고백의 날로 돌아가자면 언니는 그때 너같으면 나같은 애랑 하겠냐며 자조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혹시 언니도 상대방에게 마음이 있다는 얘기일까? 말도 안되지만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나온 말일까? 헛소문이면 아니라고 했을텐데. 이제 여기서 더 나서서 물어봤다간 이정도의 관계도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 생각에 울적하고 무력해졌다.


나는 늘 욕심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매사 의욕이 없다. 학교도 공부도 그냥 성적에 맞춰서 그럭저럭 시늉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뭔가 먹고 싶은 욕구나 재밌게 놀고 싶은 욕구,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그런데 언니 한정해서 자꾸 선을 넘어버리고 싶다. 바람에 불면 흩날리는 머리도 넘겨주고 싶고, 화사하게 웃을땐 볼에 뽀뽀도 하고 싶고, 밝은 날에 해를 가리는 손.. 그래,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내 손과 얽고 싶다. 처음엔 작은 욕심이였는데 자꾸 커져서 불쑥불쑥 튀어나올까봐 요근래 피해 다녔다. 어쩌다 집에 들어갈때 언니와 마주치면 "요즘 우리 고양이 보기가 힘드네" 샐죽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그 고양이는 나였다. 다가오는데 한참 걸리고 경계하는게 꼭 고양이 같았다며 붙여준 별명이다. 어떤 날은 키티~라고 불렀다가, 어떤 날은 냥이라고 불렀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언니한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마냥 좋았다. "키티~ 무슨 일이 있는거야?" 언니가 대답 없는 나를 보며 걱정어린 말투로 성큼 다가왔다. 그 눈망울을 보자하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고 싶었지만 꾹 꾹 눌러참아야만 했다. 이 정도의 거리마저 유지 못하면 난 정말 죽고 싶을거다. 죽느니 괴로운 상태로 머무는게 내가 선택한 방법이였다. 



바이첼루니마라로 혼자 끓여먹는 사약.. 후룩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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